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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시대의 기본 특징과 사회변화는 산업사회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양상으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교회는 새로운 전도전략을 개발하여 정보시대의 추세에 맞는 효율적인 전도를 하여야 한다. 정보시대의 특징에 비추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전도전략의 개발을 제의한다.
1. 연령별 계층 중심의 전도 방법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에 의하면 1995년 우리 국민 전체의 5.9%이던 65세 이상의 노인이 2000년에는 7.1%, 2020년에는 14.3%, 2030년에는 19.3%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급격한 노령화 사회를 의미한다. 반면에 현재의 청년층 또한 상당히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인구 가운데 젊은 세대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20세에서 24세까지의 인구가 전 국민의 10.1%, 25세에서 29세까지의 인구가 10%, 30세에서 34세까지의 인구가 전 국민의 9.7%, 35세부터 39세까지의 인구가 7.4%로써 20대와 30대 인구가 전체 국민의 37.2%이었다. 지난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 당시에도 20세 이상의 선거인 가운데 절반 이상이 20대와 30대인 것을 감안하면 교회의 선교 전략이나 관심이 젊은 세대를 수용할 수 있도록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신세대의 특징인 PANTS 신드롬에 맞는 전도전략이 개발되어야 한다. PANTS란 개인주의적(personal), 흥미 본위(Amusement), 자연스러움(Natural), 남녀 성별 구분의 모호(Trans-border), 그리고 극단적 자기 사랑(Self-loving)이다.
2. 그룹 중심의 전도 방법
근래에 와서 기독교 교육학을 중심으로 소그룹 운동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고, 교육적 효율성을 위하여 소그룹을 도입하는 목회 방식이 발전되고 있다. 특히 제자훈련을 목회에 도입한 교회들은 소그룹 운동을 실시하고 있는 상태이다. 대형교회 중심의 한국 교회는 교인의 관리나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이미 소그룹을 도입하여 구역(속) 활동이 발달하였고, 중대형 교회들 가운데서 소그룹을 통한 상담과 교육이 효과를 보고 있다.
예수님의 기본 목회는 소그룹이었음을 성경을 통하여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은 목회에서 사람을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예수님은 제자를 세우실 때에 네 사람씩 세 그룹으로 나누신 것이 분명하게 성경에서 드러났다. 소그룹이란 그리스도께서 만드신 제자 훈련의 방법이었고, 초대교회 구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정보사회는 대규모 사업에서 소규모 사업으로 전환되는 사회이다. 정보사회는 작게 만드는 기술을 가진 나라가 경쟁력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도 작은 그룹을 통하여 훈련을 가능하게 하며, 작은 그룹을 통하여 전도하며 훈련하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이미 소그룹을 통하여 성공한 교회들의 사례가 많이 있다.
3. 교회 단위 전도 방법
최근 한국 교회는 심각한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출생률의 감소로 인한 교인의 감소도 원인이지만, 나아가서 교회가 수행하던 위로, 도움, 안정, 긴장해소의 기능들을 대신해 주는 기능적 대행물 (funtional alternatives)의 발달 때문이다. 기능적 대행물의 발달은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 밖으로 나가게 만들며 주일 성수의 개념을 바꾸어 놓고 있다. 이전의 주일성수는 반드시 자신이 적을 가진 교회의 주일예배에 참석해야 한다는 의미였지만 이제는 자신이 적을 가진 교회가 아니라 주일에는 어디에 있든지 예배는 드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 나라도 소득의 증가에 따른 여가혁명으로 말미암아 여가를 즐기려는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개인 소득이 5천 달러 이상이 되면 레저가 발달하는데 우리 나라의 경우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20여 가지에 불과하던 레저가 이제는 150여 가지가 되고, 10만 명 이상의 동호인을 가진 레저의 수도 20여 가지나 된다. 교회의 기능적 대행물로 등장한 레저는 자동차의 폭증과 더불어 교인들을 교회에서 서서히 몰아내어 흩어지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다른 중요한 요인의 하나는 교회가 젊은 세대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의 대이동은 예로부터 이어져 오던 것인데 최근에는 주말 대이동이 가장 심각한 이동이며, 교회에 영향을 주는 이동이 되었다. 인구의 대이동은 오는 교회에서 가는 교회로의 패러다임 변혁의 또 다른 중요한 요인으로 사료된다.
레저의 발달로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교인들이 증가하며, 교회에 출석은 하지 않지만 교회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출석해야 한다는 것은 무리한 강요일 수 있다. 이제는 교회에 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새로운 전도 전략이 개발되어야 하는 때이다.
4. 정보 매체를 통한 전도 방법
우리는 이미 정보통신의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장거리 통신수단은 세계화의 한 요인이며 나이스비트(John Naisbitt)가 말한 대로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글로벌 패러독스의 동인이 되는데 장거리 통신수단의 멀티미디어 시대를 가능하게 한 요인이다. 정보통신혁명이란 미디어간의 기술적 수렴, 곧 디지털화, 영상화, 종합화, 융합화, 상호작용화, 탈대중화, 비동시화 등의 과정을 통해 정보유통 과정에 사용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발생한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사회 변동이다.
이러한 정보화 기술의 발전은 우리 사회로 하여금 이미 케이블 텔레비전 시대를 열게 하였으며 위성방송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전의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일 대 다수(one to many)의 등식이 일 대 일 (point to point) 또한 다수 대 다수 (many to many)의 등식으로 바뀌고 정보교환이 방향과 대상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되었다. 이러한 상호 작용성 뿐만 아니라 영상과 음향을 저장하는 기술을 통하여 커뮤니케이션의 비동시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구약시대의 하나님은 음성으로만 존재하였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음성으로만 전달하였고 하나님과 인간의 인격적 관계도 음성에 제한되었다. 구약의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고 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대언하는 '소리'에 불과하였다.
신약시대의 미디어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토탈 미디어로 오신 미디어의 전환이다. 지금까지는 음성으로만 듣고 머리로 생각하던 하나님을 육신으로 보고 듣고 느끼게 한 상황의 전환이었다.
