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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의 예배의식의 발전과 그 형태

인기감동기타 정장복 교수............... 조회 수 1785 추천 수 0 2002.10.04 01:22:31
.........
출처 :  
출처/정장복 교수 저, 예배의 신학, 85쪽 이하의 내용입니다.
저자/ 정 장 복 (장로회신학대학교 실천신학 교수)  

목 차

I. 서론적 접근--개혁의 필연성과 예배

II. 예배와 개혁자들

III. 개혁가들의 예배의식 형태

  1) 루터와 그의 계열
  2) 쯔빙글리와 그의 계열
  3) 부처와 스트라스부르크 교회
  4) 칼빈과 그의 교회
  5) 존 낙스와 스코틀랜드 교회


I. 서론적 접근--개혁의 필연성과 예배
16세기의 종교 개혁이 그 출발에 있어 신학의 개혁을 목적으로 했다는 사실은 그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사실이다. 그러나 예배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 개혁의 필연성은 의미를 상실한 미사에서부터였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하다. 교회가 존재하는 일차적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음을 인정할 때 자연적으로 예배란 교회 기능의 최우선적인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목적이 바뀌어지거나 희미해질 때 언제나 교회는 문제를 갖게 되었고, 하나님의 채찍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질서가 무너지고 "패역(悖逆)한 세대"로 전락된 중세의 교회와 사회의 어두움은 새로운 세계의 출현을 불가피하게 만들어 놓았다. 무엇 때문에 그 시대는 이토록 어두움 속에 방황하게 되었던가 하는 근본적 원인들이 여러 각도에서 분석되어지고 있으며 그 평가 또한 매우 다양하다. 그 가운데 먼저 신학의 부재(不在)를 말하고 교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는 경우가 적지 아니하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인 행위인 예배의 현장이 그 의미를 잃고 하나님과의 만남의 역사가 발생되지 못한데서 이런 결과가 파생되었음을 간과(看過)할 수 없다.

들어도 듣지 못하는 언어 속에 진행된 미사는 자연히 하나의 구경의 대상으로 전락되었고, 맹목적인 헌신과 신비의 강조는 예배자들을 지극히 피동적인 존재들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던 것이다. 더 나아가 미사의 집례 행위는 사제들의 독점적인 무대로 차차 변질되어 갔는데, 그 속에서 사제들의 절대권이 지나칠 정도로 숭상을 받게 되었고, 이것은 더 나아가 그들의 탈선과 직결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특별히 미사의 절정을 이루는 성만찬의 순서는 성물(聖物))이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변한다고 하여 신비한 극적 장면의 연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구경거리를 만들어 버린 결과가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삶의 현장과 단절된 채 독백적으로 읽혀지거나 또는 생략해 버리는 잘못이 편만해 있는 실정이었다.

이러한 상황들은 중세의 교회를 힘없는 교회로 전락시켜갔고,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지 않던 그 세계의 신앙과 윤리 질서를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두어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가 부재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무리들이 시들어져 갈때 주의 몸된 교회는 병들고 인간의 심성은 부패해질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뼈아프게 경험하는 시간을 맞은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유명한 예배 신학자인 윌리암 맥스웰(William Maxwell)은 그의 명저 {기독교 예배의 역사}에서 다음과 같이 종교 개혁과 예배의 상관 관계를 서술하고 있다.


16세기 초의 서방 교회에서 집례된 성만찬은 하나의 연극적인 장면이었다. 그것은 성찬으로서 보다는 화체(化體)의 기적으로 절정을 이루었고 순수치 못한 미신적 경배 속에 행하여졌다. 미사는 알지 못하는 언어 속에서 청취를 불능케 했고...설교는 무덤 속으로 퇴락되었으며 대부분의 교구 신부들은 설교를 하기에는 너무 무식하였다. 성경 말씀이 봉독되어져야 할 부분은 성자들의 생활담과 전설로 채워졌고, 성경은 예배자들의 모국어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리고 미사의 헌금과 면죄부의 구입은 성직 매매와 착취의 근원이 되었다. 그러기에 종교 개혁은 시급하고도 필연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시대적 문제점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가 그 본 궤도로 돌아가도록 하는데, 하나의 촉진제적 역활을 담당했었다. 그러므로 그 가운데서도 끊임없이 지적되어야 했던 예배의 무질서는 종교 개혁의 필연적 발생을 서둘게 하는 요소가 될 수밖에 없었다.


