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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손가락 하나 때문에...

경포호수가에서 피러한............... 조회 수 3011 추천 수 0 2003.09.07 16:07:55
.........
출처 :  




 

손가락 하나 때문에...


월요일 오후에 난생 처음 지어본 농작물(農作物)을
조금 거두어 차에 넣고서 뒷문을 닫는데,

순간 아내가 아무 생각 없이 차 뒷문에 손을 대고 있다가
갑자기 문을 닫으니까 손을 뺏지만 이미 손가락은 문틈에 끼면서
손톱까지 피멍이 들 정도로 크게 다쳤습니다.


통통하게 부어오르는 한 손가락은
주부의 기능(機能)을 치명적으로 저하시키어 대부분 부엌일은 갑자기
저의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졸지에 가해자(加害者)가 된 저는
죄스런 마음으로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설거지부터 아이들 도시락 반찬
그리고 빨래까지 다 해야했습니다.



평소(平素)에도 그녀가 힘들면 설거지 정도는 해주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빨래와 반찬 만드는 일까지
직접 해보니 아내의 자리가 새삼 크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녀는 결혼(結婚)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런 수고를 일상적(日常的)으로 해왔었지만
저는 그런 일들은 여자로서 당연(當然)한 일이라고 생각했지
그 일에 대해서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부인들이 남편이 죽으면 남편이 불쌍해서 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을 때 남편에게 잘해주지 못한 일들이 생각나서
흘리는 '후회(後悔)의 눈물'이라고 말이 있듯이,

저는 남자(男子)지만 만약 아내에게 무슨 일로 있어서
먼저 세상(世上)을 떠난다면 저도 분명 '후회의 눈물'을 흘릴 것만 같습니다.


몇 년 전에 무슨 프로그램에 참석하여
아내에게 유언(遺言)을 쓴 것이 있었는데 제가 관(棺) 속에 들어가서
그 유언을 망자(亡者)의 입장에서 들었을 때,
저는 통곡(痛哭)하다시피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물론 저도 그녀에게 더 잘해주고 싶어도
'환경(環境)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 라고 말할 지 몰라도 제 가슴은
아마도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으로 가득 차
얼마나 후회할지 모릅니다.



하루 밤이 지났지만 손이 어제보다 더 부어 올라
정형외과(整形外科)에 갔더니 의사는 뼈에 금이 갔다면서 손가락에 기부스를
해주면서 이렇게 묻더라는 것입니다.

"몇 째세요?"(몇째 며느리 세요?)
"둘짼 데요..."
"올 추석 땐 기부스 핑계 대면서 일하지 마세요."

저보다도 아내를 더 배려(配慮)해주는 그 의사의 말이
왜 그렇게도 고맙게 느껴지던지 몰랐습니다.


신(神)은 남자들에게 아내를 돕는 배필(配匹)로 주셨는데
저는 이러한 아내에 대해 고마움은 커녕 화가 나면 동네북처럼
첫 번째 화풀이 대상(對象)이 되기가 쉬웠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라고
평소(平素) 다른 사람들에게는 많은 말을 했었지만,

정작 본인(本人)은 그 아내를 사랑했다기보다는
어떻게 보면 가장 무관심한 대상(對象)으로 대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말 같지만...
지금 저에게 있어서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일은
바로 '아내를 사랑하는 일'인 것 같습니다.


가장 잘 알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잘 모르는 사람.
누구보다도 가장 사랑해야할 사람임에도 가장 무시했던 사람.
가장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할 사람임에도
항상 모든 일에 밀려있었던 사람.

오직 그 이름이 '아내'라는 이름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이엔 미안하다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들을 하는데 어리석게도
저도 그런 터무니없는 신화(神話)에 속아 '미안하다'는 말을
가장 적게 했던 사람이 바로 '아내'입니다.





저는 집사람을 친구가 소개하여 만났는데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에 첫 인상이 너무 좋아서
그 때 저는 벌써 그녀와 결혼(結婚)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가냘픈 외모(外貌)와
그리고 겸손 한 듯한 작은 어투 때문에 그녀를 '천사표' 라고
한결같이 말을 했었습니다.

저도 물론 그런 느낌을 갖고 결혼했는데
몇 일도 못 가서 '천사(天使)'(?)와 함께 사는 남자들의
고독(孤獨)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


그녀는 생각보다 몸이 너무 약합니다.
또 외모와는 안 어울리게 어느 땐 작은 일에도 목소리를 곧 잘 높입니다.
그리고 정리정돈이 몸에 배인 제 눈으로 볼 땐
그녀는 정리도 잘 못 합니다.

그러나 그녀 또한 저와 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아마 말을 안 했지만 더 한심하고
유치찬란한 모습들이 엄청 많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눈이 어두워서 결혼(結婚)을 했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서로의 본성(本性)을 드러내면서 싸움도 많이 했고
후회(後悔)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녀와 살면서 세상 어디에서도 그 누구로부터도
배울 수 없는 삶의 진리(眞理)를 배웠습니다.

약함이 곧 강함이라는 것을...
사랑은 말이 아니라 섬기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행복(幸福)은 밀알이 될 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마치 아이가 엄마 앞에 있는 것처럼...

진정 부부(夫婦)란 벗었지만 부끄럽지 않고,
어떤 허물도 책망하지 않고,
그리고 아무리 유치한 행동을 해도 창피하지 않은 사이입니다.

그것이 참된 자유(自由)요
그것이 참된 쉼의 관계(關係)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神)은 모든 가정에
당신을 대신하여 어머니를 보내셨다.'라는
말을 전적으로 온 영혼을 다해 동의(同意)하고 있습니다.





어느 부인이 죽을병에 걸렸는데,
어느 날 그녀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세 남자(男子)를 사랑했었는데
나는 그들을 내 목숨보다 더 사랑했어요...

첫 번째는 옆집 오빠요, 두 번째는 대학 선배요,
그리고 세 번째는 지금의 당신입니다.'


부인(婦人)은 이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말을 들은 남편(男便)은 한없이 서럽게 울기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가 자신보다 더 사랑했다는 그 세 명의 남자는
모두 자신(自身)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느 책에서 이 글을 읽고 난 후 자신에게
이렇게 되물어보았습니다.

나도 과연 그녀에게 이런 고백(告白)을 들을 수 있을까...
그리고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럼 없이 나도 동일(同一)하게 그런 고백을
그녀에게 할 수 있을까...



가끔 아내는 저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당신 닮은 아들 하나만 낳고 싶어요'
그녀는 딸만 둘인 우리 집에 아들이 하나 있었으면 하면서
그렇게 말하지만...

저는 속으로 이렇게 외칩니다.

'오 마이 갓!'
감격스러워서 그러냐고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지금 제 자식(子息)이 딸이길 다행이지 날 닮은 아들이 있다면
제가 그 녀석들을 어떻게 감당(勘當)하겠습니까.
저는 제 안에 쓴 뿌리가 무엇인지를 알거든요...



유명한 시인의 기도(祈禱)는 아니지만
제 평생 소원(素願)은 하나입니다.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2003년 9월 8일 피러한이 추석(秋夕)인사와 함께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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