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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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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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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스엔죠이
마음에서 맑은 샘이 흐르고
나를 키우는 말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서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 이해인 -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말을 하면서 살아가게 되어있습니다. 말을 못하는 농아들도 수화를 통해 그들의 말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어떤 형태든지 말이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의 생각, 의사를 표현하며 살게 되어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말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의 생각, 주장, 사상을 타인에게 들어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존재까지도 들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말은 단순하게 우리 인간의 의사소통의 수단만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 있게 하는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끔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27개월 된 아들 녀석을 보면서, 이 아이가 아직 말을 하지 못했을 때에는 하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하늘의 언어로 말을 했지만, 사람의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무한하고 무궁한 하늘의 뜻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이 하는 말의 우매함과 무책임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것입니다.
얼마 전에 현미와 시금치 등 농산물을 구입하러 감리교 농촌선교원에서 운영하는 '텃밭'을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필요한 물건을 찾느라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저쪽 계산대 쪽에서 제 아이의 말소리가 들립니다.
"할머니, 미워!"
콩나물과 두부를 계산하고 계신 할머니에게 난데없이 제 아들놈이 한 말입니다. 좀 당황해 하신 할머니는 씩 웃으시며,
"이 핼미가 늙고 볼품 없어 밉지?"
라고 말씀하셨지만, 마음에 좀 상처가 되신 모양입니다. 요즘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좋아!", "미워!"입니다. 채 세 돌도 되지 않는 아이가 사람의 좋고 그름을 판단하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말에 아비인 저는 몹시 혼란스러웠습니다. 갓 태어나서 그 해맑던 눈동자와 때묻지 않은 마음은 인간의 말을 배우면서 하나 둘 지워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서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이제 막 사람의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말이라는 것은 사람의 존재를 들어내어 주기도 하지만, 자기 주장과 고집, 욕심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사람의 말은 하늘의 뜻을 잃게 만드는 아주 좋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말 많은 교회, 말만 있는 신앙
우리는 말을 너무 많이 하며 살지는 않습니까?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너무 많은 말 때문에 우리 속의 말, 곧 마음의 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을 해 봐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말이 많아지면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려지고, 사람의 말에 이끌려 살아가게 됩니다.
여자들은 수다 떠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합니다. 남이 듣거나 말거나 혼자 떠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끔 그런 사람을 만나면 참 피곤합니다. 다언(多言)이란 말이 많은 것, 하고 싶은 대로 다 말하는 것, 생각나는 대로 다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참으로 말이 많습니다.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것이 교회입니다. 설교도 말이요, 기도도 말이며, 찬송도 입으로 하는 말입니다.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수없이 많은 말들 속에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담겨져 있어야 하는데, 그저 사람들의 말과 주장과 욕심이 담긴 기도와 설교의 말만 가득하여 가슴이 아픕니다. 말씀이 아닌 사람의 말로 설교도 하고 찬송도 부르고 기도를 하니,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교회 스스로도 변화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손, 발이 게으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교회는 말이 많은 만큼 손과 발은 별로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저 머리와 입만 발달해 가슴으로 느끼고 손과 발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얼마 전 서울에 있는 한 여자대학교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국교회 목사의 이미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설문조사에서 학생들이 많이 떠올린 목사 이미지는 '반짝반짝 빛나는 머리', '볼록하게 나온 배', '쉰 목소리', '할렐루야', '코미디언', '권위', '순종' 등 아주 안 좋은 이미지들만을 말했습니다.
목사의 이미지는 어쩌면 한국교회의 이미지와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부분의 부정적인 목사에 대한 이미지는 사람의 생각과 욕심을 담은 말들로 설교를 하고 기도를 하며, 때로는 성경의 좋은 말들을 하지만 그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이 씨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 가장 많이 죄를 범하는 부위는 손, 발이 아니라 입입니다. 입술로 우리는 많은 상처를 주고, 입술로 죄를 범하며, 입술로 사람을 정죄하고, 입술로 공동체를 해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말은 얼마나 많이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말을 얼마나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면 그 말에 에너지, 다시 말하면 힘이 담겨 있어 내가 한 말대로 된다는 얘기입니다. 만약에 "난 안돼!", "아이 짜증나!", "내가 뭐 그러면 그렇지!"라고 말을 뒤풀이하면, 나는 정말 쓸모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또 상대방에 대하여 "넌 절대로 할 수 없어!", "넌 맨날 그 모양이니?", "너 같은 애는 나랑 어울릴 수 없어"라고 말을 하면, 그 사람에게 그 말의 에너지가 전달되어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받고 좌절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는 말이 우리의 생각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뿌려놓은 말의 씨앗이 나의 행복이나 불행, 타인의 행복이나 불행을 끌어들인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말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말은 씨를 담고 있어서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게도 하는 '살아있는 실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품고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이하에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신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모든 것은 말씀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이 사람이 빛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5절).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었습니다(14절).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요, 모든 생명을 지닌 것들은 바로 말씀을 품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을 죽이는 말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살아있는 말씀'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품은 자는 선한 말,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하며 삽니다. 그러나 말씀을 품지 않고 사람의 생각과 욕심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에게 이로운 말만하여 이웃에게 해를 끼치며 삽니다.