이제는 음성으로 듣는 단순 미디어가 아니라 집적 보고 듣고 만져보고 감각으로 느끼게 하는 토탈 미디어이며 멀티미디어의 시대로 전환된 것이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이제는 듣고, 보고, 만지고, 인간과 똑같은 감각으로 오신 하나님은 다각적인 전달을 통하여 인간과 새로운 교류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모든 가능한 전달의 수단을 동원하여 인간에게 오신 멀티미디어의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멀티미디어 시대를 맞이하여 교회도 단순한 청각미디어에서 총체적인 멀티미디어로 전환하여야 할 것이다. 듣는 설교에서 보고 체험하는 설교로, 듣고 이해하는 성경에서 보고 실천하는 성경으로, 작가로서의 그리스도인에서 퍼포머로서의 그리스도인으로 전환해야 하며, 이러한 변혁이 기독교에 새로운 존재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정보시대에 걸맞는 미디어 전도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5. 평신도 중심의 전도 방법
지난 세대에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던 성직 패러다임은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평신도 사역의 극대화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이전의 목회에서 평신도는 목회자와의 종속적 관계에서의 협력자이었으나 미래 목회에서 평신도는 목회자와 동등한 관계에서의 동역자가 될 것이다. 미래 교회는 평신도 사역이 극대화되고 평신도 사역을 통한 교회성장을 도모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직자에게 의존되어 있던 목회 패러다임을 평신도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조지(carl George)가 이르기를 미래형 교회라고 하는 메타교회(Meta church)는 소그룹을 통한 교회활동을 강조하고 목회자는 평신도 훈련을 위한 일에 많은 시간과 힘을 투자해야 한다고 하였다. 소그룹의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회의 중심이기 때문에 소수의 목회자가 필요할 뿐이다. 그러므로 미래 교회는 평신도 훈련을 강조한다. 평신도는 교회의 안정적 대상이기 때문에 교회의 관심을 증대할 수 있고 전문가로서 선교의 효과를 증대할 수 있을 것이다.
평신도는 목회자와는 달리 적절한 훈련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목회에 기여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는 교회의 잠재력 자원이다. 목회자는 교회에 영향을 많이 주지만 언제나 유동적이며 안정적이지 못하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교회의 조직을 장악하는 것은 목회자의 이동시 교회를 불안정하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평신도는 교회의 안정된 구성요소로서 잘 훈련된 평신도는 안정된 교회의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평신도 중심의 교회로 전환되어야 한다.
실제적인 면에서 평신도는 다양한 전문적 특성을 포함하고 있다. 성직자가 가질 수 없는 전문적 영역을 평신도는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평신도의 잠재력은 성직자 개인이나 교회에 굉장한 힘이 될 수 있다. 교회는 다양한 기능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성직자는 모든 일에 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현실적 제한을 인정하고 평신도가 가진 다양한 기능을 교회를 위하여 이용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21세기 연구에 대하여도 성직자가 가지는 미래에 대한 지식이란 제한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평신도의 기능을 이용하면 훨씬 발전적인 21세기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성직자에게 편중된 교회 구조를 평신도와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교회와 성직자 개인에게 유익이 될 것이고, 또 미래 교회의 전도는 자연히 성직자 중심의 구조에서 평신도 중심의 구조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6. 가정 예배를 통한 전도 방법
고도의 테크노피아의 지배를 받게 되는 미래사회의 가정은 최첨단 과학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고, 기술이 가정의 면모를 전혀 새롭게 바꾸어 놓게 될 것이다. 우선 가정에서의 세대간의 간격이 과학과 기술로 말미암아 커져갈 것이다. 기성세대와 신세대는 서로의 다른 관심 때문에 텔레비전의 채널의 선택이 달라지게 될 것이고, 가정에서의 대화의 관심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흔히 우려하는 대로 가사의 80% 이상을 돌보게 될 로봇을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이 가정주부의 역할을 하므로 가정주부의 여가 이용이 미래의 큰 연구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러한 미래적 예측이 사실로 다가오므로 가정은 새로운 가치관과 가정에 대한 중요성의 비중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미래 사회의 변화 가운데 큰 특징 중 하나는 가정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 교회는 어떤 형태의 교회이든지 가정 중심의 교회, 가족 중심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미래 교회가 가정 중심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미래사회는 가정을 중심으로 변환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미래의 가정이 전통적인 가정의 모습을 유지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신세대가 개인주의적이듯이 미래 가정은 다세대의 가정보다 핵가족이 극대화될 것이고 가족이 분열되고 이산되는 경우가 흔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미래 교회는 가정 중심으로 그 목회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성이 요청되고 있다. 가정 중심이라는 것은 성경적 가정관을 되찾게 해주고 가정의 원래의 모습을 찾아주자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미래 교회는 가정 중심의 훈련들, 그리고 가정 중심의 전도를 개발하여야 한다.
7. 지역사회가 참여하는 참 사랑 실천 전도 방법
지난 6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의 고속성장 추세는 그후 둔화현상이 두드러지고 최근에 와서는 침체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한국 교회의 많은 교회들이 침체 혹은 쇠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간의 한국 교회의 교회성장 신드롬은 기세가 꺾이고 있으며, 이제 다시 한국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회성장 신드롬을 극복해야 한다. 그 동안의 교회성장이라는 상향 중심의 목회관을 가지고는 교회의 본래적 목적을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의 교인과 건물의 크기를 가지고 교회를 평가하고 목회의 성공 여부를 따지던 이전 시대의 신드롬을 벗어나서 새롭게 옆으로 열린 창을 향해 사회를 목회적 관심의 대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미래 교회는 자기 중심적 교회관에서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 그 중심이 이동할 것이며, 이미 부분적으로 이러한 중심이동의 현상이 한국 교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동안 관심은 교회성장이었고, 선교는 개인 영혼 구원, 혹은 교회성장이라는 제한적 의미를 가졌지만 정보사회에서의 교회의 관심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본질적 물음으로 전환될 것이다. 그래서 선교의 개념도 개인 구원이라는 제한적 개념에서, 개인구원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통전적(holistic) 개념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러한 새로운 변형의 시도는 사회봉사로 교회의 관심이 전환될 것이다.
