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오늘의

읽을꺼리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들판에나가 햇볕 쬐며 아름다움을 느껴라

수필칼럼사설 안준철............... 조회 수 2890 추천 수 0 2002.12.04 12:03:19
.........
출처 :  
출처/국민일보 2000.2.11일자 34면

[연작 가족소설] 사을이네 집 (26)

아들아이의 책상을 살피다가 책꽂이에 꽂혀있는 ‘안네의 일기’에 눈이 갔다.전쟁 중에 사춘기를 겪게 되는 안네의 가슴 아픈 성장 이야기가 아들아이에게는 어떻게 비쳐졌을까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는데 이런 문구가 눈에 띄었다.

“밖으로 나가라.들판으로 가서 햇볕을 쬐며 아름다움을 느껴라.너 자신과 하나님 가운데서 다시 한 번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해라”

마치 선지자가 전하는 강한 메시지를 대하듯,나는 활자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마저 느끼며 몇 번인가를 반복해서 그 문구를 읽고 또 읽었다.그 사이,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한 가지 기억이 되살아났다.오래 전에 아들아이와 한 약속이었다.방학이 오면 우리 나라에서 가장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가서 하룻밤을 묵고 오자고 아들아이와 새끼손가락까지 걸며 약속을 했던 것이다.

눈이 많이 오는 곳이라면 강원도 대관령이나 원주 근처가 되겠는데,우리는 그곳까지 기차 여행을 할 생각이었다.여행 경비를 한꺼번에 마련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아내는 이미 오래 전부터 매월 조금씩 돈을 떼어 봉투에 넣어왔던 터였다.그런데 겨울철마다 허리병이 도져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겨울 여행을 먼저 제안한 것은 아들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그런데 아들아이와의 여행을 마음에 둔 것은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인,내 나이 스물 서너 살쯤 되던 해의 일이었다.나는 당시 전역을 불과 몇 달 남겨두지 않은 군인이었고,어느 토요일 오후에 외출을 나가 영화 한 편을 본 것이 미래의 아들아이와 열차 여행을 꿈꾸게 된 계기가 된 것이었다.

‘닥터 지바고’! 바로 그 영화였다.러시아 볼셰비키혁명의 서슬 퍼런 상황 속에서도 피난 열차 화물칸의 작은 틈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아들에게 보여주던 시인 지바고의 눈빛! 바람에 스치는 나무들과 먼 평원으로부터 비쳐오는 은빛 햇살을 아들과 함께 바라보며 즐거워하던 그 천진난만한 눈빛을 보면서,나는 현실의 거친 세파를 이길 수 있는 진정한 힘은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순수함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어쩌면 나는 그때 내 생애 가장 중요한 신념 하나를 세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래 했어요.여기 한참을 서 있었는데”

책을 책꽂이에 다시 꽃아놓고 막 아들아이의 방을 나오려던 참이었다.언제 들어왔는지 아내가 문쪽에 서 있었다.그런데 아내는 뭔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것이었다.마치 큰 누이가 철이 막 들기 시작하는 남동생을 바라보는 그런 눈빛이다.

“왜 그런 표정이야?”

“뭐가요?그런데 당신 참 많이 변했어요.풀어 논 망아지가 따로 없었는데”

아내는 또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할 모양이다.나를 빼다 박은 한 생명을 만나기 전까지의 부실했던 지난 삶의 이야기를.

다음날 나는 아들아이와 함께 아침 일찍 동네 약수터를 찾았다.그런데 나무 껍질에 뭔가 이상한 흔적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아들에게 물었다.

“사을아,여기 나무 껍질에 무슨 보리쌀 같이 갈라진 것들이 뭐지?”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아들아이에게 물어보는 버릇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그건 나무들이 겨울에 숨을 쉬기 위해서 생긴 거예요.나무는 잎으로 숨을 쉬는데 겨울에는 이파리가 다 떨어지고 없으니 여기 이 갈라진 틈 사이로 숨을 쉬는 거예요”

“그렇구나.이파리가 없으면 숨을 쉬지 못하겠구나.그래서 나무가 숨을 쉬려고 제 몸에 상처를 낸 것이구나.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알았니?”

“과학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요즘 들어 나는 아들에게 배우는 것이 부쩍 많아졌다.녀석은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을 마치 잘 아는 양 아는 체를 하면 조심스럽고도 점잖게 틀린 부분을 고쳐 주고 나중에는 아주 상세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아들에게 한 수 배웠다는 생각에 나도 한 수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때마침 우리는 응달에 남아 있는 눈을 사뿐히 즈려밟고 지나가던 참이었다.

