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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성 실종과 회복

한국교회허와실 기독교신문............... 조회 수 3549 추천 수 0 2003.09.15 11: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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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공동체성 실종과 회복(상)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너와 나의 구분’을 중요시 하기보다는 공동체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삶의 우선순위를 지켜왔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그들은 서로의 재산까지도 자기의 소유를 주장하기보다는 공동체를 위해 유무상통하는 삶을 살았다는 증거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성경의 일반적인 원칙도 이와 다르지 않다. 자신의 물질이나 달란트 등이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으로 사용되기보다는 이웃을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해 활용되고 사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제시하고 있다.

특히 성경은 부자의 삶을 통해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소유의 넉넉함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부자에게 하나님은 “오늘밤 너의 목숨을 내가 취하면 이 많은 재산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는 질문을 통해 자신만을 위한 삶의 허무함을 증거하고 있다.

즉 신앙인들의 삶은 자신을 위한 삶을 넘어 타자와 공동체를 위한 삶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언젠부터인가 교회의 메시지는 공동체성을 강조하기보다는 개인의 축복을 강조하면서 자본주의적 사상과 결합, 공동체성을 상실하는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다.

공동체성을 상실한 교인들은 일반인들의 삶과 전혀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기복주의에 빠지는 우를 범함으로서 일반인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공신력을 잃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아무리 공동체성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가정에까지 공동체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공동체성이 사라진 가정

부모는 부모 따로, 자녀들은 자녀 따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포근함과 따스함의 상징이어야 할 가정이 점점 삭막해지고 있다. 과거 우리 부모들의 모습은 ‘희생’ 그 자체였다. 즉 가족공동체를 위해 자신보다 가족들을 먼저 생각하는 아름다운 삶이 ‘희생’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신세대 부모들에게는 이 공동체성이 희박하다.

이러한 삶에 대해 안양대학교 이모 교수는 “자신의 삶을 즐기거나 자기 성취욕이 앞서기 때문에 자녀나 부모를 배려하는 자세를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하고 “하루 속히 나보다 가족을 생각하는 공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교수는 “공동체성 붕괴의 한 요인으로 바쁜 일상의 삶에도 원인이 있다”고 강조했다.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할 시간조차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또한 가정이 공동체성을 잃어버린 원인으로는 교회의 잘못도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잘못된 교회교육이나 올바르지 못한 설교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상황을 무시하고 무조건적으로 교인 개개인의 비유를 맞추는 자기중심적인 말씀해석에 익숙한 교인들에게는 가정의 구성원보다는 자신의 삶이 무조건 우선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신의 삶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삶이 더욱 성경적 이라는 사실이다.

총신대 김모 교수는 “설교자들이 말씀을 준비함에 있어 근시안적인 성경해석을 넘어 보다 종합적이고 공동체 우선주의적인 시각으로 성경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교수는 또 “성경의 핵심인 구원이 철저하게 개인적이란 이유로 기독교인들이 공동체를 무시한다면 구원을 이루기 위해 마련된 교회공동체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이라며 “공동체성이 무시된 기독교는 기독교일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가정공동체는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직접 세워주신 기관이기에 가정을 더욱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나를 넘어 가족공동체를 먼저 생각할 때 비기독교적 삶의 행태인 이혼이나 가족간의 폭력 등 잘못된 모습들이 공동체 안에서 사라 질 수 있을 것이다.

교회는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따라서 한 교회의 신자들을 영적인 가족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교회 공동체의 대표적인 사례를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도행전 2장 42∼47절에 나타난 대로 성도들이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는 모습에서 교회 공동체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내 교회 우선 타파 시급

이처럼 교회공동체는 보다 구체적인 우리 삶 안에 있어야 하고 또 구체적인 인간관계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 교회의 현실을 살펴본다면, 대부분의 신자들은 주일 예배에만 참석하고 일부 신자들만이 단체활동을 통해 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전체 신자를 대표하는 교회공동체라고 볼 수 있는가는 의문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이다. 또 이것은 단지 교회 내의 모임이나 활동 단체로서 한 시스템으로 밖에 볼 수 없으며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라고 볼 수 있는가에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또한 현재의 한국교회에는 공동체의 아름다운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고 보는 시각들이 대부분이다. 개 교회들의 공동체의식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각 기관별 협조가 잘 되지 않거나 교회들 간의 연합사역에 있어 서로 보조를 맞추는 것에도 소홀한 교회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의 각 지역에는 지역교회 연합회가 형성돼 있으며, 여러 가지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러한 연합사역에 비협조적인 교회들도 없지 않다. 이러한 교회들 가운데는 어려운 형편으로 인해 연합사역에 참여하기 힘든 교회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대형교회이기에 이러한 연합사역에 힘쓰기보다는 자신들의 교회와 신도들만의 교제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만족하는 형태를 띠기도 한다.