최근의 한국 교회의 침체현상의 가장 큰 요인의 하나는 교회가 수적 성장은 이루어졌으나 질적 성숙에 미흡했다는 자가 비판을 많이 한다. 어느 사회이든 기독교가 25% 이상이면 기독교 문화가 형성된다고 하는데 한국 교회는 기독교 문화를 정착하는 데 실패하였다는 것이다. 주일이면 교회에 나오는 교인은 많은데, 주일 외에 사회에서 교인을 찾을 수 없다는 소리가 크다. 그래서 흔히 이러한 교인들은 '주일 크리스천(Sunday Christan)'이라 하며, '명목상의 크리스천(Nominal Christan)'이라고 한다.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분명히 교회는 성장했고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의 문화는 그리스도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교회는 지금까지의 성장구조에서 성숙구조로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시도하여야 할 것이다. 구조의 조정은 교회 목적의 변경일 수도 있고, 목적의 확실성일 수도 있다.
미국의 가장 큰 컨설팅 회사인 멕켄지 컨설팅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건실하고 좋은 회사가 가지고 있는 회사의 특징을 연구하여 다음과 같은 7S 법칙을 발표하였다. 관리 스타일(Style), 관리기술(Skill), 전략(Strategy), 구성원(Staff), 제도나 절차(System), 구조(Structure) 그리고 공유된 가치(Shared Value)가 특징이다. 이것들 가운데 공유된 가치란 회사가 가지는 문화인데, 나머지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성공적 관리의 기법들이다. 한국 교회의 전도전략도 사회봉사로 그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며, 전환하려면 교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 자체를 사회성을 포함할 수 있도록 전환하여야 한다.
8. 개인의 영적인 성품, 즉 진리, 생명의 전도 방법
정보사회는 기술시대이다. 과학 기술이 최고의 가치로 각광받는 시대를 의미한다. 기술이 보편화되어 있고 기술이 가치를 동반하는 시대에 사는 목회자들에게는 목회 기술을 요청하고 기술 목회에 익숙해져 간다. 목회에서 프로그램이란 하나의 목회적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이 목회적 목적으로 둔갑하여 좋은 프로그램이 좋은 목회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목회의 본래적 모습을 찾는 것이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공통점이 있다면 재생정신이라는 것이다. 16세기의 르네상스는 중세에 대한 단절로써 재생정신을 알리는 인간의 본질로 돌아가려는 운동이었다. 종교개혁 역시 중세에 대한 단절로써 성경의 본질로 돌아가려는 운동이었다. 르네상스가 인문주의적 시도였다면 종교개혁은 영적 시도였다. 르네상스란 중세인이 입혀준 교리의 옷을 벗는 운동이며 형식의 거품을 빼는 운동이었다. 결국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중세의 세상과 단절된 방주 안의 구원에 만족하고 울타리 안에서 고행과 도덕률을 강조하여 내용보다 교리에 치중하였던 당시의 중세풍의 경건의 탈을 벗어버리고, 교리로부터 탈출하여 생명력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는 훈련을 하는 새로운 경건으로 전환되게 하였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중세의 탈을 벗고 형식의 거품을 빼는 운동이며, 교회의 본래적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영성 운동이었다면 현대 교회는 다시 이러한 본래적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미래사회의 한 특징을 이단과 사이비의 출현이라고 단정한다. 사람들이 기계와 더불어 살고 조직적 사회에서 살게 되면 자연히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영성을 추구하게 되는데, 교회가 건전한 사회를 제공하지 못하면 사회는 잘못된 영에 사로잡히게 되고 이단과 사이비가 사회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최근에 와서 교회가 가지고 있던 영적 기운을 서서히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한국 교회가 통계적으로 침체하기 시작한 연도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침체하기 시작한 연도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한국 교회가 영적으로 침체하기 시작한 연도는 1996년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1996년은 이상하리만큼 사회가 그릇된 영적 분위기에 사로잡히게 된 해이다.
우선 1996년은 환생과 전생 신드롬이 사회를 어지럽게 한 해이다. 전생에 대한 관심이 특히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은 것에 대하여 교회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개혁자들은 영성을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바른 응답'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세속적 영성과 기독교 영성의 개별성을 확실하게 구분한다. 이는 개혁자들이 모든 직업을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한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영성이란 우리의 모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이 자리에 계시다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과 일체된 삶을 사는 것이다.
기독교는 두 가지 큰 기능을 가진다. 하나는 영성적 기능(spiritual function)이며 또 다른 하나는 예언자적 기능(prophetic function)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영성적 기능을 가진 영성적 종교이며, 동시에 예언자적 기능을 가진 예언자적 종교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교회사가들은 유럽 교회들의 급속한 쇠퇴의 원인을 '예언자적 기능에 지나치게 치중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한국 교회는 그 기능의 균형을 유지하여야 할 것이며, 특히 영성적 기능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영성적 기능의 쇠퇴가 현실적으로 나타나며 두 기능의 불균형이 가시화되기 때문이다. 미래적 전망에서 한국 교회가 재성장할 수 있는 길은 영성에 달려 있다.
이 영성의 회복은 성경의 본래적, 교회의 본래적 사명으로 돌아가려던 종교개혁이 버금가는 한국 교회의 신 종교개혁 운동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교회는 영성적 전도를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9. 조직 형태의 전도 방법
복음 전도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조직된 교회를 중심으로 전도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시몬 베드로의 믿음을 보시고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 : 18)고 말씀하셨고, 그후 부활하사 승천하시기 직전 교회의 핵심인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고 분부하셨다.
또한 바나바와 사울의 성령의 명령에 따라 선교사로 안수하여 파송했던 기관도 안디옥에 있던 조직된 교회였다.(행 13:1∼4) 이렇게 볼 때 복음전도의 사명이 조직된 교회에 주어졌으며, 그러므로 복음 전도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교회 중심의 전도라 하겠다. 이러한 교회 중심의 전도에 내포된 의미는 다음과 같다.
