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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 구원(救援)의 유일한 방법 |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행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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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이란
말 속에는 죽은 후에 천국 가는 것만이 아니라 살아서 당하는 모든 삶의
고통과 환란으로부터 건짐을 받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그러나
현실속에서 세속적인 구원은 "영혼이 잘되는 것"이 최우선이기에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또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의해
많은 제한을 받습니다. 살아생전 삶의 모든 고통과 환란으로부터의
구원은 한시적인것이기에 여기서 본질적이고도 궁극적인 구원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 구원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 앞에 내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는 믿음으로만 얻게
된다는 점도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궁극적인 의미는 “천국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것” 즉, 지옥의 영원한 형벌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건짐을 받아 하나님과 영원히 연합(Union)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일평생 얻을 수 있는 선물 중 가장 큰 선물-그것도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이, 그리고 그것도 우주의 주인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그것도 순전히 공짜로 받은 엄청난 선물-구원을 약속 받은 성도들이
살아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것이
바로 이 사이트가 주장하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죽은 후에 천당 가기 위해서만 예수를 믿는다면 그 것은 50점 밖에 되지
않으며, 살아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때 비로서 100점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포기하는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법은 인간의 눈 높이에서 베풀어졌으나, 하나님의 공의의 법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기준에서 아무런 자비와 긍휼이 없이 철저하게
집행될 것입니다. 아무 공로도 없이, 또한 자격도 없이 순전히 공짜로
이 두렵고 무서운 형벌을 면제 받는 구원이라는 값진 선물을 받았으니
그에 상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지극히 마땅한 것입니다. 그에 상응하는
마땅한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
◈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라는 이름의 의미 |
처음
예수를 영접하신 분들 중에 예수는 성(姓)이고 그리스도는 이름인 줄
알았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히브리어 |
번역 |
헬 라 어 |
구분 |
이름의 의미 |
비 고 |
여호수아 |
음역(音譯) |
예 수 |
인명(人名) |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
구원 |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의)이름 |
메 시 아 |
의역(意譯) |
그리스도 |
직명(職名) |
“기름부음 받은 자” |
사명 |
구세주(왕,선지자,제사장의
직책) |
그분의 메시아로서의
사명에 관하여 그분이 태어나시기 약700년전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사 53:4-9) |
(참고) |
- 헬라어(그리스어)로 표기된 "예수 그리스도"를
히브리어로 표기하면 "여호수아 메시아"가 됩니다.
- 기독교(基督敎)라고 말할 때 "기독"은
그리스도를 한자로 표기한 것을 우리말로 읽은 것입니다. 즉, 기독교는
그리스도교라는 말의 한자어 표기입니다.
- 기독교인을 지칭하는 크리스천(Christian)이라는
말은 Christ Like Man(예수를 닮은 사람)이라는 영어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 연대를 기록할 때 기원전에 해당하는
BC는 Before Christ의 약자라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 영어의 역사에 해당하는 단어 History는
His (Jesus’:그의)+Story (이야기)의 합성어 입니다.