또 연합사역에 대한 필요성보다 내 교회만 부흥하면 된다는 일부 목회자들의 잘못된 가치관 때문에 이러한 사역은 무시되기 일쑤다.

물론 여기에는 어떤 신학적 차이나 신앙의 노선의 갈등으로 인한 것도 있으나, 이보다는 연합사역에 드는 물질을 제공하는 것을 왠지 부담으로 생각하는 시각으로 참여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 또한 이것이 우리 교회의 부흥에 그렇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목회자들이나 평신도들의 생각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 같이 한국교회에 팽배해 있는 개인주의의 문제는 교회를 분열시키는 가장 큰 해악이다. 한국교회들은 부흥과 성공을 통해서 서로 간에 경쟁적인 관계가 되어버렸고, 이론적인 신학연구에만 치중하여 실제적인 신학인 코이노니아는 무시되었다고 일부 학자들은 지적한다.

따라서 강력한 평신도 운동을 통하여 신도들 간 교제를 회복하도록 해야만 공동체 의식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교회의 구성원 대부분이 평신도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평신도들의 삶 속에서 부딪히고 고민하는 문제들을 서로 나누고 권면하고 짊어질 때만이 진정한 교제가 형성되며, 공동체의식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 교회의 기관들조차도 협조가 미흡하거나, 교회들의 연합사역에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현실에서 교회와 신자들의 공동체의식은 점차 줄어들고 주일날 의식적으로만 예배에 참석하는 구경꾼 신자가 늘어날 뿐이다.

또한 전도가 어렵고 새로운 교인을 불러오기 어려운 요즘 교회들 사이에 벌어지는 교인쟁탈전도 ‘내 교회 우선주의’도 교회의 올바른 공동체의식이 결여된 것이며, 한국교회가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점이다.

“자신이 다니던 교회가 자기에게 맞지 않으면 자신만 다른 교회로 옮기면 되는 것을 자기 주변의 교인들마저 부추겨 다른 교회로 데려가는 교인을 경험했을 때, 현재 한국교회의 공동체의식이 잘못되어가고 있구나 하는 것을 절감했다”는 모 개척교회 목회자의 이 말은 우리 교계가 평신도들에게 올바른 공동체의식을 심어주기 보다는 얼마나 성장제일주의로 흘러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사회공동체로서의 역할 대두

교회는 사회를 지키고 변화시켜야 하는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해 나가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사회적 관심사에 대해서 침묵해 오고 있다. 늘 기독교와 교회의 내부에만 관심 갖는 경향이 많다.

교회와 목사들에 관련된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는 목소리가 높은 반면에 사회의 다른 문제와 첨예한 문제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가라 앉히고 있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은 천주교의 사회구제사업이나 적극적인 사회 참여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로인해 일부 젊은 청년들이 천주교로 개종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들은 “교회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다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목회자들에게 교회가 보다 적극적 사회에 참여할 것을 말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관련해 이모교수는 “교회가 교회 내부의 치장보다는 늘 사회의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보다 사회에 친숙하게 다가서서 사회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 과감하게 지적하고, 사회에로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모목사는 “교회의 교인이 수평이동을 하거나, 젊은층 교인의 이탈은 어찌보면 교회가 사회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못함으로써 회의를 느끼고 떠나기 때문이다”며, “이는 현재 한국교회의 문제점이자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오늘날의 뜻있는 신자들 가운데는 교회가 복음전파와 함께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사회활동에도 앞장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는 교회가 사회의 빈민자들을 위해 구제에 나설 것과 사회의 소외된 자들을 위해 그들과 함께 하는 교회의 상이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합당한 교회라는 것을 주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에도 목회자들은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목회자와 교회는 교회의 역할이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직시하고 이전보다는 적극적으로 사회에 개입을 해야 할 시기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사회를 향해 올바른 목소리를 내야 하고, 지치고 소외된 자들을 따듯이 품어주어야 한다.

교회의 사회 참여가 많은 부분에서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보다 더 많은 교회의 노력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모교회 이모성도는 “소외된 이들을 위해 노력하는 교회가 칭찬을 받으려 해서는 안된다. 당연히 교회의 사명이 소외되고 어려운 사회의 이웃을 위해 헌신해야 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는 오늘을 사는 기독인들에게 교회가 어떠한 자세를 지녀야 하는 것이 말씀대로 행하는 교회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교회의 사회적 문제에 대한 참여는 늘 제기되어 왔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에 깊게 개입하고, 적극적으로 사회에 동참하는 것은 천주교에 비해 아직은 열약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조금씩 조금씩 사회의 문제에 대해 교회가 대처해 나갈려고 하는 노력은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전체 교회의 연합해서 움직이는 모습과 교회가 사회 공동체로서의 책임을 감당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일치된 교회의 모습은 보기 어렵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에 이루어지게 하소서’처럼 사회의 잘못된 부분이나 소외된 곳에 교회가 올바른 기독교적 세계관과 신앙관, 사회관으로 사회 변화에 앞장설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박병득 부장 김신규 기자 김성수 기자 공동취재·집필
(1710호. 2003.8.24)

◎ 2003/8/28(목) 11:08

■ 공동체성 실종과 회복(하)  

‘가정과 교회, 그리고 국가가 바로서야 한다’는 당위성이 의식 있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가운데 올바른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공동체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의견이 탄력을 받고 있다.

