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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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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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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영혼의 진보를 위한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단순히 신앙을 가지고 있기만 하면 영혼이 발전하는 줄 압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과 인격 속에, 적용되어야 하며 이를 통하여 영혼은 발전
하는 것입니다.
또한 날마다 경험하는 생각과 마음의 전쟁도 영혼의 성장을 위한 중요한 훈련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즐거운 것을 좋아하고 불쾌한 경험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영혼의 차원에서는 즐거운 일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불쾌한 일이 꼭
나쁜 것만도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즐거움에 너무 빠지지 말고 그것을 다스려야하며 불쾌한 일도 성장을 위한
좋은 기회로서 대처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작년 여름에 일주일정도 밤잠을 설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건너편 단독주택에 어떤 사람이 이사를 왔고, 그 집에 덩치가 몹시 큰 진돗개가 밤마다 아주 심하게 짖어댔기 때문입니다.
이 개가 왜 짖어대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밤중에 사람이 조금만 지나가도
약 10분이나 20분쯤 계속 짖어댔습니다.
우리 집은 길가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녔고 따라서 그 개는 거의 밤새
짖었습니다.
내 방이 바로 그 집과 접해 있었으므로 나는 개의 짖는 소리가 아주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깊은 여름밤, 날은 덥고 시끄러워 잠을 잘 수는 없고...
기도하라는 신호인가보다 하고 기도만 하고 있다가 나는 아무래도 그 집주인에게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집주인은 미국에서 5년간 살다오신 분이라고 들었기에 예의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주위에 있는 다른 집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그 시끄러운 개 짖는 소리에 아무도 항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 건너편 빌라에서 8가구가 사는데 이들은 사흘이 멀다하고 싸웁니다.
몹시 성격이 격한 분들만 모였는지 욕설, 폭력, 부부싸움이 자주 벌어지고, 말리고,
경찰이 오고.... 이런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거칠은 분들이 그 시끄러운 소리를 참고 있을까요?
나는 그 정답을 압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분노를 잘 다스리거나 표현할 줄 모릅니다.
뒤에서 욕은 잘하지만 앞에서는 내놓고 항의를 하지 못합니다.
대부분 웬만한 것은 참고 또 참습니다.
그러다가 참는 것이 한계에 이르면 폭발하여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아마 빌라의 사람들은 속으로 욕을 하며 참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큰 싸움을 벌릴 것입니다.
나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에 그들 중의 하나가 단독주택의 주인 아저씨에게 - 그분은 몹시 연세가
많이 드신 분이었는데도 - 개 짖는 소리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삿대질하고 욕하며 한참이나 싸웠던 것입니다. 몇 달 전의 일을 가지고 말입니다.
분노란, 불쾌감이란 결코 나쁜 감정은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의 고유 속성에 대한 방어, 보호, 더 높은 세계를 향한 발전을 위하여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다만 이러한 항의와 유감의 표시를 격앙된 감정으로 표현하지 않고 부드럽고, 따뜻하며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할 뿐입니다.
어느 날 밤 12시가 넘은 시간, 30분이 넘도록 개가 쉬지 않고 짖어대자 나는 할 수 없이
일어나 그 집으로 갔습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주인 아주머니의 음성이 들립니다.
"누구세요?"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대답합니다.
"안녕하세요.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저는 옆집의 2층에 사는 사람인데요. 개가 짖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왔는데,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50대쯤의 아주머니가 나오고 무슨 일인가 싶어 장성한 아들도 같이 나왔습니다. 아주머니는 내가 위협적인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는 곧 아들을 들여보냈습니다.
내가 먼저 말을 시작했습니다.
"죄송해요.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웃에서 이렇게 초면에 항의부터 하고...
괜히 잠을 깨운 것은 아닌가요?"
그녀는 나의 우호적인 태도에 일단 안심하는 모습입니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개 짖는 소리가 그렇게 시끄러운가요?"
"예. 저의 집은 바로 붙어있기 때문에 아주 크게 들립니다. 원래 소리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잖아요. 그래서 제가 한 주일 동안 밤을 꼬박 새웠어요. 지금도 많이 망설이다가
내려온 겁니다. 기분이 언짢으실 것 같아서."
그녀는 아직 납득이 잘 안가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개라는 게 뭐예요. 집을 지키는 것 아닌가요? 집을 지키려고 하면 좀 짖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나는 이 개가 짖을 수도 있는 보통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는 것, 행인이 지나가기만
해도 오랫동안 큰소리로 짖는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 개 자신에게는 이유가 있겠지만 - 혼자서 짖는다고 말했습니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나는 몹시 조심하면서 그녀에게 대하여 신뢰와 애정을 품고
부드럽게 이야기를 해나갔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때쯤에는 우리사이에 편안한, 친구와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특유의 목소리를 유머스럽게 흉내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게 뭐예요. 밤에 잠을 자야 되는 게 아닌가요? 그래야 낮에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녀는 한참동안 웃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는 개의 이야기에서 그녀의 고향, 미국에서 온 이야기 등 여러 다른
주제로 흐르게 되었습니다.