- 예수님께서 우신 적은 있으나 웃으신
적은 성경 기록상에는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 예수님께서 누구를 향하여“I love
you”하고 직접 사랑을 말씀하신 적이 없으며, 다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와 같은 간접화법을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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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을 통해 본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모습 |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에 관하여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사53 :2-3)
예수님의 인간적인
외모에 관하여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화가들이 그린 예수님의 유명한
초상화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한결 같이 그럴싸한 모습으로 그렸으나
이는 예수님에게 대한 화가 자신의 신앙으로 인하여 다소 미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화가들의 표현보다 성경의 표현을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전혀 딴 판입니다. 한 마디로
전혀 볼품 없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찌든 가난 속에서 고생하며 자라난
30세 안팎의 촌스러운 시골청년 모습을 상상하면 거의 틀림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하여 대단히 외람된 표현이지만 성경이 그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아가 저
사람이란 말인가..? 말도 안돼…” 이스라엘민족은 백만 대군과
함께 백마를 타고 와서 유대나라를 로마의 식민지로부터 구해 줄 600만
불의 사나이와 같은 메시아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수 천년간 조상대대로
그렇게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민족의 영웅-메시아가 달동네에서 자라난
이름 없고 볼품없는 시골 청년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 통하여 성경에 자세하게 그 풍모를 설명하셨고
그들 또한 그 기록을 수도 없이 읽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열린 마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성향이기에 더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사상이 있는 신앙"에서도 언급한바
있습니다만 인간의 마음은, 보이는(보아야 할) 것을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을 보며, 들리는 것(들어야 할 것)을 듣지 않고 듣고 싶은
것을 들으며,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믿어야 할 것을 믿지 않고 믿고 싶은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응답될 때, 그 응답에 놀라거나 가장 거부하는 사람은 바로 기도한
장본인입니다. 그 분이 지금 여러분과 내 곁에 와 계신다면 우리는
볼품없고 매력 없으며 꺼칠한 그 모습에 별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모두
얼굴을 돌리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속사람의 됨됨이는 어찌되었던 우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외모 가꾸기 유행 속에 세계에서 성형수술이 가장
유행한다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배척 받으셨을 것입니다. 전혀 주목
받고 인기 끌만한 외모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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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어떤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하셨는가? |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 주로 십자가의 육체적인 고통에만 촛점을
맞추기 쉽습니다. 이것은 바로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육체적인 고통이외에도 정신적인
고통과 영적인 고통을 포함하는 전인격적인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 예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분이 사역을 감당하면서 겪어야만 했던 환경적 고난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을 둘러싼 주변의 사람들은 그분을 어떤
인물로 생각했던가를 살펴보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해 겪어야만 했던 정신적인 고통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주변 사람들은 그 분을 어떤 시각으로 보았는가?
그 분이 어떤 환경 속에서 구속의 역사를 이루셨는지 잠시 살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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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정치인들
: 로마제국의 식민지배 받고 있는 유대인들 내부 종교문제에 연루된
자로 귀찮게 여김 ② 종교 지도자들(목사,장로들) : 자신들의 권위와
기득권에 도전하는 이단 세력으로 치부 ③ 제자들(평신도들) : 정치적
메시아로 생각하여 자신들의 출세의 수단으로 이해 ④ 백성들(비신자들)
: 이적과 기적을 행하는 선지자 ⑤ 병든 자들 : 자기의 병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초능력자 ⑥ 서민대중 : 자신들의 배고픈 것을 해결해
주는 기적의 사나이 ⑦ 가족중 일부 : 정신 이상자로 여김 |
아무도 예수가
누구인지, 왜 오셨는지, 무엇을 위해서 일하시는지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의 권위와 신분과 모든 사회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배척하던가, 입신출세의 기회로, 그리고 병 고침과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해결사로서의 예수를 따라 다니기도 하고,
또는 귀신 들린 사람으로 오해하기도 하고, 결국은 죽이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 사람들 해도 너무 했어" 누구나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들입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감당하시기전 자신의 정체를 분명히 해두실
필요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이웃들인 제자들을 통해 마침내
자신의 정체를 분명히 해 두십니다.
-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시니라
(마 16:15-17)
예수님께서는 바닷가에서 고기 잡던
학문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부터 나온 이 위대한 신앙고백이 있은 후에
비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수천년간 고대하며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를 향하여 물으신 이 질문은
예수님께서 오늘도 전 인류를 향하여, 우리 모두에게 묻고계시는 질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왜 예수를 믿느냐?" 라는 질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란 결국 예수님의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마음으로부터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믿음의 훈련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예수님께서 왜 나를 위해
죽으셨는지, 많은 사람들 가운데 왜 나를 부르셨는지, 지금 나의 삶을
통하여 이루시기를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지
그분의 뜻에는 아무 관심이 없고, 다만 나의 요구 조건만을 들어 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분으로 생각하고 예수를 믿는다면, 그들의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 "예수님 우리 아들 금년엔 대학교 꼭 합격되어야
만 합니다. 벌써 삼수째입니다. 금년에도 안돼면 큰일납니다. 바쁘시더라도
이것만은 잊지 마시고 꼭 처리해 주셔야만 합니다. 년초 송구영신
예배때도 잘 봐 주십사고 특별감사헌금 드린 것 아시쟎아요. 합격만
시켜 주시면 십일조 헌금 많이하고 예수 더 잘 믿을께요."
