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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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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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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한 교회 영성운동 1] “한국교회 영성 이해부족으로 ‘오·남용’사례 빈번”
지난 수 십여년간 한국교회는 외적인 성장과 더불어 성숙한 교회로의 성장을 위하여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러한 가운데 특별히 80년대 들어서 불기 시작한 영성운동 등은 한국교회의 성장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의 이면에는 잘못된 영성의 이해에서 오는 혼란과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성숙의 결여 등으로 신앙적인 혼란을 거듭해 오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이러한 영성운동의 방향이 상업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어 기독교신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영성운동이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심지어는 기독교인에게조차 외면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상업적으로 이용
그러면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은 사회적인 변화와 그 방향도 함께 변화되어 가고 있다는 일반적인 지적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의 혼란과 무관하지 않으며, 상업적인 사이비 영성단체들이 무더기로 창립되고 있다. 이는 곧 사회적인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정치·사회·경제적으로 불안한 상태여서 이러한 영성기관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영성운동의 의미가 무색해지고 있으며, 교회공동체까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영성운동단체는 기도원을 제외하고 1백여개에 이르며, 이들 단체는 협의회를 조직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영성운동단체의 협의회 조직은 한편으로 빗발치는 비난을 면키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는 지적과 함께, 상업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영성운동단체를 가려내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영성운동단체들은 대부분 한국교회 목회자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으며, 이에따라 목회자들은 교인들이 영성운동 단체에 가는 것을 반대해 왔다. 이것은 일부 영성운동단체가 상업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영성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일부 기도원 원장, 영성센터 원장 등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란한 틈을 타 교인들을 대상으로 사기행각(?)을 벌이기도 하고 있어 오늘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은 상업주의로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영성운동단체들은 상업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단체들과 차별화 하기 위하여 영성단체협의회 구성을 서두르고 있으며, 여기에는 도심의 영성센터 및 구국기도원, 상업적인 영성운동가들이 대거 참여 할 것으로 보여 관심을 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영성센터를 비롯한 도심의 기도원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오늘 한국교회 교인들의 올바른 영성훈련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영성훈련을 주도하고 있는 한 목회자의 말이다.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영성운동은 사회적인 변화와 맞물려 있으며, 사회의 혼란한 틈을 이용, 일부 사이비 영성운동가들이 나타나 상업적인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건전한 영성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영성운동가들이 도매금으로 매도당하고 있으며, 영성운동단체를 검증 할 수 있는 기구가 매우 시급한 상황에 있다”
무엇보다 요즘 영성훈련을 내세워 도심 속에 세워지고 있는 영성센터와 임대기도원에 관심이 쏠리고 있으며, 이러한 영성센터와 기도원에 대해서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이처럼 남용되는 영성운동의 이면에는 이를 실질적으로 주도해 온 부흥사들의 책임도 크다.
사실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은 지금까지 부흥사들의 부흥운동과 맞물려 신비주의로 흘러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병이나 고치고, 예언이나 해 주는 것을 영성운동으로 이해하는 경향도 있다. 이로 인해 영성운동이 일반교인들과 목회자들로부터 오해받기에 이르렀으며, 상업적으로 흘러가는 영성기관들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교인들을 바르게 지도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혼란을 주고 있다는 증거이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무엇보다도 상업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일부 영성단체와 영성센터, 기도원들은 기적과 표적을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기적과 표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한신대학교 교수 예영수 목사의 말이다.
“기적과 표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야지, 하나님의 말씀을 기적과 표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서 안된다. 이것은 분명히 성서에 위배되는 행위이며, 교인들의 영성에 혼란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교인들의 건강한 신앙생활을 해친다.”
교회사속의 영성운동
그렇다면 기독교 영성의 역사는 어디서부터 그 맥을 찾을 수 있는가. 브래들리 P.홀트의 저서 〈기독교 영성사〉를 통해 기독교 영성의 역사를 짚어보도록 하겠다.
초대교인들은 다음에서 언급하고 있는 주제들을 통해 기독교 영성운동을 시작하고 발전해왔다. 그것은 예배와 성례, 카리스마적 요소, 죽음을 무릅쓴 복음증거, 영성훈련과 수도원운동, 신비주의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초기 6세기동안 기독교의 영성운동이 이룩하게 된 것이다.초대교회 교인들은 공적인 공동예배가 영성의 근본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브래들리의 설명이다.
〈세계기독교의 역사 이야기〉의 저자 김홍기교수(감신대)도 이같이 말하고 있다.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된 초대교회는 오순절의 마가다락방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성장했다. 이러한 성령체험의 영성운동은 교회 공동체 속에서 말씀 중심의 예배와 성만찬 중심의 예배를 매주 드림으로써 전개됐다. 이와 더불어 기독교 영성은 세례 속에서 형성됐다.
기독교 영성은 공동의 유익을 위해 각 신자들에게 주어진 은사인 기독교 카리스마적 요소를 통해 발전됐다. 이러한 은사들 중에는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나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 병자를 고쳐주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 해 주는 등의 특별한 능력도 포함됐다. 이는 초대교회 안에서 오순절사건을 기점으로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이러한 은사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교회 주위에서 계속 실시되고 있다.
또한 신약시대부터 시작된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는 313년까지 계속됐다. 이러한 박해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한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순교는 모든 영성을 시험하는 기준이 됐다. 또한 초기 기독교인들은 금욕을 영적 훈련의 하나로 삼았다. 이러한 금욕주의를 강조한 이들은 터툴리안, 오리겐, 에프렘 등이 있다.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끝나면서 초대교회 교인들은 교회 공동체 속에서의 영성운동보다는 개인적 은둔 생활 속에서의 영성운동에 점차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특별히 이집트 수도원운동, 즉 사막교부인 안토니(250-353)의 은둔적 공동생활 운동은 일반적으로 수도원운동의 시작으로 일컬어진다. 금욕생활을 완전하게 실행하기 위해 사막으로 들어간 이집트인들은 자신을 사막에서 연단하고 다른 이들을 위한 봉사하는 삶을 살아 은둔자로서의 단순화된 생활을 지향했다.
동방교회에서는 성파코미우스, 성 바실 등에 의해 시작되었고, 서방교회에서는 성 아타나시우스, 성 베네딕트 등에 의해 시작됐다.
동방과 서방에서 발달된 신비주의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과의 합일을 목적으로 하는 영성의 한 형태이다. 이러한 신비주의를 통해 기독교 영성은 형성됐다.
균형잡힌 영성운동 필요
특별히 영성운동은 종교 체험과 깊은 관계가 있는데 이는 교회사 속에서도 살펴보았듯이 곧 신비주의와도 깊은 관계가 있으며 이러한 신비주의에서의 영적인 체험은 종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체험을 통한 신 인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신비주의는 객관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요소가 강하다보니 이를 증명하기에 어려움이 많아서 이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에 역사적으로 라인홀드 니버 같은 사람들은 신비주의를 역사에 대한 참여의 지평을 상실한 일종의 이교적인 것으로 일종의 ‘이단’ 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폭스는 기독교 신앙 안에서 신비주의적 영성이 상실된 곳에서는 불의와 악이 출현하고 있다고 보면서 정의와 동정심을 본질로 삼는 기독교 신비주의의 전통이 회복되어야할 것을 강조한다.
문제는 이러한 신비주의적 요소를 담고 있는 영성의 본질이 곧 목회자의 개인적인 훈련을 통한 자신의 영적 성숙과 더불어 교인들의 영적 성숙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이러한 영성 훈련을 위한 행사와 이를 주관하는 단체들이 소위 교인수 늘리기 등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영성은 삶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삶과 깊숙이 관계되어 있는 것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말씀, 묵상 등을 통해 개인이 영적으로 성숙하고 이를 통하여 삶이 변화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목회가 잘 안되다 보니까, 또는 성장이 잘 안되다 보니까 하면서 성장의 방편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에 잘못된 영성에 대한 이해 중 한가지는 소위 기적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말씀의 중요성을 뒤로 한채 병고치는 신유의 기적이나 뒤로 넘어지는(?) 기적 등 은사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소위 병고치는 신유집회나 기적을 베푸는 집회에는 구름 떼처럼 성도들이 몰린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영성의 본질이 흐려진다는 것이다.
한국기독교영풍회 13대 대표회장을 지낸 비전교회 김정일 목사는 “기적은 말씀을 증거하는 수단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서 영성운동이라 함은 부흥사들에 의해 뒤로 넘어지거나 병고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 등에 초점을 맞추는 데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중심, 말씀 중심, 십자가 중심으로 목회자 개인이 변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영성운동의 방향이 지나치게 개인적인 경향에 머무르다 보니 이에 따르는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는데 영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진정한 영성운동의 방향은 교회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역사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장신대 오성춘 교수는 “기독교 영성은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요, 성령 안에서 사는 훈련이며, 공동체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는 삶”이라고 규정짓고 “이러한 세 가지 요소중 어느 하나를 더 강조하거나 덜 강조하더라도 참다운 기독교 영성은 이야기 할 수 없다”며 영성의 균형을 강조했다.
참다운 영성이란 방언을 하거나 병을 고치는 등 성경에서 말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은사 등과 분명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성의 요소들이 삶과 분리되어 있을 때 진정한 영성은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생활과 단절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절름발이 영성의 강조가 오늘날 한국교회의 질적인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영성의 문제를 객관화시키기 위한 학술적인 뒷받침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할 수있다.
