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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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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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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기독교신문 2000/11/16(목) 08:22
■ 기독교가정의 허와실1 (1516호. 1999.5.9)
기독교인들은 가정문제를 잘 풀어가고 있는가? 기독교가정으로서의 자녀문제, 부모(노인)문제, 부부문제를 바르게 대처하고 있는가. 성경과 기독교적 문화적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를 접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에 바른 기독교가정문화를 위하여 기독교가정의 자녀, 부모, 부부문제를 3회에 걸쳐 점검해 보고자 한다.
일반교육에 함몰
기독교가정의 자녀교육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사회와 이웃에 봉사하는 자녀로 키워야 한다는 당위적 명제에는 공감하지만 성경에 입각한 하나님의 자녀로 키우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인 것이다.
문제는 많은 기독교가정이 일반적인 흐름속에 파묻혀 이러한 당위적인 명제를 소홀히 취급한다는 사실이다. 즉, 기독교적 가치관을 기본으로 한 자녀교육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서는 우리에게 자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울 것을 명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 사람으로서 이웃에 봉사하는 사랑으로 양육할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인 질문을 하면서 논의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기독교인들은 과연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키우고 있는가'
요즘의 청소년들은 천박한 사회문화환경에 너무 쉽게 노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입시위주의 교육체계에 종속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이들은 출세지향주의적 가치관이 당연한 것처럼 자녀들을 교육하고 주입시키고 있다.
개방된 사회환경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바른 신앙으로 무장된 기독교인으로 양육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기독교인들은 이를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고, 사회환경이 심각해질수록 더욱 견고한 신앙으로 자녀들을 양육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어서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즉, 입시위주의 학교교육에 추종하는 가정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문제제기가 바로 그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지금의 학교교육은 인성 및 창의력에 중점을 둔 교육이라기 보다는 입시위주의 교육이고, 출세와 경쟁을 전제로 한 교육이다. 따라서 인성을 기본으로 한 교육이 부족한 것이 우리교육계의 현실이고, 더더욱 신앙교육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는 기독교계 학교에서 신앙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말로는 위로가 부족하다. 물론 기독교계 학교에서는 신앙을 증진시키고 기독교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학교교과목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채플을 실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입시위주의 현재의 학교질서상 이는 부족할 수밖에 없고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각급 학교 관계자들은 토로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아기 신앙교육이 중요
따라서 현실상 기독교교육과 인성교육은 교회와 가정에서 담당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사실 이러한 교육의 차지는 교회가 상당부분 감당해 왔고 앞으로도 이는 변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회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회학교 프로그램은 현실상 많은 제약이 따른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학교의 프로그램은 현실적으로 제한된 시간이고, 교육프로그램도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더욱이나 모든 기독교자녀들이 교회학교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문제도 감안한다면 이는 개선돼야 할 문제임과 동시에 제한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기독교인 가정의 자녀교육의 중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기독교가정의 자녀교육은 그들의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제시해주고 인성을 키워주며 미래를 결정짓게 한다는 점에서 책임성을 느껴야 한다. 단지 "우리의 자녀가 다른 집의 아이들보다 잘나고 더 출세하고 더 잘 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자녀를 양육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라와 이웃에 봉사하는 참된 인간으로 양육하겠다"는 가치관으로 자녀교육에 임해야 한다는 지적이 강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적 가치관과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자녀를 교육하기 보다는 입시위주의 학교교육에 맞춘 자녀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년기때에는 이러한 원칙에 충실한 듯이 보이지만 정규학교에 편입된 이후에는 그 분위기에 휩쓸려가는 것이 기독교 가정의 현실이 아닌가 하는 문제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처음 어렸을 때 기독교인으로서 자녀교육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성경의 원칙대로 자녀교육을 하려는 각오도 했고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장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면서 이러한 처음의 각오가 어느새 없어졌다는 사실을 뒤늦게나 깨달았어요.
정규학교 과정에 편입되면서 부모로서 초라함마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고, 다른 아이들에게 뒤질세라 과외와 입시를 고민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지요."또 다른 부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고등학교 2학년부터라고 생각됩니다. 대학입시가 내년이라는 강박관념에 주일에 교회를 잘 다니던 아이가 교회생활을 소홀히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교회생활에 충실하라는 권유도 많이 했지만 어느새 그 현실을 인정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됐어요. 학교생활에 지치고 과외로 바쁜 자식에게 주일날 강권해서 교회로 이끌지 못하고, 그 현실을 인정하게 되더군요. 입시준비라는 핑계로 교회생활을 불성실하게 되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지요."
두 부모의 자기고백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두 사람의 증언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즉, 기독교인으로서 자녀교육의 원칙이 대부분 없다는 사실을 반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기독교적 가정교육을 소홀히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자녀들이 학교생활을 핑계로 교회생활을 소홀히 하는 것을 부모로서 인정해 주고 있다는 현실이다. 소위'공부해야 한다'는 말로 교회를 빠지는 것을 인정해 주고 이를 당연시하는 기독교인이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에 나가야 할 시간에 과외를 보내기도 하고, 집에서 공부하는 것을 묵인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주일에 학교에서 소집하는 행사에 대해 당연시하는 경우도 더러 있음을 보게된다.
부모가 모범된 삶을 살아야
학교교육은 물론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기독교인으로서 원칙에 벗어나는 행위와 타협하는 것은 결코 바른 신앙인의 태도라고 할 수 없다. 입시와 학교교육이라는 틀로 교회 생활마저 내팽개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정당한 태도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자녀들에게 교회생활과 가정생활, 그리고 학교생활의 조화로운 삶을 가르쳐야 할 뿐아니라, 이들이 삶의 원칙을 몸에 배도록 교육해야 한다.'신앙교육'과'일반교육'의 조화로운 체득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말해 자녀들을 신앙과 기독교가치관으로 교육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반교육을 습득토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실은 그러나 이와는 반대라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자녀양육에 있어 학교교육을 중점에 두고 있고 신양생활과 교회생활, 그리고 가정에서의 교육을 부차적으로 두는 행태가 자주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말로는 신앙과 기독교가치관으로 자녀를 양육한다고 하고 있지만 현실은 학교교육, 입시교육에 우선을 두고 있는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결국 기독교가정의 자녀들이 장성하면서 점차 교회에 발을 떼어 놓는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청소년들이 교회에서 줄고 있다는 지적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기독교인이 전체인구의 25퍼센트라면 교회학교의 학생수도 지금보다 엄청 많아야 하는 것은 당연함에도 현실은 그렇지 않고 점차 수적 감소추세에 있는 것은 이러한 기독교적 교육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기독교교육은 교회와 학교에서실시해야 한다. 모든 교육에 앞서 중요하게 이 문제를 실시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현실상 학교에서의 기독교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어렵다고 할 때 교회에서의 교육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이며, 어렸을때부터의 기독교 교육이다" 모 기독교교육자의 말이다.