교회는 반드시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즉 복음전도는 예수께서 조직된 교회에 위탁하신 사명이요, 동시에 참된 교회의 증표인 것이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 즉 각 성도들은 복음전도의 중추적인 수행자로서의 교회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각 개인은 복음을 전파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는 각 성도들이 교회의 복음전도 사역을 도와야 한다는 뜻이다.
교회는 복음전도의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회심자들을 교회에 연합시켜야 한다. 즉 복음전도의 목적은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구원받은 영혼을 교회에 연합시켜 주는 것이다. 이러한 복음전도를 통하여 교회는 성장하는 것이다.
10. 정보이용 교육을 통한 전도 방법
지금까지 행해져 온 복음전도는 크게 보아 대중전도와 개인전도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대중전도와 개인전도는 복음전도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이 중 하나라도 배제되어서는 안되고 상호 보완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그 밑바닥에는 가르침과 지도, 즉 교육이 있어야 한다. 이는 교육이 우선적으로 강조되는 복음전도, 다시 말해 교육 중심의 전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교육 중심의 전도가 우선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새신자 전도와 교육 중심의 전도
대중 전도는 보통 인간의 의지와 감정에 호소하는 설교로 수행되는데 설교를 듣는 청중이 성경이나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졌다. 이러한 전제는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전제가 그 타당성을 잃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세속사회에서 생활하는 일반대중이 성경의 역사나 교리, 그리고 그 윤리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대중이 늘어가는 현 상황을 감안할 때 의지와 감정에 호소하는 대중전도는 일반대중의 거부반응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대중전도를 수행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교육적 가르침이 필요하게 되었다.
예수께서도 대중전도가 안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다. 즉,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마 13:20∼22)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는 복음에 의해 감정적으로 일시적인 영향을 받기는 했으나 하나님의 말씀과 영에 의해 지적으로 변화되지 못한 사람은 작은 환난이나 핍박에도 넘어지기 쉽다는 경고이다. 그러므로 대중전도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2) 개인전도와 교육 중심의 전도
개인전도는 무척 중요한 복음전도의 한 방법이다. 특히 개인전도는 회심이라는 개인적 체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대중전도보다 더욱 완벽하고 효과적인 전도를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전도를 수행함에 있어서도 성경에 대한 교육적 가르침이 수반되어야 한다. 교육이 전제되지 않은 개인전도 역시 그 뿌리가 없어 작은 환난이나 핍박에도 걸려 넘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언급한 대중전도와 개인전도는 독립된 별개의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이 중 대중전도는 동시에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한다는 장점이 있고 개인전도는 복음을 철저하게 전도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므로 대중전도는 개인전도에의 길을 예비하여야 하고 개인전도는 대중전도를 보완해야 한다. 그리하여 복음전도자는 많은 청중에게 설교를 할 때 성경이나 기독교 신앙에 대해 더욱 배우고자 하는 개인들에게 그 기회를 제공하여야 하며, 이러한 대중전도나 개인 전도는 모두 성경이나 기독교 교리에 대한 교육적 가르침을 수반해야 한다. 이렇듯 현대사회에서의 복음전도는 교육 중심의 전도가 되어야 하며 현대 사회 역시 이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11. 친밀감 있는 전도 방법
현대 사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신약성서 시대나 초대교회 시대와는 다르다. 특히 대중전달 매체와 교통수단의 발달로 세계가 훨씬 좁아졌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현대 사회의 제반 영역에서 일어나는 급격한 변화로 인하여 기독교의 복음전도에 있어서도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즉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현대적인 전도방법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현대의 모든 발명이나 과학적 발달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것들을 인간이 발견하고 이용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자연의 법칙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적 전도는 현대사회의 모든 대중전달 매체와 과학적 수단을 이용하여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또한 현대적 전도는 현대사회의 여러 가지 문화적 시설을 사용하여 복음을 전달해야 한다. 여기서 현대사회의 문화적 시설이란 위생시설, 의료기관, 공회당, 학교, 주택, 회사, 공장 등 현대인이 소속하여 살고 있는 제반 삶의 영역을 말한다. 이러한 현대 사회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기독교는 각 개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바꾸어 말한다면 다양한 문화적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그들로 하여금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도와 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현대적 전도는 각 개인들이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는 기독교가 문화적인 매체를 통해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방송, 신문 등 매스컴을 통한 전도, 의료사업을 통한 전도, 문서를 통한 전도, 음악, 미술, 연극 등의 예술을 통한 전도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문화의 유익을 강조한 나머지 복음전도의 측면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모든 문화적 매체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고 복음을 전파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12. 기도를 통한 전도 방법
1) 기도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응답의 조건이다.(막 9:29)
예수께서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신 후 제자들에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절대적 응답의 유일한 조건이 기도라는 것을 분명하게 강조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간의 역사 속에 실현시키는 가장 강력한 조건이다.
기도 목회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가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때, 우리는 이를 진정한 부흥이라고 말해야 한다. 기도 외에 다른 어떤 요인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교회성장이나 부흥은 그 요인이 상실됨과 동시에 무너져 버리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은 것이다.
사도 바울은 기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니라.'(빌 4:6∼7)
기도는 염려함을 버리고 감사함으로 드려야 한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으로 다가오시며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심으로 응답하신다.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의 영적인 내면의 세계를 지키시는 평강의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눈에 보이는 외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인 세계를 다스리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교회성장의 근본적인 요인은 목회자의 능력도 아니고, 교회의 행정력과 조직력도 아니며, 교인들의 왕성한 지도력도 아니다. 교회 성장의 원동력은 기도이다. 기도만이 교회성장의 지름길이며 정도이다. 기도로 부흥한 교회만이 진정한 부흥이며 안정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 기도 외에 다른 어떤 특별한 요인으로 부흥하여 성장한 교회는 항상 그 특별한 요인이 문제가 될 때 쓰러지거나 분열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교회가 기도로써만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며, 교회성장의 요인들 중에서 기도를 가장 최선의 우선 순위로 놓아야 한다.
