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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수학과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신 김성화 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김성화 선생님은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데 보람과 만족을 느끼지 못하셨습니다.
인생이란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살다 가야 하는 것인가? 너무 허무한 것이 아닌가 느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깎고 도를 닦으러 절로 들어갑니다.
스님이 된 그는 불교계의 중요 요직인 교육국장, 포교국장 및 해외 선교국장을 맡아봅니다. 많이 배우시고 강직한 선생님 출신이라 불교계의 안 좋은 관행을 바로 잡고 개혁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불교 대학을 세워서 스님들을 올바로 잘 양성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불교계 안에 내분으로 인하여 이분이 교도소에 갇히게 됩니다.
복역 중에 교도서 안에서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대출해서 읽기 시작합니다. 스님이시기 때문에 주로 불경을 읽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주는 교도소 경비원이 자신이 신청하지 않은 신약성경을 넣어 주더라는 겁니다.
“아니 내가 신청한 불경은 왜 안 가지고 오고 신청하지도 않은 책을 왜가져 왔소?”
“불경은 다른 사람들이 다 대출을 해가서 한 권도 없기 때문에 스님께서 심심할 것 같아서 이 책이라도 가져왔습니다”
그러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고 있는데 한번 읽어보시지요?”라고 말하였답니다.
스님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심심하다고 저 기독교책을 보면 부처님을 배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아미타불만 수 천번 외우며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래도 옆에 있는 기독교 책에는 도대체 무슨 내용이 있을까? 궁금해서 읽어보기 시작했답니다. 그는 성경을 읽는 중에 누가복음에 나오는 나인성의 어느 과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고 합니다.
남편을 잃고 아들하나에게 모든 소망을 걸고 살아왔던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과부는 통곡을 하며 아들의 시체를 관에 넣고 성밖으로 나가는 중이었습니다. 마침 예수님께서는 길을 지나가시다가 이일을 목격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청년의 관을 멈추게 하시고,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하시자 죽었던 청년이 그 자리에서 일어난 내용을 읽으면서. 스님은 전율을 느끼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와 똑같은 내용이 불경 안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경에 보면 인도 구시라성에 시다림이란 한가한 숲 속을 석가모니와 제자들이 함께 걷고 있었는데 한 젊은 과부가 통곡을 하며 울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석가모니가 사유를 물은즉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였습니다. 이때 석가모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고을에 가서 한번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의 쌀을 한줌 얻어다가 죽을 끓여 먹이면 살아날 것이라" 하였습니다. 젊은 과부는 기뻐서 뛰어 갔습니다. 그리고 하루종일 모든 집을 다 돌아 다녔지만 그러한 집은 한집도 없었습니다. 젊은 과부는 빈손으로 석가모니 앞에 섰습니다.
“부처님 하루종일 돌아 다녀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그런 집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때 석가모니는 “자매여! 생자 필멸 이라 사람이 나면 반드시 죽는 것 인연 따라 일어나서 인연 따라 없어지는 것이니 너무 슬퍼 할 것이 없느니라”고 말하고 그 과부를 보냈다는 내용입니다.
죽은 자를 보자마자 살리신 예수님과 죽음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석가모니와의 한계를 그는 발견합니다. 불교는 돌고 도는 종교이지만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요 살리는 종교인 것을 발견하고 그는 지금 목사님이 되어 생명의 종교인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살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기독교가 왜 생명의 종교인지 아세요? 하나님께서 태초에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만 물과 인간은 우연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시고 구원을 받으십시요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0장 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생이란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처럼 살다 가야 하는 것인가? 너무 허무한 것이 아닌가 느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깎고 도를 닦으러 절로 들어갑니다.
스님이 된 그는 불교계의 중요 요직인 교육국장, 포교국장 및 해외 선교국장을 맡아봅니다. 많이 배우시고 강직한 선생님 출신이라 불교계의 안 좋은 관행을 바로 잡고 개혁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불교 대학을 세워서 스님들을 올바로 잘 양성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불교계 안에 내분으로 인하여 이분이 교도소에 갇히게 됩니다.
복역 중에 교도서 안에서 도서관에 있는 책들을 대출해서 읽기 시작합니다. 스님이시기 때문에 주로 불경을 읽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주는 교도소 경비원이 자신이 신청하지 않은 신약성경을 넣어 주더라는 겁니다.
“아니 내가 신청한 불경은 왜 안 가지고 오고 신청하지도 않은 책을 왜가져 왔소?”
“불경은 다른 사람들이 다 대출을 해가서 한 권도 없기 때문에 스님께서 심심할 것 같아서 이 책이라도 가져왔습니다”
그러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고 있는데 한번 읽어보시지요?”라고 말하였답니다.
스님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심심하다고 저 기독교책을 보면 부처님을 배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무아미타불만 수 천번 외우며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래도 옆에 있는 기독교 책에는 도대체 무슨 내용이 있을까? 궁금해서 읽어보기 시작했답니다. 그는 성경을 읽는 중에 누가복음에 나오는 나인성의 어느 과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고 합니다.
남편을 잃고 아들하나에게 모든 소망을 걸고 살아왔던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과부는 통곡을 하며 아들의 시체를 관에 넣고 성밖으로 나가는 중이었습니다. 마침 예수님께서는 길을 지나가시다가 이일을 목격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청년의 관을 멈추게 하시고,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하시자 죽었던 청년이 그 자리에서 일어난 내용을 읽으면서. 스님은 전율을 느끼며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와 똑같은 내용이 불경 안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경에 보면 인도 구시라성에 시다림이란 한가한 숲 속을 석가모니와 제자들이 함께 걷고 있었는데 한 젊은 과부가 통곡을 하며 울고 있는 것을 목격합니다.
석가모니가 사유를 물은즉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였습니다. 이때 석가모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고을에 가서 한번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집의 쌀을 한줌 얻어다가 죽을 끓여 먹이면 살아날 것이라" 하였습니다. 젊은 과부는 기뻐서 뛰어 갔습니다. 그리고 하루종일 모든 집을 다 돌아 다녔지만 그러한 집은 한집도 없었습니다. 젊은 과부는 빈손으로 석가모니 앞에 섰습니다.
“부처님 하루종일 돌아 다녀도 사람이 죽은 일이 없는 그런 집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빈손으로 왔습니다.”
그때 석가모니는 “자매여! 생자 필멸 이라 사람이 나면 반드시 죽는 것 인연 따라 일어나서 인연 따라 없어지는 것이니 너무 슬퍼 할 것이 없느니라”고 말하고 그 과부를 보냈다는 내용입니다.
죽은 자를 보자마자 살리신 예수님과 죽음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이는 석가모니와의 한계를 그는 발견합니다. 불교는 돌고 도는 종교이지만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요 살리는 종교인 것을 발견하고 그는 지금 목사님이 되어 생명의 종교인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며 살고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기독교가 왜 생명의 종교인지 아세요? 하나님께서 태초에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만 물과 인간은 우연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시고 구원을 받으십시요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0장 13절에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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