삶에서 체현되는 기독교신앙을 어렸을때부터 장성될때까지 일관되게 실시하는 것은 그리쉬운 문제는 아니다. 이는 물론 부모가 모범된 삶을 살 때 가능한 말이기도 하다. 물질과 명예의 노예가 되는 삶을 살면서 자녀들에게 '이리 해라, 저리해라'라는 말은 설득력이 없듯이 기독교인의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삶의 모범을 보여주고, 삶에서 체현된 신앙인의 모습을 보일 때 자녀들은 당연히 그 부모를 따라감은 당연한 순리다.
따라서 기독교가정의 자녀교육은 보다 쉬운 답의 방향이 나올 수 있다.
부모들이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며 가정을 꾸밀 때 기독교교육의 환경이 조성되고 자녀들을 옳게 키울 수 있다는 말이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면, 결국 그 자녀들도 부모의 말이 아무리 옳고 당위적이라 할지라도 무시하고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유아기때부터 신앙심을 길러주고, 신앙생활로 양육하는 것은 커서도 이러한 삶을 살 수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고, 장차 독립해서도 기독교인의 향기를 드러내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부모들이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망각하고 기독교적 교육을 무시하면 커서 이를 바로잡기는 더 어렵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부모들이 바른 신앙인의 자세로 삶을 살고, 모범된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면 그 자녀들도 그러한 삶을 배우고 삶의 지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어릴때부터 자녀를 신앙적으로 키우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홍순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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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가정의 허와 실2 (1517 호. 1999.5.16)
가정과 사회그리고 교회의 중심에서 외곽으로 내몰리고 있는 어르신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하여 UN은 1999년도를 「노인의 해」로 선포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은 집이나 지키는 「3류 인간」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며, 어르신들이 가정중심에서 활동할 수 있는 분위기를 찾아 주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이 말씀은 사람이 지켜야 할 5번째 계명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기독교인의 가정에서 어르신들은 자녀들로 부터 대접을 받으면서 윤택한 삶을 살고 있는가(?) 성서에 기록된 말씀을 지키며, 순종하는 사람을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따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 기독교인의 가정은 십계명의 5번째 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지키고 있는가. 이 계명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오늘 노인들은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기독교인의 가정도 예외는 아니다.
교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해온 한 어르신은 『교회와 가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해 왔으나, 70고개를 넘은 지금, 모든일을 젊은 사람들에게 내어주고, 해야 할 일을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고 오늘 기독교인의 가정과 교회에서 어르신의 위치를 설명했다.
이 어르신의 말과 같이 어르신들은 교회와 가정에서 설자리를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것은 문명의 발달과 가족형태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문명의 발달과 의학의 발달은 사람의 생명을 연장해 주었고, 어르신의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노인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21세기가 시작되는 2천년도에는 70세이상 고령인구가 전체인구의 21%이상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유교사상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어르신을 공경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가족제도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화되면서 어르신들은 개 등과 함께 「3등가족」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자녀들에게 내 몰리고 있는 현실이다.
이것은 부모를 공경해야 할 기독교인의 가정도 예외는 아니다. 교회내에서도 어른신들의 위치는 흔들리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어르신들에 의해서 운영되어 왔다. 사회의 어르신들에 대한 위치가 변화되면서 교회내에서도 어르신들의 위치가 중심부에서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청솔종합사회복지관 관장 김옥규집사도 『문명의 발달은 어르신들이 가정과 사회 그리고 종교단체의 중심에서 이탈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로인해 어르신들은 집이나 지키는 「3류인간」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면서 『종교단체들은 어르신들이 가정과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3류인간」으로 전락
『여보게 젊은이! 나의 하루 일과는 아침일찍 일어나 아들과 며느리가 출근한 이후 집에서 하루종일 보내지. 충청도 청양에서 서울에 올라온 이후 갑자기 몸이 쇠약해지고, 삶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렸네 그려. 여보게 젊은이 노인들과 함께 어울려 지낼 수 있는 곳은 없는가(?)』
이말은 지금부터 7년전 충청도 청양에서 아들 따라 서울에 올라온 김모 어르신의 하루 일과를 소개한 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적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김어르신의 말과 같이 오늘을 살아가는 어르신들은 어르신으로서의 대접을 받기보다는 집을 지키는 「3류인간」으로 전락, 삶에 대한 의미를 상실한채 살아가고 있다.
3대째 기독교 집안인 김모집사의 가정은 할아버지와 아들, 며느리, 2명의 손자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집안의 하루일과는 아침 6시에 기상하여 며느리와 아들은 직장에 나가고, 2명의 손자는 학교에 간다. 모든 식구가 출근한 이후 할아버지는 혼자 아침식탁에 앉아 외로운 식사시간을 갖고, 가족들이 돌아올때 까지 하루를 무료하게 보낸다.
무엇보다도 김집사의 자녀들은 할아버지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꺼려하고 있으며, 아들과 며느리도 바쁘다는 핑계로 부친과 함께하는 시간을 전혀 갖지 못하고있다. 김집사 가정의 할아버지에 대한 소외는 성서의 중심사상인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 가정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으로 주목된다.
김집사의 가정과 같이 오늘 기독교의 가정에서 할아버지·할머니들은 점점 소외되어 가고 있다. 다시말해서 오늘 대부분의 기독교인의 가정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5번째 계명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결론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가정의 달을 맞아 입이 달토록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가정에서 설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한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개발, 어르신들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교회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인 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교회들의 어르신들에 대한 프로그램 개발은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교회로 부터 소외되는 할아버지.할머니들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이들에게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심어준다는데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노인의 해」로 선포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가족구조의 변화와 노인들의 가치관변화, 생활양식의 변화는 심각한 노인문제를 불러오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들은 노인들을 점점 소외시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오늘을 살아가는 노인들은 집안식구들에 대한 불만과 갈등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얼마전 한 기독교 사회복지관에서 마련한 「난상토론장」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이 자리에서 어르신들은 혼자만 남겨두고 자식은 손주들과 함께 피서를 떠나고, 거기에다 가스도 끊고 또 개, 고양이와 함께 「3등가족」으로 취급받고 있다고 가정에서 소외되어 가고 있는 자신의 위치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이같은 말들은 어르신들의 자학적인 푸념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오늘 어르신들이 처한 현장이기도 하다.