민홍기 목사 전도 이렇게 합시다
- CDN에서(http://www.cdn.net) 발췌 -
1. 연령별 계층 중심의 전도 방법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에 의하면 1995년 우리 국민 전체의 5.9%이던 65세 이상의 노인이 2000년에는 7.1%, 2020년에는 14.3%, 2030년에는 19.3%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급격한 노령화 사회를 의미한다. 반면에 현재의 청년층 또한 상당히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인구 가운데 젊은 세대의 비율이 상당히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20세에서 24세까지의 인구가 전 국민의 10.1%, 25세에서 29세까지의 인구가 10%, 30세에서 34세까지의 인구가 전 국민의 9.7%, 35세부터 39세까지의 인구가 7.4%로써 20대와 30대 인구가 전체 국민의 37.2%이었다. 지난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 당시에도 20세 이상의 선거인 가운데 절반 이상이 20대와 30대인 것을 감안하면 교회의 선교 전략이나 관심이 젊은 세대를 수용할 수 있도록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신세대의 특징인 PANTS 신드롬에 맞는 전도전략이 개발되어야 한다. PANTS란 개인주의적(personal), 흥미 본위(Amusement), 자연스러움(Natural), 남녀 성별 구분의 모호(Trans-border), 그리고 극단적 자기 사랑(Self-loving)이다.
2. 그룹 중심의 전도 방법
근래에 와서 기독교 교육학을 중심으로 소그룹 운동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고, 교육적 효율성을 위하여 소그룹을 도입하는 목회 방식이 발전되고 있다. 특히 제자훈련을 목회에 도입한 교회들은 소그룹 운동을 실시하고 있는 상태이다. 대형교회 중심의 한국 교회는 교인의 관리나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이미 소그룹을 도입하여 구역(속) 활동이 발달하였고, 중대형 교회들 가운데서 소그룹을 통한 상담과 교육이 효과를 보고 있다.
예수님의 기본 목회는 소그룹이었음을 성경을 통하여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은 목회에서 사람을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예수님은 제자를 세우실 때에 네 사람씩 세 그룹으로 나누신 것이 분명하게 성경에서 드러났다. 소그룹이란 그리스도께서 만드신 제자 훈련의 방법이었고, 초대교회 구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정보사회는 대규모 사업에서 소규모 사업으로 전환되는 사회이다. 정보사회는 작게 만드는 기술을 가진 나라가 경쟁력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도 작은 그룹을 통하여 훈련을 가능하게 하며, 작은 그룹을 통하여 전도하며 훈련하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이미 소그룹을 통하여 성공한 교회들의 사례가 많이 있다.
3. 교회 단위 전도 방법
최근 한국 교회는 심각한 정체현상을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출생률의 감소로 인한 교인의 감소도 원인이지만, 나아가서 교회가 수행하던 위로, 도움, 안정, 긴장해소의 기능들을 대신해 주는 기능적 대행물 (funtional alternatives)의 발달 때문이다. 기능적 대행물의 발달은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 밖으로 나가게 만들며 주일 성수의 개념을 바꾸어 놓고 있다. 이전의 주일성수는 반드시 자신이 적을 가진 교회의 주일예배에 참석해야 한다는 의미였지만 이제는 자신이 적을 가진 교회가 아니라 주일에는 어디에 있든지 예배는 드려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 나라도 소득의 증가에 따른 여가혁명으로 말미암아 여가를 즐기려는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개인 소득이 5천 달러 이상이 되면 레저가 발달하는데 우리 나라의 경우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20여 가지에 불과하던 레저가 이제는 150여 가지가 되고, 10만 명 이상의 동호인을 가진 레저의 수도 20여 가지나 된다. 교회의 기능적 대행물로 등장한 레저는 자동차의 폭증과 더불어 교인들을 교회에서 서서히 몰아내어 흩어지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다른 중요한 요인의 하나는 교회가 젊은 세대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의 대이동은 예로부터 이어져 오던 것인데 최근에는 주말 대이동이 가장 심각한 이동이며, 교회에 영향을 주는 이동이 되었다. 인구의 대이동은 오는 교회에서 가는 교회로의 패러다임 변혁의 또 다른 중요한 요인으로 사료된다.
레저의 발달로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교인들이 증가하며, 교회에 출석은 하지 않지만 교회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출석해야 한다는 것은 무리한 강요일 수 있다. 이제는 교회에 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새로운 전도 전략이 개발되어야 하는 때이다.
4. 정보 매체를 통한 전도 방법
우리는 이미 정보통신의 혁명을 경험하고 있다. 장거리 통신수단은 세계화의 한 요인이며 나이스비트(John Naisbitt)가 말한 대로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글로벌 패러독스의 동인이 되는데 장거리 통신수단의 멀티미디어 시대를 가능하게 한 요인이다. 정보통신혁명이란 미디어간의 기술적 수렴, 곧 디지털화, 영상화, 종합화, 융합화, 상호작용화, 탈대중화, 비동시화 등의 과정을 통해 정보유통 과정에 사용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발생한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사회 변동이다.
이러한 정보화 기술의 발전은 우리 사회로 하여금 이미 케이블 텔레비전 시대를 열게 하였으며 위성방송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전의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일 대 다수(one to many)의 등식이 일 대 일 (point to point) 또한 다수 대 다수 (many to many)의 등식으로 바뀌고 정보교환이 방향과 대상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되었다. 이러한 상호 작용성 뿐만 아니라 영상과 음향을 저장하는 기술을 통하여 커뮤니케이션의 비동시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구약시대의 하나님은 음성으로만 존재하였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음성으로만 전달하였고 하나님과 인간의 인격적 관계도 음성에 제한되었다. 구약의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고 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대언하는 '소리'에 불과하였다.
신약시대의 미디어의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토탈 미디어로 오신 미디어의 전환이다. 지금까지는 음성으로만 듣고 머리로 생각하던 하나님을 육신으로 보고 듣고 느끼게 한 상황의 전환이었다.
