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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하늘을 보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9-10)
이 땅에서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피할 수 없는 것들이 바로 시련이라는 고개이다. 한 고개를 넘고 한 숨을 돌리면 언제냐 싶게 다시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 이 고개이다. 세상은 이럴 때마다 인생을 탓하고, 팔자를 탓하며 거친 숨을 몰아 세운다.
시련은 죄의 부산물이다. 하나님께서 만유를 창조하실 때에는 모든 것이 보시기에 좋았다.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의 실과들이 온 땅을 덮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범한 후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내었고 사람은 종일 수고하고 이마에 땀이 흘러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살기 위해 땅과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 시련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시련은 신자들이 겪는 것으로는 합당하지 못하다. 주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것은 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1-32)고 하셨다.
신자의 삶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그것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후 자신의 외적인 것들을 버리고 그 분을 위해 오직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바울은 세상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설!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라는 진리!
세상은 환란에 접어들면 핏발선 눈을 치켜 뜨고 거친 숨을 몰아 쉰다. 그러다가 한계에 도달하면 자포자기로 자신을 버리고 만다. 그러나 신자는 환란의 때에 하늘을 본다. 그분의 능력이 자기에게 임하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나도 하늘을 보고 있다.
(샘솟는 교회 신 상 헌 목사)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9-10)
이 땅에서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피할 수 없는 것들이 바로 시련이라는 고개이다. 한 고개를 넘고 한 숨을 돌리면 언제냐 싶게 다시 우리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 이 고개이다. 세상은 이럴 때마다 인생을 탓하고, 팔자를 탓하며 거친 숨을 몰아 세운다.
시련은 죄의 부산물이다. 하나님께서 만유를 창조하실 때에는 모든 것이 보시기에 좋았다.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의 실과들이 온 땅을 덮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범한 후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내었고 사람은 종일 수고하고 이마에 땀이 흘러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살기 위해 땅과 사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 시련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러나 이런 시련은 신자들이 겪는 것으로는 합당하지 못하다. 주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것은 다 이방인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1-32)고 하셨다.
신자의 삶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그것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후 자신의 외적인 것들을 버리고 그 분을 위해 오직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였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바울은 세상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설!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라는 진리!
세상은 환란에 접어들면 핏발선 눈을 치켜 뜨고 거친 숨을 몰아 쉰다. 그러다가 한계에 도달하면 자포자기로 자신을 버리고 만다. 그러나 신자는 환란의 때에 하늘을 본다. 그분의 능력이 자기에게 임하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나도 하늘을 보고 있다.
(샘솟는 교회 신 상 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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