노인들의 고발과 같이 옛날 같으면 가족과 사회로 부터 어른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할 어르신들은 가족과 사회생활에서 이탈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이탈되어 가는 어르신들에게 삶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하여 노인복지기관과 교회 등의 단체에서는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지만, 어르신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기에는 역부족한 상태다.
어르신들은 한평생 일에 몰두했다가 아무런 예비적, 과도기적 대처과정 없이 은퇴했거나, 아니면 개인적인 이유로 해서 그동안 익숙했던 역할을 벗어놓게 됨으로써 「이제 내자리를 잃었다」라는 상실함과 허탈감속에서 고독감과 소외감을 물리칠 수 없게 되는 것이 일반적으로 나타는 현상이다.
또한 어르신들은 젊은이들과 적지않은 갈등을 겪고 있다.무엇보다도 어르신들은 할 일이 많아진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모시는 과정에서 역할을 놓고 갈등을 겪고 있으며, 대다수의 며느리들은 바같일을 보고, 어르신들은 집이나 지키는 「훈련된 사람」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이와함께 어르신들을 효성으로 봉양하는 것을 자식된 큰 도리로 알던 가치관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퇴색된지 이미 오래되었으며, 이로인해 어르신들은 가족과 사회로 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이것은 오늘 우리사회에서 심각한 사회문제, 노인문제, 가정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렇게 어르신들의 문제가 사회문제, 가정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UN이 99년도를 「노인(어르신)의 해」로 정한 것은 늦은감이 있지만 매우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드려 지고 있다. UN의 이같은 결정은 21세기를 맞는 2천도에는 70세이상 고령인구가 전체인구의 20%이상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가운데서 나왔다는데 주목받고 있다.
오늘을 살고 있는 노인들은 경제적 빈곤, 건강악화, 역할상실, 소외된 고독감 등의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특히 홀로된 노인들은 소외된 고독감에 빠져 무료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살아가는 노인들은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노인들의 문제는 노인 자신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향후 우리들에게 닥칠 문제라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노인문제는 쉽게 생각 할 문제가 아니라, 국민전체가 함께 생각하며 풀어 나가야 할 문제이다.
최근 각단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노인들의 경제활동 참여문제 즉 노인들의 취업, 노후연금제도, 노인복지 서비스 등 노인복지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부 한국교회가 펼치고 있는 노인복지 프로그램으로는 노인대학을 비롯하여, 건강상담소 운영, 소일거리 제공, 식사제공, 제가노인및 독거노인과의 자매결연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러한 프로그램은 정부의 지원없이 순수한 교회재정으로 운영된다는데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노인층의 빈곤해결과 복지서비스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프로그램을 개발, 제도적으로 노인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정부는 노인과 아동을 함께 수용할 수 있는 복합적인 시설을 마련, 어린이들은 효를 배우고, 노인들은 가정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서 노인들은 가정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또한 정부는 노인들의 무료함과 고독감을 덜어주기 위해 종교단체와 복지기관 그리고 각단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노인복지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노인복지 서비스 단체는 정부와 유기적인 관계속에서 발전적인 노인복지 프로그램을 개발, 실천하는 자세를 보여 주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다.
/유달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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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가정의 허와 실3 (1518 호. 1999.5.23)
최근 몇 년사이 가정사역의 붐이 일면서 교회에서도 부부세미나등 다양한 부부프로그램들이 시도되고 있다. 이는 건강한 부부관계가 가정의 행복과 더불어 교회생활에 있어서도 필요불가결한 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교회는 여성이 70%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상대적으로 남자교인의 수가 적은 형편이다.
이는 반대로 불신남편을 둔 아내들이 많다는 얘기다. 불신남편을 둔 가정의 불화는 보지 않아도 짐작되는 부분이 있듯이, 최근의 경제위기와 맞물려 부부갈등도 다양해지고 심화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잘못된 신앙, 싸움의 씨앗
어느날 저녁, 모교회 마당엔 술에 취한 30대후반의 남자가 교회에 불을 지르겠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언뜻 보면 남자가 술먹고 아내를 못살게 구는 장면같다. 몇몇 교회청년들이 말리며 그의 하는 말을 자세히 들어보니 남자만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사연이다. 이유인즉, 아내가 가정살림은 돌보지 않고, 밤낮 가리지 않으며 교회에만 붙어산다는 것이다. 그로인해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 소동의 원인이 된 것이다.
남편말에 의하면 아내가 새벽예배, 철야예배, 구역예배, 공과공부, 심방, 여전도회 봉사활동이다 해서 교회에 행사만 있다하면 집을 나가서 밤늦게까지 안들어 온다는 것이다. 아애 가정살림과 아이들은 나몰라라 한다는 것. 그 아내는 아내대로 불만이다. 남편이 생활력도 없는데다 술을 자주먹어 집에 있으면 싸움만 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라도 나와 기도하고 봉사하며 집안의 시름을 잊는다는 것이다. 교회에 못나가게 하는 남편이 사탄같고, 하나님께서 인내를 시험하시는 것만 같다. 처음부터 불신남편하고 결혼하지 말았어야하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는 것.
남편이 하루빨리 술을 끊고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한다. 집안 살림이나 아이들 교육보다 주님의 말씀과 봉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마르다처럼 요리다 집안청소에 바빠 예수의 말씀 듣기를 게을리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힘들수록 마리아처럼 주의 말씀듣기를 사모해야 모든 문제가 풀린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부의 예는 실재 일어난 이야기다. 또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다. 남편이 자상한 남편이 아닌 것은 차지하고서라도 이 남편이 갖는 불만은 이해가 간다는 것이 신앙생활하는 남편들도 공감하는바다. 반면, 아내의 신앙은 잘못 빗나간 열심으로 인해 가정을 파탄의 지경으로까지 몰고 가고 있다고 비난받는다.
가정현실의 어려움을 신앙생활 활동으로 잊어보려는 아내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가정이라는 현실의 문제를 도외시한 채 교회활동에만 매달리는 모습은 도피라고 밖에 볼 수 없으며,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바른 신앙생활은 현실 속의 어려움이 많더라도 그 속에서 문제를 풀면서 기도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하지, 현실문제를 도피하면서 교회에 와서 봉사하고 기도만 한다고 풀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현실생활에서 열매없는 신앙생활은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불신남편인 경우는 신앙활동에 대한 이해도가 더 떨어지게 마련인데, 오히려 전도에도 역효과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가정에 우선할 때와 교회와 신앙생활이 우선할 때를 잘 가려서 열심을 내야지, 어느 한쪽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일선 가정사역 담당 목회자들의 지적이다.