II. 예배와 개혁자들
16세기 초반의 로마 교회를 보면서 개혁의 필연성을 절감한 것은 수많은 개혁자들 및 그들과 호흡을 함께 하는 민중들이었다. 이들 모두가 참된 교회로의 회복을 위한 예배 예전과 함께 신학의 정립 및 교회의 구조적 개혁을 소원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서 루터와 쥬빙글리와 칼빈을 들 수 있다.

개혁가들이 예배에 일차적인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개혁자들은 어떤 면에서는 공통 분모를 발견하여 일체감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반면에 끝내 견해를 함께 하지 못하는 쟁점들이 있었다. 여기에 대한 고찰은 개혁자들의 일관성 있던 예배에 대한 쟁점들이 새로이 조명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오늘날 각각 입장을 달리하고 있는 교단들의 다양성을 우리가 이해하고 극복해 가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먼저, 개혁자들이 예배에 관계된 문제들 앞에서 입장을 같이 했던 부분이 어떤 것이었던가를 찾아보면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로마 교회가 성만찬 중심의 미사를 계속하는 것을 반대하는 데 개혁자들의 논리가 모아져 있었다. 그 이유는 성례전이 바로 신비한 사건의 발생만 거듭되는 현장으로 오도(誤導)되어 버렸고, 거기서 많은 성도들은 병고침을 비롯한 마술적 결과들을 기대하는 그릇된 신앙을 발생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총 앞에서는 모두가 용서받을 수 있는 인간들이라는 기본적 입장을 지닌 개혁 교리는 성만찬이 구원을 매입하는 합법적 방편으로 활용된 미사의 풍토와 부딪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 로마 교회가 주장하는 성만찬의 화체설(化體設-the doctrine of transubstantiation)에 대하여 개혁자들은 한결같이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로마 교회는 미사 가운데 행해진 성만찬에서 그 성물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는 성체(成體)가 되며 그리스도께서 거기 자동적으로 임재하신다는 교리를 신봉하고 있었다. 그 결과는 미사의 참여자들이 기본적으로 허황한 미사의 진풍경 속에 사라져간 믿음의 핵심을 찾는데 뜻을 일치시키고 있었다.

3) 개혁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부재된 미사를 한결같이 지적하고 나섰다. 그들은 초대 교회가 언제나 말씀과 성례를 동반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말씀이 없는 성례전 의식에 경종을 울려 주었다. 개혁자들은 이 같은 의식이란 단순한 마술적 연기에 불과하다고 공격하면서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예배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회중들의 삶의 방향을 이끌어 주는 사건(event)이 되는 예배가 될 때 그것만이 참된 예배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4) 모든 예배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모국어로 집례되어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었다.그 이유는 지금껏 회중들이 어떤 언어권에 속한 어족(語族)인가 하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라틴어만을 사용하도록 하는 모순이 있었기 때문이다. 칼빈은 이런 알지 못하는 언어로 집례되는 미사를 가리켜 "마술사들의 주문만 외어지는 곳"이라고 혹평했다 함은 이미 전술(前述)한 바 있다.

5) 하나님과 예배자들의 중간 존재로 설정된 사제의 위치를 부정하는 데 뜻을 같이 했었다.사제라는 직책에 그리스도의 대행자로서의 권한만을 너무 강조한데 대한 거부 반응은 실로 심각할 지경이었다.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섬기는 본분을 가진 사제적 자세(司祭的 姿勢)는 흔적을 감춘 채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군림하려 할뿐만 아니라 고해 성사를 통하여 성도들의 죄를 청취하고 그것을 오용하는 부패가 만연되어 있었던 것이다.이에 대한 맹종을 촉구하는 일에 모든 개혁자들은 하나같이 결속되었다. 그 결과 만인 제사장설이 나와서 개혁의 진전에 일단의 공헌을 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렇게 근본적으로 맥락을 같이 한 개혁자들은 그 출발부터 공동 보조를 취하면서 미래의 새로운 교회를 바라보며 개혁의 전선(前線)에 동참하는 주역으로 등장했었다.