/유달상부장·윤용상차장·성민혜기자 공동취재·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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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한 교회 영성운동 2]
21세기를 맞은 한국교회는 영성운동에 대한 중요성을 그 어느때 보다도 중요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 교인들이 영적으로 메말라 있다는 반증이며, 교회가 침체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교인들과 목회자 그리고 일반인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앞서 지적했듯이 일부교회와 기도원 그리고 영성단체에서 혼란한 사회현상과 맞물려 영성운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한 일부 목회자와 기도원 원장들이 영성운동이 교회부흥과 교인들의 정신적 치유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는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기복적인 영성운동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평양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처음 일어난 영성운동은 당시 혼탁한 사회를 깨우치기 위한 도덕적 회개운동에 바탕을 두고 일어났기 때문에 교인들과 일반인들로부터 공감을 얻어 성공 할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교회가 크게 성장했다. 또한 70년대 순복음 계열을 중심으로 일어난 부흥운동 또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가 영성운동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기복적인 신앙에 바탕을 두고 영성운동을 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영성운동가들의 주장이다.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을 주도하여 일부 목회자들로부터 오해를 불러 일으켰던 한 목회자는 “21세기는 한마디로 영성의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성운동이 교인들과 목회자들로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기복적인 신앙에 너무 치우쳐 일부 목회자와 기도원 원장 그리고 영성운동 관계자들이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면서 “올바른 영성운동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올바로 정립하고, 기독교의 본질인 생명을 올바로 깨닫는데 있으며, 기독교인들은 이를 위해서 노력하고, 교회지도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교인들을 지도하고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일부 부흥사와 기도원 원장들은 영성운동을 상업적으로 이용, 한국교회의 건강한 발전과 교인들의 영적성숙에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더욱이 영성운동을 주도하는 일부 부흥사와 기도원 원장 그리고 영성운동 관계자들이 영성운동에 대한 기초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영성운동을 벌이고 있는 일부 단체에서는 영성운동을 신학적으로 정립하고,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영성운동가로 인해 건강하게 영성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영성운동가와 단체들이 오해를 사서 곤욕을 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영성운동은 기독교를 가장한 이단, 사이비종교가들의 전유물로 전락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래서 일부 영성단체는 영성운동을 바르게 전달하겠다는 목적 아래, 영성단체 협의회 구성을 서두르고 있으며, 신학적인 정립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 협의회 구성에 직접 가담하고 있는 한 관계자의 말이다.
“영성운동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고, 기복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윤리적·도덕적인 관점에서 영성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은 사업적으로 이용되어 이단·사이비종교가들의 점유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영성운동을 주도하는 목회자 및 기도원 원장들은 바른 영성운동을 펼쳐, 영성운동 본래의 목적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렇게 영성운동의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영성운동은 한국교회의 부흥에 크게 기여했으며, 교회가 성장하면서 일부목회자와 기도원들이 영성운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영성운동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켰다. 70년대 중반 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성령운동과 영성운동은 한국교회 부흥에 대한 불을 지폈으며, 이때 한국교회는 급성장했다. 이런 과거를 경험한 한국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영성운동과 성령운동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 영성은 ‘은혜와 자유’ 강조
오늘날 개신교 영성의 뿌리는 루터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루터의 영성은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발견하면서 자신이 체험한 자유에 초점을 두고 있다. 블래들리 홀트박사(아우구스부르그대학, ‘기독교 영성사’ 저자)는 루터가 가톨릭 영적 전통의 일부를 비판하고 평신도, 성경, 그리고 교회의 경건한 행동에 반대되는 세속적인 행위를 강조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을 통해 개신교 영성은 기본으로 돌아가려는 태도, 즉 ‘복음’을 강조한다. 바울이 말한 복음을 영적 전통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개신교 영성은 부흥회를 통한 ‘영성’으로 국한되는 경향이 있다.
개신교 영성을 더욱 명확히 알고자 한다면 동방교회와 가톨릭의 영성에 대해 비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동방교회의 영성은 어떠한가. 기독교 역사를 통해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동방교회는 역사적으로 콘스탄티노플, 지금은 이스탄불이라 불리는 곳을 중심으로 했다. 동방신학은 삼위일체론을 강력히 신봉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중시하는 동방 정교회의 영성은 ‘예수기도’와 ‘이콘’, ‘침묵’을 강조한다.
‘예수기도’의 기본적 사상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으로 ‘마음의 기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기도는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집중하는 일이 생활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마음의 기도’를 계속 연습하다보면 어느 순간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기도를 되풀이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사용되는 예수기도의 보편적인 형태는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이다. 동방교회에서는 ‘아무런 생각 없이 드리는 기도’ 즉 말이나 심상없이 드리는 기도를 추구한다.
동방교회에서는 ‘이콘’ 즉 성상과 성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의 형태를 특정한 양식으로 눈에 보이게 표현하는 ‘이콘’ 사용은 정교회의 특징적인 영적, 신학적 표현이다. ‘이콘’ 사용이 하나님을 물질적인 대상으로 표현하고 숭배하는 것으로 비칠 지는 모르지만, 성화나 성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화 안에 표현된 위격을 존경하는 것이라는 것이 한국 정교회 측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가톨릭의 영성운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성수동 성당의 김기화신부는 “기독교 영성이란 우리 삶 전체 속에 나타나는 신앙생활”이라고 전제하고, 그러한 의미에서 가톨릭 영성을 한마디로 축약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영성을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가톨릭 영성은 새로운 형태의 교단 형성을 통한 수도원운동과 신비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기도와 묵상생활에 전념한 신비가 중 하나인 클레르보의 버나드는 방대한 수도원을 관리하고, 거룩한 생활의 본보기이면서 인간의 심령을 변화시키기 위한 신적 사랑을 보여준 예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기독교의 삶에서 ‘겸손’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별히 가톨릭 영성과 신학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탁발교단의 설립이다. 도미니크 수도회, 프란치스코 수도회, 갈멜회, 어거스틴 수도회 등은 한 수도원 안에 머물면서 공동기도와 개인기도를 하는 제한된 생활 대신 ‘세상의 봉사’를 강조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세운 예수회는 급진적 수도원으로, 탁발교단에 한발 앞서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 여행하겠다는 것을 의무로 여긴다.
‘성장’보다는 ‘성숙’에 초점 맞춰야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영성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영성에 대한 정의조차 너무 다양하게 나타나므로 목회자들 스스로, 또는 교인들이 많은 혼란을 일으키게 되고 이를 상업적인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우선 영성에 대한 이해가 목회자와 신학자, 때로는 부흥사들이 주장하는 바가 공통점도 있으며 약간의 차이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이들이 공통점으로 말하고 있는 영성운동의 정의는 “영성훈련이란 성령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기를 실행해 나가는 과정이며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과정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말씀에 근거한 영성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흥사들의 경우는 영성운동은 곧 부흥운동이요 교회성장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키고 있다.
즉 부흥사들의 경우는 교회를 성장시키고 방언을 하고 병을 고치는 등 은사를 받는 부분에만 너무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성령을 받으면 이러한 이적들이 분명히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기적과 이적에만 초점이 맞추어지다 보니 자연히 삶의 변화라는 측면을 간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과 관련 한국기독교영풍회 대표회장을 지낸 김정일목사는 “영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영성운동을 교회성장의 돌파구로 삼아보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신비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많다”고 지적하고 “목회자들 스스로 하나님의 종으로서 영성운동을 통해 자기 개발을 하고 올바른 말씀 전달을 통해 교인들을 성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목사는 “영성운동의 문제점은 목회자가 자기 개발은 하지 않고 수단화하려는 데서 문제점이 생긴다”고 말하고 “영성이 충만한 사람은 바른 봉사와 교육 등 후속적으로 열매가 맺어져야 올바른 영성”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박형렬목사(기독교치유부흥선교협의회)도 “영성이라는 문제가 신학적으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부 교단이나 목회자들이 이를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측면으로만 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이는 곧 목회현장과 신학교와 괴리감의 문제로 연결된다고 말하고 최근에 영성신학이라는 책들이 나오고 있으므로 과감히 신학교 커리큘럼 안에 정규과목으로 삽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성운동이 한국교회에 널리 알려져 있음에도 아직도 일부에서는 영성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며 경건이라는 말로 대치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용어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영성운동이 관계성의 문제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으로 거듭난 개인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에 맞게 살며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를 성숙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측면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영성운동이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도구로 사용되어질 것이 아니라 성숙이라는 측면에까지 이어져야 올바른 영성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영성에 대해 분명히 이해해야할 부분중의 하나는 영성이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정립된 후에 생활영성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지금 한국교회가 실천적인 면의 부족으로 인해 윤리의식 부재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론과 실천이 올바로 겸비된 영성운동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한 것이다.
/유달상부장·윤용상차장·성민혜기자 공동취재·집필
(1598호. 20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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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한 교회 영성운동 3] “진정한 영성운동은 건강한 신앙생활 위한 것”
영성운동이 한국교회의 부흥과 발전에 미친 영향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성운동이 한국교회 목회현장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앞서 지적했듯이 일부목회자 및 기도원 원장 그리고 영성단체 관계자들이 영성운동을 상업적 또는 사이비적으로 이용, 영성운동을 변질시킨 데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직통계시도 영성인가(?)
사실 우리사회의 혼란한 틈을 이용해서 도심의 많은 기도원과 영성센터가 설립되어 영성운동에 대한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으며, 일부 단체 관계자들은 한국교회로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강남의 Y기도원을 비롯하여 강동의 U기도원, 경북의 O기도원 등이 바로 그곳이다.
