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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천
말씀과 동행하는 삶
성경에는 동행이라는 단어가 나옴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성경은 가득채워져 있습니다. 인간의 삶의 과정에서도 누구와 동행하는 삶을 살았는가에 따라서 삶의 내용이 다름니다. 그러므로 삶의 인도를 잘 받기 위해서는 좋은 스승이나 동반자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칠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명문대학을 중요시하거나 가문에 대해 신중히 고려하는 것도 인맥이나 배경을 이용하기위한 수단을 삼아 기득권을 누리려는 처세술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배우자를 잘 만나는 것도 삶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좌우합니다. 더구나 영적인 세계에서는 절대적인 영적 동행의 영향에 대해서는 신앙인으로서는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하나님과 마귀사이에 놓여 있는 인간이 누구를 배우자를 삼을 것인가 여기에 영적인 세계에서는 영원한 삶과 영원한 죽음으로 갈라 놓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신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여러가지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인물들에대해서는 삶을 종결지울때까지 함께 하심에 대해 나타내어 하나님과 맺은 인연은 영원한 관계로 지속됨을 보여주십니다. 하지만 구약에서도 이방인과 이스라엘민족을 구분하셨고 또 예수님께서 이땅에서 사역하실때에도 예수님도 자신의 주변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분명히 구분지웠습니다. 이방인들 사마리아인들 유대종파의 율법주의자들 유대 종교지도자들 예수님꼐 도움을 얻고자하는 무리들 주변의 이름없는 제자들 과 12제자들 그중에서도 베드로 요한 야고보는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죠. 우리는 이런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이 특별히 쓰시고자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들과 늘 함께하신후 고난을 받을때는 잠시 그들과 떠나 계시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후 부활하시고 그후로도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과 함께 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승천하신후의 지금도 예수님의 사역은 종결된것이 아님니다. 지금까지도 예수님의 사역은 성령을 통해 지속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성령의 역사안에서 세워진 사도이며 사도는 직임이지만 성령안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행하는자에게 나타나는 것-
그래서 사도 바울은 택정함을 입은 자로 성령의 계시로 복음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복음은 비밀입니다. 복음의 비밀은 계시로 알게된다고 서신서에서 바울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비밀의 경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밀은 계시가 아니면 알수 없습니다.
이 비밀의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알수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복음은 환상이나 신비적인 현상으로 만 알게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정도 성령의 보조자료로서 활용되기는 하지만 복음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들이 성령을 통해 자신과 동행하면서 체험적으로 나타날때 비로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성령의 인도를 받는 다는 것입니다. 로마서를 보면 바울이 자신이 체험한 복음의 과정을 구약의 하나님의 약속과 계시된 말씀을 인용하면서 신학적으로 표현한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예초부터 신학에 중점을 둔것이 아니라 복음의 체험을 신학적으로 적절히 표현한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바로 계시의 은총을 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으면 아무도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요한은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지금도 성령의 가르침을 통해서 알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경의 말씀이 자신의 지혜를 이용하거나 배워서 지식적으로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성령의 계시로 깨달음으로 알고 있습니까? 여기에 구별을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예수님과의 관계가 분명히 드러납니다.(다른사람은 알수 없음) 그리고 삶이 말씀에 의해서 이끌려가게됩니다. 말씀과 항상 거리가 있는 신앙인이 아니라 삶중에서 말씀이 체험과 계시의 영감으로 나타남니다. 그러나 철저히 회개하지 않거나 삶을 예수님 중심으로 돌이키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적용된다고 보기애 어렵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흔히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아름답고 행복한삶, 복이 넘치는 삶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육적인 생명을 죽이는 고난과 환란이 다가옵니다. (고후1:4-7) (빌1:29) (고후4:8-12)
그리스도와 동참하는 십자가의 죽음뒤에는 어두운 세계에서 장사되는 긴 침묵의 과정속에서 죄와 싸우는 영적 생명을 잉태하는 고통이 따르고 부활의 삶으로 다시 태어나는 은혜의 삶이 나타날때까지의 소망으로 예수님을 믿고 그 이름을 부르짖는 신자의 믿음이 요구되는 시기가 다가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행복합니까? 평안하고 아름답습니까? 그렇습니다. 고난의 뒤에 오는 성령의 충만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은 그렇습니다. 고난중에 예비하시는 약속이 임할때 축복은 다가옵니다. 우리가 신앙의 초기에도 잠시 이러한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영원하고 견고한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첫사랑때에 맛보는 잠시의 유아기 신앙입니다. 벼가 싹을 내어 자리를 옮겨 심을 때는 비도 자주오고 구름으로 뜨거운 햋볕도 막아주지만 결실기에는 태풍과 병충해와 뜨거운 햋볕아래 시련을 겪고 난후 추수하게됩니다. 영혼의 추수는 성장한 그리스도인이 겪는 종말적인 신앙의 결과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죽도록사랑하십시요, 말씀을 사랑하고 자기의 목숨보다도 귀히 여기십시요 그러면 여기에 반드시 은총의 결과가 주어 질것입니다. 우리의 진정한 영적 배우자는 예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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