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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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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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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gidoknews.co.kr/◎ 2000/11/12(일) 11:01
■ 「자기 교회위주 의식」만연1 (1508호.1999. 3.14)
이른바 '교인 이기주의'가 개교회마다 만연돼 있어 교회발전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교인들만의 공동체는 교회발전을 저해하고 건강한 공동체성을 갉아먹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이 강한 것이다. 이는 결국 주민들에게 적극 다가가는 교회로서가 아닌 주민들로부터 배척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교인이기주의에 대한 개교회 진단을 함과 아울러 이에 대한 대책을 알아본다.
'교인 가족주의' 팽배
초신자가 교회에 적응하기 어려운 교회 분위기가 팽배하다. 기존 교인들 사이에 끼어들 여지가 없어 주위만 맴돈다. 그러다 결국 그 교회를 그만두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또 교회 주변 주민들의 교회 평가는 아주 낮게 나타난다. 심지어는 그 교회 존재이유에 대한 회의감마저 표출한다. '교인들만 친하다', '주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이 교회가 발전하려는 면만 드러낸다'는 지적이 줄을 잇는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교회 구성원도 지역 주민들을 흡수하지 못하고, 교회당만 그 지역에 존재하는 교회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외지에서 오는 교인들로 구성된 교회,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는 교회의 모습이 우리 주변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교인 가족주의'라고 통칭되는 이러한 문제점은 교회발전은 물론 교회가 그 지역속에 굳게 뿌리박는 일을 결정적으로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민들과 함께가는 교회로서의 면모를 뒤로 하고 교인들만의 교회로 자리잡는 교회가 의외로 많다는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교회가 발전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회당이 속한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띄어야 한다는 사실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명확한 사실이다. 주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교회는 발전을 포기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는 교회는 주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교인가족주의'는 개교회에서 정도의 차이는 다르지만 많이 나타나는 문제이다. 기성교인들간의 교류와 친근성을 탓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초신자 및 비교인들에게 '벽'으로 다가올때는 더이상 미덕이라고 할수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건강한 교회의 '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일정 부분의 교인가족주의는 교회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목회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교인간의 화합과 친목을 통해 교회의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고 교회 조직의 활성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대소사를 추진함에 있어 이러한 공동체성은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교회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부정적으로 흐르면 이는 더이상 활력소로 작용하지 못한다. 건강한 공동체성을 갉아먹는 '써클주의'가 되고, 타인의 침범을 허락치않는 '가족주의'로 흐를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교인들만의 공동체(?)
일반적으로 '훼밀리즘', 또는 '가족주의'는 그 구성원만의 이해를 추구하고, 타인의 가입을 꺼리는 배타성을 지닌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개방적인 조직이라기 보다는 폐쇄적인 조직으로 특징지워지며, 조직확대를 지향하기 보다는 기존 구성원만의 조직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1차적인 관계를 중시하며, 다양한 인적 구성을 극히 꺼리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불행하게도 개교회의 교인들이 이러한 '가족주의'를 짙게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1차적인 가족, 친지, 써클, 친구 등만 친하고 초신자 및 비신자를 받아들이는데는 인색한 면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물론 겉으로는 초신자 및 교인들을 친절하게 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조직의 특성은 초신자및 비신자가 교회의 조직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지 못하고 탈락되고 만다는 점이다.
사실 이러한 훼밀리즘을 강하게 드러내는 교회일수록 역사가 길든 짧든 성장정체를 보인다는 점이다. 기존 교인들의 이탈 정도는 적다 할지라도 새로운 교인들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주민들의 평가를 상당히 저급하게 받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교회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지만 내가 있을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친절함을 내비쳤지만 막상 기존 교인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적었고 내가 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모교회에 처음 발을 디뎠다가 그만두었다고 밝힌 H씨의 말이다. 결국 그는 다른 교회를 택해 새롭게 교회를 다니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교회일수록 교인들간의 이해관계가 뒤얽힌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는 교인간의 사업에 얽힌 이해관계, 친지로 이루어진 교회 등으로 다양한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조직일수록 교회성장은 요원하고 세월이 지나도 그 규모를 유지하는 면을 보이고 있다.