이제는 음성으로 듣는 단순 미디어가 아니라 집적 보고 듣고 만져보고 감각으로 느끼게 하는 토탈 미디어이며 멀티미디어의 시대로 전환된 것이다.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이제는 듣고, 보고, 만지고, 인간과 똑같은 감각으로 오신 하나님은 다각적인 전달을 통하여 인간과 새로운 교류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모든 가능한 전달의 수단을 동원하여 인간에게 오신 멀티미디어의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멀티미디어 시대를 맞이하여 교회도 단순한 청각미디어에서 총체적인 멀티미디어로 전환하여야 할 것이다. 듣는 설교에서 보고 체험하는 설교로, 듣고 이해하는 성경에서 보고 실천하는 성경으로, 작가로서의 그리스도인에서 퍼포머로서의 그리스도인으로 전환해야 하며, 이러한 변혁이 기독교에 새로운 존재방식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정보시대에 걸맞는 미디어 전도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5. 평신도 중심의 전도 방법
지난 세대에 한국 교회가 가지고 있던 성직 패러다임은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평신도 사역의 극대화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 이전의 목회에서 평신도는 목회자와의 종속적 관계에서의 협력자이었으나 미래 목회에서 평신도는 목회자와 동등한 관계에서의 동역자가 될 것이다. 미래 교회는 평신도 사역이 극대화되고 평신도 사역을 통한 교회성장을 도모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직자에게 의존되어 있던 목회 패러다임을 평신도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조지(carl George)가 이르기를 미래형 교회라고 하는 메타교회(Meta church)는 소그룹을 통한 교회활동을 강조하고 목회자는 평신도 훈련을 위한 일에 많은 시간과 힘을 투자해야 한다고 하였다. 소그룹의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회의 중심이기 때문에 소수의 목회자가 필요할 뿐이다. 그러므로 미래 교회는 평신도 훈련을 강조한다. 평신도는 교회의 안정적 대상이기 때문에 교회의 관심을 증대할 수 있고 전문가로서 선교의 효과를 증대할 수 있을 것이다.
평신도는 목회자와는 달리 적절한 훈련과 기회가 주어진다면 목회에 기여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는 교회의 잠재력 자원이다. 목회자는 교회에 영향을 많이 주지만 언제나 유동적이며 안정적이지 못하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교회의 조직을 장악하는 것은 목회자의 이동시 교회를 불안정하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평신도는 교회의 안정된 구성요소로서 잘 훈련된 평신도는 안정된 교회의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평신도 중심의 교회로 전환되어야 한다.
실제적인 면에서 평신도는 다양한 전문적 특성을 포함하고 있다. 성직자가 가질 수 없는 전문적 영역을 평신도는 가지고 있기 때문에 평신도의 잠재력은 성직자 개인이나 교회에 굉장한 힘이 될 수 있다. 교회는 다양한 기능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성직자는 모든 일에 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현실적 제한을 인정하고 평신도가 가진 다양한 기능을 교회를 위하여 이용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21세기 연구에 대하여도 성직자가 가지는 미래에 대한 지식이란 제한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평신도의 기능을 이용하면 훨씬 발전적인 21세기 연구가 가능할 것이다.
성직자에게 편중된 교회 구조를 평신도와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교회와 성직자 개인에게 유익이 될 것이고, 또 미래 교회의 전도는 자연히 성직자 중심의 구조에서 평신도 중심의 구조로 전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6. 가정 예배를 통한 전도 방법
고도의 테크노피아의 지배를 받게 되는 미래사회의 가정은 최첨단 과학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고, 기술이 가정의 면모를 전혀 새롭게 바꾸어 놓게 될 것이다. 우선 가정에서의 세대간의 간격이 과학과 기술로 말미암아 커져갈 것이다. 기성세대와 신세대는 서로의 다른 관심 때문에 텔레비전의 채널의 선택이 달라지게 될 것이고, 가정에서의 대화의 관심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흔히 우려하는 대로 가사의 80% 이상을 돌보게 될 로봇을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이 가정주부의 역할을 하므로 가정주부의 여가 이용이 미래의 큰 연구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러한 미래적 예측이 사실로 다가오므로 가정은 새로운 가치관과 가정에 대한 중요성의 비중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다.
미래 사회의 변화 가운데 큰 특징 중 하나는 가정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 교회는 어떤 형태의 교회이든지 가정 중심의 교회, 가족 중심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미래 교회가 가정 중심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미래사회는 가정을 중심으로 변환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미래의 가정이 전통적인 가정의 모습을 유지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신세대가 개인주의적이듯이 미래 가정은 다세대의 가정보다 핵가족이 극대화될 것이고 가족이 분열되고 이산되는 경우가 흔할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미래 교회는 가정 중심으로 그 목회 패러다임을 전환할 필요성이 요청되고 있다. 가정 중심이라는 것은 성경적 가정관을 되찾게 해주고 가정의 원래의 모습을 찾아주자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미래 교회는 가정 중심의 훈련들, 그리고 가정 중심의 전도를 개발하여야 한다.
7. 지역사회가 참여하는 참 사랑 실천 전도 방법
지난 6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의 고속성장 추세는 그후 둔화현상이 두드러지고 최근에 와서는 침체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한국 교회의 많은 교회들이 침체 혹은 쇠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간의 한국 교회의 교회성장 신드롬은 기세가 꺾이고 있으며, 이제 다시 한국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회성장 신드롬을 극복해야 한다. 그 동안의 교회성장이라는 상향 중심의 목회관을 가지고는 교회의 본래적 목적을 성취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의 교인과 건물의 크기를 가지고 교회를 평가하고 목회의 성공 여부를 따지던 이전 시대의 신드롬을 벗어나서 새롭게 옆으로 열린 창을 향해 사회를 목회적 관심의 대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미래 교회는 자기 중심적 교회관에서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 그 중심이 이동할 것이며, 이미 부분적으로 이러한 중심이동의 현상이 한국 교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동안 관심은 교회성장이었고, 선교는 개인 영혼 구원, 혹은 교회성장이라는 제한적 의미를 가졌지만 정보사회에서의 교회의 관심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본질적 물음으로 전환될 것이다. 그래서 선교의 개념도 개인 구원이라는 제한적 개념에서, 개인구원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통전적(holistic) 개념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러한 새로운 변형의 시도는 사회봉사로 교회의 관심이 전환될 것이다.
