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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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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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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12 들소리신문
◎ 홈페이지: http://www.deulsoritimes.co.kr
훌륭한 사역자와 그렇지 못한 사역자의 구별은 매우 간단하다. 사람을 죄나 율법으로 꼭꼭 묶어 두는 사람은 좋은 사역자가 아니요, 사람을 자유롭게 풀어주어 기쁨과 즐거움으로 훨훨 날게하는 자는 좋은 사역자라 할 수 있다. 악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예수를 만났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해방감을 느꼈고 기뻐하며 행복을 느끼고 돌아갔다. 그래서 그를 해방자 예수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교회 현실은 이것과 너무 거리가 멀다. 온갖 율법과 죄로 교인을 꼭꼭 묶어서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나면서부터 죄인이라 하면서, `할 수 없는 죄인'으로 만들어 영원한 죄인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눅들어 살게 만든다. 그러면서 많은 사역자들은 말씀과 성령과 하나님과 교통을 독점하려 한다. 사람과 하나님, 사람과 예수 사이에 사역자가 끼어서 중개자의 역할을 하려 한다. 이것이 큰 일이다.
모든 구속에서 풀어주어야
오늘의 교회와 사역자들은 교인을 모든 구속으로부터 풀어주어야 한다. 모든 율법과 규례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여 훨훨 자유천지를 날게 하여야 한다. 주눅들린 `할 수 없는 죄인'으로 평생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힘입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당당한 크리스찬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교회와 사역자는 교인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에 주력하여야 한다.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모든 것을 없이하여 그리스도와 사람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여야 한다. 거기에는 그리스도교회의 전통이나 성서해석방법, 예배형식이나 성례전 따위를 제거하여 그리스도와 교인 사이에 쓸데없는 먼지가 끼지 않게 하여야 한다. 그것은 굉장히 무서운 일상생활의 훈련을 통하여 가능할지 모른다.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는 방법을
그래서 이제 교회는 사업이 아니라, 순수한 관계, 그리스도와 교인의 순수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데 모든 노력을 쏟아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헌금과 출석과 직분과 틀에 맞는 교회생활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직접 어떻게 만나는가를 배우게 하여야 한다. 분명히 예수는 우리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따르라는 그는 결코 나와 숨바꼭질하듯이, 내가 따라갈 수 없게 까마득히 멀고 높게 도망가듯이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따라갈 만큼의 적절한 거리에서 나를 앞서 갈 것이 분명하다. 그가 당신을 따르라는 것은, 분명히 우리가 그를 따라갈 만큼의 거리에서, 그 발걸음으로 걸어가실 것이다. 그는 항상 볼 수 있게, 잡힐 듯이 가까운 곳에 서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교회나 사역자는 바로 그를 따르는 길을 일러줄 필요가 있다.
나는 그 길이 이런 것이라고 본다.
먼저 교인이 직접 그의 말씀을 듣는 훈련을 받게 해야 한다. 큰 음성이든 작은 음성이든 그의 말씀을 직접 듣게 하여야 한다. 표준 듣기가 아니라 듣는 자의 수준에 맞게 그의 말씀을 듣는 훈련을 시켜야 한다. 누가 되었든 그의 말씀을 직접 듣는다면 깨달음이 올 것이고 믿음이 생길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분명히 하나하나 생활에서 그의 말씀을 실천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그는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것이다.
말씀 직접 읽는 훈련을
둘째로 그의 말씀을 직접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지금 모든 교회에서는 성경을 읽는 운동을 벌인다. 성경을 완독하는 운동도 벌이고, 성경읽기 대회도 한다. 그러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기록된 문자인 성경이 살아있는 말씀의 성경으로 변하여 읽혀지게 훈련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모든 다른 종교의 경전들 역시 성경과 함께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셋째, 성경을 고쳐읽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시대와 흐름에 맞게 성경을 읽는 버릇을 가지게 하여야 한다. 죽은 문자에 매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맥락과 흐름을 따라 읽는 성경읽기를 버릇 들여야 한다.
넷째, 그러면서 낳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를 만나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부활한 예수는 결코 십자가에 못 박힌 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부활한 예수는 마리아에게, 베드로에게, 길가는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확인하는 버릇을 가진 도마에게 나타날 때 각각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생활과 밀접한 지역에 나타났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부활한 예수를 알지 못했다. 나중에 눈이 띄었을 때, 그 때 비로소 아하 그가 예수였구나 깨닫게 되었다. 교회와 사역자는 바로 이렇게 우리 생활에 직접 나타나는 부활한 예수를 우리가 어떻게 만나는가를 알려주고 훈련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제는 거대한 교회의 틀을 벗어나서 아주 단순한 만남의 마당으로 그리스도와 교인을 끌어내는 훈련이 있어야 할 때다. 성숙된 교회, 성숙된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이런 데서 찾아지는 것이지 않을까?