주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마음에 쌓아 두었다가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을 마음에 쌓아 두었다가 악한 것을 내놓는 것이 아니겠느냐. 잘 들어라. 심판 날이 오면 자기가 지껄인 터무니없는 말을 낱낱이 해명해야 될 것이다. 네가 한 말에 따라서 너는 옳은 사람으로 인정받게도 되고 죄인으로 판결 받게도 될 것이다"(마 12:35-37).
우리가 무엇을 품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입으로 나오는 말이 사람을 살리고 해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한 말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더욱 부끄럽고 죄스런 삶을 고백하게 합니다.
나를 살리는 말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말을 하며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말씀을 품고 살면서 그 말씀에 따라 말을 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을 살리고 이웃을 살리며 생명을 살리는 생명의 말을 하며 그대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내가 선한 마음을 품고 거룩하신 말씀을 품고 말을 하면 그 말이 나를 살리고 생명을 살린다는 이 진리를 깨달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인은 말합니다. 내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 나는 정말 행복해지고, 내가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내 마음이 더욱 순해지고, 내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서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그대, 나는 정말 행복하다, 말하라. 그러면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리라.
그대, 누군가에게 고맙다, 말하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이 더욱 선해지리라.
그대, 자연을 보고 아름답다, 말하라. 그러면 그대 자신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리라.
이렇게 한 마디 말이 이웃을 살리고 자연을 아름답게 물 드리며 결국 자기 자신을 살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좋은 말 한 마디가 자기 자신을 키운다고 고백합니다.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말씀을 품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를 키우고 이웃을 살리며 자연을 아름답게 노래하는 말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입을 통해 이 세상에 아름답게 전달되어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채희동 (2002-01-14 오후 12:40:42)
마음에서 맑은 샘이 흐르고
나를 키우는 말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서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 이해인 -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말을 하면서 살아가게 되어있습니다. 말을 못하는 농아들도 수화를 통해 그들의 말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어떤 형태든지 말이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의 생각, 의사를 표현하며 살게 되어 있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말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의 생각, 주장, 사상을 타인에게 들어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존재까지도 들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말은 단순하게 우리 인간의 의사소통의 수단만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으로 있게 하는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끔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27개월 된 아들 녀석을 보면서, 이 아이가 아직 말을 하지 못했을 때에는 하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하늘의 언어로 말을 했지만, 사람의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무한하고 무궁한 하늘의 뜻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이 하는 말의 우매함과 무책임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것입니다.
얼마 전에 현미와 시금치 등 농산물을 구입하러 감리교 농촌선교원에서 운영하는 '텃밭'을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필요한 물건을 찾느라 분주했습니다. 그런데 저쪽 계산대 쪽에서 제 아이의 말소리가 들립니다.
"할머니, 미워!"
콩나물과 두부를 계산하고 계신 할머니에게 난데없이 제 아들놈이 한 말입니다. 좀 당황해 하신 할머니는 씩 웃으시며,
"이 핼미가 늙고 볼품 없어 밉지?"
라고 말씀하셨지만, 마음에 좀 상처가 되신 모양입니다. 요즘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은 "좋아!", "미워!"입니다. 채 세 돌도 되지 않는 아이가 사람의 좋고 그름을 판단하고 일방적으로 선언하는 말에 아비인 저는 몹시 혼란스러웠습니다. 갓 태어나서 그 해맑던 눈동자와 때묻지 않은 마음은 인간의 말을 배우면서 하나 둘 지워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서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이제 막 사람의 말을 배우기 시작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말이라는 것은 사람의 존재를 들어내어 주기도 하지만, 자기 주장과 고집, 욕심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사람의 말은 하늘의 뜻을 잃게 만드는 아주 좋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말 많은 교회, 말만 있는 신앙
우리는 말을 너무 많이 하며 살지는 않습니까?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너무 많은 말 때문에 우리 속의 말, 곧 마음의 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을 해 봐야 할 것입니다. 사람의 말이 많아지면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려지고, 사람의 말에 이끌려 살아가게 됩니다.