이들 기도원과 영성센터는 겉으로 “IMF한파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과 각종 질병으로부터 고통 당하는 사람, 그리고 영적으로 메마른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 설립되었다”고 설립목적을 설명하고 있지만, 일부 기도원과 영성센터는 영성운동을 이용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 내고 있다는 지적도 높다.
한 영성센터의 경우는 원장이 직접 안수기도를 해 주고, 얼마의 사례금을 요구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하며 금품을 노골적으로 요구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또한 어떤 부흥강사는 전도사와 함께 동행하며 전도사를 통해 금품을 요구, 부흥강사의 자질을 의심케 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잘못되고 그릇된 현상들이 일부 기도원과 영성센터에서 일어나면서 현장목회자들은 교인들이 영성센터와 기도원에 가는 것을 노골적으로 막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전국에 세워진 영성센터와 기도원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며 일부 이러한 기도원과 영성센터로 인해 모든 기도원들이 오해를 받고 있다.
한편 일부 기도원의 원장은 초청된 강사와 짜고 어려운 사람들로부터 거두어들인 헌금을 일정 비율로 나누어 먹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으며, 일부 부흥사들은 개교회 목회자 및 기도원 원장 몰래 뒷거래를 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이렇게 영성센터와 기도원의 영성운동과 기도운동이 빗나간 경우는 결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에 대한 잘못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일부 부흥사들과 기도원 원장들은 하나님과의 직통계시를 내세워 순진한 교인들에게 감사헌금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미 다른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교인을 빼앗아 가고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특히 이들은 유명기도원에서 집회하는 사진을 자랑하며 자신이 담임하고 있는 교회에 출석 할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흥사와 기도원 원장들은 영성운동을 교인들을 빼앗는데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들은 주변교회로 부터 이단·사이비로 오해를 받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 한국교회의 부흥운동과 영성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부흥사들과 기도원 원장 그리고 영성단체 관계자들이 모두 영성운동을 변질시키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한때 한국교회에서 이단으로 오해를 불러 일으켰던 목양세계선교회 예태해목사의 경우는 영성운동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정립,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예목사는 기적은 하나님의 역사이며, 이것은 말씀을 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인데, 일부에서 오해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영성운동을 현장에서 지도하고 있는 박화양목사는 “영성운동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이지, 영성운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한국교회 교인들은 영성운동을 통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바로 알고, 자신의 영적성숙과 내적성장을 가져와야 한다”고 평소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영성운동을 설명하기도 했다.
진정한 영성은 생활영성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에 대한 정의조차 너무나 다양하고 분명한 신학적 이해가 없다보니 이처럼 사이비성 영성단체와 이를 이용, 돈벌이를 행하는 일부 목회자들과 기도원이 출현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다.
박철수목사(기독교영성운동본부 대표, 기독교영성신학원 원장)는 “영성에 대한 정의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때로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진정한 영성운동이란 하나님의 영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식한 자아가 인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더 나아가 자기를 부정하고 생활이 변하는 생활영성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영성이해의 다양성은 일부 목회자들이 영성을 생활영성으로 이해하지 아니하고 교회에 나와서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금하라는 본능적이고 일반적인 윤리에 가까운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거듭나는 인간이 되기보다는 목회자에게 순종하고 교회의 교리에 순종하는 인간을 양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교회가 영성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너무나 신비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비주의 경향이 강하다보니 자연히 영성운동 하면 방언을 하거나 병 고치는 은사 정도에만 국한시켜 해석하다 보니 이러한 쪽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예영수목사(한신대대학원장)는 “진정한 영성운동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밑바탕으로 말씀에 초점을 두고 교회에 중심을 둔 사람을 살리는 운동”이라고 말하고 “이러한 가장 중요한 요인들이 빠져 있을 때 영분별을 잘못하여 이상한 주장을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을 그동안 부흥사들이 주도해 나가다보니 통성기도, 방언 등 소위 동적인 부분에만 치우치다 보니 소위 가톨릭에서 주로 사용하는 명상과 기도 등 정적인 면을 간과한 점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특별히 영성운동에 있어 교회사적으로 볼 때도 초대교부 등 영성운동의 대가들은 대부분 이러한 명상이나 침묵기도 등을 통해 영적으로 더욱 깊은 은혜를 체험한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영성운동이 급속하게 일어나면서 21세기의 대안 목회는 ‘영성목회’라고 할 정도로 영성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으며 신학교에서도 점차 영성신학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고 있어 매우 바람직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 박철수 목사는 “영성목회는 불신자가 예수를 영접한 후 교인으로 교회에 잘 출석하고 내세의 소망을 가지고 현재의 신앙을 잘 유지하는 목양수준의 목회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하고 “구원받은 후 성도가 날마다 성장하고 성숙해져서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여 살아가는 것을 알려주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는 목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성목회 대안은 ‘공동체 삶’ 지향하는 교회
20세기 영성사에 있어 또다시 대두된 오순절 성령운동은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표적인 교회가 바로 여의도순복음교회(담임=조용기목사)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예수의 십자가 사건 이후 마가 다락방에서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이 성령 강림을 체험한 사건은 이 땅에 교회를 탄생하게 하는 첫 신호탄이 되었다. 이러한 오순절 다락방의 성령체험 역사는 전 세계에 예수를 퍼뜨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한국에 오순절 신앙이 공식적으로 소개된 것은 1928년 럼시선교사가 한국에 오면서부터였다. 럼시 선교사는 오순절 신앙의 특성인 방언과 신적 치유를 강조했다.
1970년대 한국 오순절 성령운동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조용기목사의 메시지를 중심으로 개인전도, 문서전도, 방송 전도 등을 통해 성령운동을 확산시켰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신앙교리는 오중복음과 삼중 축복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는 조용기목사의 목회원리이자 신앙원리이기도 하다. 오중복음은 중생, 성령충만, 신유, 축복, 재림의 복음을 의미한다. 삼중축복은 예수가 인간에게 베풀어 준 영적, 육적, 생활적 축복을 일컫는다. 이러한 삼중 축복은 삼박자 축복이라는 용어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교리를 바탕에 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오순절 성령운동은 한국교회에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철야기도회 등을 비롯한 기도의 열기는 전국 교회에 퍼졌다. 또한 한국교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강력한 목회자의 지도력과 설교 메시지의 강화현상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한몫 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새로운 영성목회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교회 중 하나인 사랑방교회(담임=정태일목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1984년 종로에서 설립돼 1997년 현재의 경기도 포천에 위치하게 된 사랑방교회는 교회의 본래 모습인 성령의 코이노니아 즉 성령 안에서의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교회다.
성령 안에서 이루는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고 있는 사랑방교회는 공동체 성서연구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공동체 목회에 있어 성서연구는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는 정태일목사는 그 이유에 대해 “개인의 신앙 갱신과 교회의 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사랑방교회에는 일반적인 조직, 즉 교회생활을 위한 구역, 성가대, 교회학교, 남.여 선교회의 조직이 없다. 대신 사랑방성서모임’이라는 소그룹이 있다. 사랑방성서모임은 모여서 성경공부하고, 성경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교제하며, 교제 후에는 나가서 섬기도록 한다. 이 조직의 장점은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분명한 소속감과 참여의식을 갖게 되고, 주일에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예배와 교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으며, 교회생활의 다섯 가지 필수 요소인 교제, 예배, 교육, 봉사, 선교에 균형있게 참여하므로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사랑방교회의 주일예배는 온 가족이 함께 드린다. 전연령층이 함께 예배를 드린다. 온전히 참여하는 교회만 50여 가정이다. 신앙의 깊이는 지(知)보다는 정(情)이 깊고, 정(情)보다는 의(意)가 깊다. 그리고 사람은 나이가 어릴수록 지보다는 정, 정보다는 의를 통해 신앙교육이 효과적이라는 것이 정목사의 교육목회철학이다.
또한 사랑방교회는 교육목회를 교회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때문에 유치원 과정의 꾸러기학교,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말학교와 계절학교, 그리고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연속 주민 배움사랑방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은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며, 실제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절반 정도는 불신자들이다. 이러한 과정이 끝날 때에는 선교적 효과도 거두게 된다.
정태일목사는 공동체교회를 영성목회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1980년대부터 이야기되기 시작한 ‘영성’이란 용어는 충분한 이해와 정리가 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그는 많은 이들이 협소한 의미에서 ‘영성’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영성목회의 근본적 목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자는 데 있다”는 정목사는 “예수의 인격과 삶의 전체를 본받는 것이 ‘영성’이며, 이럴 때 ‘참교회’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교회의 본래 모습을 찾는 길은 성령 안에서 이루는 코이노니아의 삶, 곧 ‘공동체적 삶’이라는 것이 정목사의 지론이다.
/유달상부장·윤용상차장·성민혜기자 공동취재·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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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스러운 영성운동 4]영성의 신학적 이해와 신앙성숙 프로그램 절실
최근 들어 ‘영성목회’라는 용어에 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관심하고, 그것이 21세기 목회의 대안이라는 주장을 하는 원인은 무엇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영성목회 관한 관심 증가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 이념적 대립 속에서 급속히 성장해온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는 1990년대 이후 공산주의 붕괴로 인해 이념적 이유를 잃게 됐고, 이에 따른 많은 문제점이 속속 등장하게 됐다.