특히 농어촌교회 및 소도시의 교회도 이러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이지만 교회의 규모는 10년전이나 현재도 같은 점을 보이면 이런 가족주의에 대한 점검을 한번쯤은 해봐야 할 것이다. 작은 규모의 교회일수록 이러한 점검은 필수적이다. 주민들이 교회의 존제를 알면서도 그 구성원에 속할 엄두를 못내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으며, 주민들로부터 배척당하는 사례도 많이 발생한다.
이러한 점은 도시교회도 마찬가지다. 작은 교회든 큰 교회든 이러한 점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주 발생하고 있으며, 교회의 건강한 공동체성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공동체라는 개념과 가족주의는 분명 구별돼야 한다. 교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공동체로서의 면모를 강하게 띄고 선교와 구제에 앞장서야 하지만 이를 잘못 이해해 가족주의로 흐르면 교회의 건강한 발전은 기약할 수 없다. 가족주의는 교회의 공동체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발전을 가로막는 해악적인 요소다
주민선교전략 부재
IMF한파속에서 한국교회는 계속해서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주민선교에 대한 프로그램 부재 현상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으로 주목된다. 오늘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현재의 교세에 안주, 변화하는 주민의식과 사회현상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로인해 교회는 계속해서 교인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한 현장목회자는 '대부분의 교회지도자들은 주민들의 의식변화와 환경변화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 할 수 있는 전도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하고, 현재의 교회에 안주하고 있다'면서 '지역주민들이 교회공동체에 들어와 하나님나라 선교에 동참 할 수 있는 주민중심의 선교전략을 수립,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민의식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 할 수 있는 선교정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 목회자의 지적과 같이 대부분의 교회들은 주민선교에 대해서 매우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교회들은 주민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교회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축복받기만을 기원했다. 이러한 기복적인 교인들의 신앙형태는 교회와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껄끄럽게 만들어 놓아을 뿐만 아니라, '교회이기주의'와 '교인이기주의'를 만들어 냈다.
또한 오늘 한국교회는 전도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전도요원의 실체인 교인들은 전도에 대한 소유와 판단이 약해, 전도대상자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교회지도자들은 전도요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같이 목회자들이 전도요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키지 못할 경우,한국교회는 계속해서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전도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목회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Z측 Y목사는 '오늘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전도에 대한 필요성과 판단이 매우 약하여 교회는 계속해서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 할 수 밖에 없다'면서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에서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설 수 있도록 목회자들은 전도요원을 선발, 전도대상자들에게 접근하여 효과적이며 구체적으로 전도 할 수 있는 선교전략을 수립, 교인들을 훈련시켜야 한다'고 전도훈련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또한 한국교회는 집단이기주의와 교인이기주의에 빠져 교회성장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내교회, 내교인 등의 의식은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반감을 일반인들로 하여금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현재의 교회에 안주
이러한 이유로 인해 교회와 교인들은 주민들속에 뛰어들어 전도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숨기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교회에 다니다가 현재는 쉬고 있는 한 사람은 '처음 교회에 다닐때는 하나님에 대한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안믿는 사람들로 부터 '이기주의자'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바에는 차라리 기독교인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어 교회출석을 거부하고 있다'고 오늘 한국교회 교인들의 잘못된 신앙형태를 지적했다.
한편 오늘 대부분의 교회지도자들은 현재의 교회에 안주하고, 전도에 대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게을리 하고 있다는 지적 또한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원인중에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일부 교회지도자는 기독교가 전체국민중 25%인 1천2백만명의 교세를 가졌으면 매우 성장했다고 평가하고, 국내선교에서 해외선교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로인해 국내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전도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전도전문가는 '교회를 어느정도 성장시킨 교회지도자들은 현재의 교세에 만족하고, 국내선교및 주민선교에 미온적이며, 해외선교에 교회재정을 비롯한 모든 힘을 투자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교회지도자들은 현재 교회에 다니지 않는 75%의 국민들이 교회에 들어와 하나님나라 선교에 동참할 수 있도록 교회의 모든 힘을 투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유달상기자·홍순현기자
◎ 2000/11/12(일) 11:13
■ 「자기 교회위주 의식」만연2 (1510호 1999.3.28)
한국교회는 내교회주의가 팽배해져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이것은 교회가 지역사회속에서 교회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는 반증이며, 주민들로 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일부교회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 하나님의 선교적 사명을 충실히 감당, 교회성장의 계기로 삼고 있다.