특히 불신남편을 둔 아내가 많은 한국교회 실정이고 보면, 이 경우와 같은 사례에 적절한 지도가 목회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믿는 남편의 경우도 이같이 가정을 등안시하며 교회활동만 하는 경우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예가 많다. 하물며 믿지 않는 남편을 둔 아내의 빗나간 신앙적 열심은 오히려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며 가정을 파괴하는 요인이 된다.
불신남편전도의 장벽
위의 예는 극단적인 예일 수 있겠으나 잘못된 신앙형태가 몰고온 부부갈등의 모습은 우리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다. 그러면 불신남편을 둔 가정에서 아내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 신앙생활하는 아내들의 지적이다. 처음부터 믿는 자와 결혼했어야 한다는 후회는 이미 늦었고, 결혼 후 전도하면 된다는 생각도 어느새 자신감을 잃어가 오히려 남편에게 동화되기가 쉽다.
어쩌다가 부부 싸움 끝에 화를 내면, 『아니, 교회 다니는 사람도 화를 내냐? 교회 헛 다녔구만!』하며 면박을 줘서 할말을 잃게 만든다는 것은 불신남편을 둔 아내들이 가장 많이 듣는 얘기라고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교회를 욕하는 것에 화가 나고 꼭 그런 말로 할말없게 만들어버리는 남편이 더욱 미워져서 그때부터는 「교회고 뭐고 안중에 없이」 앙칼진 목소리로 대항하게 된다.
한국교회 70%이상이 여성교인이고 보면, 불신 남편을 둔 아내 즉 「외짝믿음」이 많다는 얘기는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가정사역전문가들은 외짝믿음이 교회성장을 저해할 뿐 아니라 부부간의 갈등이나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가정사역전문가들은 더 이상 외짝믿음을 갖지 말고 불신남편을 교회로 인도해야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아내들은 친구나 이웃을 전도하기는 쉬워도 남편을 전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남편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정사역전문가들은 「주님께서 나를 통해 온 가정을 구원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니 참 감사한 일」로 여겨야 남편전도가 가능해진다는 것. 즉 자신을 가정구원을 위해 파송된 선교사라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아얘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에서는 최근에 〈불신남편 30일 구출작전 행동요령〉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행동요령을 보면 남편전도를 위해 작정기도를 하고, 남편의 기살리기와 남편을 위한 일이라면 칭찬, 보약, 요리, 미소, 꾸미기등 무엇이든지 해야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언뜻 보면 아내에게만 너무 많은 희생을 요하는 덕목들이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가정이 해체되고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올바른 가정을 세우기 위한 바른 신앙을 갖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우선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하나님께서는 「돕는 배필」로서 부부의 역할을 강조하셨다. 경제위기로 가정이 해체되고 있는 이때, 「돕는배필」로서 부부역할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경제위기, 가정불화심화
최근의 경제위기는 곧 「가정의 위기」라는 말로 통하고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실재 가정경제를 이끌어 가는 주부에게는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 그중 경제문제 하나가 부부간의 불화를 일으키는 요인되고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어았다. 특히 요즘과 같이 실직이나 정리해고등 안전망 없는 시대이고 보면, 생활고로 인한 부부의 불화는 믿는 가정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부갈등이 칼로 물베기식으로 끝나지 않고 언어폭력를 포함한 육체폭력으로까지 치닫고 있다는데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예는 일반가정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싶상이나, 실재로 최근 각 여성상담소마다 기독교가정의 가정폭력문제가 심심치 않게 들어온다고 한다.
교회여성들은 특히 남편에 의한 가정폭력에 시달려도 다른 문제와 마찬가지로 인내로 참고 사는 것은 매일반이나, 여기에는 다른 문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치심과 죽고싶을 정도로 비참한 심경을 맛본다는 것에 차이가 있다.
특히 교회여성들의 경우는 남편의 폭력을 자신이 져야할 십자가나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해 폭력에 대한 반항은 반성서적이라고 생각하며 인내로서 고통을 참고있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그중 목회자부부나 교회중직자 가정의 가정폭력도 드러나지만 않았지 심각한 지경이라고 한다.
믿는 가정이나 일반가정이 다를 바 없는 이같은 현상은 오랜 세월동안 가부장적 구조에서 비롯된 여성비하의식과 폭력을 묵인, 방조하는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높다. 그로 인해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또한 이러한 현상은 여성의 지위와 경제능력의 향상도 한 요인이 되고 있음은 무시 못할 바이다. 최근 통계청이 사회의식을 조사한 결과, 미혼여성 10명 가운데 4명이 결혼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그만큼 결혼이나 부부관계에서도 한쪽만의 희생이나 인내가 일방통행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부부대화기술개발중요
그러면 이혼을 줄이고 부부갈등을 해소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가정사역전문가들은 부부문제 해결에 있어서 역시 중요한 것은 「대화기술」의 개발이라고 한다. 부부싸움에도 원칙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부부싸움은 비폭력적이어야 하며, 침묵도 대단한 폭력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남과 남의 가정과 비교하는 것은 절대 금기라는 것이다. 특히 부부싸움시 상처와 한이 되는 가슴을 콕콕 찌르는 말은 삼가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부부간의 대화기술을 원활히 할 수 있을까? 흔히 대화유형에 있어서 남자는 요약형, 여자는 확대형이라고 한다. 확대형은 상대가 충분히 정보를 주지않기 때문에 낙담하고, 요약형은 간결한 대답을 원하기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므로 서로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TV드라마 얘기는 잘 알면서도 자신의 부부관계 상황은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오늘의 부부들이다. 이젠 부부가 눈을 마주보고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때다. 그것이 부부갈등을 줄이는 비결이다.
더불어 교회에서도 부부세미나나 부부교육 프로그램등을 자주 열어 부부갈등을 줄이고, 행복한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한다. 다행히 가정전문사역기관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고, 개교회에서도 많이 부부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어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아직 초기 단계라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부부간의 갈등을 줄이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도록 교회에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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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가정의 허와실1 (1516호. 1999.5.9)
기독교인들은 가정문제를 잘 풀어가고 있는가? 기독교가정으로서의 자녀문제, 부모(노인)문제, 부부문제를 바르게 대처하고 있는가. 성경과 기독교적 문화적 관점에서 이러한 문제를 접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에 바른 기독교가정문화를 위하여 기독교가정의 자녀, 부모, 부부문제를 3회에 걸쳐 점검해 보고자 한다.