“사을아,눈은 말이야 사람들에게 밟히면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 또 길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말이야”
“그렇네!”

“추운 응달에 있는 눈이 양지에 있는 눈보다 더 오래 가고 말이지”

“아빠,그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어,아닌가?”

슬픔의 힘이랄까,그런 것을 아들아이가 알기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무언가 새로운 것을 접할 때의 그 눈빛은 깊은 산길을 가다보면 만나기 십상인 청솔모의 먹빛 눈망울을 영락없이 닮았다.사람을 해치려하지도 않고,그렇다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그 순수의 눈빛을.

00-02-10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4 수필칼럼사설 교회의 긴장감 박기삼 2002-12-26 2894
133 수필칼럼사설 텅빈충만 법정 2002-12-26 3233
132 사회역사경제 경제윤리 이상원 2002-12-26 3167
131 인기감동기타 나이 기록부... 내 나이는 어디에?? 최용우 2002-12-24 2873
130 수필칼럼사설 주일과 주말 이상원 박사 2002-12-13 3172
129 수필칼럼사설 민족의 정신과 사상을 세우자 박재순목사 2002-12-13 3126
128 목회독서교육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열가지 원리 최용우 2002-12-13 3298
127 목회독서교육 교회 처음 온 사람을 내 교인 만드는 비결 최용우 2002-12-13 3697
126 목회독서교육 새신자 확보하는 방법 명성훈 목사 2002-12-13 4077
125 생명환경자연 [칼럼] 행복의 지름길 윤구병 2002-12-13 4194
124 수도관상피정 침묵훈련 엄두섭 목사  2002-12-13 3821
123 수도관상피정 영적일지 기록하기 엄두섭 목사  2002-12-13 3281
122 수도관상피정 집중기도 엄두섭 목사 2002-12-04 3219
121 선교화제현장 [인물연구] 金鎭洪 두레교회 목사·두레마을 대표 李根美 자유기고가  2002-12-04 5345
» 수필칼럼사설 들판에나가 햇볕 쬐며 아름다움을 느껴라 안준철 2002-12-04 2890
119 수도관상피정 거룩한 독서기도 -말씀을 통한 5단계 기도법 엄두섭  2002-11-30 4631
118 영성묵상훈련 [로버트 멍어] 내마음 그리스도의 집 ivp 2002-11-30 4045
117 선교화제현장 임의진 목사…대이은 농촌사랑 실천목회 이병모기자 2002-11-26 3445
116 한국교회허와실 ■ 개척교회 목사들의 현실 기독교신문 2002-11-26 4933
115 한국교회허와실 ■ 신대원 졸업생 진로 문제 기독교신문 2002-11-26 5269
114 한국교회허와실 ■ 교회의 주5일 근무제 대처방안 기독교신문 2002-11-26 4090
113 인기감동기타 24가지 커피 만들기 돌쇠 2002-11-24 3195
112 인기감동기타 일년내내 줄수있는 101가지 선물 peace119 2002-11-24 3349
111 수필칼럼사설 팬티를 벗고 연제영  2002-11-24 5045
110 인기감동기타 불온한 아름다움 -남녘교회 전라도닷컴 2002-11-24 2795
109 수필칼럼사설 이 믿음를 가진 자를 만나고 싶다. 손무성 2002-11-24 3182
108 선교화제현장 꽃 나무 새들과 함께하는 새하늘의교회 들소리신문 2002-11-23 3557
107 수필칼럼사설 [읽을꺼리35] 교회와 교회당의 그 분명한 성경적 차이 이종섭 2002-11-21 3086
106 수필칼럼사설 예비하시는 하나님... 이신자 사모 2002-11-18 3857
105 생명환경자연 원시인처럼 흙과 함께 한마음공동체 2002-11-18 3674
104 수필칼럼사설 상품과 작품 김남준 목사 2002-11-18 3465
103 목회독서교육 들꽃이었다 한희철 2002-11-15 3580
102 생명환경자연 21세기와 생명교회론 박재순 2002-11-15 3143
101 생명환경자연 살아숨쉬는 집이 아름다운 집입니다 녹색환경  2002-11-13 3566
100 영성묵상훈련 불쾌한 일은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정원 목사 2002-11-13 3052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