「마을공동체」 중요
IMF한파와 정부의 도시민위주정책, 도시교회의 냉대 등의 원인으로 인해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는 농어촌교회는 살아남기 위한 여러가지 주민공동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무엇보다도 농어촌 일부교회는 도시에 주민들을 빼앗긴 가운데, 잔류인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마을공동체 프로그램을 개발, 내일을 향한 신앙공동체를 열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교회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인 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어촌교회 목회자들은 농어촌교회를 도시교회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물렀다 가는 '임시정류장'으로 생각하고 있어, 교회성장과 연속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높다. 이것은 농어촌교회 목회자들이 현재 목회하고 있는 현장에 대해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지 못하고 도시의 큰교회로 가기 위한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농어촌교회 목회자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신앙공동체를 열어가며, 마을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충청북도 제천시 송악면에 소재한 송악감리교회(담임=엄태성목사)는 지역주민들을 가난으로부터 내몰고, 잘사는 마을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하여 '신협운동'을 전개, 교회성장의 계기를 마련했다.농촌교회로서 교회성장의 모델을 제시한 이 교회는 '생명운동'의 일환으로 지역주민들과 함께 '유정란'생산자조합을 조직, 도시소비자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생산자조합은 교회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평가다.
이 교회 담임 엄태성목사는 '농어촌에서 하나님의 선교적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목회자들은 잔류주민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마을공동체 프로그램을 개발,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농어촌교회도 성장 할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민중심의 교회, 마을공동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남원시에 위치한 남원제일교회(담임=김금용목사)는 사회복지적인 측면에서 주민중심의 목회계획을 수립,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교회로 자리를 잡았다. 이 교회는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을 위한 '소망의 문'을 개원,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심어주고 있을 뿐만아니라, 이 교회는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도 마련,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주민공동체를 형성하고, 세상속에서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주민중심의 교회
같은 지역에 위치한 살림교회(담임=문홍근목사)도 지역주민들의 교회로 자리잡기 위해서 종합복지관을 남원시로 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이 복지관은 주민들의 윤택한 생활을 지원하고, 지역복음화에 대한 기틀을 마련하는데 가교적인 역할.
남원제일교회와 살림교회는 복지적인 측면에서 지역주민에게 접근, 교회를 성장시키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이 두교회의 프로그램은 21세기 현장목회자가 추구해야 할 '복지목회'와 맞아 떨어지고 있어 관심.
청주시 중신교회는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마을을 만들기 위하여 '중신농민학교'를 비롯한 '여성농민교실','협동협업과 생명농사','소비자조합과 생산자조합과의 농산물직거래사업','농민권익향상' 등 지역사회의 관심사를 선교적인 과제로 삼아 끊임없이 주민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지역복음화의 새기틀을 마련했다.
이밖에도 청원덕촌교회(담임=이도영목사), 강원도 선평교회 등도 농촌의 현장속에서 농민과 더불어 생명의 공동체,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교회성장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특별히 농어촌교회들은 젊은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버려 노인들의 공동체로 변해 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일부 농촌교회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을 위한 목회계획을 수립, 아름다운 마을공동체를 열어가고 있다.
이렇게 일부 교회가 잔류주민들과 함께 살맛나는 농어촌사회를 건설하하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 교회들은 교회 현상유지에 급급하고 있다. 아무튼 농어촌교회들은 주어진 환경속에서 주민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심어 주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 생명력이 넘치는 교회공동체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민중교회'의 패밀리즘
70-80년대 한국교회 특징중의 하나는 수많은 '민중교회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민중의 고난과 함께하며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의 노력으로 태동된 민중교회는 한국교회 갱신과 민주화를 위해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민중교회운동의 긍정적인 이면에는 분명 몇가지 지적되는 사항이 있었다. 그중 가장 많이 지적된 점이 다양한 계층의 교인을 아우르지 못하고 몇몇 교인 중심의 교회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의도한 바도 아니고 이를 지향한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격상 교인의 다양화를 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들 교회들은 '대중속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현장성을 강조했지만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명멸해가거나 성격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구호는 그야말로 '구호'로만 그치는 경우가 허다했고, 엘리트 청년이나 몇몇 교인들의 구성원으로 된 교회운영으로 되기 일쑤였다.