다음으로, 불행하게도 개혁가들이 가지고 있던 성만찬에 대한 해석과 예배에 대한 견해만은 일치점을 얻지 못하고 말았다.

교회의 개혁이 아무리 세차게 이룩되는 현장이라고 할지라도 성만찬에 대한 자신들의 신학적 해석까지 바꾸어 가며 공동 보조를 취하고자 한 개혁자는 없었다. 보다 성서적이고, 신앙적인 성만찬 해석을 지켜나가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주장을 극력 고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이들은 결정적으로 결렬의 아픔을 겪었던 쓰라린 기록을 남기게 된다. 이러한 결별은 자연적으로 예배의식에 있어서 다음과 같이 각각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1) 루터계와 성공회 계열이 펼친 예배에 대한 관심을 본다. 그들은 지금껏 전래해 온 예전의 지속을 고수하면서 부분적 수정만을 행하기 원하였다. 이들은 당시 사용 중이던 미사의 형태나 내용에 대한 큰 변화를 원치 않았으며, 단지 미사 속에서 자신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말씀을 선포하고 성례전을 집례함으로써 일차적 만족을 얻으려 했었다.

2) 스위스의 취리히 지역을 중심하여 예배의 개혁을 주도했던 쯔빙글리와 그 계열을 살펴본다. 이들은 루터계와 전폭적으로 입장을 달리하는 측으로서 미사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기본정신을 갖고 개신교의 새로운 예배를 주창했다.

쯔빙글리는 로마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일체의 신조나 예전을 부정해 버리는 극단적 개혁의 주도자로 등장했다.1525년 그의 무리들이 드린 예배에서 음악을 모두 배제하고 시편의 교송(交誦)으로 대체했으며, 봉헌의 기도나 중보의 기도마저 사용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하여 매주일 가졌던 성만찬을 폐지하고 1년에 4번 집례하도록 했으며 그 의미도 기념적 성찬(memorial feast)으로 제한시키는 예배의 내용을 주장하여 그의 교회에서 직접 실행하였다.

이러한 그의 개혁 행동을 가리켜 맥스웰을 비롯한 예배 신학자들은 그의 예배는 가장 미흡한 개혁 교회 예배 내용을 담은 것이었으며 가장 슬픈 영향을 후대에 남겼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3) 반 예전적인 신학을 소유한 제세례파

토마스 뮌처를 중심한 재세례파 (the anabaptists)를 본다. 이들은 개혁파들 중에 가장 급진적인 자세로 예전에 대한 거부 반응을 일으킨 계열이었다. 예배에 일체의 의식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공중 예배의 필요성마저 인정하지 않는 지극히 자유주의적인 자세를 취하였다. 그들은 교회 생활이란 그날 그날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순종과 수난의 길을 걷는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 최우선적인 강조점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러한 신앙은 그들로 하여금 어디에서나 함께 모여 기도하고 성경을 상고하고 말씀에 따라 교훈을 명상토록 하는 습관을 형성시켜 주었다.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지극히 비공식적인 주님의 만찬을 가졌던 것이 예배의 전부였다. 즉, 그들은 매우 비예전적인 신앙 생활을 즐겼던 부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재세례파들은 유아 세례를 반대했으며, 마침내 공식적인 교회의 출석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대신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모이면서 초대 교회의 은사를 사모하는 집회를 생성시켜 놓았던 것이다.

