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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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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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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http://www.newsnjoy.co.kr/rnews/pastorate-1.asp?cnewsDay=20030627&cnewsID=3
개인화 내면화하는 쪽과 사회화 실천화하는 두 갈래
▲ⓒ뉴스앤조이 신철민.
지금까지 한국 그리스도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영성 이해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영성을 개인적, 내면적, 정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흐름이다. 이 흐름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영성훈련을 개인의 신앙훈련과 동일시한다. 이러한 경향은 성령운동을 중요시하는 교회들과 보수적인 교회들의 영성 이해를 대변한다. 그 중에서도 성령운동을 중요시하는 교회에서는 이러한 이해가 교회 성장주의와 맞물려 영성을 부흥운동의 하나로 이해한다.
교인을 수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교회 내적, 개인적, 열광주의적 영성에 대한 강조는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모든 부흥회 집회 안내에 영성집회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본래 영성이라는 용어가 가톨릭 전용어였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가톨릭 신학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보수적인 교회에서 영성이라는 단어를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 경향으로 인해 교회가 물량적으로 성장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을지 몰라도 본래 그리스도교 영성이 지향하는 전인격적 삶의 변화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삶의 변화보다는 심리적 변화에 대한 일차적 만족감이 더 중요시되고, 그리스도교 신앙에 근거한 영성보다는 기복주의적 신앙을 그대로 담지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영성적 신앙을 축적, 성숙시키지 못한 결과 여전히 기도원 문을 두드리며 일시적이면서 충격적인 변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한편 열광주의적 성령운동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근본주의적 성향의 보수교회들은 영성이라는 용어조차 사용하기를 거부하고 그 대신 성서에 나오는 경건의 훈련을 강조한다. 이 경건의 훈련은 성서의 말씀의 실천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말씀에 기초한 경건의 훈련보다는 교리적 가르침에 신앙의 삶을 편입시키는 데 익숙해지게 만드는 병폐를 낳고 있다. 또한 보수 교회에서 강조하는 경건의 훈련의 문제점 중의 하나는 성(聖)과 속(俗)을 확연히 분리해 사고하는 태도다. 결국 이러한 경건의 훈련은 영성을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게 한다.
두 번째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사회적인 영성, 내면적인 것을 넘어서는 역동적인 영성, 그리고 정적인 영성이 아니라 실천적인 영성을 강조하는 흐름이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이러한 영성을 지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성을 신앙인의 사회적 실천을 뒷받침해주며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힘, 혹은 그 실천 자체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영성에 대한 실천적 이해는 일반적으로 말해 진보적인 교회나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되어야 할 것은 한국의 진보주의 신앙을 표방하는 영성 이해의 뿌리가 그리 깊지 않다는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한 진보적인 성향의 목회자나 교회들은 영성 그 자체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들은 영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실천적 영성을 도출했다기보다는 실천적 활동에 영성적 의미를 부여했고 그러한 이해의 시작도 최근의 일이다. 영성과 실천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보수주의 신앙인들처럼 이들 또한 신앙의식 속에서 영성과 실천을 통합해내지 못했다. 그 결과 진보성을 표방했던 목회자들이 이 시대에 맞는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해방의 영성이 지닌 자양분을 얻지 못하고 역설적이게도 보수적인 영성수련으로 회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위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영성 흐름은 오늘 교회와 개인의 영성생활 속에서 다양한 반응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 번째 반응은 자신들의 영성 이해나 지향점의 분별 없이 영성수련을 하나의 프로그램 정도로 이해하려는 모습이다. 이들이 개발하고 시도하는 영성수련은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성의 실천성, 공동체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개인주의적 성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지닌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러한 영성 프로그램조차 우리 동양인, 또는 한국인의 종교적 영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수입된 영성수련을 주입하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영성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특히 종교문화에 따라 각기 독특한 성격을 지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영성수련 프로그램 또한 일반화된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보다는 그 지역과 시대정신과 구체적인 적합성을 지닐 때 효과가 있다.
서구 그리스도교가 개발한 영성에 대한 이해나 훈련 프로그램은 그 서구사회의 종교적 토양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의미 있지만 그것을 여과 없이 적용하고 시도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우리의 종교적 토양이나 종교적 심성을 고려하지 않은 영성훈련은 결코 풍요롭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우물이 있다. 우리가 퍼 올릴 깊은 영성적 보물들이 우리 안에 감추어져 있다.