문제의 중심은 '교인들의 패밀리즘'이 강하게 뿌리내려 일반인의 교회 접근이 어려웠다는 점이다.
80년대 후반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확산되고 있는 '민중교회 위기론'은 이러한 점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교인 구성원간의 친분과 관계는 더할 나위없이 좋지만 그외 사람들을 흡수하는데는 인색하거나 어색한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러한 과정이 거듭되면서 일반 교인들이 민중교회에 발을 디딜 것을 꺼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즉 고정관념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80년대 후반기부터 일기 시작한 민중교회의 변신 움직임은 이러한 일반인의 '고정관념'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했다. 또 특별한 '목적성'에 기반한 교회들이었기에, 이 시기 이후 불기 시작한 민주화 바람으로 인해 '민중교회'의 정체성 문제가 제기됐고, 많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게 됐다. 물론 이는 이들 교회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음에는 틀림없다. 나름대로 이들 교회들은 다양한 계층의 교인들로 구성된 교회건설을 위해 노력했고, 이러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성교인 또는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화됐고, 다른 사람들이 교회로 발을 내딛기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민주화를 위한 노력, 그리고, 현장노동자들의 권익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중요했고, 해야할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적 기반위에서 한 것이라기 보다는 몇몇 인물들 중심으로 한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러하기에 이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교인들은 교회안에서 소외되기 일쑤였고, 교회의 성장 또한 기대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부의 목회자들은 '자기만족적인 목회'에 빠져 교회의 프로그램을 다양화하지 못하고, 교인 양육에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목양에 전념해야 할 목회자가 외부로만 돌고, 내부적인 임무에는 방기, 교회성장에 마이너스로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는 물론 일부에 한정된 지적이었겠지만 많은 공감을 얻는 문제이기도 했다.
아무튼 사회가 변화되면서 이러한 민중교회들은 변신을 시도, 지역에 튼튼히 뿌리박는 '현장교회'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동안 사회및 한국교회에 기여한 점은 물론 제기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지만 우선 '교회의 패밀리즘' 벽을 극복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새교인들이 교회에 처음 발을 내딛어도 어색하지 않고 친화되도록 하는 분위기 창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성교인들만의 벽을 쌓으면 교회의 변신이나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현장성 갖춘 교회로
아울러 교회의 본모습을 띄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많은 목회자 및 신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바른 사회 건설은 교회의 하나님나라 건설의 한 부분으로서 이해해야 하지, 교회적 기반없이 이것에만 전념하다 보면 교회의 정체성의 문제에 부딪힐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른사회건설은 '하나님나라 건설'이라는 큰 명제안에 용해될때 비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현장교회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교회가 성장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교인들이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일들을 꾸려나가야 할 것이다. 교인이 소외됨 없는 분위기를 만들고, 새교인들을 견인하기 위한 구조를 창출해야 한다. 그렇게 할때만이 그 교회의 특성을 살리고, 뜻하는 일도 힘있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 '30-40명의 교인들로 민주화와 통일을 이루어 나갈 수 있겠는가'라는 지적을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교회의 패밀리즘'은 단지 민중교회에 한정되는 일은 아니고 많은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다. 특히 적은 교회일수록 이러한 점은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교회성장의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긍정적인 교회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교회의 프로그램을 교회성장과 발전을 위한 것으로 연결하고, 보다 다양한 교인들이 부담없이 교회에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사회선교에 힘을 기울이고, 애초 그 교회가 지향하는 특성을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 교회의 성장은 그 교회 자체의 이해실현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나라 건설이라는 도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달상부장·홍순현기자
■ 「자기 교회위주 의식」만연1 (1508호.1999. 3.14)
이른바 '교인 이기주의'가 개교회마다 만연돼 있어 교회발전의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교인들만의 공동체는 교회발전을 저해하고 건강한 공동체성을 갉아먹는 요인이 된다는 지적이 강한 것이다. 이는 결국 주민들에게 적극 다가가는 교회로서가 아닌 주민들로부터 배척당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교인이기주의에 대한 개교회 진단을 함과 아울러 이에 대한 대책을 알아본다.