최근의 한국 교회의 침체현상의 가장 큰 요인의 하나는 교회가 수적 성장은 이루어졌으나 질적 성숙에 미흡했다는 자가 비판을 많이 한다. 어느 사회이든 기독교가 25% 이상이면 기독교 문화가 형성된다고 하는데 한국 교회는 기독교 문화를 정착하는 데 실패하였다는 것이다. 주일이면 교회에 나오는 교인은 많은데, 주일 외에 사회에서 교인을 찾을 수 없다는 소리가 크다. 그래서 흔히 이러한 교인들은 '주일 크리스천(Sunday Christan)'이라 하며, '명목상의 크리스천(Nominal Christan)'이라고 한다. 이름뿐인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분명히 교회는 성장했고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의 문화는 그리스도 문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교회는 지금까지의 성장구조에서 성숙구조로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시도하여야 할 것이다. 구조의 조정은 교회 목적의 변경일 수도 있고, 목적의 확실성일 수도 있다.
미국의 가장 큰 컨설팅 회사인 멕켄지 컨설팅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건실하고 좋은 회사가 가지고 있는 회사의 특징을 연구하여 다음과 같은 7S 법칙을 발표하였다. 관리 스타일(Style), 관리기술(Skill), 전략(Strategy), 구성원(Staff), 제도나 절차(System), 구조(Structure) 그리고 공유된 가치(Shared Value)가 특징이다. 이것들 가운데 공유된 가치란 회사가 가지는 문화인데, 나머지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성공적 관리의 기법들이다. 한국 교회의 전도전략도 사회봉사로 그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하며, 전환하려면 교회가 가지고 있는 구조 자체를 사회성을 포함할 수 있도록 전환하여야 한다.
8. 개인의 영적인 성품, 즉 진리, 생명의 전도 방법
정보사회는 기술시대이다. 과학 기술이 최고의 가치로 각광받는 시대를 의미한다. 기술이 보편화되어 있고 기술이 가치를 동반하는 시대에 사는 목회자들에게는 목회 기술을 요청하고 기술 목회에 익숙해져 간다. 목회에서 프로그램이란 하나의 목회적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이 목회적 목적으로 둔갑하여 좋은 프로그램이 좋은 목회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목회의 본래적 모습을 찾는 것이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공통점이 있다면 재생정신이라는 것이다. 16세기의 르네상스는 중세에 대한 단절로써 재생정신을 알리는 인간의 본질로 돌아가려는 운동이었다. 종교개혁 역시 중세에 대한 단절로써 성경의 본질로 돌아가려는 운동이었다. 르네상스가 인문주의적 시도였다면 종교개혁은 영적 시도였다. 르네상스란 중세인이 입혀준 교리의 옷을 벗는 운동이며 형식의 거품을 빼는 운동이었다. 결국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중세의 세상과 단절된 방주 안의 구원에 만족하고 울타리 안에서 고행과 도덕률을 강조하여 내용보다 교리에 치중하였던 당시의 중세풍의 경건의 탈을 벗어버리고, 교리로부터 탈출하여 생명력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는 훈련을 하는 새로운 경건으로 전환되게 하였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중세의 탈을 벗고 형식의 거품을 빼는 운동이며, 교회의 본래적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영성 운동이었다면 현대 교회는 다시 이러한 본래적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미래학자들은 미래사회의 한 특징을 이단과 사이비의 출현이라고 단정한다. 사람들이 기계와 더불어 살고 조직적 사회에서 살게 되면 자연히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영성을 추구하게 되는데, 교회가 건전한 사회를 제공하지 못하면 사회는 잘못된 영에 사로잡히게 되고 이단과 사이비가 사회를 어지럽게 하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최근에 와서 교회가 가지고 있던 영적 기운을 서서히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한국 교회가 통계적으로 침체하기 시작한 연도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침체하기 시작한 연도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한국 교회가 영적으로 침체하기 시작한 연도는 1996년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1996년은 이상하리만큼 사회가 그릇된 영적 분위기에 사로잡히게 된 해이다.
우선 1996년은 환생과 전생 신드롬이 사회를 어지럽게 한 해이다. 전생에 대한 관심이 특히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관심이 높은 것에 대하여 교회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개혁자들은 영성을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바른 응답'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세속적 영성과 기독교 영성의 개별성을 확실하게 구분한다. 이는 개혁자들이 모든 직업을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한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영성이란 우리의 모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이 자리에 계시다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예수님과 일체된 삶을 사는 것이다.
기독교는 두 가지 큰 기능을 가진다. 하나는 영성적 기능(spiritual function)이며 또 다른 하나는 예언자적 기능(prophetic function)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영성적 기능을 가진 영성적 종교이며, 동시에 예언자적 기능을 가진 예언자적 종교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교회사가들은 유럽 교회들의 급속한 쇠퇴의 원인을 '예언자적 기능에 지나치게 치중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한국 교회는 그 기능의 균형을 유지하여야 할 것이며, 특히 영성적 기능의 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영성적 기능의 쇠퇴가 현실적으로 나타나며 두 기능의 불균형이 가시화되기 때문이다. 미래적 전망에서 한국 교회가 재성장할 수 있는 길은 영성에 달려 있다.
이 영성의 회복은 성경의 본래적, 교회의 본래적 사명으로 돌아가려던 종교개혁이 버금가는 한국 교회의 신 종교개혁 운동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교회는 영성적 전도를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9. 조직 형태의 전도 방법
복음 전도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조직된 교회를 중심으로 전도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시몬 베드로의 믿음을 보시고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 : 18)고 말씀하셨고, 그후 부활하사 승천하시기 직전 교회의 핵심인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고 분부하셨다.
또한 바나바와 사울의 성령의 명령에 따라 선교사로 안수하여 파송했던 기관도 안디옥에 있던 조직된 교회였다.(행 13:1∼4) 이렇게 볼 때 복음전도의 사명이 조직된 교회에 주어졌으며, 그러므로 복음 전도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교회 중심의 전도라 하겠다. 이러한 교회 중심의 전도에 내포된 의미는 다음과 같다.