4) 끝으로 루터와 쯔빙글리의 양극적 주장에 대해 중도적 입장을 취하고 나섰던 개혁자들을 들 수가 있다. 스트라스부르그를 중심한 마틴 부처(Martin Bucer),존 칼빈(John Calvn),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John Knox)가 이 계열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당시의 가톨릭 미사를 대부분 계승한 루터교의 문제점과 지나친 개혁을 주장한 쯔빙글리의 입장을 최대한 좁힌 예배 예전을 개신교의 예배 속에 이행함으로써 사실상 개혁 교회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부처와 칼빈은 성례전(sacraments)과 말씀(preaching)을 예배의 구심점으로 하고 회중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의식을 갖춤으로써 초대교회의 복음적 예배 의식에 접근했으며, 교회의 전통적 감각을 살리는 예배 예전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 예배의 형태를 가리켜 맥스웰은 "정신적으로는 복음적이며 형식적으로는 가톨릭적인 이 예배는 개혁 교회의 프로테스탄트 예배와 로마 교회의 중세적 의식 중심의 예배에 가교적(架橋的) 성격을 띤 예배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III. 개혁가들의 예배의식 형태
앞에서 서술한 대로 예배의 제반 문제점들은 종교 개혁을 가져오게 하는 하나의 중요한 원인임에 틀림이 없었다. 이 사실을 앞에 두고 개혁자들은 몇 가지 핵심적 인 개혁 부분에서는 공동 보조를 취하면서 전환의 대 역사를 감당했었다. 그러나 개혁된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며 그 해석을 어떻게 내려야 할 것인가 하는 신학적 견해차는 계속 남아있어 예배의 형태와 내용을 달리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토록 각각 확연히 다른 입장들을 취하게 된 개혁자들은 자신들의 활동 지역과 계열을 중심하여 독자적인 예배 노선을 구축하였고, 거기에 따라 회중들은 분열할 수밖에 없는 양상을 나타냈다. 이것은 마침내 독자적 교단의 형성이라는 뜻하지 않던 결과까지를 후대에 남기게 되었다.


1) 루터와 그의 계열

루터는 급진적인 변혁을 요구하는 그의 추종자들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독일 미사(Deutsche Messe)}(1526)라는 예식서를 발간한 바 있는데 이 예식서에서 보여 준 그의 예배 내용은 성경 봉독과 그 말씀에 의한 설교를 분명하게 제시한 것과 성만찬에 신약적 형태와 진행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표출되어 있었다. 그리고 예배 진행에 있어서 모국어 사용을 뚜렷이 했고 새로운 영가(spiritual songs)들도 모국어로 부르도록 함으로써 찬송가의 작사 작곡을 독려하는 공헌을 하기에 이르렀다.또한 그 예전 순서에서는 성만찬을 매주일 이행할 것이 강조되었다. 좀 더 특기할 만한 사항으로서 이 예식서는 특별한 예배를 위하여는 라틴어 예전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성직자의 복장이나 촛불, 제단, 성상들, 십자가, 종의 사용 등까지도 그대로 지켜 나가도록 허용해 두고 있다. 그의 {독일 미사}에 실려진 예전의 형태와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말씀의 예전(liturgy of the word)
  입당송 또는 독일어 찬송
  자비를 구하는 기도(Kyrie eleison)
  인사와 집도문(集禱文)
  서신서
  독일 찬송
  복음서
  사도신경(이때 성만찬이 준비된다)
  설교

성만찬 예전(일명 다락방 예전:liturgy of uppe)
  주님 기도의 풀이
  교훈의 말씀
  성례전 성경 말씀과 분병 분잔
  성만찬 참여(주로 삼성창이 계속됨)
  성만찬 후 기도문
  아론의 축복 기도
 

2) 쯔빙글리와 그의 계열

쯔빙글리가 행한 급진적 예배 변혁의 시도는 종교 개혁의 파문을 확산 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했던 것이 사실이다.그는 예배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희생의 재현이나 성상의 사용등을 극구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으므로,루터 계열과는 예배의 형태나 내용을 완전히 달리 할 수밖에 없었다.그의 가장 극단적인 개혁은 예배 가운데 오르간을 비롯한 제반 악기의 사용이라든지 시편 교독을 대신하는 회중들의 찬송들을 모두 삭제한 것에서 나타났다.그는 예배 가운데 있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써 성경 봉독과 기도와 죄의 고백,그리고 설교만을 강조한 형식을 내세웠다.성만찬을 갖지 않는 경우는 예배의 사실상 예배로서의 형태나 의식을 갖추지 않는 지극히 비예전적(informal liturgy)모습을 취했었다.그러나 1년에 네번씩 갖기로 된 성례전을 겸한 예배의 경우는 다음과 같은 순서를 사용했음을 볼 수 있다.