두 번째 반응은 그리스도교 영성 문제에 진보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교파나 교회, 평신도들이 갖는 반응인데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 번째 반응은 보수적인 영성 이해와 훈련으로의 적극적인 회귀이다. 이 회귀의 배경에는 교회성장이라는 목표가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보수적 교회의 영성훈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는 그 내용에 대한 비판적 숙고 없이 쫓아간다는 데 있다. 이러한 반응은 신학적 이해가 동반되지 않기 때문에 몸에 맞지 않는 듯한 옷을 걸친 어정쩡한 모습을 하고 있다.
두 번째 반응은 그러한 보수적인 영성으로의 회귀는 비판하면서 여전히 실천 우위의 입장에서 영성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그들은 사회적 실천 그 자체가 하나의 영성활동이라고 이해하지만 두 관계가 지닌 역동성을 보지 못한다. 이 부류에 속한 목회자들은 영성이 가져다주는 실천의 뒷심을 인식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실천적인 삶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세 번째 반응은 실천적 영성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영성의 내면적 깊이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 조화를 모색해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존 보수교회가 보여준 그러한 영성의 내용이나 훈련을 답습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실천적 영성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새로운 영성개발을 찾아나서지만 정확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어떤 이는 궁여지책으로 독자적인 방법을 모색해보지만 힘에 겨워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개인이든 교회든 한국 그리스도교의 영성담론은 이제 새로운 돌파구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담지하고 있으면서 인간이 그 깊이를 제한하지 않는 영성, 존재론적이고 동시에 실천적인 영성에 대한 요구가 일어나고 있다. 이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그리스도교 영성이 지닌 특성과 지향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김진 목사 / 크리스챤아카데미 상임연구원
엔크리스토출판사에서 기획한 '김진의 영성 이야기' 10권 중에서 첫 권 [그리스도교 영성]을 연재합니다.
개인화 내면화하는 쪽과 사회화 실천화하는 두 갈래
▲ⓒ뉴스앤조이 신철민.
지금까지 한국 그리스도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영성 이해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영성을 개인적, 내면적, 정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흐름이다. 이 흐름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영성훈련을 개인의 신앙훈련과 동일시한다. 이러한 경향은 성령운동을 중요시하는 교회들과 보수적인 교회들의 영성 이해를 대변한다. 그 중에서도 성령운동을 중요시하는 교회에서는 이러한 이해가 교회 성장주의와 맞물려 영성을 부흥운동의 하나로 이해한다.
교인을 수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교회 내적, 개인적, 열광주의적 영성에 대한 강조는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모든 부흥회 집회 안내에 영성집회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본래 영성이라는 용어가 가톨릭 전용어였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가톨릭 신학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보수적인 교회에서 영성이라는 단어를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 경향으로 인해 교회가 물량적으로 성장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을지 몰라도 본래 그리스도교 영성이 지향하는 전인격적 삶의 변화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삶의 변화보다는 심리적 변화에 대한 일차적 만족감이 더 중요시되고, 그리스도교 신앙에 근거한 영성보다는 기복주의적 신앙을 그대로 담지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영성적 신앙을 축적, 성숙시키지 못한 결과 여전히 기도원 문을 두드리며 일시적이면서 충격적인 변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한편 열광주의적 성령운동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근본주의적 성향의 보수교회들은 영성이라는 용어조차 사용하기를 거부하고 그 대신 성서에 나오는 경건의 훈련을 강조한다. 이 경건의 훈련은 성서의 말씀의 실천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말씀에 기초한 경건의 훈련보다는 교리적 가르침에 신앙의 삶을 편입시키는 데 익숙해지게 만드는 병폐를 낳고 있다. 또한 보수 교회에서 강조하는 경건의 훈련의 문제점 중의 하나는 성(聖)과 속(俗)을 확연히 분리해 사고하는 태도다. 결국 이러한 경건의 훈련은 영성을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게 한다.