'교인 가족주의' 팽배
초신자가 교회에 적응하기 어려운 교회 분위기가 팽배하다. 기존 교인들 사이에 끼어들 여지가 없어 주위만 맴돈다. 그러다 결국 그 교회를 그만두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또 교회 주변 주민들의 교회 평가는 아주 낮게 나타난다. 심지어는 그 교회 존재이유에 대한 회의감마저 표출한다. '교인들만 친하다', '주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이 교회가 발전하려는 면만 드러낸다'는 지적이 줄을 잇는다.
이러한 점으로 인해 교회 구성원도 지역 주민들을 흡수하지 못하고, 교회당만 그 지역에 존재하는 교회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외지에서 오는 교인들로 구성된 교회,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는 교회의 모습이 우리 주변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교인 가족주의'라고 통칭되는 이러한 문제점은 교회발전은 물론 교회가 그 지역속에 굳게 뿌리박는 일을 결정적으로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민들과 함께가는 교회로서의 면모를 뒤로 하고 교인들만의 교회로 자리잡는 교회가 의외로 많다는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교회가 발전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교회당이 속한 지역의 주민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띄어야 한다는 사실은 새삼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명확한 사실이다. 주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교회는 발전을 포기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주민을 위한 프로그램이 없는 교회는 주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교인가족주의'는 개교회에서 정도의 차이는 다르지만 많이 나타나는 문제이다. 기성교인들간의 교류와 친근성을 탓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초신자 및 비교인들에게 '벽'으로 다가올때는 더이상 미덕이라고 할수는 없다. 그것은 오히려 건강한 교회의 '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일정 부분의 교인가족주의는 교회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목회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교인간의 화합과 친목을 통해 교회의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고 교회 조직의 활성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대소사를 추진함에 있어 이러한 공동체성은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으며, 교회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부정적으로 흐르면 이는 더이상 활력소로 작용하지 못한다. 건강한 공동체성을 갉아먹는 '써클주의'가 되고, 타인의 침범을 허락치않는 '가족주의'로 흐를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교인들만의 공동체(?)
일반적으로 '훼밀리즘', 또는 '가족주의'는 그 구성원만의 이해를 추구하고, 타인의 가입을 꺼리는 배타성을 지닌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개방적인 조직이라기 보다는 폐쇄적인 조직으로 특징지워지며, 조직확대를 지향하기 보다는 기존 구성원만의 조직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1차적인 관계를 중시하며, 다양한 인적 구성을 극히 꺼리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불행하게도 개교회의 교인들이 이러한 '가족주의'를 짙게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1차적인 가족, 친지, 써클, 친구 등만 친하고 초신자 및 비신자를 받아들이는데는 인색한 면을 드러낸다는 말이다. 물론 겉으로는 초신자 및 교인들을 친절하게 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이러한 조직의 특성은 초신자및 비신자가 교회의 조직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지 못하고 탈락되고 만다는 점이다.
사실 이러한 훼밀리즘을 강하게 드러내는 교회일수록 역사가 길든 짧든 성장정체를 보인다는 점이다. 기존 교인들의 이탈 정도는 적다 할지라도 새로운 교인들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주민들의 평가를 상당히 저급하게 받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교회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지만 내가 있을 공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친절함을 내비쳤지만 막상 기존 교인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적었고 내가 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모교회에 처음 발을 디뎠다가 그만두었다고 밝힌 H씨의 말이다. 결국 그는 다른 교회를 택해 새롭게 교회를 다니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교회일수록 교인들간의 이해관계가 뒤얽힌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는 교인간의 사업에 얽힌 이해관계, 친지로 이루어진 교회 등으로 다양한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조직일수록 교회성장은 요원하고 세월이 지나도 그 규모를 유지하는 면을 보이고 있다.