여자들은 수다 떠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합니다. 남이 듣거나 말거나 혼자 떠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끔 그런 사람을 만나면 참 피곤합니다. 다언(多言)이란 말이 많은 것, 하고 싶은 대로 다 말하는 것, 생각나는 대로 다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교회는 참으로 말이 많습니다. 말로 시작해서 말로 끝나는 것이 교회입니다. 설교도 말이요, 기도도 말이며, 찬송도 입으로 하는 말입니다.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수없이 많은 말들 속에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이 담겨져 있어야 하는데, 그저 사람들의 말과 주장과 욕심이 담긴 기도와 설교의 말만 가득하여 가슴이 아픕니다. 말씀이 아닌 사람의 말로 설교도 하고 찬송도 부르고 기도를 하니,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교회 스스로도 변화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손, 발이 게으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교회는 말이 많은 만큼 손과 발은 별로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저 머리와 입만 발달해 가슴으로 느끼고 손과 발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합니다.
얼마 전 서울에 있는 한 여자대학교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국교회 목사의 이미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설문조사에서 학생들이 많이 떠올린 목사 이미지는 '반짝반짝 빛나는 머리', '볼록하게 나온 배', '쉰 목소리', '할렐루야', '코미디언', '권위', '순종' 등 아주 안 좋은 이미지들만을 말했습니다.
목사의 이미지는 어쩌면 한국교회의 이미지와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부분의 부정적인 목사에 대한 이미지는 사람의 생각과 욕심을 담은 말들로 설교를 하고 기도를 하며, 때로는 성경의 좋은 말들을 하지만 그 말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이 씨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 가장 많이 죄를 범하는 부위는 손, 발이 아니라 입입니다. 입술로 우리는 많은 상처를 주고, 입술로 죄를 범하며, 입술로 사람을 정죄하고, 입술로 공동체를 해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말은 얼마나 많이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치 있는 말을 얼마나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할 수 있습니다.
'말이 씨가 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면 그 말에 에너지, 다시 말하면 힘이 담겨 있어 내가 한 말대로 된다는 얘기입니다. 만약에 "난 안돼!", "아이 짜증나!", "내가 뭐 그러면 그렇지!"라고 말을 뒤풀이하면, 나는 정말 쓸모 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또 상대방에 대하여 "넌 절대로 할 수 없어!", "넌 맨날 그 모양이니?", "너 같은 애는 나랑 어울릴 수 없어"라고 말을 하면, 그 사람에게 그 말의 에너지가 전달되어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받고 좌절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는 말이 우리의 생각과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뿌려놓은 말의 씨앗이 나의 행복이나 불행, 타인의 행복이나 불행을 끌어들인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말이라는 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말은 씨를 담고 있어서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게도 하는 '살아있는 실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품고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이하에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신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모든 것은 말씀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이 사람이 빛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1-5절).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었습니다(14절).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요, 모든 생명을 지닌 것들은 바로 말씀을 품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생명을 죽이는 말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살아있는 말씀'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품은 자는 선한 말,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하며 삽니다. 그러나 말씀을 품지 않고 사람의 생각과 욕심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에게 이로운 말만하여 이웃에게 해를 끼치며 삽니다.
주님께서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선한 사람은 선한 것을 마음에 쌓아 두었다가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사람은 악한 것을 마음에 쌓아 두었다가 악한 것을 내놓는 것이 아니겠느냐. 잘 들어라. 심판 날이 오면 자기가 지껄인 터무니없는 말을 낱낱이 해명해야 될 것이다. 네가 한 말에 따라서 너는 옳은 사람으로 인정받게도 되고 죄인으로 판결 받게도 될 것이다"(마 12:35-37).
우리가 무엇을 품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입으로 나오는 말이 사람을 살리고 해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한 말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를 더욱 부끄럽고 죄스런 삶을 고백하게 합니다.
나를 살리는 말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어떤 마음을 품고 어떤 말을 하며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말씀을 품고 살면서 그 말씀에 따라 말을 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을 살리고 이웃을 살리며 생명을 살리는 생명의 말을 하며 그대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내가 선한 마음을 품고 거룩하신 말씀을 품고 말을 하면 그 말이 나를 살리고 생명을 살린다는 이 진리를 깨달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인은 말합니다. 내가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 나는 정말 행복해지고, 내가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내 마음이 더욱 순해지고, 내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서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그대, 나는 정말 행복하다, 말하라. 그러면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리라.
그대, 누군가에게 고맙다, 말하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이 더욱 선해지리라.
그대, 자연을 보고 아름답다, 말하라. 그러면 그대 자신도 아름다운 사람이 되리라.
이렇게 한 마디 말이 이웃을 살리고 자연을 아름답게 물 드리며 결국 자기 자신을 살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좋은 말 한 마디가 자기 자신을 키운다고 고백합니다.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말씀을 품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를 키우고 이웃을 살리며 자연을 아름답게 노래하는 말을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세상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입을 통해 이 세상에 아름답게 전달되어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채희동 (2002-01-14 오후 12: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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