교회는 반드시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즉 복음전도는 예수께서 조직된 교회에 위탁하신 사명이요, 동시에 참된 교회의 증표인 것이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 즉 각 성도들은 복음전도의 중추적인 수행자로서의 교회를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각 개인은 복음을 전파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는 각 성도들이 교회의 복음전도 사역을 도와야 한다는 뜻이다.
교회는 복음전도의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회심자들을 교회에 연합시켜야 한다. 즉 복음전도의 목적은 개인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구원받은 영혼을 교회에 연합시켜 주는 것이다. 이러한 복음전도를 통하여 교회는 성장하는 것이다.
10. 정보이용 교육을 통한 전도 방법
지금까지 행해져 온 복음전도는 크게 보아 대중전도와 개인전도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대중전도와 개인전도는 복음전도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이 중 하나라도 배제되어서는 안되고 상호 보완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그 밑바닥에는 가르침과 지도, 즉 교육이 있어야 한다. 이는 교육이 우선적으로 강조되는 복음전도, 다시 말해 교육 중심의 전도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교육 중심의 전도가 우선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새신자 전도와 교육 중심의 전도
대중 전도는 보통 인간의 의지와 감정에 호소하는 설교로 수행되는데 설교를 듣는 청중이 성경이나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졌다. 이러한 전제는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이러한 전제가 그 타당성을 잃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세속사회에서 생활하는 일반대중이 성경의 역사나 교리, 그리고 그 윤리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반대중이 늘어가는 현 상황을 감안할 때 의지와 감정에 호소하는 대중전도는 일반대중의 거부반응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대중전도를 수행함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교육적 가르침이 필요하게 되었다.
예수께서도 대중전도가 안고 있는 위험성에 대해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다. 즉,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마 13:20∼22)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는 복음에 의해 감정적으로 일시적인 영향을 받기는 했으나 하나님의 말씀과 영에 의해 지적으로 변화되지 못한 사람은 작은 환난이나 핍박에도 넘어지기 쉽다는 경고이다. 그러므로 대중전도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2) 개인전도와 교육 중심의 전도
개인전도는 무척 중요한 복음전도의 한 방법이다. 특히 개인전도는 회심이라는 개인적 체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대중전도보다 더욱 완벽하고 효과적인 전도를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개인전도를 수행함에 있어서도 성경에 대한 교육적 가르침이 수반되어야 한다. 교육이 전제되지 않은 개인전도 역시 그 뿌리가 없어 작은 환난이나 핍박에도 걸려 넘어지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언급한 대중전도와 개인전도는 독립된 별개의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이 중 대중전도는 동시에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한다는 장점이 있고 개인전도는 복음을 철저하게 전도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므로 대중전도는 개인전도에의 길을 예비하여야 하고 개인전도는 대중전도를 보완해야 한다. 그리하여 복음전도자는 많은 청중에게 설교를 할 때 성경이나 기독교 신앙에 대해 더욱 배우고자 하는 개인들에게 그 기회를 제공하여야 하며, 이러한 대중전도나 개인 전도는 모두 성경이나 기독교 교리에 대한 교육적 가르침을 수반해야 한다. 이렇듯 현대사회에서의 복음전도는 교육 중심의 전도가 되어야 하며 현대 사회 역시 이를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11. 친밀감 있는 전도 방법
현대 사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신약성서 시대나 초대교회 시대와는 다르다. 특히 대중전달 매체와 교통수단의 발달로 세계가 훨씬 좁아졌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현대 사회의 제반 영역에서 일어나는 급격한 변화로 인하여 기독교의 복음전도에 있어서도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게 되었다. 즉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현대적인 전도방법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현대의 모든 발명이나 과학적 발달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것들을 인간이 발견하고 이용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자연의 법칙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적 전도는 현대사회의 모든 대중전달 매체와 과학적 수단을 이용하여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또한 현대적 전도는 현대사회의 여러 가지 문화적 시설을 사용하여 복음을 전달해야 한다. 여기서 현대사회의 문화적 시설이란 위생시설, 의료기관, 공회당, 학교, 주택, 회사, 공장 등 현대인이 소속하여 살고 있는 제반 삶의 영역을 말한다. 이러한 현대 사회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기독교는 각 개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바꾸어 말한다면 다양한 문화적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해야 그들로 하여금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도와 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현대적 전도는 각 개인들이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는 기독교가 문화적인 매체를 통해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방송, 신문 등 매스컴을 통한 전도, 의료사업을 통한 전도, 문서를 통한 전도, 음악, 미술, 연극 등의 예술을 통한 전도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유의해야 할 점은 문화의 유익을 강조한 나머지 복음전도의 측면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즉 모든 문화적 매체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되고 복음을 전파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12. 기도를 통한 전도 방법
1) 기도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응답의 조건이다.(막 9:29)
예수께서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신 후 제자들에게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절대적 응답의 유일한 조건이 기도라는 것을 분명하게 강조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간의 역사 속에 실현시키는 가장 강력한 조건이다.
기도 목회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가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때, 우리는 이를 진정한 부흥이라고 말해야 한다. 기도 외에 다른 어떤 요인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교회성장이나 부흥은 그 요인이 상실됨과 동시에 무너져 버리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은 것이다.
사도 바울은 기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니라.'(빌 4:6∼7)
기도는 염려함을 버리고 감사함으로 드려야 한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으로 다가오시며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심으로 응답하신다.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의 영적인 내면의 세계를 지키시는 평강의 모습으로 다가오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눈에 보이는 외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인 세계를 다스리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교회성장의 근본적인 요인은 목회자의 능력도 아니고, 교회의 행정력과 조직력도 아니며, 교인들의 왕성한 지도력도 아니다. 교회 성장의 원동력은 기도이다. 기도만이 교회성장의 지름길이며 정도이다. 기도로 부흥한 교회만이 진정한 부흥이며 안정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다. 기도 외에 다른 어떤 특별한 요인으로 부흥하여 성장한 교회는 항상 그 특별한 요인이 문제가 될 때 쓰러지거나 분열된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교회가 기도로써만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며, 교회성장의 요인들 중에서 기도를 가장 최선의 우선 순위로 놓아야 한다.
민홍기 목사 전도 이렇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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