일반교육에 함몰
기독교가정의 자녀교육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사회와 이웃에 봉사하는 자녀로 키워야 한다는 당위적 명제에는 공감하지만 성경에 입각한 하나님의 자녀로 키우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인 것이다.
문제는 많은 기독교가정이 일반적인 흐름속에 파묻혀 이러한 당위적인 명제를 소홀히 취급한다는 사실이다. 즉, 기독교적 가치관을 기본으로 한 자녀교육을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서는 우리에게 자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울 것을 명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 사람으로서 이웃에 봉사하는 사랑으로 양육할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인 질문을 하면서 논의를 시작해 보고자 한다.
'기독교인들은 과연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키우고 있는가'
요즘의 청소년들은 천박한 사회문화환경에 너무 쉽게 노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입시위주의 교육체계에 종속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이들은 출세지향주의적 가치관이 당연한 것처럼 자녀들을 교육하고 주입시키고 있다.
개방된 사회환경에서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바른 신앙으로 무장된 기독교인으로 양육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기독교인들은 이를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고, 사회환경이 심각해질수록 더욱 견고한 신앙으로 자녀들을 양육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어서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즉, 입시위주의 학교교육에 추종하는 가정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문제제기가 바로 그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지금의 학교교육은 인성 및 창의력에 중점을 둔 교육이라기 보다는 입시위주의 교육이고, 출세와 경쟁을 전제로 한 교육이다. 따라서 인성을 기본으로 한 교육이 부족한 것이 우리교육계의 현실이고, 더더욱 신앙교육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는 기독교계 학교에서 신앙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말로는 위로가 부족하다. 물론 기독교계 학교에서는 신앙을 증진시키고 기독교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학교교과목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채플을 실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입시위주의 현재의 학교질서상 이는 부족할 수밖에 없고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각급 학교 관계자들은 토로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아기 신앙교육이 중요
따라서 현실상 기독교교육과 인성교육은 교회와 가정에서 담당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사실 이러한 교육의 차지는 교회가 상당부분 감당해 왔고 앞으로도 이는 변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회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회학교 프로그램은 현실상 많은 제약이 따른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교회학교의 프로그램은 현실적으로 제한된 시간이고, 교육프로그램도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더욱이나 모든 기독교자녀들이 교회학교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문제도 감안한다면 이는 개선돼야 할 문제임과 동시에 제한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기독교인 가정의 자녀교육의 중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기독교가정의 자녀교육은 그들의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제시해주고 인성을 키워주며 미래를 결정짓게 한다는 점에서 책임성을 느껴야 한다. 단지 "우리의 자녀가 다른 집의 아이들보다 잘나고 더 출세하고 더 잘 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자녀를 양육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나라와 이웃에 봉사하는 참된 인간으로 양육하겠다"는 가치관으로 자녀교육에 임해야 한다는 지적이 강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적 가치관과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자녀를 교육하기 보다는 입시위주의 학교교육에 맞춘 자녀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유년기때에는 이러한 원칙에 충실한 듯이 보이지만 정규학교에 편입된 이후에는 그 분위기에 휩쓸려가는 것이 기독교 가정의 현실이 아닌가 하는 문제를 점검해야 할 것이다.
"처음 어렸을 때 기독교인으로서 자녀교육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성경의 원칙대로 자녀교육을 하려는 각오도 했고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장토록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면서 이러한 처음의 각오가 어느새 없어졌다는 사실을 뒤늦게나 깨달았어요.
정규학교 과정에 편입되면서 부모로서 초라함마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고, 다른 아이들에게 뒤질세라 과외와 입시를 고민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지요."또 다른 부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고등학교 2학년부터라고 생각됩니다. 대학입시가 내년이라는 강박관념에 주일에 교회를 잘 다니던 아이가 교회생활을 소홀히 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교회생활에 충실하라는 권유도 많이 했지만 어느새 그 현실을 인정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됐어요. 학교생활에 지치고 과외로 바쁜 자식에게 주일날 강권해서 교회로 이끌지 못하고, 그 현실을 인정하게 되더군요. 입시준비라는 핑계로 교회생활을 불성실하게 되는 것을 인정하게 된 것이지요."
두 부모의 자기고백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두 사람의 증언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즉, 기독교인으로서 자녀교육의 원칙이 대부분 없다는 사실을 반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기독교적 가정교육을 소홀히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자녀들이 학교생활을 핑계로 교회생활을 소홀히 하는 것을 부모로서 인정해 주고 있다는 현실이다. 소위'공부해야 한다'는 말로 교회를 빠지는 것을 인정해 주고 이를 당연시하는 기독교인이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에 나가야 할 시간에 과외를 보내기도 하고, 집에서 공부하는 것을 묵인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주일에 학교에서 소집하는 행사에 대해 당연시하는 경우도 더러 있음을 보게된다.
부모가 모범된 삶을 살아야
학교교육은 물론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기독교인으로서 원칙에 벗어나는 행위와 타협하는 것은 결코 바른 신앙인의 태도라고 할 수 없다. 입시와 학교교육이라는 틀로 교회 생활마저 내팽개치는 것을 용인하는 것은 기독교인의 정당한 태도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자녀들에게 교회생활과 가정생활, 그리고 학교생활의 조화로운 삶을 가르쳐야 할 뿐아니라, 이들이 삶의 원칙을 몸에 배도록 교육해야 한다.'신앙교육'과'일반교육'의 조화로운 체득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말해 자녀들을 신앙과 기독교가치관으로 교육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반교육을 습득토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실은 그러나 이와는 반대라는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자녀양육에 있어 학교교육을 중점에 두고 있고 신양생활과 교회생활, 그리고 가정에서의 교육을 부차적으로 두는 행태가 자주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니,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말로는 신앙과 기독교가치관으로 자녀를 양육한다고 하고 있지만 현실은 학교교육, 입시교육에 우선을 두고 있는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결국 기독교가정의 자녀들이 장성하면서 점차 교회에 발을 떼어 놓는 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는 청소년들이 교회에서 줄고 있다는 지적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기독교인이 전체인구의 25퍼센트라면 교회학교의 학생수도 지금보다 엄청 많아야 하는 것은 당연함에도 현실은 그렇지 않고 점차 수적 감소추세에 있는 것은 이러한 기독교적 교육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기독교교육은 교회와 학교에서실시해야 한다. 모든 교육에 앞서 중요하게 이 문제를 실시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현실상 학교에서의 기독교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어렵다고 할 때 교회에서의 교육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이며, 어렸을때부터의 기독교 교육이다" 모 기독교교육자의 말이다.