한국교회는 변화하는 사회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움직임, 즉 ‘무엇이 기독교운동인가’라는 출발점에 다시 서게 됐기 때문에 ‘영성목회’가 조명 받는 것이라는 게 김성윤목사(평화의교회)의 견해이다. 김목사는 특별히 앞으로의 시대 화두는 ‘생명’과 ‘영성’이라는 점도 ‘영성목회’ 등장원인에 한 몫 했다고 밝혔다.
김성윤목사는 과거에는 ‘수도원적 영성’을 개인주의적인 신앙만 강조하며, 역사적 도피라고 부정적인 해석을 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기독교적 생명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전과 다른 각도에서 ‘영성’을 바라보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과연 영성목회란 무엇인가. 김목사는 “딱히 꼬집어 ‘이것이 영성목회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본다면 ‘영혼을 바로 세우는 것’이 영성목회”라고 말했다.
목회자에게 있어 수도원적 영성은 필요하지만, 지도자가 신비적인 영성의 흐름을 갖는 것은 위험의 소지가 있다고 밝힌 김성윤목사는 영성목회의 바람직한 역할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따르도록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영성의 본질은 바로 “예수를 닮고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는 29일 ‘성령과 영성’이란 주제로 전국 신학자 세미나를 여는 국제신학연구원의 김삼환박사는 ‘영성’에 대해 두 가지 정의를 내렸다. 첫째, ‘영성’이란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것을 의미한다. 지·정·의보다 더 깊은 인간의 ‘내면의 내면’과 같은 성격을 가진 것이 ‘영성’이라는 것이다. 김박사는 “지성보다 깊고, 감성보다 깊으며, 의지보다 더 깊은, 내 속에 있으면서도 나를 초월하는 것이 영성”이라고 말했다.
김박사는 하나님은 ‘영’이시며, 우리 또한 인간이 불어 넣어주신 ‘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근원적인 가능성으로서의 영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영성’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각 신학대학교의 커리큘럼에서도 나타난다. 감리교신학대학교 학부 과정에는 이번 학기에 ‘현대교회와 영성’(김외식교수)와 ‘목회와 영성’(임경수교수)라는 과목이, 감신대 대학원에서는 ‘목회와 영성’(안석모교수) 과목이 개설됐다.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에서도 ‘신학·영성·목회’(오성춘교수) 과목이, ‘영성훈련의 실제’, ‘영성지도의 이론과 실제’(오해룡교수)가 개설되므로 영성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러한 각 대학이 마련해놓은 영성관련 과목의 내용을 보면 중세 수도원적 영성에 대한 이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영성훈련이 중세 수도원적 영성에 중점을 두는 것은 역사적으로 인정받고 검증을 받아야만 위험의 소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삼환박사(한세대, 국제신학대학원 원장)의 설명이다. ‘해아래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김삼환박사는 ‘영성운동’에 있어 중요한 사실은 ‘새로운 것’이어야한다는 게 아니라 ‘새롭게 한다’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참된 영성과 신비주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중세로 회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각 신학대학이 중세 수도원적 영성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김박사는 영성운동의 성공은 교회사 속의 영성을 어떻게 현대화하며, 새롭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역설했다.
영성개발을 위한 프로그램 절실
한국교회는 지난 20여년간 꾸준한 외적인 성장을 계속했지만 율법적인 신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예수 그리스도와의 올바른 인격적인 관계를 강조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하면 순종할 것인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올바른 인격적 관계에서 오는 성숙보다는 그리스도인이 살아야할 윤리, 도덕적인 측면 강조 등 인본주의적인 면을 강조하다 보니 진정한 의미에서의 복음의 선포에 장애를 가져오게 됐다. 이에 이러한 결과에 대한 반성의 일환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는’ 영성운동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영성운동의 핵심은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따르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윤리적인 면을 강조하므로 본질을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초기과정에서 영성운동에 대한 분명한 이해 부족과 분명한 신학적 해석이 부족하여서 빗나간 기도원 운동, 열광주의적 신앙, 잘못된 성령운동 등으로 인한 많은 폐해가 나타나기도 했다. 영성운동을 곧 올바른 신학적인 근거가 없는 체험우선주의적인 성령운동으로 이해하다 보니 한국교회는 때로는 물질주의적 가치관 강조, 지나친 이적과 기적 강조, 안수기도로 인한 문제 등 윤리의식마저도 상실된 영성운동을 진정한 영성운동인양 받아들였던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가 영성운동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한 부분의 하나는 바로 영성운동을 개인의 경건을 성취하려는 데 머무르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로인해 기도원 운동이 붐을 일으키고 나와 내 가족만 잘되면 된다는 소위 기복신앙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영성운동가들은 “진정한 영성운동은 교회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역사에 동참하는 공동체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21세기의 대안목회는 영성목회라고 말하는 시점에서 한국교회는 다시 한번 진정한 영성운동에 대한 올바른 방향설정과 함께 목회자들 스스로 개인적인 영성훈련을 통해 성도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영적 능력을 소유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최근 이러한 이유로 한국교회는 점차적으로 성도들의 영성훈련과 영성개발에 관심을 쏟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아직도 영성에 대한 분명한 신학적 이해가 부족하고 지나치게 개인적인 측면으로 치부해 버림에 따라 영성개발 프로그램이 매우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개교회에서 적용할 수 있는 영성 프로그램을 제시한다면 우선 연령층에 맞게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비롯한 다양한 영적 고전 작품을 접하므로서 이들의 삶을 조명해 보는 프로그램도 있고, 또한 무엇보다 가장 훌륭한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한 도구는 바로 성경으로 시편을 통한 신앙훈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한국교회가 어린아이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할 수 있는 다양한 영성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개인의 영적 성장을 돕는 일과 함께 공동체와 함께 할 수 있는 성숙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영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부흥사와 영성단체의 자정노력이 시습할 것이다. 또한 목회자들 스스로도 영성 자체를 터부시할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신앙성숙을 위한 중요한 요인임으로 영성목회차원에서 스스로 영성개발함양에 주력해 나가는 한편 평신도들과 함께 교회를 세워나간다는 심정으로 말씀을 통한 영성프로그램개발에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21세기는 영성의 시대
이제 한국교회는 영성운동이 자리잡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먼저 한국교회는 그동안 영성운동을 잘못 이용하여 교계를 어지럽히고, 교회에 대한 위상을 손상시킨 과거를 반성하고 영성운동을 통해 한국교회가 제3부흥의 물결을 일으키기를 모든 교인들은 기대하고 있다.
21세기 한국교회는 영성의 시대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부흥사들과 기도원 원장, 영성센터는 영성운동을 상업적, 기복적으로 이용, 한국교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으며, 교회공동체를 어지럽히고 있다. 특별히 일부 부흥사들과 기도원 원장들은 기적과 이적을 하나의 영성운동으로 착각하고, 심지어는 직통계시 등으로 IMF한파로 어려움에 처한 교인들을 울리고 있다. 또한 이것을 교회성장의 방법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능력있는 사람으로 비화, 교인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영성운동에 대한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신학적인 정립 또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오늘 교회지도자들은 한편으로는 영성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교인들이 기도원 및 영성센터에 찾아가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막고 있다. 그래서 영성운동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교인들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님 나라 선교를 위해서 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가 혼란해지고, 교인들의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교인들은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하여 영성단체 또는 기도원, 직통계시를 내리는 부흥사들을 찾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지도자들은 교인들이 안정을 다시 찾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영성프로그램을 마련, 교인들이 참여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현장 영성운동가들의 주장이다.
