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
출처/국민일보 2000.2.11일자 34면
[연작 가족소설] 사을이네 집 (26)
아들아이의 책상을 살피다가 책꽂이에 꽂혀있는 ‘안네의 일기’에 눈이 갔다.전쟁 중에 사춘기를 겪게 되는 안네의 가슴 아픈 성장 이야기가 아들아이에게는 어떻게 비쳐졌을까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는데 이런 문구가 눈에 띄었다.
“밖으로 나가라.들판으로 가서 햇볕을 쬐며 아름다움을 느껴라.너 자신과 하나님 가운데서 다시 한 번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해라”
마치 선지자가 전하는 강한 메시지를 대하듯,나는 활자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마저 느끼며 몇 번인가를 반복해서 그 문구를 읽고 또 읽었다.그 사이,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한 가지 기억이 되살아났다.오래 전에 아들아이와 한 약속이었다.방학이 오면 우리 나라에서 가장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가서 하룻밤을 묵고 오자고 아들아이와 새끼손가락까지 걸며 약속을 했던 것이다.
눈이 많이 오는 곳이라면 강원도 대관령이나 원주 근처가 되겠는데,우리는 그곳까지 기차 여행을 할 생각이었다.여행 경비를 한꺼번에 마련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아내는 이미 오래 전부터 매월 조금씩 돈을 떼어 봉투에 넣어왔던 터였다.그런데 겨울철마다 허리병이 도져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겨울 여행을 먼저 제안한 것은 아들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그런데 아들아이와의 여행을 마음에 둔 것은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인,내 나이 스물 서너 살쯤 되던 해의 일이었다.나는 당시 전역을 불과 몇 달 남겨두지 않은 군인이었고,어느 토요일 오후에 외출을 나가 영화 한 편을 본 것이 미래의 아들아이와 열차 여행을 꿈꾸게 된 계기가 된 것이었다.
‘닥터 지바고’! 바로 그 영화였다.러시아 볼셰비키혁명의 서슬 퍼런 상황 속에서도 피난 열차 화물칸의 작은 틈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아들에게 보여주던 시인 지바고의 눈빛! 바람에 스치는 나무들과 먼 평원으로부터 비쳐오는 은빛 햇살을 아들과 함께 바라보며 즐거워하던 그 천진난만한 눈빛을 보면서,나는 현실의 거친 세파를 이길 수 있는 진정한 힘은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순수함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어쩌면 나는 그때 내 생애 가장 중요한 신념 하나를 세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래 했어요.여기 한참을 서 있었는데”
책을 책꽂이에 다시 꽃아놓고 막 아들아이의 방을 나오려던 참이었다.언제 들어왔는지 아내가 문쪽에 서 있었다.그런데 아내는 뭔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것이었다.마치 큰 누이가 철이 막 들기 시작하는 남동생을 바라보는 그런 눈빛이다.
“왜 그런 표정이야?”
“뭐가요?그런데 당신 참 많이 변했어요.풀어 논 망아지가 따로 없었는데”
아내는 또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할 모양이다.나를 빼다 박은 한 생명을 만나기 전까지의 부실했던 지난 삶의 이야기를.
다음날 나는 아들아이와 함께 아침 일찍 동네 약수터를 찾았다.그런데 나무 껍질에 뭔가 이상한 흔적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아들에게 물었다.
“사을아,여기 나무 껍질에 무슨 보리쌀 같이 갈라진 것들이 뭐지?”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아들아이에게 물어보는 버릇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그건 나무들이 겨울에 숨을 쉬기 위해서 생긴 거예요.나무는 잎으로 숨을 쉬는데 겨울에는 이파리가 다 떨어지고 없으니 여기 이 갈라진 틈 사이로 숨을 쉬는 거예요”
“그렇구나.이파리가 없으면 숨을 쉬지 못하겠구나.그래서 나무가 숨을 쉬려고 제 몸에 상처를 낸 것이구나.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알았니?”
“과학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요즘 들어 나는 아들에게 배우는 것이 부쩍 많아졌다.녀석은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을 마치 잘 아는 양 아는 체를 하면 조심스럽고도 점잖게 틀린 부분을 고쳐 주고 나중에는 아주 상세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아들에게 한 수 배웠다는 생각에 나도 한 수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때마침 우리는 응달에 남아 있는 눈을 사뿐히 즈려밟고 지나가던 참이었다.
“사을아,눈은 말이야 사람들에게 밟히면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 또 길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말이야”
“그렇네!”
“추운 응달에 있는 눈이 양지에 있는 눈보다 더 오래 가고 말이지”
“아빠,그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어,아닌가?”
슬픔의 힘이랄까,그런 것을 아들아이가 알기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무언가 새로운 것을 접할 때의 그 눈빛은 깊은 산길을 가다보면 만나기 십상인 청솔모의 먹빛 눈망울을 영락없이 닮았다.사람을 해치려하지도 않고,그렇다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그 순수의 눈빛을.