두 번째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사회적인 영성, 내면적인 것을 넘어서는 역동적인 영성, 그리고 정적인 영성이 아니라 실천적인 영성을 강조하는 흐름이다. 비록 소수이긴 하지만 이러한 영성을 지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성을 신앙인의 사회적 실천을 뒷받침해주며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힘, 혹은 그 실천 자체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영성에 대한 실천적 이해는 일반적으로 말해 진보적인 교회나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되어야 할 것은 한국의 진보주의 신앙을 표방하는 영성 이해의 뿌리가 그리 깊지 않다는 사실이다. 현실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한 진보적인 성향의 목회자나 교회들은 영성 그 자체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그들은 영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실천적 영성을 도출했다기보다는 실천적 활동에 영성적 의미를 부여했고 그러한 이해의 시작도 최근의 일이다. 영성과 실천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보수주의 신앙인들처럼 이들 또한 신앙의식 속에서 영성과 실천을 통합해내지 못했다. 그 결과 진보성을 표방했던 목회자들이 이 시대에 맞는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해방의 영성이 지닌 자양분을 얻지 못하고 역설적이게도 보수적인 영성수련으로 회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도 하다.
위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한국교회가 갖고 있는 영성 흐름은 오늘 교회와 개인의 영성생활 속에서 다양한 반응으로 나타나고 있다. 첫 번째 반응은 자신들의 영성 이해나 지향점의 분별 없이 영성수련을 하나의 프로그램 정도로 이해하려는 모습이다. 이들이 개발하고 시도하는 영성수련은 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성의 실천성, 공동체성을 추구하기보다는 개인주의적 성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지닌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이러한 영성 프로그램조차 우리 동양인, 또는 한국인의 종교적 영성을 고려하기보다는 수입된 영성수련을 주입하기에 급급하다는 것이다. 영성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특히 종교문화에 따라 각기 독특한 성격을 지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영성수련 프로그램 또한 일반화된 프로그램을 도입하기보다는 그 지역과 시대정신과 구체적인 적합성을 지닐 때 효과가 있다.
서구 그리스도교가 개발한 영성에 대한 이해나 훈련 프로그램은 그 서구사회의 종교적 토양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의미 있지만 그것을 여과 없이 적용하고 시도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우리의 종교적 토양이나 종교적 심성을 고려하지 않은 영성훈련은 결코 풍요롭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우물이 있다. 우리가 퍼 올릴 깊은 영성적 보물들이 우리 안에 감추어져 있다.
두 번째 반응은 그리스도교 영성 문제에 진보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교파나 교회, 평신도들이 갖는 반응인데 크게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 번째 반응은 보수적인 영성 이해와 훈련으로의 적극적인 회귀이다. 이 회귀의 배경에는 교회성장이라는 목표가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보수적 교회의 영성훈련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는 그 내용에 대한 비판적 숙고 없이 쫓아간다는 데 있다. 이러한 반응은 신학적 이해가 동반되지 않기 때문에 몸에 맞지 않는 듯한 옷을 걸친 어정쩡한 모습을 하고 있다.
두 번째 반응은 그러한 보수적인 영성으로의 회귀는 비판하면서 여전히 실천 우위의 입장에서 영성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그들은 사회적 실천 그 자체가 하나의 영성활동이라고 이해하지만 두 관계가 지닌 역동성을 보지 못한다. 이 부류에 속한 목회자들은 영성이 가져다주는 실천의 뒷심을 인식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실천적인 삶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세 번째 반응은 실천적 영성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영성의 내면적 깊이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 조화를 모색해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기존 보수교회가 보여준 그러한 영성의 내용이나 훈련을 답습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실천적 영성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새로운 영성개발을 찾아나서지만 정확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어떤 이는 궁여지책으로 독자적인 방법을 모색해보지만 힘에 겨워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개인이든 교회든 한국 그리스도교의 영성담론은 이제 새로운 돌파구를 기대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담지하고 있으면서 인간이 그 깊이를 제한하지 않는 영성, 존재론적이고 동시에 실천적인 영성에 대한 요구가 일어나고 있다. 이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그리스도교 영성이 지닌 특성과 지향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김진 목사 / 크리스챤아카데미 상임연구원
엔크리스토출판사에서 기획한 '김진의 영성 이야기' 10권 중에서 첫 권 [그리스도교 영성]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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