“일부 부흥사와 기도원 원장들이 영성운동을 기복적, 상업적으로 이용, 교회공동체를 흔들어 놓고 있으며, 이것은 영성에 대한 신학적 정립과 영성프로그램 부재에서 오는 결과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교인들이 하나님과의 바른관계 정립을 위한 영성 프로그램 개발에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일부 부흥사와 기도원 원장의 기적과 이적, 직통계시 등은 영성운동이라고 할 수 없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이것을 이용하여 교인들의 빈주머니를 반강제적으로 짜내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라고 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기적과 이적은 교회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으로 연결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기적과 이적 그리고 직통계시를 영성운동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교인들의 이같은 생각은 영성운동에 대해서 바르게 전달하지 못한 목회자들의 잘못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영성운동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은 영성운동에 대한 신학적인 정립과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한 영성프로그램 개발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실 한국교회의 영성에 관한 신학적인 논의가 미약했던 나머지, 일부 부흥사들과 기도원 원장들은
영성을 영적인 감화력이나, 감동으로만 활용, 사이비 영성운동가들을 수 없이 만들어 냈다. 이제 한국교회는 영성운동이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정열을 쏟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기복적인 요소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로운 영으로 하나님과 진정으로 합일하려는 정신을 교인들에게 심어주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교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기도운동을 지도하고, 영성운동이 교인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일어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유달상부장·윤용상차장·성민혜기자 공동취재·집필
(1600호, 200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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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 십여년간 한국교회는 외적인 성장과 더불어 성숙한 교회로의 성장을 위하여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러한 가운데 특별히 80년대 들어서 불기 시작한 영성운동 등은 한국교회의 성장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의 이면에는 잘못된 영성의 이해에서 오는 혼란과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성숙의 결여 등으로 신앙적인 혼란을 거듭해 오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이러한 영성운동의 방향이 상업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어 기독교신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영성운동이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심지어는 기독교인에게조차 외면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상업적으로 이용
그러면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은 사회적인 변화와 그 방향도 함께 변화되어 가고 있다는 일반적인 지적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의 혼란과 무관하지 않으며, 상업적인 사이비 영성단체들이 무더기로 창립되고 있다. 이는 곧 사회적인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정치·사회·경제적으로 불안한 상태여서 이러한 영성기관들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영성운동의 의미가 무색해지고 있으며, 교회공동체까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영성운동단체는 기도원을 제외하고 1백여개에 이르며, 이들 단체는 협의회를 조직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영성운동단체의 협의회 조직은 한편으로 빗발치는 비난을 면키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는 지적과 함께, 상업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영성운동단체를 가려내겠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영성운동단체들은 대부분 한국교회 목회자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으며, 이에따라 목회자들은 교인들이 영성운동 단체에 가는 것을 반대해 왔다. 이것은 일부 영성운동단체가 상업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영성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일부 기도원 원장, 영성센터 원장 등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란한 틈을 타 교인들을 대상으로 사기행각(?)을 벌이기도 하고 있어 오늘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은 상업주의로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영성운동단체들은 상업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단체들과 차별화 하기 위하여 영성단체협의회 구성을 서두르고 있으며, 여기에는 도심의 영성센터 및 구국기도원, 상업적인 영성운동가들이 대거 참여 할 것으로 보여 관심을 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혼란한 틈을 이용하여 영성센터를 비롯한 도심의 기도원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오늘 한국교회 교인들의 올바른 영성훈련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영성훈련을 주도하고 있는 한 목회자의 말이다.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영성운동은 사회적인 변화와 맞물려 있으며, 사회의 혼란한 틈을 이용, 일부 사이비 영성운동가들이 나타나 상업적인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로 인해 건전한 영성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영성운동가들이 도매금으로 매도당하고 있으며, 영성운동단체를 검증 할 수 있는 기구가 매우 시급한 상황에 있다”
무엇보다 요즘 영성훈련을 내세워 도심 속에 세워지고 있는 영성센터와 임대기도원에 관심이 쏠리고 있으며, 이러한 영성센터와 기도원에 대해서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이처럼 남용되는 영성운동의 이면에는 이를 실질적으로 주도해 온 부흥사들의 책임도 크다.
사실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은 지금까지 부흥사들의 부흥운동과 맞물려 신비주의로 흘러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병이나 고치고, 예언이나 해 주는 것을 영성운동으로 이해하는 경향도 있다. 이로 인해 영성운동이 일반교인들과 목회자들로부터 오해받기에 이르렀으며, 상업적으로 흘러가는 영성기관들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교인들을 바르게 지도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혼란을 주고 있다는 증거이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무엇보다도 상업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일부 영성단체와 영성센터, 기도원들은 기적과 표적을 복음을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기적과 표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한신대학교 교수 예영수 목사의 말이다.
“기적과 표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야지, 하나님의 말씀을 기적과 표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서 안된다. 이것은 분명히 성서에 위배되는 행위이며, 교인들의 영성에 혼란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교인들의 건강한 신앙생활을 해친다.”
교회사속의 영성운동
그렇다면 기독교 영성의 역사는 어디서부터 그 맥을 찾을 수 있는가. 브래들리 P.홀트의 저서 〈기독교 영성사〉를 통해 기독교 영성의 역사를 짚어보도록 하겠다.
초대교인들은 다음에서 언급하고 있는 주제들을 통해 기독교 영성운동을 시작하고 발전해왔다. 그것은 예배와 성례, 카리스마적 요소, 죽음을 무릅쓴 복음증거, 영성훈련과 수도원운동, 신비주의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요소들을 통해 초기 6세기동안 기독교의 영성운동이 이룩하게 된 것이다.초대교회 교인들은 공적인 공동예배가 영성의 근본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브래들리의 설명이다.
〈세계기독교의 역사 이야기〉의 저자 김홍기교수(감신대)도 이같이 말하고 있다.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된 초대교회는 오순절의 마가다락방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성장했다. 이러한 성령체험의 영성운동은 교회 공동체 속에서 말씀 중심의 예배와 성만찬 중심의 예배를 매주 드림으로써 전개됐다. 이와 더불어 기독교 영성은 세례 속에서 형성됐다.
기독교 영성은 공동의 유익을 위해 각 신자들에게 주어진 은사인 기독교 카리스마적 요소를 통해 발전됐다. 이러한 은사들 중에는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것이나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 병자를 고쳐주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 해 주는 등의 특별한 능력도 포함됐다. 이는 초대교회 안에서 오순절사건을 기점으로 중요한 요소가 됐다. 이러한 은사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교회 주위에서 계속 실시되고 있다.
또한 신약시대부터 시작된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는 313년까지 계속됐다. 이러한 박해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한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순교는 모든 영성을 시험하는 기준이 됐다. 또한 초기 기독교인들은 금욕을 영적 훈련의 하나로 삼았다. 이러한 금욕주의를 강조한 이들은 터툴리안, 오리겐, 에프렘 등이 있다.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끝나면서 초대교회 교인들은 교회 공동체 속에서의 영성운동보다는 개인적 은둔 생활 속에서의 영성운동에 점차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특별히 이집트 수도원운동, 즉 사막교부인 안토니(250-353)의 은둔적 공동생활 운동은 일반적으로 수도원운동의 시작으로 일컬어진다. 금욕생활을 완전하게 실행하기 위해 사막으로 들어간 이집트인들은 자신을 사막에서 연단하고 다른 이들을 위한 봉사하는 삶을 살아 은둔자로서의 단순화된 생활을 지향했다.
동방교회에서는 성파코미우스, 성 바실 등에 의해 시작되었고, 서방교회에서는 성 아타나시우스, 성 베네딕트 등에 의해 시작됐다.
동방과 서방에서 발달된 신비주의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과의 합일을 목적으로 하는 영성의 한 형태이다. 이러한 신비주의를 통해 기독교 영성은 형성됐다.
균형잡힌 영성운동 필요
특별히 영성운동은 종교 체험과 깊은 관계가 있는데 이는 교회사 속에서도 살펴보았듯이 곧 신비주의와도 깊은 관계가 있으며 이러한 신비주의에서의 영적인 체험은 종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체험을 통한 신 인식’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신비주의는 객관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요소가 강하다보니 이를 증명하기에 어려움이 많아서 이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에 역사적으로 라인홀드 니버 같은 사람들은 신비주의를 역사에 대한 참여의 지평을 상실한 일종의 이교적인 것으로 일종의 ‘이단’ 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폭스는 기독교 신앙 안에서 신비주의적 영성이 상실된 곳에서는 불의와 악이 출현하고 있다고 보면서 정의와 동정심을 본질로 삼는 기독교 신비주의의 전통이 회복되어야할 것을 강조한다.
문제는 이러한 신비주의적 요소를 담고 있는 영성의 본질이 곧 목회자의 개인적인 훈련을 통한 자신의 영적 성숙과 더불어 교인들의 영적 성숙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이러한 영성 훈련을 위한 행사와 이를 주관하는 단체들이 소위 교인수 늘리기 등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영성은 삶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삶과 깊숙이 관계되어 있는 것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하나님의 말씀, 묵상 등을 통해 개인이 영적으로 성숙하고 이를 통하여 삶이 변화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목회가 잘 안되다 보니까, 또는 성장이 잘 안되다 보니까 하면서 성장의 방편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에 잘못된 영성에 대한 이해 중 한가지는 소위 기적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말씀의 중요성을 뒤로 한채 병고치는 신유의 기적이나 뒤로 넘어지는(?) 기적 등 은사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소위 병고치는 신유집회나 기적을 베푸는 집회에는 구름 떼처럼 성도들이 몰린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영성의 본질이 흐려진다는 것이다.
한국기독교영풍회 13대 대표회장을 지낸 비전교회 김정일 목사는 “기적은 말씀을 증거하는 수단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서 영성운동이라 함은 부흥사들에 의해 뒤로 넘어지거나 병고치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 등에 초점을 맞추는 데 있다”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중심, 말씀 중심, 십자가 중심으로 목회자 개인이 변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영성운동의 방향이 지나치게 개인적인 경향에 머무르다 보니 이에 따르는 문제점도 나타나고 있는데 영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진정한 영성운동의 방향은 교회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역사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장신대 오성춘 교수는 “기독교 영성은 그리스도 중심의 삶이요, 성령 안에서 사는 훈련이며, 공동체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는 삶”이라고 규정짓고 “이러한 세 가지 요소중 어느 하나를 더 강조하거나 덜 강조하더라도 참다운 기독교 영성은 이야기 할 수 없다”며 영성의 균형을 강조했다.
참다운 영성이란 방언을 하거나 병을 고치는 등 성경에서 말하는 기적이 일어나는 은사 등과 분명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성의 요소들이 삶과 분리되어 있을 때 진정한 영성은 절름발이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생활과 단절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절름발이 영성의 강조가 오늘날 한국교회의 질적인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영성의 문제를 객관화시키기 위한 학술적인 뒷받침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할 수있다.