삶에서 체현되는 기독교신앙을 어렸을때부터 장성될때까지 일관되게 실시하는 것은 그리쉬운 문제는 아니다. 이는 물론 부모가 모범된 삶을 살 때 가능한 말이기도 하다. 물질과 명예의 노예가 되는 삶을 살면서 자녀들에게 '이리 해라, 저리해라'라는 말은 설득력이 없듯이 기독교인의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삶의 모범을 보여주고, 삶에서 체현된 신앙인의 모습을 보일 때 자녀들은 당연히 그 부모를 따라감은 당연한 순리다.
따라서 기독교가정의 자녀교육은 보다 쉬운 답의 방향이 나올 수 있다.
부모들이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며 가정을 꾸밀 때 기독교교육의 환경이 조성되고 자녀들을 옳게 키울 수 있다는 말이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면, 결국 그 자녀들도 부모의 말이 아무리 옳고 당위적이라 할지라도 무시하고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유아기때부터 신앙심을 길러주고, 신앙생활로 양육하는 것은 커서도 이러한 삶을 살 수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고, 장차 독립해서도 기독교인의 향기를 드러내는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부모들이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망각하고 기독교적 교육을 무시하면 커서 이를 바로잡기는 더 어렵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부모들이 바른 신앙인의 자세로 삶을 살고, 모범된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면 그 자녀들도 그러한 삶을 배우고 삶의 지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어릴때부터 자녀를 신앙적으로 키우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홍순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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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가정의 허와 실2 (1517 호. 1999.5.16)
가정과 사회그리고 교회의 중심에서 외곽으로 내몰리고 있는 어르신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 위하여 UN은 1999년도를 「노인의 해」로 선포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은 집이나 지키는 「3류 인간」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며, 어르신들이 가정중심에서 활동할 수 있는 분위기를 찾아 주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이 말씀은 사람이 지켜야 할 5번째 계명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기독교인의 가정에서 어르신들은 자녀들로 부터 대접을 받으면서 윤택한 삶을 살고 있는가(?) 성서에 기록된 말씀을 지키며, 순종하는 사람을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따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 기독교인의 가정은 십계명의 5번째 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지키고 있는가. 이 계명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오늘 노인들은 가정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기독교인의 가정도 예외는 아니다.
교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해온 한 어르신은 『교회와 가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감당해 왔으나, 70고개를 넘은 지금, 모든일을 젊은 사람들에게 내어주고, 해야 할 일을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고 오늘 기독교인의 가정과 교회에서 어르신의 위치를 설명했다.
이 어르신의 말과 같이 어르신들은 교회와 가정에서 설자리를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것은 문명의 발달과 가족형태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문명의 발달과 의학의 발달은 사람의 생명을 연장해 주었고, 어르신의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노인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21세기가 시작되는 2천년도에는 70세이상 고령인구가 전체인구의 21%이상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유교사상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어르신을 공경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가족제도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화되면서 어르신들은 개 등과 함께 「3등가족」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자녀들에게 내 몰리고 있는 현실이다.
이것은 부모를 공경해야 할 기독교인의 가정도 예외는 아니다. 교회내에서도 어른신들의 위치는 흔들리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어르신들에 의해서 운영되어 왔다. 사회의 어르신들에 대한 위치가 변화되면서 교회내에서도 어르신들의 위치가 중심부에서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는 실정이다.
청솔종합사회복지관 관장 김옥규집사도 『문명의 발달은 어르신들이 가정과 사회 그리고 종교단체의 중심에서 이탈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로인해 어르신들은 집이나 지키는 「3류인간」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면서 『종교단체들은 어르신들이 가정과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3류인간」으로 전락
『여보게 젊은이! 나의 하루 일과는 아침일찍 일어나 아들과 며느리가 출근한 이후 집에서 하루종일 보내지. 충청도 청양에서 서울에 올라온 이후 갑자기 몸이 쇠약해지고, 삶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렸네 그려. 여보게 젊은이 노인들과 함께 어울려 지낼 수 있는 곳은 없는가(?)』
이말은 지금부터 7년전 충청도 청양에서 아들 따라 서울에 올라온 김모 어르신의 하루 일과를 소개한 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적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김어르신의 말과 같이 오늘을 살아가는 어르신들은 어르신으로서의 대접을 받기보다는 집을 지키는 「3류인간」으로 전락, 삶에 대한 의미를 상실한채 살아가고 있다.
3대째 기독교 집안인 김모집사의 가정은 할아버지와 아들, 며느리, 2명의 손자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 집안의 하루일과는 아침 6시에 기상하여 며느리와 아들은 직장에 나가고, 2명의 손자는 학교에 간다. 모든 식구가 출근한 이후 할아버지는 혼자 아침식탁에 앉아 외로운 식사시간을 갖고, 가족들이 돌아올때 까지 하루를 무료하게 보낸다.
무엇보다도 김집사의 자녀들은 할아버지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꺼려하고 있으며, 아들과 며느리도 바쁘다는 핑계로 부친과 함께하는 시간을 전혀 갖지 못하고있다. 김집사 가정의 할아버지에 대한 소외는 성서의 중심사상인 「사랑」을 실천하는 기독교 가정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으로 주목된다.
김집사의 가정과 같이 오늘 기독교의 가정에서 할아버지·할머니들은 점점 소외되어 가고 있다. 다시말해서 오늘 대부분의 기독교인의 가정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5번째 계명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결론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가정의 달을 맞아 입이 달토록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가정에서 설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한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개발, 어르신들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교회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인 일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교회들의 어르신들에 대한 프로그램 개발은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교회로 부터 소외되는 할아버지.할머니들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이들에게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심어준다는데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노인의 해」로 선포
산업화와 도시화의 과정에서 가족구조의 변화와 노인들의 가치관변화, 생활양식의 변화는 심각한 노인문제를 불러오고 있으며, 이러한 과정들은 노인들을 점점 소외시키고 있다. 무엇보다도 오늘을 살아가는 노인들은 집안식구들에 대한 불만과 갈등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얼마전 한 기독교 사회복지관에서 마련한 「난상토론장」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이 자리에서 어르신들은 혼자만 남겨두고 자식은 손주들과 함께 피서를 떠나고, 거기에다 가스도 끊고 또 개, 고양이와 함께 「3등가족」으로 취급받고 있다고 가정에서 소외되어 가고 있는 자신의 위치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이같은 말들은 어르신들의 자학적인 푸념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오늘 어르신들이 처한 현장이기도 하다.