말씀의 예전
  봉헌(성물의 준비와 배열)
  기원
  기도문 낭송
  서신서
  하나님께 영광(gloria in excelsis)교송
  복음서
  사도신경
  ____________(아래의 부분은 1년에 네번만 사용하였다)
다락방 예전
  교훈
  성만찬의 정리
  주님의 기도
  용서의 기도
  성찬의 말씀
  분병 분잔
  시편 교송
  기도문
  폐회

3) 부처와 스트라스부르크 교회

이 예배는 과격한 변혁을 시도한 면이 없었을 뿐 아니라 루터계의 것보다 훨씬 창조적인 면이 드러나 보였다.그리고 예배자들의 영적인 표현을 담을 수 있는 부분들도 상당히 많았던 우수한 예전이었다.

이 예배 가운데 나타난 특성으로는 먼저 "미사"라는 어휘 대신 "주님의 만찬" 또는 "성찬"이라는 이름을 개발한 것과 사제라는 표현 대신 목사라는 칭호를 예전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 등이다.그리고 성만찬 제단의 위치도 지금까지 벽에 붙여 놓았던 것을 변화시켜 복사가 벽과 제단 사이에서 회중을 향해 서도록 하는 새로운 시도를 보였다.또 쯔빙글리에 의하여 없어졌던 시편이나 찬송이 이 예배 가운데 복귀되는 한편,성서 일과가 사라지고 목사가 마음대로 본문을 선택하도록 하는 방법을 출발시켰다.성자 축일 등은 완전히 폐지되었고,성만찬을 위한 성직자의 특별한 복장도 허용하지 않았다.그 대신 주일이면 언제나 검정 가운을 입도록 했다.예배 가운데서의 성만찬은 매주일 갖는 것을 원칙으로 했으나 대성당에서만 지킬 뿐 월 1회로 바뀌는 변혁이 이때부터 시행되었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예전이 예배의 발전에 끼친 가장 중추적인 공헌은 예전의 진행 모두를 회중이 볼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는 점이다.지금껏 회중을 등 뒤로 하고 드려지던 예배에서 회중과 목사가 함께 마주보며 드리는 예배로 전환을 이룩한 것에 대하여 많은 개혁자들과 그 후대 학자들의 관심은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부처를 중심한 개혁자들이 드렸던 이 예배는 훗날 칼빈의 예배 순서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그들이 가졌던 예배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말씀의 예전
  예전 준비
  기원
  죄의 고백
  사죄의 선언
  시편 교송
  인사와 응답
  입당송
  자비를 구하는 연도(Kyries)
  영광송
  기도문 낭송
  서신서 봉독
  복음서 봉독
  니케아 신조

성만찬 예전
봉헌
성물의 배열 준비
교훈
인사와 서송(序誦-`주를 우러러볼지어다')
성찬의 서문경(序文經)
성송(聖誦-시 95편)
손 씻음과 기도문
전문(典文)
중보의 기도
생활을 위한 기도
성찬의 말씀
회상
주님의 기도(음률을 첨가한 송영으로)
성상패(pax:목사와 성도들이 입을 맞추는 )
하나님의 어린 양을 노래하는 기도
성만찬 기도문
성도들의 교제
분병 분잔 및 참여
성찬 후 기도문
인사와 응답
강복 선언

4) 칼빈과 그의 교회

칼빈은 독자적인 새로운 예배의 형태를 개발하지 않고서 결국 부처가 사용했던 예전에 약간의 수정을 가한 채 예배의 의식을 갖추게 되었다.예배의 부름,용서를 위한 기도,설교,중보의 기도 등을 보완하고 대신 자비의 연도(Kyrie eleison)나 영광송 등을 생략한 것을 제외하고는 부처의 형식을 거의 그대로 사용했던 것이다.다시 말하면 부처가 이미 루터와 쯔빙글리의 예배 의식을 종합해 놓은 것에다가 자신의 주장을 가미한 정도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다.그러나 성만찬의 중요성을 철저히 인식하여 매주일 거행할 것을 주장한 점은 그의 신학에 근거한 특성이기도 했다.그가 1542년에 펴낸 바 있는 {초대 교회의 예전의 내용을 연구한 예식서}19)에 나타난 예배의 형태와 순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말씀의 예전
  예배의 말씀
  죄의 고백
  사함의 말씀
  용서의 선언
  운율을 사용한 시편 낭독
  성령의 임재를 위한 기도문
  성경 말씀(lection)
  설교