특히 농어촌교회 및 소도시의 교회도 이러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이지만 교회의 규모는 10년전이나 현재도 같은 점을 보이면 이런 가족주의에 대한 점검을 한번쯤은 해봐야 할 것이다. 작은 규모의 교회일수록 이러한 점검은 필수적이다. 주민들이 교회의 존제를 알면서도 그 구성원에 속할 엄두를 못내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으며, 주민들로부터 배척당하는 사례도 많이 발생한다.
이러한 점은 도시교회도 마찬가지다. 작은 교회든 큰 교회든 이러한 점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주 발생하고 있으며, 교회의 건강한 공동체성을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공동체라는 개념과 가족주의는 분명 구별돼야 한다. 교회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는 공동체로서의 면모를 강하게 띄고 선교와 구제에 앞장서야 하지만 이를 잘못 이해해 가족주의로 흐르면 교회의 건강한 발전은 기약할 수 없다. 가족주의는 교회의 공동체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발전을 가로막는 해악적인 요소다
주민선교전략 부재
IMF한파속에서 한국교회는 계속해서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주민선교에 대한 프로그램 부재 현상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으로 주목된다. 오늘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현재의 교세에 안주, 변화하는 주민의식과 사회현상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로인해 교회는 계속해서 교인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한 현장목회자는 '대부분의 교회지도자들은 주민들의 의식변화와 환경변화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 할 수 있는 전도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하고, 현재의 교회에 안주하고 있다'면서 '지역주민들이 교회공동체에 들어와 하나님나라 선교에 동참 할 수 있는 주민중심의 선교전략을 수립,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민의식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 할 수 있는 선교정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 목회자의 지적과 같이 대부분의 교회들은 주민선교에 대해서 매우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교회들은 주민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교회집단이기주의'에 빠져 축복받기만을 기원했다. 이러한 기복적인 교인들의 신앙형태는 교회와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껄끄럽게 만들어 놓아을 뿐만 아니라, '교회이기주의'와 '교인이기주의'를 만들어 냈다.
또한 오늘 한국교회는 전도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전도요원의 실체인 교인들은 전도에 대한 소유와 판단이 약해, 전도대상자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교회지도자들은 전도요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같이 목회자들이 전도요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훈련을 시키지 못할 경우,한국교회는 계속해서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전도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목회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Z측 Y목사는 '오늘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전도에 대한 필요성과 판단이 매우 약하여 교회는 계속해서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 할 수 밖에 없다'면서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에서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설 수 있도록 목회자들은 전도요원을 선발, 전도대상자들에게 접근하여 효과적이며 구체적으로 전도 할 수 있는 선교전략을 수립, 교인들을 훈련시켜야 한다'고 전도훈련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또한 한국교회는 집단이기주의와 교인이기주의에 빠져 교회성장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내교회, 내교인 등의 의식은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반감을 일반인들로 하여금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현재의 교회에 안주
이러한 이유로 인해 교회와 교인들은 주민들속에 뛰어들어 전도활동을 벌이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숨기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교회에 다니다가 현재는 쉬고 있는 한 사람은 '처음 교회에 다닐때는 하나님에 대한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안믿는 사람들로 부터 '이기주의자'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바에는 차라리 기독교인이기를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어 교회출석을 거부하고 있다'고 오늘 한국교회 교인들의 잘못된 신앙형태를 지적했다.
한편 오늘 대부분의 교회지도자들은 현재의 교회에 안주하고, 전도에 대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게을리 하고 있다는 지적 또한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원인중에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일부 교회지도자는 기독교가 전체국민중 25%인 1천2백만명의 교세를 가졌으면 매우 성장했다고 평가하고, 국내선교에서 해외선교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로인해 국내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전도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전도전문가는 '교회를 어느정도 성장시킨 교회지도자들은 현재의 교세에 만족하고, 국내선교및 주민선교에 미온적이며, 해외선교에 교회재정을 비롯한 모든 힘을 투자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교회지도자들은 현재 교회에 다니지 않는 75%의 국민들이 교회에 들어와 하나님나라 선교에 동참할 수 있도록 교회의 모든 힘을 투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유달상기자·홍순현기자
◎ 2000/11/12(일) 11:13
■ 「자기 교회위주 의식」만연2 (1510호 1999.3.28)
한국교회는 내교회주의가 팽배해져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이것은 교회가 지역사회속에서 교회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는 반증이며, 주민들로 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상황속에서도 일부교회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 하나님의 선교적 사명을 충실히 감당, 교회성장의 계기로 삼고 있다.