노인들의 고발과 같이 옛날 같으면 가족과 사회로 부터 어른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가야 할 어르신들은 가족과 사회생활에서 이탈되어 가고 있다. 이렇게 이탈되어 가는 어르신들에게 삶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하여 노인복지기관과 교회 등의 단체에서는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지만, 어르신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기에는 역부족한 상태다.
어르신들은 한평생 일에 몰두했다가 아무런 예비적, 과도기적 대처과정 없이 은퇴했거나, 아니면 개인적인 이유로 해서 그동안 익숙했던 역할을 벗어놓게 됨으로써 「이제 내자리를 잃었다」라는 상실함과 허탈감속에서 고독감과 소외감을 물리칠 수 없게 되는 것이 일반적으로 나타는 현상이다.
또한 어르신들은 젊은이들과 적지않은 갈등을 겪고 있다.무엇보다도 어르신들은 할 일이 많아진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모시는 과정에서 역할을 놓고 갈등을 겪고 있으며, 대다수의 며느리들은 바같일을 보고, 어르신들은 집이나 지키는 「훈련된 사람」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이와함께 어르신들을 효성으로 봉양하는 것을 자식된 큰 도리로 알던 가치관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퇴색된지 이미 오래되었으며, 이로인해 어르신들은 가족과 사회로 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이것은 오늘 우리사회에서 심각한 사회문제, 노인문제, 가정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렇게 어르신들의 문제가 사회문제, 가정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가운데 UN이 99년도를 「노인(어르신)의 해」로 정한 것은 늦은감이 있지만 매우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드려 지고 있다. UN의 이같은 결정은 21세기를 맞는 2천도에는 70세이상 고령인구가 전체인구의 20%이상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가운데서 나왔다는데 주목받고 있다.
오늘을 살고 있는 노인들은 경제적 빈곤, 건강악화, 역할상실, 소외된 고독감 등의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특히 홀로된 노인들은 소외된 고독감에 빠져 무료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살아가는 노인들은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노인들의 문제는 노인 자신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향후 우리들에게 닥칠 문제라는 것을 염두해 두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노인문제는 쉽게 생각 할 문제가 아니라, 국민전체가 함께 생각하며 풀어 나가야 할 문제이다.
최근 각단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노인들의 경제활동 참여문제 즉 노인들의 취업, 노후연금제도, 노인복지 서비스 등 노인복지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부 한국교회가 펼치고 있는 노인복지 프로그램으로는 노인대학을 비롯하여, 건강상담소 운영, 소일거리 제공, 식사제공, 제가노인및 독거노인과의 자매결연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러한 프로그램은 정부의 지원없이 순수한 교회재정으로 운영된다는데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노인층의 빈곤해결과 복지서비스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프로그램을 개발, 제도적으로 노인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정부는 노인과 아동을 함께 수용할 수 있는 복합적인 시설을 마련, 어린이들은 효를 배우고, 노인들은 가정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서 노인들은 가정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자긍심과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또한 정부는 노인들의 무료함과 고독감을 덜어주기 위해 종교단체와 복지기관 그리고 각단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노인복지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노인복지 서비스 단체는 정부와 유기적인 관계속에서 발전적인 노인복지 프로그램을 개발, 실천하는 자세를 보여 주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다.
/유달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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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가정의 허와 실3 (1518 호. 1999.5.23)
최근 몇 년사이 가정사역의 붐이 일면서 교회에서도 부부세미나등 다양한 부부프로그램들이 시도되고 있다. 이는 건강한 부부관계가 가정의 행복과 더불어 교회생활에 있어서도 필요불가결한 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교회는 여성이 70%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상대적으로 남자교인의 수가 적은 형편이다.
이는 반대로 불신남편을 둔 아내들이 많다는 얘기다. 불신남편을 둔 가정의 불화는 보지 않아도 짐작되는 부분이 있듯이, 최근의 경제위기와 맞물려 부부갈등도 다양해지고 심화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잘못된 신앙, 싸움의 씨앗
어느날 저녁, 모교회 마당엔 술에 취한 30대후반의 남자가 교회에 불을 지르겠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다. 언뜻 보면 남자가 술먹고 아내를 못살게 구는 장면같다. 몇몇 교회청년들이 말리며 그의 하는 말을 자세히 들어보니 남자만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사연이다. 이유인즉, 아내가 가정살림은 돌보지 않고, 밤낮 가리지 않으며 교회에만 붙어산다는 것이다. 그로인해 가정불화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 소동의 원인이 된 것이다.
남편말에 의하면 아내가 새벽예배, 철야예배, 구역예배, 공과공부, 심방, 여전도회 봉사활동이다 해서 교회에 행사만 있다하면 집을 나가서 밤늦게까지 안들어 온다는 것이다. 아애 가정살림과 아이들은 나몰라라 한다는 것. 그 아내는 아내대로 불만이다. 남편이 생활력도 없는데다 술을 자주먹어 집에 있으면 싸움만 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라도 나와 기도하고 봉사하며 집안의 시름을 잊는다는 것이다. 교회에 못나가게 하는 남편이 사탄같고, 하나님께서 인내를 시험하시는 것만 같다. 처음부터 불신남편하고 결혼하지 말았어야하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는 것.
남편이 하루빨리 술을 끊고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한다. 집안 살림이나 아이들 교육보다 주님의 말씀과 봉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마르다처럼 요리다 집안청소에 바빠 예수의 말씀 듣기를 게을리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힘들수록 마리아처럼 주의 말씀듣기를 사모해야 모든 문제가 풀린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부의 예는 실재 일어난 이야기다. 또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다. 남편이 자상한 남편이 아닌 것은 차지하고서라도 이 남편이 갖는 불만은 이해가 간다는 것이 신앙생활하는 남편들도 공감하는바다. 반면, 아내의 신앙은 잘못 빗나간 열심으로 인해 가정을 파탄의 지경으로까지 몰고 가고 있다고 비난받는다.
가정현실의 어려움을 신앙생활 활동으로 잊어보려는 아내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가정이라는 현실의 문제를 도외시한 채 교회활동에만 매달리는 모습은 도피라고 밖에 볼 수 없으며, 올바른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다.