무더운 여름밤, 자정이 넘은 시간에 개 짖는 소리로 시작된 우리의 만남은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즐겁고, 부드럽고, 감미로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쾌하고,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물론 그렇게 했을 때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는 상대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그러한 고통과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뭔가 나의 영적 성장에 필요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인정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감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는 내게 인사를 했습니다.
"저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 이렇게 잘 대해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군요."
나도 인사를 했습니다.
"개 때문에 아주머니를 알게 되었으니 참 기쁘고 좋군요."
그녀가 개에게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이후부터는 개의 짖는 소리는 거의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 다음날 여러 사람들에게 저 이층에 사는 남자가 누구냐고 물어보았던 모양입니다. 우리 집 위층에 살고있는 주인이 그녀에게 '목사님이세요.' 라고 대답하자
"아아... 어쩐지..." 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마주치면 눈인사를 나누고 대화도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개 덕분에 좋은
이웃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작은 승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겪을 수 있는 억울함, 분노, 배반당함 등은 우리가 더 섬길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영혼이 진보될 수 있으며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일을 만났을 때, 또는 연인이나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등에서만 즐겁고 행복한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영역이 너무나 적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도 즐길 수 있으며 어떠한 인간 관계도 즐길 수 있다면, 심지어 불편한
상황, 우리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도 마치 연인 관계처럼 즐길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의 행복한 영역은 매우 증가될 것입니다.
영적으로 어릴 때 우리는 우호적인 사람 앞에서만 행복할 수 있지만 영적으로 성장할
수록 우리는 적대적인 사람 앞에서도 사랑하며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님께서는 그를 배반한 가룟 유다를 사랑하셨으며 심지어 그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애절한 사랑을 부으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다음과 같은 그의 마지막 기도를 남기셨던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23:34)
우리는 세상과 싸웁니다.
세상은 미움과 욕설과 중상모략으로, 우리는 사랑과 겸손과 온유로 싸웁니다.
세상의 미움이 우리의 사랑보다 강하면 우리는 싸움에서 지게 되고 그리하여 서로
미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이 세상의 미움보다 강하다면 우리는 싸움을 이기게 되고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분노할 수 있는 많은 상황, 많은 기회가 올 때,
사랑으로 승리하십시오.
부드러움으로 이기십시오.
당신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으십시오.
생각을 바르게 관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아름다운 영성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단순히 신앙을 가지고 있기만 하면 영혼이 발전하는 줄 압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과 인격 속에, 적용되어야 하며 이를 통하여 영혼은 발전
하는 것입니다.
또한 날마다 경험하는 생각과 마음의 전쟁도 영혼의 성장을 위한 중요한 훈련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즐거운 것을 좋아하고 불쾌한 경험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영혼의 차원에서는 즐거운 일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며 불쾌한 일이 꼭
나쁜 것만도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즐거움에 너무 빠지지 말고 그것을 다스려야하며 불쾌한 일도 성장을 위한
좋은 기회로서 대처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작년 여름에 일주일정도 밤잠을 설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건너편 단독주택에 어떤 사람이 이사를 왔고, 그 집에 덩치가 몹시 큰 진돗개가 밤마다 아주 심하게 짖어댔기 때문입니다.
이 개가 왜 짖어대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밤중에 사람이 조금만 지나가도
약 10분이나 20분쯤 계속 짖어댔습니다.
우리 집은 길가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녔고 따라서 그 개는 거의 밤새
짖었습니다.
내 방이 바로 그 집과 접해 있었으므로 나는 개의 짖는 소리가 아주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깊은 여름밤, 날은 덥고 시끄러워 잠을 잘 수는 없고...
기도하라는 신호인가보다 하고 기도만 하고 있다가 나는 아무래도 그 집주인에게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집주인은 미국에서 5년간 살다오신 분이라고 들었기에 예의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주위에 있는 다른 집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그 시끄러운 개 짖는 소리에 아무도 항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 건너편 빌라에서 8가구가 사는데 이들은 사흘이 멀다하고 싸웁니다.
몹시 성격이 격한 분들만 모였는지 욕설, 폭력, 부부싸움이 자주 벌어지고, 말리고,
경찰이 오고.... 이런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거칠은 분들이 그 시끄러운 소리를 참고 있을까요?
나는 그 정답을 압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분노를 잘 다스리거나 표현할 줄 모릅니다.
뒤에서 욕은 잘하지만 앞에서는 내놓고 항의를 하지 못합니다.
대부분 웬만한 것은 참고 또 참습니다.
그러다가 참는 것이 한계에 이르면 폭발하여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아마 빌라의 사람들은 속으로 욕을 하며 참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큰 싸움을 벌릴 것입니다.
나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에 그들 중의 하나가 단독주택의 주인 아저씨에게 - 그분은 몹시 연세가
많이 드신 분이었는데도 - 개 짖는 소리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삿대질하고 욕하며 한참이나 싸웠던 것입니다. 몇 달 전의 일을 가지고 말입니다.