「마을공동체」 중요
IMF한파와 정부의 도시민위주정책, 도시교회의 냉대 등의 원인으로 인해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는 농어촌교회는 살아남기 위한 여러가지 주민공동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무엇보다도 농어촌 일부교회는 도시에 주민들을 빼앗긴 가운데, 잔류인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마을공동체 프로그램을 개발, 내일을 향한 신앙공동체를 열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교회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인 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어촌교회 목회자들은 농어촌교회를 도시교회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물렀다 가는 '임시정류장'으로 생각하고 있어, 교회성장과 연속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높다. 이것은 농어촌교회 목회자들이 현재 목회하고 있는 현장에 대해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지 못하고 도시의 큰교회로 가기 위한 기회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농어촌교회 목회자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신앙공동체를 열어가며, 마을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충청북도 제천시 송악면에 소재한 송악감리교회(담임=엄태성목사)는 지역주민들을 가난으로부터 내몰고, 잘사는 마을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하여 '신협운동'을 전개, 교회성장의 계기를 마련했다.농촌교회로서 교회성장의 모델을 제시한 이 교회는 '생명운동'의 일환으로 지역주민들과 함께 '유정란'생산자조합을 조직, 도시소비자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생산자조합은 교회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평가다.
이 교회 담임 엄태성목사는 '농어촌에서 하나님의 선교적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목회자들은 잔류주민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마을공동체 프로그램을 개발,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농어촌교회도 성장 할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민중심의 교회, 마을공동체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남원시에 위치한 남원제일교회(담임=김금용목사)는 사회복지적인 측면에서 주민중심의 목회계획을 수립,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교회로 자리를 잡았다. 이 교회는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을 위한 '소망의 문'을 개원,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심어주고 있을 뿐만아니라, 이 교회는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도 마련,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주민공동체를 형성하고, 세상속에서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주민중심의 교회
같은 지역에 위치한 살림교회(담임=문홍근목사)도 지역주민들의 교회로 자리잡기 위해서 종합복지관을 남원시로 부터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으며, 이 복지관은 주민들의 윤택한 생활을 지원하고, 지역복음화에 대한 기틀을 마련하는데 가교적인 역할.
남원제일교회와 살림교회는 복지적인 측면에서 지역주민에게 접근, 교회를 성장시키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이 두교회의 프로그램은 21세기 현장목회자가 추구해야 할 '복지목회'와 맞아 떨어지고 있어 관심.
청주시 중신교회는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마을을 만들기 위하여 '중신농민학교'를 비롯한 '여성농민교실','협동협업과 생명농사','소비자조합과 생산자조합과의 농산물직거래사업','농민권익향상' 등 지역사회의 관심사를 선교적인 과제로 삼아 끊임없이 주민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통하여 지역복음화의 새기틀을 마련했다.
이밖에도 청원덕촌교회(담임=이도영목사), 강원도 선평교회 등도 농촌의 현장속에서 농민과 더불어 생명의 공동체, 마을공동체를 이루고, 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교회성장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특별히 농어촌교회들은 젊은사람들이 도시로 떠나버려 노인들의 공동체로 변해 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일부 농촌교회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을 위한 목회계획을 수립, 아름다운 마을공동체를 열어가고 있다.
이렇게 일부 교회가 잔류주민들과 함께 살맛나는 농어촌사회를 건설하하고 있는 반면, 대부분의 교회들은 교회 현상유지에 급급하고 있다. 아무튼 농어촌교회들은 주어진 환경속에서 주민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심어 주기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 생명력이 넘치는 교회공동체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민중교회'의 패밀리즘
70-80년대 한국교회 특징중의 하나는 수많은 '민중교회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민중의 고난과 함께하며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많은 목회자와 교인들의 노력으로 태동된 민중교회는 한국교회 갱신과 민주화를 위해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민중교회운동의 긍정적인 이면에는 분명 몇가지 지적되는 사항이 있었다. 그중 가장 많이 지적된 점이 다양한 계층의 교인을 아우르지 못하고 몇몇 교인 중심의 교회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의도한 바도 아니고 이를 지향한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성격상 교인의 다양화를 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이들 교회들은 '대중속으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현장성을 강조했지만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명멸해가거나 성격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구호는 그야말로 '구호'로만 그치는 경우가 허다했고, 엘리트 청년이나 몇몇 교인들의 구성원으로 된 교회운영으로 되기 일쑤였다.