바른 신앙생활은 현실 속의 어려움이 많더라도 그 속에서 문제를 풀면서 기도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하지, 현실문제를 도피하면서 교회에 와서 봉사하고 기도만 한다고 풀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현실생활에서 열매없는 신앙생활은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불신남편인 경우는 신앙활동에 대한 이해도가 더 떨어지게 마련인데, 오히려 전도에도 역효과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가정에 우선할 때와 교회와 신앙생활이 우선할 때를 잘 가려서 열심을 내야지, 어느 한쪽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일선 가정사역 담당 목회자들의 지적이다.
특히 불신남편을 둔 아내가 많은 한국교회 실정이고 보면, 이 경우와 같은 사례에 적절한 지도가 목회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믿는 남편의 경우도 이같이 가정을 등안시하며 교회활동만 하는 경우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예가 많다. 하물며 믿지 않는 남편을 둔 아내의 빗나간 신앙적 열심은 오히려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며 가정을 파괴하는 요인이 된다.
불신남편전도의 장벽
위의 예는 극단적인 예일 수 있겠으나 잘못된 신앙형태가 몰고온 부부갈등의 모습은 우리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다. 그러면 불신남편을 둔 가정에서 아내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라는 것이 신앙생활하는 아내들의 지적이다. 처음부터 믿는 자와 결혼했어야 한다는 후회는 이미 늦었고, 결혼 후 전도하면 된다는 생각도 어느새 자신감을 잃어가 오히려 남편에게 동화되기가 쉽다.
어쩌다가 부부 싸움 끝에 화를 내면, 『아니, 교회 다니는 사람도 화를 내냐? 교회 헛 다녔구만!』하며 면박을 줘서 할말을 잃게 만든다는 것은 불신남편을 둔 아내들이 가장 많이 듣는 얘기라고 한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교회를 욕하는 것에 화가 나고 꼭 그런 말로 할말없게 만들어버리는 남편이 더욱 미워져서 그때부터는 「교회고 뭐고 안중에 없이」 앙칼진 목소리로 대항하게 된다.
한국교회 70%이상이 여성교인이고 보면, 불신 남편을 둔 아내 즉 「외짝믿음」이 많다는 얘기는 당연한 현상일 것이다. 가정사역전문가들은 외짝믿음이 교회성장을 저해할 뿐 아니라 부부간의 갈등이나 불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가정사역전문가들은 더 이상 외짝믿음을 갖지 말고 불신남편을 교회로 인도해야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아내들은 친구나 이웃을 전도하기는 쉬워도 남편을 전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고 한다. 남편을 전도하기 위해서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정사역전문가들은 「주님께서 나를 통해 온 가정을 구원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니 참 감사한 일」로 여겨야 남편전도가 가능해진다는 것. 즉 자신을 가정구원을 위해 파송된 선교사라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아얘 기독교가정사역연구소에서는 최근에 〈불신남편 30일 구출작전 행동요령〉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행동요령을 보면 남편전도를 위해 작정기도를 하고, 남편의 기살리기와 남편을 위한 일이라면 칭찬, 보약, 요리, 미소, 꾸미기등 무엇이든지 해야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언뜻 보면 아내에게만 너무 많은 희생을 요하는 덕목들이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가정이 해체되고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고 보면, 올바른 가정을 세우기 위한 바른 신앙을 갖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우선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하나님께서는 「돕는 배필」로서 부부의 역할을 강조하셨다. 경제위기로 가정이 해체되고 있는 이때, 「돕는배필」로서 부부역할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다.
경제위기, 가정불화심화
최근의 경제위기는 곧 「가정의 위기」라는 말로 통하고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실재 가정경제를 이끌어 가는 주부에게는 많은 문제를 야기시킨다. 그중 경제문제 하나가 부부간의 불화를 일으키는 요인되고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어았다. 특히 요즘과 같이 실직이나 정리해고등 안전망 없는 시대이고 보면, 생활고로 인한 부부의 불화는 믿는 가정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부부갈등이 칼로 물베기식으로 끝나지 않고 언어폭력를 포함한 육체폭력으로까지 치닫고 있다는데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예는 일반가정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싶상이나, 실재로 최근 각 여성상담소마다 기독교가정의 가정폭력문제가 심심치 않게 들어온다고 한다.
교회여성들은 특히 남편에 의한 가정폭력에 시달려도 다른 문제와 마찬가지로 인내로 참고 사는 것은 매일반이나, 여기에는 다른 문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치심과 죽고싶을 정도로 비참한 심경을 맛본다는 것에 차이가 있다.
특히 교회여성들의 경우는 남편의 폭력을 자신이 져야할 십자가나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해 폭력에 대한 반항은 반성서적이라고 생각하며 인내로서 고통을 참고있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그중 목회자부부나 교회중직자 가정의 가정폭력도 드러나지만 않았지 심각한 지경이라고 한다.
믿는 가정이나 일반가정이 다를 바 없는 이같은 현상은 오랜 세월동안 가부장적 구조에서 비롯된 여성비하의식과 폭력을 묵인, 방조하는 문화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높다. 그로 인해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또한 이러한 현상은 여성의 지위와 경제능력의 향상도 한 요인이 되고 있음은 무시 못할 바이다. 최근 통계청이 사회의식을 조사한 결과, 미혼여성 10명 가운데 4명이 결혼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그만큼 결혼이나 부부관계에서도 한쪽만의 희생이나 인내가 일방통행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부부대화기술개발중요
그러면 이혼을 줄이고 부부갈등을 해소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가정사역전문가들은 부부문제 해결에 있어서 역시 중요한 것은 「대화기술」의 개발이라고 한다. 부부싸움에도 원칙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부부싸움은 비폭력적이어야 하며, 침묵도 대단한 폭력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남과 남의 가정과 비교하는 것은 절대 금기라는 것이다. 특히 부부싸움시 상처와 한이 되는 가슴을 콕콕 찌르는 말은 삼가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부부간의 대화기술을 원활히 할 수 있을까? 흔히 대화유형에 있어서 남자는 요약형, 여자는 확대형이라고 한다. 확대형은 상대가 충분히 정보를 주지않기 때문에 낙담하고, 요약형은 간결한 대답을 원하기 때문에 좌절감을 느끼므로 서로의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TV드라마 얘기는 잘 알면서도 자신의 부부관계 상황은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오늘의 부부들이다. 이젠 부부가 눈을 마주보고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때다. 그것이 부부갈등을 줄이는 비결이다.
더불어 교회에서도 부부세미나나 부부교육 프로그램등을 자주 열어 부부갈등을 줄이고, 행복한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한다. 다행히 가정전문사역기관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고, 개교회에서도 많이 부부프로그램을 적용하고 있어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아직 초기 단계라 더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부부간의 갈등을 줄이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도록 교회에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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