00-02-10
[연작 가족소설] 사을이네 집 (26)
아들아이의 책상을 살피다가 책꽂이에 꽂혀있는 ‘안네의 일기’에 눈이 갔다.전쟁 중에 사춘기를 겪게 되는 안네의 가슴 아픈 성장 이야기가 아들아이에게는 어떻게 비쳐졌을까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는데 이런 문구가 눈에 띄었다.
“밖으로 나가라.들판으로 가서 햇볕을 쬐며 아름다움을 느껴라.너 자신과 하나님 가운데서 다시 한 번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해라”
마치 선지자가 전하는 강한 메시지를 대하듯,나는 활자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착각마저 느끼며 몇 번인가를 반복해서 그 문구를 읽고 또 읽었다.그 사이,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한 가지 기억이 되살아났다.오래 전에 아들아이와 한 약속이었다.방학이 오면 우리 나라에서 가장 눈이 많이 오는 곳으로 가서 하룻밤을 묵고 오자고 아들아이와 새끼손가락까지 걸며 약속을 했던 것이다.
눈이 많이 오는 곳이라면 강원도 대관령이나 원주 근처가 되겠는데,우리는 그곳까지 기차 여행을 할 생각이었다.여행 경비를 한꺼번에 마련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아내는 이미 오래 전부터 매월 조금씩 돈을 떼어 봉투에 넣어왔던 터였다.그런데 겨울철마다 허리병이 도져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겨울 여행을 먼저 제안한 것은 아들아이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그런데 아들아이와의 여행을 마음에 둔 것은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인,내 나이 스물 서너 살쯤 되던 해의 일이었다.나는 당시 전역을 불과 몇 달 남겨두지 않은 군인이었고,어느 토요일 오후에 외출을 나가 영화 한 편을 본 것이 미래의 아들아이와 열차 여행을 꿈꾸게 된 계기가 된 것이었다.
‘닥터 지바고’! 바로 그 영화였다.러시아 볼셰비키혁명의 서슬 퍼런 상황 속에서도 피난 열차 화물칸의 작은 틈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아들에게 보여주던 시인 지바고의 눈빛! 바람에 스치는 나무들과 먼 평원으로부터 비쳐오는 은빛 햇살을 아들과 함께 바라보며 즐거워하던 그 천진난만한 눈빛을 보면서,나는 현실의 거친 세파를 이길 수 있는 진정한 힘은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순수함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고 있었다.어쩌면 나는 그때 내 생애 가장 중요한 신념 하나를 세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래 했어요.여기 한참을 서 있었는데”
책을 책꽂이에 다시 꽃아놓고 막 아들아이의 방을 나오려던 참이었다.언제 들어왔는지 아내가 문쪽에 서 있었다.그런데 아내는 뭔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것이었다.마치 큰 누이가 철이 막 들기 시작하는 남동생을 바라보는 그런 눈빛이다.
“왜 그런 표정이야?”
“뭐가요?그런데 당신 참 많이 변했어요.풀어 논 망아지가 따로 없었는데”
아내는 또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할 모양이다.나를 빼다 박은 한 생명을 만나기 전까지의 부실했던 지난 삶의 이야기를.
다음날 나는 아들아이와 함께 아침 일찍 동네 약수터를 찾았다.그런데 나무 껍질에 뭔가 이상한 흔적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아들에게 물었다.
“사을아,여기 나무 껍질에 무슨 보리쌀 같이 갈라진 것들이 뭐지?”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으면 아들아이에게 물어보는 버릇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그건 나무들이 겨울에 숨을 쉬기 위해서 생긴 거예요.나무는 잎으로 숨을 쉬는데 겨울에는 이파리가 다 떨어지고 없으니 여기 이 갈라진 틈 사이로 숨을 쉬는 거예요”
“그렇구나.이파리가 없으면 숨을 쉬지 못하겠구나.그래서 나무가 숨을 쉬려고 제 몸에 상처를 낸 것이구나.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알았니?”
“과학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요즘 들어 나는 아들에게 배우는 것이 부쩍 많아졌다.녀석은 내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을 마치 잘 아는 양 아는 체를 하면 조심스럽고도 점잖게 틀린 부분을 고쳐 주고 나중에는 아주 상세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아들에게 한 수 배웠다는 생각에 나도 한 수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동했다.때마침 우리는 응달에 남아 있는 눈을 사뿐히 즈려밟고 지나가던 참이었다.
“사을아,눈은 말이야 사람들에게 밟히면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 또 길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말이야”
“그렇네!”
“추운 응달에 있는 눈이 양지에 있는 눈보다 더 오래 가고 말이지”
“아빠,그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어,아닌가?”
슬픔의 힘이랄까,그런 것을 아들아이가 알기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무언가 새로운 것을 접할 때의 그 눈빛은 깊은 산길을 가다보면 만나기 십상인 청솔모의 먹빛 눈망울을 영락없이 닮았다.사람을 해치려하지도 않고,그렇다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그 순수의 눈빛을.
00-02-10
|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