문제의 중심은 '교인들의 패밀리즘'이 강하게 뿌리내려 일반인의 교회 접근이 어려웠다는 점이다.
80년대 후반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확산되고 있는 '민중교회 위기론'은 이러한 점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교인 구성원간의 친분과 관계는 더할 나위없이 좋지만 그외 사람들을 흡수하는데는 인색하거나 어색한 분위기가 팽배했다. 이러한 과정이 거듭되면서 일반 교인들이 민중교회에 발을 디딜 것을 꺼리는 현상이 발생했다. 즉 고정관념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80년대 후반기부터 일기 시작한 민중교회의 변신 움직임은 이러한 일반인의 '고정관념'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기도 했다. 또 특별한 '목적성'에 기반한 교회들이었기에, 이 시기 이후 불기 시작한 민주화 바람으로 인해 '민중교회'의 정체성 문제가 제기됐고, 많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게 됐다. 물론 이는 이들 교회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음에는 틀림없다. 나름대로 이들 교회들은 다양한 계층의 교인들로 구성된 교회건설을 위해 노력했고, 이러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기성교인 또는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화됐고, 다른 사람들이 교회로 발을 내딛기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민주화를 위한 노력, 그리고, 현장노동자들의 권익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중요했고, 해야할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적 기반위에서 한 것이라기 보다는 몇몇 인물들 중심으로 한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러하기에 이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교인들은 교회안에서 소외되기 일쑤였고, 교회의 성장 또한 기대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부의 목회자들은 '자기만족적인 목회'에 빠져 교회의 프로그램을 다양화하지 못하고, 교인 양육에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목양에 전념해야 할 목회자가 외부로만 돌고, 내부적인 임무에는 방기, 교회성장에 마이너스로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는 물론 일부에 한정된 지적이었겠지만 많은 공감을 얻는 문제이기도 했다.
아무튼 사회가 변화되면서 이러한 민중교회들은 변신을 시도, 지역에 튼튼히 뿌리박는 '현장교회'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동안 사회및 한국교회에 기여한 점은 물론 제기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노력들이 필요하지만 우선 '교회의 패밀리즘' 벽을 극복하는 것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새교인들이 교회에 처음 발을 내딛어도 어색하지 않고 친화되도록 하는 분위기 창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성교인들만의 벽을 쌓으면 교회의 변신이나 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현장성 갖춘 교회로
아울러 교회의 본모습을 띄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많은 목회자 및 신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바른 사회 건설은 교회의 하나님나라 건설의 한 부분으로서 이해해야 하지, 교회적 기반없이 이것에만 전념하다 보면 교회의 정체성의 문제에 부딪힐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른사회건설은 '하나님나라 건설'이라는 큰 명제안에 용해될때 비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현장교회들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교회가 성장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교인들이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일들을 꾸려나가야 할 것이다. 교인이 소외됨 없는 분위기를 만들고, 새교인들을 견인하기 위한 구조를 창출해야 한다. 그렇게 할때만이 그 교회의 특성을 살리고, 뜻하는 일도 힘있게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까지 '30-40명의 교인들로 민주화와 통일을 이루어 나갈 수 있겠는가'라는 지적을 받을 수는 없지 않은가.
'교회의 패밀리즘'은 단지 민중교회에 한정되는 일은 아니고 많은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다. 특히 적은 교회일수록 이러한 점은 두드러지게 나타날 수 있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교회성장의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긍정적인 교회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교회의 프로그램을 교회성장과 발전을 위한 것으로 연결하고, 보다 다양한 교인들이 부담없이 교회에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사회선교에 힘을 기울이고, 애초 그 교회가 지향하는 특성을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 교회의 성장은 그 교회 자체의 이해실현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나라 건설이라는 도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유달상부장·홍순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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