/유달상부장·윤용상차장·성민혜기자 공동취재·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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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한 교회 영성운동 2]
21세기를 맞은 한국교회는 영성운동에 대한 중요성을 그 어느때 보다도 중요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 교인들이 영적으로 메말라 있다는 반증이며, 교회가 침체되어 있다는 증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교인들과 목회자 그리고 일반인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앞서 지적했듯이 일부교회와 기도원 그리고 영성단체에서 혼란한 사회현상과 맞물려 영성운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한 일부 목회자와 기도원 원장들이 영성운동이 교회부흥과 교인들의 정신적 치유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다는데,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기복적인 영성운동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평양 장대현교회를 중심으로 처음 일어난 영성운동은 당시 혼탁한 사회를 깨우치기 위한 도덕적 회개운동에 바탕을 두고 일어났기 때문에 교인들과 일반인들로부터 공감을 얻어 성공 할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교회가 크게 성장했다. 또한 70년대 순복음 계열을 중심으로 일어난 부흥운동 또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가 영성운동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은 단순히 기복적인 신앙에 바탕을 두고 영성운동을 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영성운동가들의 주장이다.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을 주도하여 일부 목회자들로부터 오해를 불러 일으켰던 한 목회자는 “21세기는 한마디로 영성의 시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성운동이 교인들과 목회자들로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은 기복적인 신앙에 너무 치우쳐 일부 목회자와 기도원 원장 그리고 영성운동 관계자들이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면서 “올바른 영성운동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올바로 정립하고, 기독교의 본질인 생명을 올바로 깨닫는데 있으며, 기독교인들은 이를 위해서 노력하고, 교회지도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교인들을 지도하고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일부 부흥사와 기도원 원장들은 영성운동을 상업적으로 이용, 한국교회의 건강한 발전과 교인들의 영적성숙에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더욱이 영성운동을 주도하는 일부 부흥사와 기도원 원장 그리고 영성운동 관계자들이 영성운동에 대한 기초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영성운동을 벌이고 있는 일부 단체에서는 영성운동을 신학적으로 정립하고,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일부 영성운동가로 인해 건강하게 영성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영성운동가와 단체들이 오해를 사서 곤욕을 당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영성운동은 기독교를 가장한 이단, 사이비종교가들의 전유물로 전락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래서 일부 영성단체는 영성운동을 바르게 전달하겠다는 목적 아래, 영성단체 협의회 구성을 서두르고 있으며, 신학적인 정립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이 협의회 구성에 직접 가담하고 있는 한 관계자의 말이다.
“영성운동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고, 기복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윤리적·도덕적인 관점에서 영성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은 사업적으로 이용되어 이단·사이비종교가들의 점유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영성운동을 주도하는 목회자 및 기도원 원장들은 바른 영성운동을 펼쳐, 영성운동 본래의 목적을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렇게 영성운동의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영성운동은 한국교회의 부흥에 크게 기여했으며, 교회가 성장하면서 일부목회자와 기도원들이 영성운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영성운동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켰다. 70년대 중반 순복음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성령운동과 영성운동은 한국교회 부흥에 대한 불을 지폈으며, 이때 한국교회는 급성장했다. 이런 과거를 경험한 한국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영성운동과 성령운동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 영성은 ‘은혜와 자유’ 강조
오늘날 개신교 영성의 뿌리는 루터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루터의 영성은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발견하면서 자신이 체험한 자유에 초점을 두고 있다. 블래들리 홀트박사(아우구스부르그대학, ‘기독교 영성사’ 저자)는 루터가 가톨릭 영적 전통의 일부를 비판하고 평신도, 성경, 그리고 교회의 경건한 행동에 반대되는 세속적인 행위를 강조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루터로부터 시작된 종교개혁을 통해 개신교 영성은 기본으로 돌아가려는 태도, 즉 ‘복음’을 강조한다. 바울이 말한 복음을 영적 전통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개신교 영성은 부흥회를 통한 ‘영성’으로 국한되는 경향이 있다.
개신교 영성을 더욱 명확히 알고자 한다면 동방교회와 가톨릭의 영성에 대해 비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동방교회의 영성은 어떠한가. 기독교 역사를 통해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동방교회는 역사적으로 콘스탄티노플, 지금은 이스탄불이라 불리는 곳을 중심으로 했다. 동방신학은 삼위일체론을 강력히 신봉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한다. 죽음과 그리스도의 부활을 중시하는 동방 정교회의 영성은 ‘예수기도’와 ‘이콘’, ‘침묵’을 강조한다.
‘예수기도’의 기본적 사상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으로 ‘마음의 기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기도는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집중하는 일이 생활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마음의 기도’를 계속 연습하다보면 어느 순간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기도를 되풀이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사용되는 예수기도의 보편적인 형태는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이다. 동방교회에서는 ‘아무런 생각 없이 드리는 기도’ 즉 말이나 심상없이 드리는 기도를 추구한다.
동방교회에서는 ‘이콘’ 즉 성상과 성화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의 형태를 특정한 양식으로 눈에 보이게 표현하는 ‘이콘’ 사용은 정교회의 특징적인 영적, 신학적 표현이다. ‘이콘’ 사용이 하나님을 물질적인 대상으로 표현하고 숭배하는 것으로 비칠 지는 모르지만, 성화나 성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성화 안에 표현된 위격을 존경하는 것이라는 것이 한국 정교회 측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가톨릭의 영성운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성수동 성당의 김기화신부는 “기독교 영성이란 우리 삶 전체 속에 나타나는 신앙생활”이라고 전제하고, 그러한 의미에서 가톨릭 영성을 한마디로 축약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영성을 간단하게 설명한다면, 가톨릭 영성은 새로운 형태의 교단 형성을 통한 수도원운동과 신비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기도와 묵상생활에 전념한 신비가 중 하나인 클레르보의 버나드는 방대한 수도원을 관리하고, 거룩한 생활의 본보기이면서 인간의 심령을 변화시키기 위한 신적 사랑을 보여준 예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기독교의 삶에서 ‘겸손’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별히 가톨릭 영성과 신학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탁발교단의 설립이다. 도미니크 수도회, 프란치스코 수도회, 갈멜회, 어거스틴 수도회 등은 한 수도원 안에 머물면서 공동기도와 개인기도를 하는 제한된 생활 대신 ‘세상의 봉사’를 강조했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세운 예수회는 급진적 수도원으로, 탁발교단에 한발 앞서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 여행하겠다는 것을 의무로 여긴다.
‘성장’보다는 ‘성숙’에 초점 맞춰야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영성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영성에 대한 정의조차 너무 다양하게 나타나므로 목회자들 스스로, 또는 교인들이 많은 혼란을 일으키게 되고 이를 상업적인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우선 영성에 대한 이해가 목회자와 신학자, 때로는 부흥사들이 주장하는 바가 공통점도 있으며 약간의 차이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이들이 공통점으로 말하고 있는 영성운동의 정의는 “영성훈련이란 성령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기를 실행해 나가는 과정이며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과정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말씀에 근거한 영성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흥사들의 경우는 영성운동은 곧 부흥운동이요 교회성장이라는 등식을 성립시키고 있다.
즉 부흥사들의 경우는 교회를 성장시키고 방언을 하고 병을 고치는 등 은사를 받는 부분에만 너무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성령을 받으면 이러한 이적들이 분명히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기적과 이적에만 초점이 맞추어지다 보니 자연히 삶의 변화라는 측면을 간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과 관련 한국기독교영풍회 대표회장을 지낸 김정일목사는 “영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영성운동을 교회성장의 돌파구로 삼아보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신비주의에 빠지는 경향이 많다”고 지적하고 “목회자들 스스로 하나님의 종으로서 영성운동을 통해 자기 개발을 하고 올바른 말씀 전달을 통해 교인들을 성숙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목사는 “영성운동의 문제점은 목회자가 자기 개발은 하지 않고 수단화하려는 데서 문제점이 생긴다”고 말하고 “영성이 충만한 사람은 바른 봉사와 교육 등 후속적으로 열매가 맺어져야 올바른 영성”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박형렬목사(기독교치유부흥선교협의회)도 “영성이라는 문제가 신학적으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부 교단이나 목회자들이 이를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측면으로만 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이는 곧 목회현장과 신학교와 괴리감의 문제로 연결된다고 말하고 최근에 영성신학이라는 책들이 나오고 있으므로 과감히 신학교 커리큘럼 안에 정규과목으로 삽입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성운동이 한국교회에 널리 알려져 있음에도 아직도 일부에서는 영성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며 경건이라는 말로 대치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용어의 문제가 아니라 보다 영성운동이 관계성의 문제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으로 거듭난 개인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분에 맞게 살며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를 성숙시키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측면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영성운동이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도구로 사용되어질 것이 아니라 성숙이라는 측면에까지 이어져야 올바른 영성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영성에 대해 분명히 이해해야할 부분중의 하나는 영성이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정립된 후에 생활영성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지금 한국교회가 실천적인 면의 부족으로 인해 윤리의식 부재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론과 실천이 올바로 겸비된 영성운동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한 것이다.
/유달상부장·윤용상차장·성민혜기자 공동취재·집필
(1598호. 20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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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한 교회 영성운동 3] “진정한 영성운동은 건강한 신앙생활 위한 것”
영성운동이 한국교회의 부흥과 발전에 미친 영향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성운동이 한국교회 목회현장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앞서 지적했듯이 일부목회자 및 기도원 원장 그리고 영성단체 관계자들이 영성운동을 상업적 또는 사이비적으로 이용, 영성운동을 변질시킨 데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직통계시도 영성인가(?)
사실 우리사회의 혼란한 틈을 이용해서 도심의 많은 기도원과 영성센터가 설립되어 영성운동에 대한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으며, 일부 단체 관계자들은 한국교회로부터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강남의 Y기도원을 비롯하여 강동의 U기도원, 경북의 O기도원 등이 바로 그곳이다.