만찬의 예전
  구제를 위한 헌금
  중보의 기도
  주님의 기도(해설을 첨가한)
  성물의 준비
  사도신경(노래로)
  봉헌의 기도
  주님의 기도
  성만찬을 위한 말씀
  성만찬을 위한 말씀 증거
  성체 분할식
  분병 분잔
  성만찬 참여
  성찬 후 기도문
  시므온의 찬미(눅 2:29-32)
  아론적 축복 기도

5) 존 낙스와 스코틀랜드 교회

영국의 교회가 정치적인 독립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벌인 종교 개혁은 오랫동안 대단한 혼미를 거듭해 왔다.그러나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의 뿌리를 형성시켜 준 스코틀랜드의 종교 개혁은 어느 지역보다 어려움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결실을 맺었으며 복음의 바른 이해와 개혁의 참 정신을 뚜렷이 나타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여기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 바로 존 낙스이다.

이 예식서는 칼빈의 예배 형태와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으나 다만 칼빈이 사용했던 예배의 말씀 대신 죄의 고백으로부터 시작한 점과 기도의 내용에 있어서 경외(敬畏)와 감사를 더 첨가하도록 한 것 등 약간의 변동이 있을 뿐이었다.


말씀의 예배
  예배의 부름
  예배 기도(경외,찬양,성령의 임재를 기원하는)
  구약의 말씀(한 장을 읽음)
  신약의 말씀(한 장을 읽음)
  운율을 사용한 시편(구신약 중간에도 사용했음)
  고백과 중보의 기도
  설교
  기도(구속,복음,설교의 내용 등에 대한 감사)
  주님의 기도

성찬 예배
  봉헌(성물을 알맞은 그릇에 넣어 가져다 드리는 것 등)
  성찬에의 초대
  성물의 성별
  성찬의 말씀(고전 11장)
  교훈
  봉헌의 기도
  성체 분할
  분병 분잔
  성도들의 참여와 명상
  참된 생활의 강조
  성찬 후 기도
  시편 노래
  축복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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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생명환경자연 텔레비젼과 사라지는 어린이들 최용우 2002-10-12 3711
48 선교화제현장 장애인을 배려하는 마음 100가지 최용우 2002-10-12 3513
47 인기감동기타 [현대신학]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그리스도 김성민 2002-10-04 2939
46 인기감동기타 [바울신학] 사도행전에 근거한 바울의 선교전략 이우성 2002-10-04 5135
45 인기감동기타 만주와 선교 선교연구소 2002-10-04 3820
44 인기감동기타 공관복음 연구 해외논문 2002-10-04 4702
43 인기감동기타 각 교단의 예배신학 정장복 교수 2002-10-04 3450
» 인기감동기타 개신교의 예배의식의 발전과 그 형태 정장복 교수 2002-10-04 1785
41 인기감동기타 [치유예배] 레이투르기아와 고치시고 싸매시는 그리스도 주승중 교수 2002-10-04 3784
40 인기감동기타 [예배학] 열린예배에 대하여 주승중 교수 2002-10-04 3147
39 인기감동기타 [바울신학] 바울의 성(性) 이해 최세창 교수 2002-10-04 3473
38 인기감동기타 [실천신학] 복음주의와 기독교교육 유윤종 2002-10-04 3348
37 인기감동기타 [교리] 침례교회가 사도신경을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용복 2002-10-02 5799
36 인기감동기타 [선교] 새천년 새 중국선교 왕쓰웨 2002-10-02 3118
35 인기감동기타 [특수선교] 교회가 장애인 사역을 해야 할 10가지 이유 최용우 2002-09-29 3142
34 선교화제현장 [교회가 있는 풍경] 산 속 기도실이 아름다운 곳 강릉정동기도원 다람쥐 2002-08-01 7974
33 선교화제현장 [교회가 있는 풍경] 신성수양관 다람쥐 2002-08-01 5241
32 선교화제현장 [교회가 있는 풍경] 강화 「교산교회」 다람쥐 2002-08-01 4368
31 선교화제현장 [교회가 있는 풍경] 전원형 교회 「김포전원교회」 다람쥐 2002-08-01 6477
30 선교화제현장 [교회가 있는풍경] 작고 아름다운 시골교회, 계룡산 학봉교회 다람쥐 2002-08-01 4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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