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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25일 감자탕교회 이야기 전도지 1면)
에티오피아, 아프리카에 있는 한 나라입니다.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남한)
의 열 세배 쯤 되는 땅에 7천만명이 삽니다. 교사 한달 월급이 50달러. 공사현장에서
하루 종일 돌을 나르는 여인이 받는 일당이 1달러입니다. 그나마 이런 일자리도 없어
서 그냥 지내야하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거리의 아이들, 거지라는 표현을 피하려고 만들어 쓰는 말입니다. 에티오피아에는
거리의 아이들이 많습니다. 거리에서 태어나 거리에서 사는 아이들도 많답니다. 낮에
는 시내 곳곳에서 구걸을 합니다. 밤이 되면 거리 어디든 쓰러져 잡니다.
13년 전 에티오피아 땅으로 들어간 한 한국인 여선교사가 있습니다. 이름은 이혜숙,
1954년생, 미혼입니다. 거리의 아이들은 그녀를 엄마라고 부릅니다. 이 거지 엄마는
밤만 되면 빵과 차를 차에 싣고 아이들이 있는 곳을 찾아갑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음
식물을 쓰레기로 버리면 거지들이 먼저 골라 먹고, 다음엔 개가 먹고 그 다음에 남은
것을 고양이가 먹는 답니다. 거지 엄마의 소원은 이 아이들이 쓰레기 통을 뒤지지 않
고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겁니다.
에티오피아 구호기간 중에 이틀간 이 엄마를 따라 거리로 나가보았습니다. 아이들
의 눈빛에서 먹이를 물고온 어미새를 바라보는 새끼 새들의 애절함을 느낄 수 있었습
니다. 사랑에 목말라 있는 아이들이 거리에 넘쳐 났습니다. 거지 엄마는 3년 전부터
매일 밤 이렇게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우리는 이 아이들의 빵 값을 대
고 있습니다.
거지 엄마의 또 하나의 소원은 이 아이들이 겨울에 얼어죽지 않는 겁니다. 아프리카
에도 겨울이 있습니다. 겨울이 되면 기온이 0℃까지 내려간답니다. 거리에서 자다 그
만 동사하는 아이들이 생긴답니다. 낮에는 구걸을 해서 살더라도 밤에는 와서 잠을
잘 수 있는 쉘터(shelter)를 만들어 주는 게 거지 엄마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이 그것
을 들어주셨습니다. 그녀는 지금 땅을 보러 다닙니다. 에티오피아 정부로부터 땅을 받
아 밤이 되면 이 아이들이 들어와 잠을 잘 수 있는 쉘터(shelter)를 지으려고 합니
다. 남자 아이들 100명, 여자 아이들 100명, 미혼모들 1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건물
세 동을 지으려고 합니다. 건축비는 우리가 섬기기로 했습니다.
에티오피아는 우리가 6.25 전쟁을 겪을 때 3차례에 걸쳐 6037명을 파병했습니다.
그 중 123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했습니다. 처음에 파병된 군인들은 왕실 근위대
였습니다. 한국전을 마치고 돌아가자 왕은 아디스아바바 외곽에 땅을 하사해서 참전용
사들이 모여살게 했습니다. 이들은 에티오피아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1960
년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쿠테타를 일으켰다 실패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습니다.
1974년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들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한국전 당시 공산군을 상
대로 싸웠기 때문에 참전용사들은 직장에서 쫓겨났습니다. 이들은 참전 사실을 숨긴
채 집을 떠나 거지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근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이러는 동
안 한국촌은 아디스아바바의 빈민촌 중에 하나가 되어 버렸습니다. 1991년 과도정부
가 수립되면서 끊겼던 연금이 다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참전용사들은 매달 나오는
40비르(우리 돈 4,400원)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007년 6월 25일. 우리는 이 어간에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용사들과 그 가족들이
살고 있는 한국촌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한국교회 사랑을 그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이 때 에티오피아 어려운 몇 곳에 생명의 쌀을 나누는 일도 함께 할 것입니다. 금년
도 맥추감사절 헌금 중 일부는 이 일에 썼으면 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갚는 일입
니다. 우리는 가서 그들에게 큰 감사의 절을 할 겁니다. 우리나라가 어려울 때 우리
를 대신해서 싸워준 그들에게 우리의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글쓴이 조현삼/서울광염교회 담임목사 slsp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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