이들 기도원과 영성센터는 겉으로 “IMF한파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과 각종 질병으로부터 고통 당하는 사람, 그리고 영적으로 메마른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 설립되었다”고 설립목적을 설명하고 있지만, 일부 기도원과 영성센터는 영성운동을 이용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 내고 있다는 지적도 높다.
한 영성센터의 경우는 원장이 직접 안수기도를 해 주고, 얼마의 사례금을 요구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하며 금품을 노골적으로 요구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또한 어떤 부흥강사는 전도사와 함께 동행하며 전도사를 통해 금품을 요구, 부흥강사의 자질을 의심케 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잘못되고 그릇된 현상들이 일부 기도원과 영성센터에서 일어나면서 현장목회자들은 교인들이 영성센터와 기도원에 가는 것을 노골적으로 막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전국에 세워진 영성센터와 기도원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며 일부 이러한 기도원과 영성센터로 인해 모든 기도원들이 오해를 받고 있다.
한편 일부 기도원의 원장은 초청된 강사와 짜고 어려운 사람들로부터 거두어들인 헌금을 일정 비율로 나누어 먹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으며, 일부 부흥사들은 개교회 목회자 및 기도원 원장 몰래 뒷거래를 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이렇게 영성센터와 기도원의 영성운동과 기도운동이 빗나간 경우는 결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에 대한 잘못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일부 부흥사들과 기도원 원장들은 하나님과의 직통계시를 내세워 순진한 교인들에게 감사헌금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미 다른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교인을 빼앗아 가고 있는 것도 볼 수 있다. 특히 이들은 유명기도원에서 집회하는 사진을 자랑하며 자신이 담임하고 있는 교회에 출석 할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이러한 부흥사와 기도원 원장들은 영성운동을 교인들을 빼앗는데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들은 주변교회로 부터 이단·사이비로 오해를 받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 한국교회의 부흥운동과 영성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부흥사들과 기도원 원장 그리고 영성단체 관계자들이 모두 영성운동을 변질시키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한때 한국교회에서 이단으로 오해를 불러 일으켰던 목양세계선교회 예태해목사의 경우는 영성운동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정립,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예목사는 기적은 하나님의 역사이며, 이것은 말씀을 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인데, 일부에서 오해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영성운동을 현장에서 지도하고 있는 박화양목사는 “영성운동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이지, 영성운동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한국교회 교인들은 영성운동을 통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바로 알고, 자신의 영적성숙과 내적성장을 가져와야 한다”고 평소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영성운동을 설명하기도 했다.
진정한 영성은 생활영성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에 대한 정의조차 너무나 다양하고 분명한 신학적 이해가 없다보니 이처럼 사이비성 영성단체와 이를 이용, 돈벌이를 행하는 일부 목회자들과 기도원이 출현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는 것이다.
박철수목사(기독교영성운동본부 대표, 기독교영성신학원 원장)는 “영성에 대한 정의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때로는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진정한 영성운동이란 하나님의 영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식한 자아가 인격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더 나아가 자기를 부정하고 생활이 변하는 생활영성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영성이해의 다양성은 일부 목회자들이 영성을 생활영성으로 이해하지 아니하고 교회에 나와서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금하라는 본능적이고 일반적인 윤리에 가까운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거듭나는 인간이 되기보다는 목회자에게 순종하고 교회의 교리에 순종하는 인간을 양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교회가 영성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너무나 신비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비주의 경향이 강하다보니 자연히 영성운동 하면 방언을 하거나 병 고치는 은사 정도에만 국한시켜 해석하다 보니 이러한 쪽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예영수목사(한신대대학원장)는 “진정한 영성운동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밑바탕으로 말씀에 초점을 두고 교회에 중심을 둔 사람을 살리는 운동”이라고 말하고 “이러한 가장 중요한 요인들이 빠져 있을 때 영분별을 잘못하여 이상한 주장을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을 그동안 부흥사들이 주도해 나가다보니 통성기도, 방언 등 소위 동적인 부분에만 치우치다 보니 소위 가톨릭에서 주로 사용하는 명상과 기도 등 정적인 면을 간과한 점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특별히 영성운동에 있어 교회사적으로 볼 때도 초대교부 등 영성운동의 대가들은 대부분 이러한 명상이나 침묵기도 등을 통해 영적으로 더욱 깊은 은혜를 체험한 것을 볼 수 있다.
한편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영성운동이 급속하게 일어나면서 21세기의 대안 목회는 ‘영성목회’라고 할 정도로 영성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으며 신학교에서도 점차 영성신학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고 있어 매우 바람직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 박철수 목사는 “영성목회는 불신자가 예수를 영접한 후 교인으로 교회에 잘 출석하고 내세의 소망을 가지고 현재의 신앙을 잘 유지하는 목양수준의 목회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하고 “구원받은 후 성도가 날마다 성장하고 성숙해져서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여 살아가는 것을 알려주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는 목회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성목회 대안은 ‘공동체 삶’ 지향하는 교회
20세기 영성사에 있어 또다시 대두된 오순절 성령운동은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표적인 교회가 바로 여의도순복음교회(담임=조용기목사)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예수의 십자가 사건 이후 마가 다락방에서 모여 기도하던 제자들이 성령 강림을 체험한 사건은 이 땅에 교회를 탄생하게 하는 첫 신호탄이 되었다. 이러한 오순절 다락방의 성령체험 역사는 전 세계에 예수를 퍼뜨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한국에 오순절 신앙이 공식적으로 소개된 것은 1928년 럼시선교사가 한국에 오면서부터였다. 럼시 선교사는 오순절 신앙의 특성인 방언과 신적 치유를 강조했다.
1970년대 한국 오순절 성령운동의 흐름에 큰 영향을 끼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조용기목사의 메시지를 중심으로 개인전도, 문서전도, 방송 전도 등을 통해 성령운동을 확산시켰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신앙교리는 오중복음과 삼중 축복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는 조용기목사의 목회원리이자 신앙원리이기도 하다. 오중복음은 중생, 성령충만, 신유, 축복, 재림의 복음을 의미한다. 삼중축복은 예수가 인간에게 베풀어 준 영적, 육적, 생활적 축복을 일컫는다. 이러한 삼중 축복은 삼박자 축복이라는 용어로 불리기도 한다.
이러한 교리를 바탕에 둔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오순절 성령운동은 한국교회에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철야기도회 등을 비롯한 기도의 열기는 전국 교회에 퍼졌다. 또한 한국교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강력한 목회자의 지도력과 설교 메시지의 강화현상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한몫 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새로운 영성목회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교회 중 하나인 사랑방교회(담임=정태일목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1984년 종로에서 설립돼 1997년 현재의 경기도 포천에 위치하게 된 사랑방교회는 교회의 본래 모습인 성령의 코이노니아 즉 성령 안에서의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교회다.
성령 안에서 이루는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고 있는 사랑방교회는 공동체 성서연구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공동체 목회에 있어 성서연구는 매우 중요하다고 여기는 정태일목사는 그 이유에 대해 “개인의 신앙 갱신과 교회의 개혁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사랑방교회에는 일반적인 조직, 즉 교회생활을 위한 구역, 성가대, 교회학교, 남.여 선교회의 조직이 없다. 대신 사랑방성서모임’이라는 소그룹이 있다. 사랑방성서모임은 모여서 성경공부하고, 성경공부하는 과정을 통해 교제하며, 교제 후에는 나가서 섬기도록 한다. 이 조직의 장점은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분명한 소속감과 참여의식을 갖게 되고, 주일에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예배와 교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으며, 교회생활의 다섯 가지 필수 요소인 교제, 예배, 교육, 봉사, 선교에 균형있게 참여하므로 건강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사랑방교회의 주일예배는 온 가족이 함께 드린다. 전연령층이 함께 예배를 드린다. 온전히 참여하는 교회만 50여 가정이다. 신앙의 깊이는 지(知)보다는 정(情)이 깊고, 정(情)보다는 의(意)가 깊다. 그리고 사람은 나이가 어릴수록 지보다는 정, 정보다는 의를 통해 신앙교육이 효과적이라는 것이 정목사의 교육목회철학이다.
또한 사랑방교회는 교육목회를 교회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때문에 유치원 과정의 꾸러기학교,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주말학교와 계절학교, 그리고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자연속 주민 배움사랑방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교육 프로그램은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며, 실제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절반 정도는 불신자들이다. 이러한 과정이 끝날 때에는 선교적 효과도 거두게 된다.
정태일목사는 공동체교회를 영성목회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1980년대부터 이야기되기 시작한 ‘영성’이란 용어는 충분한 이해와 정리가 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그는 많은 이들이 협소한 의미에서 ‘영성’을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영성목회의 근본적 목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자는 데 있다”는 정목사는 “예수의 인격과 삶의 전체를 본받는 것이 ‘영성’이며, 이럴 때 ‘참교회’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교회의 본래 모습을 찾는 길은 성령 안에서 이루는 코이노니아의 삶, 곧 ‘공동체적 삶’이라는 것이 정목사의 지론이다.
/유달상부장·윤용상차장·성민혜기자 공동취재·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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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스러운 영성운동 4]영성의 신학적 이해와 신앙성숙 프로그램 절실
최근 들어 ‘영성목회’라는 용어에 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관심하고, 그것이 21세기 목회의 대안이라는 주장을 하는 원인은 무엇인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영성목회 관한 관심 증가
지난 1970년대와 1980년대 이념적 대립 속에서 급속히 성장해온 한국사회와 한국교회는 1990년대 이후 공산주의 붕괴로 인해 이념적 이유를 잃게 됐고, 이에 따른 많은 문제점이 속속 등장하게 됐다.