한남대 사회과학대학 학장
*들꽃피는 제46호 읽을꺼리
◎ 홈페이지: http://www.deulsoritimes.co.kr
훌륭한 사역자와 그렇지 못한 사역자의 구별은 매우 간단하다. 사람을 죄나 율법으로 꼭꼭 묶어 두는 사람은 좋은 사역자가 아니요, 사람을 자유롭게 풀어주어 기쁨과 즐거움으로 훨훨 날게하는 자는 좋은 사역자라 할 수 있다. 악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예수를 만났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해방감을 느꼈고 기뻐하며 행복을 느끼고 돌아갔다. 그래서 그를 해방자 예수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교회 현실은 이것과 너무 거리가 멀다. 온갖 율법과 죄로 교인을 꼭꼭 묶어서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나면서부터 죄인이라 하면서, `할 수 없는 죄인'으로 만들어 영원한 죄인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눅들어 살게 만든다. 그러면서 많은 사역자들은 말씀과 성령과 하나님과 교통을 독점하려 한다. 사람과 하나님, 사람과 예수 사이에 사역자가 끼어서 중개자의 역할을 하려 한다. 이것이 큰 일이다.
모든 구속에서 풀어주어야
오늘의 교회와 사역자들은 교인을 모든 구속으로부터 풀어주어야 한다. 모든 율법과 규례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여 훨훨 자유천지를 날게 하여야 한다. 주눅들린 `할 수 없는 죄인'으로 평생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힘입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당당한 크리스찬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교회와 사역자는 교인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에 주력하여야 한다.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모든 것을 없이하여 그리스도와 사람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여야 한다. 거기에는 그리스도교회의 전통이나 성서해석방법, 예배형식이나 성례전 따위를 제거하여 그리스도와 교인 사이에 쓸데없는 먼지가 끼지 않게 하여야 한다. 그것은 굉장히 무서운 일상생활의 훈련을 통하여 가능할지 모른다.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는 방법을
그래서 이제 교회는 사업이 아니라, 순수한 관계, 그리스도와 교인의 순수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데 모든 노력을 쏟아도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헌금과 출석과 직분과 틀에 맞는 교회생활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직접 어떻게 만나는가를 배우게 하여야 한다. 분명히 예수는 우리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신다. 따르라는 그는 결코 나와 숨바꼭질하듯이, 내가 따라갈 수 없게 까마득히 멀고 높게 도망가듯이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따라갈 만큼의 적절한 거리에서 나를 앞서 갈 것이 분명하다. 그가 당신을 따르라는 것은, 분명히 우리가 그를 따라갈 만큼의 거리에서, 그 발걸음으로 걸어가실 것이다. 그는 항상 볼 수 있게, 잡힐 듯이 가까운 곳에 서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교회나 사역자는 바로 그를 따르는 길을 일러줄 필요가 있다.
나는 그 길이 이런 것이라고 본다.
먼저 교인이 직접 그의 말씀을 듣는 훈련을 받게 해야 한다. 큰 음성이든 작은 음성이든 그의 말씀을 직접 듣게 하여야 한다. 표준 듣기가 아니라 듣는 자의 수준에 맞게 그의 말씀을 듣는 훈련을 시켜야 한다. 누가 되었든 그의 말씀을 직접 듣는다면 깨달음이 올 것이고 믿음이 생길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분명히 하나하나 생활에서 그의 말씀을 실천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그는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것이다.
말씀 직접 읽는 훈련을
둘째로 그의 말씀을 직접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지금 모든 교회에서는 성경을 읽는 운동을 벌인다. 성경을 완독하는 운동도 벌이고, 성경읽기 대회도 한다. 그러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기록된 문자인 성경이 살아있는 말씀의 성경으로 변하여 읽혀지게 훈련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는 모든 다른 종교의 경전들 역시 성경과 함께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셋째, 성경을 고쳐읽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시대와 흐름에 맞게 성경을 읽는 버릇을 가지게 하여야 한다. 죽은 문자에 매어 달리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맥락과 흐름을 따라 읽는 성경읽기를 버릇 들여야 한다.
넷째, 그러면서 낳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를 만나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부활한 예수는 결코 십자가에 못 박힌 그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않았다. 부활한 예수는 마리아에게, 베드로에게, 길가는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확인하는 버릇을 가진 도마에게 나타날 때 각각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생활과 밀접한 지역에 나타났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부활한 예수를 알지 못했다. 나중에 눈이 띄었을 때, 그 때 비로소 아하 그가 예수였구나 깨닫게 되었다. 교회와 사역자는 바로 이렇게 우리 생활에 직접 나타나는 부활한 예수를 우리가 어떻게 만나는가를 알려주고 훈련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제는 거대한 교회의 틀을 벗어나서 아주 단순한 만남의 마당으로 그리스도와 교인을 끌어내는 훈련이 있어야 할 때다. 성숙된 교회, 성숙된 그리스도인이란 바로 이런 데서 찾아지는 것이지 않을까?
한남대 사회과학대학 학장
*들꽃피는 제46호 읽을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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