분노란, 불쾌감이란 결코 나쁜 감정은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의 고유 속성에 대한 방어, 보호, 더 높은 세계를 향한 발전을 위하여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다만 이러한 항의와 유감의 표시를 격앙된 감정으로 표현하지 않고 부드럽고, 따뜻하며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할 뿐입니다.
어느 날 밤 12시가 넘은 시간, 30분이 넘도록 개가 쉬지 않고 짖어대자 나는 할 수 없이
일어나 그 집으로 갔습니다.
초인종을 누르자 주인 아주머니의 음성이 들립니다.
"누구세요?"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대답합니다.
"안녕하세요. 늦은 밤에 죄송합니다. 저는 옆집의 2층에 사는 사람인데요. 개가 짖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왔는데,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50대쯤의 아주머니가 나오고 무슨 일인가 싶어 장성한 아들도 같이 나왔습니다. 아주머니는 내가 위협적인 사람이 아닌 것을 알고는 곧 아들을 들여보냈습니다.
내가 먼저 말을 시작했습니다.
"죄송해요.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웃에서 이렇게 초면에 항의부터 하고...
괜히 잠을 깨운 것은 아닌가요?"
그녀는 나의 우호적인 태도에 일단 안심하는 모습입니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개 짖는 소리가 그렇게 시끄러운가요?"
"예. 저의 집은 바로 붙어있기 때문에 아주 크게 들립니다. 원래 소리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잖아요. 그래서 제가 한 주일 동안 밤을 꼬박 새웠어요. 지금도 많이 망설이다가
내려온 겁니다. 기분이 언짢으실 것 같아서."
그녀는 아직 납득이 잘 안가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개라는 게 뭐예요. 집을 지키는 것 아닌가요? 집을 지키려고 하면 좀 짖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나는 이 개가 짖을 수도 있는 보통의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는 것, 행인이 지나가기만
해도 오랫동안 큰소리로 짖는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 개 자신에게는 이유가 있겠지만 - 혼자서 짖는다고 말했습니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나는 몹시 조심하면서 그녀에게 대하여 신뢰와 애정을 품고
부드럽게 이야기를 해나갔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때쯤에는 우리사이에 편안한, 친구와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특유의 목소리를 유머스럽게 흉내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게 뭐예요. 밤에 잠을 자야 되는 게 아닌가요? 그래야 낮에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그녀는 한참동안 웃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는 개의 이야기에서 그녀의 고향, 미국에서 온 이야기 등 여러 다른
주제로 흐르게 되었습니다.
무더운 여름밤, 자정이 넘은 시간에 개 짖는 소리로 시작된 우리의 만남은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즐겁고, 부드럽고, 감미로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쾌하고,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따뜻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물론 그렇게 했을 때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는 상대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때는 그러한 고통과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 뭔가 나의 영적 성장에 필요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인정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감당하면 되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는 내게 인사를 했습니다.
"저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 이렇게 잘 대해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군요."
나도 인사를 했습니다.
"개 때문에 아주머니를 알게 되었으니 참 기쁘고 좋군요."
그녀가 개에게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이후부터는 개의 짖는 소리는 거의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 다음날 여러 사람들에게 저 이층에 사는 남자가 누구냐고 물어보았던 모양입니다. 우리 집 위층에 살고있는 주인이 그녀에게 '목사님이세요.' 라고 대답하자
"아아... 어쩐지..." 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마주치면 눈인사를 나누고 대화도 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개 덕분에 좋은
이웃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작은 승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겪을 수 있는 억울함, 분노, 배반당함 등은 우리가 더 섬길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영혼이 진보될 수 있으며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일을 만났을 때, 또는 연인이나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등에서만 즐겁고 행복한 마음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영역이 너무나 적게 될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도 즐길 수 있으며 어떠한 인간 관계도 즐길 수 있다면, 심지어 불편한
상황, 우리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의 관계도 마치 연인 관계처럼 즐길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의 행복한 영역은 매우 증가될 것입니다.
영적으로 어릴 때 우리는 우호적인 사람 앞에서만 행복할 수 있지만 영적으로 성장할
수록 우리는 적대적인 사람 앞에서도 사랑하며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님께서는 그를 배반한 가룟 유다를 사랑하셨으며 심지어 그를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애절한 사랑을 부으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다음과 같은 그의 마지막 기도를 남기셨던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23:34)
우리는 세상과 싸웁니다.
세상은 미움과 욕설과 중상모략으로, 우리는 사랑과 겸손과 온유로 싸웁니다.
세상의 미움이 우리의 사랑보다 강하면 우리는 싸움에서 지게 되고 그리하여 서로
미워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사랑이 세상의 미움보다 강하다면 우리는 싸움을 이기게 되고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분노할 수 있는 많은 상황, 많은 기회가 올 때,
사랑으로 승리하십시오.
부드러움으로 이기십시오.
당신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으십시오.
생각을 바르게 관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아름다운 영성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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