한국교회는 변화하는 사회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자기 정체성을 찾기 위한 움직임, 즉 ‘무엇이 기독교운동인가’라는 출발점에 다시 서게 됐기 때문에 ‘영성목회’가 조명 받는 것이라는 게 김성윤목사(평화의교회)의 견해이다. 김목사는 특별히 앞으로의 시대 화두는 ‘생명’과 ‘영성’이라는 점도 ‘영성목회’ 등장원인에 한 몫 했다고 밝혔다.
김성윤목사는 과거에는 ‘수도원적 영성’을 개인주의적인 신앙만 강조하며, 역사적 도피라고 부정적인 해석을 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기독교적 생명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면서 예전과 다른 각도에서 ‘영성’을 바라보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과연 영성목회란 무엇인가. 김목사는 “딱히 꼬집어 ‘이것이 영성목회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정의를 내려본다면 ‘영혼을 바로 세우는 것’이 영성목회”라고 말했다.
목회자에게 있어 수도원적 영성은 필요하지만, 지도자가 신비적인 영성의 흐름을 갖는 것은 위험의 소지가 있다고 밝힌 김성윤목사는 영성목회의 바람직한 역할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따르도록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영성의 본질은 바로 “예수를 닮고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는 29일 ‘성령과 영성’이란 주제로 전국 신학자 세미나를 여는 국제신학연구원의 김삼환박사는 ‘영성’에 대해 두 가지 정의를 내렸다. 첫째, ‘영성’이란 원초적이고 근원적인 것을 의미한다. 지·정·의보다 더 깊은 인간의 ‘내면의 내면’과 같은 성격을 가진 것이 ‘영성’이라는 것이다. 김박사는 “지성보다 깊고, 감성보다 깊으며, 의지보다 더 깊은, 내 속에 있으면서도 나를 초월하는 것이 영성”이라고 말했다.
김박사는 하나님은 ‘영’이시며, 우리 또한 인간이 불어 넣어주신 ‘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근원적인 가능성으로서의 영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영성’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각 신학대학교의 커리큘럼에서도 나타난다. 감리교신학대학교 학부 과정에는 이번 학기에 ‘현대교회와 영성’(김외식교수)와 ‘목회와 영성’(임경수교수)라는 과목이, 감신대 대학원에서는 ‘목회와 영성’(안석모교수) 과목이 개설됐다. 장로회신학대학교 대학원에서도 ‘신학·영성·목회’(오성춘교수) 과목이, ‘영성훈련의 실제’, ‘영성지도의 이론과 실제’(오해룡교수)가 개설되므로 영성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러한 각 대학이 마련해놓은 영성관련 과목의 내용을 보면 중세 수도원적 영성에 대한 이론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렇게 영성훈련이 중세 수도원적 영성에 중점을 두는 것은 역사적으로 인정받고 검증을 받아야만 위험의 소지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삼환박사(한세대, 국제신학대학원 원장)의 설명이다. ‘해아래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김삼환박사는 ‘영성운동’에 있어 중요한 사실은 ‘새로운 것’이어야한다는 게 아니라 ‘새롭게 한다’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참된 영성과 신비주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중세로 회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각 신학대학이 중세 수도원적 영성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김박사는 영성운동의 성공은 교회사 속의 영성을 어떻게 현대화하며, 새롭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역설했다.
영성개발을 위한 프로그램 절실
한국교회는 지난 20여년간 꾸준한 외적인 성장을 계속했지만 율법적인 신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예수 그리스도와의 올바른 인격적인 관계를 강조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하면 순종할 것인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올바른 인격적 관계에서 오는 성숙보다는 그리스도인이 살아야할 윤리, 도덕적인 측면 강조 등 인본주의적인 면을 강조하다 보니 진정한 의미에서의 복음의 선포에 장애를 가져오게 됐다. 이에 이러한 결과에 대한 반성의 일환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하는’ 영성운동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이다. 영성운동의 핵심은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따르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윤리적인 면을 강조하므로 본질을 잃어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초기과정에서 영성운동에 대한 분명한 이해 부족과 분명한 신학적 해석이 부족하여서 빗나간 기도원 운동, 열광주의적 신앙, 잘못된 성령운동 등으로 인한 많은 폐해가 나타나기도 했다. 영성운동을 곧 올바른 신학적인 근거가 없는 체험우선주의적인 성령운동으로 이해하다 보니 한국교회는 때로는 물질주의적 가치관 강조, 지나친 이적과 기적 강조, 안수기도로 인한 문제 등 윤리의식마저도 상실된 영성운동을 진정한 영성운동인양 받아들였던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가 영성운동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한 부분의 하나는 바로 영성운동을 개인의 경건을 성취하려는 데 머무르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로인해 기도원 운동이 붐을 일으키고 나와 내 가족만 잘되면 된다는 소위 기복신앙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영성운동가들은 “진정한 영성운동은 교회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역사에 동참하는 공동체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21세기의 대안목회는 영성목회라고 말하는 시점에서 한국교회는 다시 한번 진정한 영성운동에 대한 올바른 방향설정과 함께 목회자들 스스로 개인적인 영성훈련을 통해 성도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영적 능력을 소유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최근 이러한 이유로 한국교회는 점차적으로 성도들의 영성훈련과 영성개발에 관심을 쏟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아직도 영성에 대한 분명한 신학적 이해가 부족하고 지나치게 개인적인 측면으로 치부해 버림에 따라 영성개발 프로그램이 매우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개교회에서 적용할 수 있는 영성 프로그램을 제시한다면 우선 연령층에 맞게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비롯한 다양한 영적 고전 작품을 접하므로서 이들의 삶을 조명해 보는 프로그램도 있고, 또한 무엇보다 가장 훌륭한 영적 성장을 돕기 위한 도구는 바로 성경으로 시편을 통한 신앙훈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한국교회가 어린아이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할 수 있는 다양한 영성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개인의 영적 성장을 돕는 일과 함께 공동체와 함께 할 수 있는 성숙을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영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해 부흥사와 영성단체의 자정노력이 시습할 것이다. 또한 목회자들 스스로도 영성 자체를 터부시할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신앙성숙을 위한 중요한 요인임으로 영성목회차원에서 스스로 영성개발함양에 주력해 나가는 한편 평신도들과 함께 교회를 세워나간다는 심정으로 말씀을 통한 영성프로그램개발에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21세기는 영성의 시대
이제 한국교회는 영성운동이 자리잡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먼저 한국교회는 그동안 영성운동을 잘못 이용하여 교계를 어지럽히고, 교회에 대한 위상을 손상시킨 과거를 반성하고 영성운동을 통해 한국교회가 제3부흥의 물결을 일으키기를 모든 교인들은 기대하고 있다.
21세기 한국교회는 영성의 시대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부흥사들과 기도원 원장, 영성센터는 영성운동을 상업적, 기복적으로 이용, 한국교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으며, 교회공동체를 어지럽히고 있다. 특별히 일부 부흥사들과 기도원 원장들은 기적과 이적을 하나의 영성운동으로 착각하고, 심지어는 직통계시 등으로 IMF한파로 어려움에 처한 교인들을 울리고 있다. 또한 이것을 교회성장의 방법으로 이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능력있는 사람으로 비화, 교인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영성운동에 대한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신학적인 정립 또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오늘 교회지도자들은 한편으로는 영성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교인들이 기도원 및 영성센터에 찾아가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막고 있다. 그래서 영성운동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교인들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님 나라 선교를 위해서 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보다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가 혼란해지고, 교인들의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교인들은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하여 영성단체 또는 기도원, 직통계시를 내리는 부흥사들을 찾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지도자들은 교인들이 안정을 다시 찾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영성프로그램을 마련, 교인들이 참여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 현장 영성운동가들의 주장이다.
“일부 부흥사와 기도원 원장들이 영성운동을 기복적, 상업적으로 이용, 교회공동체를 흔들어 놓고 있으며, 이것은 영성에 대한 신학적 정립과 영성프로그램 부재에서 오는 결과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교인들이 하나님과의 바른관계 정립을 위한 영성 프로그램 개발에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일부 부흥사와 기도원 원장의 기적과 이적, 직통계시 등은 영성운동이라고 할 수 없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이것을 이용하여 교인들의 빈주머니를 반강제적으로 짜내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라고 볼 수 없다. 무엇보다도 기적과 이적은 교회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으로 연결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기적과 이적 그리고 직통계시를 영성운동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교인들의 이같은 생각은 영성운동에 대해서 바르게 전달하지 못한 목회자들의 잘못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영성운동을 연구하는 신학자들은 영성운동에 대한 신학적인 정립과 아울러, 이를 바탕으로 한 영성프로그램 개발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실 한국교회의 영성에 관한 신학적인 논의가 미약했던 나머지, 일부 부흥사들과 기도원 원장들은
영성을 영적인 감화력이나, 감동으로만 활용, 사이비 영성운동가들을 수 없이 만들어 냈다. 이제 한국교회는 영성운동이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정열을 쏟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기복적인 요소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로운 영으로 하나님과 진정으로 합일하려는 정신을 교인들에게 심어주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교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기도운동을 지도하고, 영성운동이 교인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일어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유달상부장·윤용상차장·성민혜기자 공동취재·집필
(1600호, 200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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