- "예수님 이번 건은 꼭 성사시켜 주십시오.
회사의 사활이 걸린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IMF 겪어 보지 않으셨죠?
그때 부터 회사 자금사정 어려운 것 아시쟎습니까? 이것마져 성사되지
않으면 부도납니다. 이것이 저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건만은 우리가 따내야 합니다. 꼭 한 번만 더 봐 주십시오"
- "예수님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는 제발
당선 좀 시켜 주십시오. 벌써 몇 번째 도전인지 아시지요. 이제
재산도 다 날리고, 더 이상은 버틸 힘도 없다는 점을 꼭 명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를 국회로 보내만 주신다면 썩은 정치 도려내고
이 나라를 개혁하는 일에 앞장 서겠습니다. 저를 믿어 주십시오."
- "예수님 이번 총회회장선거에 출마했는데
꼭 당선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총대들에게 이미 촌지도 다 돌렸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도 이 만큼 부흥시켜 놓았고 저도 이제는
나이도 있고 그런 직함 하나쯤 따야 체면이 서지 않겠읍니까? 어디
세상 일 하려고 그럽니까? 다 주님 일에 충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겠읍니까?"
현실 속에서 나타나는 우리 삶의
적라나한 실제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희는 왜 나를 믿느냐? 출세하여 잘먹고
잘살기 위해 나를 믿느냐? 너의 신앙고백을 통하여 나의 이 질문에 답하라."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리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친히 가르쳐 주십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나를 따르라. 그리고 내 증인(순교)이 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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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탄식 |
더욱
놀라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세우시고 머리 되신 교회 조차도
여기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한
진범(?)은 로마 군인들이나 빌라도가 아니라 바로 당시 종교 지도자들-지금으로
말한다면 목사,장로들이기에 별로 놀라운 사실이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좀더 정직하고 사실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예수님은 "예수 믿으시오"
하며 전도하다가 목사들과 장로들 손에 의해 순교하신 것입니다.
상한 심령을 위로하고 죄 아래 종 노릇하는 자들에게 자유를 주며,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영생을 선포하시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철저하게 사랑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금
교회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한 생명, 한 생명을 위해 하나님께서 죽기까지 사랑하셨던
성전된 사람이 교회성장의 척도, 숫자의 대상으로 전락되어 가는 느낌을
지을 수가 없으며, 성도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베어 있는 성도들이 바치는
헌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멀쩡한 예배당 건물부수고 이태리 대리석
수입하여 집 짓는 일과 시설과 설비에 과감히 투자해온 한국교회, 당회장
목사의 총회장감투 얻기위해 수억원씩 선거자금을 뿌려가면서 용감하게
사용했던 한국교회는 지금 그들이 뿌린데로 세상으로부터 비난의 열매를
거두고 있습니다. 작은 교회로부터 출발하여 밤낮으로 부르짖고
부르짖어 세계적으로 유명할만큼 성장한 대형교회들이 이 세상으로부터
쓴 소리를 듣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예수를 믿기위해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작은 교회들 또한 이런 교회가 되기위해 몸살날 정도로 교회성장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기위해 귀한 마음으로 출발한 한국교회는 교회성장이라는 중병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의 젊은 목회자들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한국 대형교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는 사라지고 사람
냄새만 진하게 풍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장이 아니라 비만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만은 살을 빼야만 정상이 됩니다. 그 비만 속에는 예수님의 사랑대신
인간의 욕심과 탐욕만 도사리고 있습니다. 탐심은 곧 우상숭배입니다.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을 쳐서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포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겔 34:1-4)
그러나 아직도
이 나라에는 한 마을 전체 모두 합쳐도 몇 십 가구 되지 않는 농어촌이나
산골에서, 한 달 주일헌금이 10만 원이 채 안되는 교회를 지키며 하나님의
참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인생을 투자하는
남은 자 들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잔뿌리인 이들이야말로 한국교회의
내일의 희망입니다. |
전도지 제공 : 광양 초대교회
|
2007.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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