‘개인의 건강도 중요 하지만 사회의 건강이 더욱 중요하다’는 개념도 공동체성을 강조한 것이다. 공동체성의 약화는 곧 구성원의 동반추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현대사회는 이기주의적인 것을 개성으로 포장해 상품화하고 있다며, 공동체성을 강조했던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나는 나다’라는 이기적인 개념보다 ‘나는 너를 위해’라는 복음의 정신이 강조돼야 한다는 의견도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교회교육이 더욱 강화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작은 공동체인 가정에서부터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교육의 선행과 부모의 솔선수범 등도 매우 필요한 시점이다. 이른바 신세대 부모들은 과거의 부모와 비교해 가족 구성원간의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의식이 희박한 것이 사실이다.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가정돼야

공동체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습득할 수 있는 곳은 가정이다. 따스한 가정공동체를 경험한 자녀들은 공동체의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 공동체 정신을 사회로 확대해 나아갈 수 있다.

부모와 자녀간의 단절된 대화의 복원은 가정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는 첫 걸음이다. 함께 모여 자녀의 장점을 칭찬해 주고 올바로 고쳐야 할 부분을 진정어린 마음으로 충고해 줄 뿐만 아니라 자녀, 부모간 서로의 고민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이 매우 바람직하다.

부모는 자녀 앞에서 완전한 인간의 면모만을 보일 것이 아니라, 자녀들에게 근심과 걱정을 털어놓음으로서 도리어 자녀가 부모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고 학자들을 말한다.

이와 관련해 경희대 이모 교수는 “과거와 달리 자녀들은 완벽하고 권위적인 모습의 부모상을 그리기보다는 마치 친구와 같은 편안한 부모상을 가슴에 품고 있다”면서 “과거의 젊은이들은 엄격성에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느꼈지만 현대의 젊은이들은 그와 정반대의 분위기에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교수는 “공동체의 중요성은 변함이 없으나 그 중요성을 발견하는 양식은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연극을 가르치는 서울예대 김모 교수는 “연극을 통해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며 “가족과 함께 연극을 감상하고 토론하는 기회를 만들어 볼 것을 권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교수는 “연극 작업은 그 자체가 공동체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배우들이 저마다의 역을 맡아 공연하는 것을 바라보면서 혼자서는 아무 역할도 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가족간의 여행은 가족 공동체성을 강화한다. 먼 여행이 아니더라도 가족끼리 1박2일 정도의 시간을 할애해 함께 한다면 가족간의 사랑을 통해 자연스럽게 행복한 공동체를 발견하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또 ‘가족의 날’을 정한다든지 가족간의 ‘편지 쓰는 날’을 정한다든지 ‘기도원을 찾아 함께 기도하는 날’ 혹은 ‘가정예배’ 등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울러 가정이 진정으로 가정의 모습을 회복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그만큼 우리와 가까이 있는 것이다.

지구촌에서 앞서가는 선진국들은 저마다 가정중심의 생활을 실천하고 있다. 가정을 떠나 행복을 찾는 사람들은 곧 그 행복이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나중에 인식하고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 순리에 따라 살아갈 때 참으로 인간다운 인간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성경은 확실하게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가정공동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가정공동체를 소중하게 가꾸는 일은 우리 모두의 사명이다.

평신도들간 서로 돌봄이 필요

한국교회와 신자들의 개인주의화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과거에 가졌던 나 혼자만 예수 잘 믿으면 된다는 의식에서 비롯된 잘못된 신앙관으로 인한 것이라는 게 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은 나 혼자 할 일이 아니라 바로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며, 교회를 떠나서는 신앙 자체가 의미가 없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이 자란다는 것은 바로 이런 공동체 의식이 자란다는 의미도 된다. 성령은 바로 우리로 이런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극히 이기주의화된 한국교인들 가운데는 한 교회 공동체에 속하는 것을 얽매이는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설교만 들으려 오는 교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예수를 믿고 거듭난다는 것은 나 개인의 거듭남뿐 아니라 내가 이제까지 속했던 계층이나 계급적인 사회에서 벗어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까지 의미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면서 더 큰 하나의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 한국교회가 이루어야 할 사명이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퇴색되어져 가는 공동체의식의 회복을 위해서 박종언목사(예장 합신측 총무·평안교회)는 교인들의 실제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함을 강조했다. 즉 구제를 통한 나눔의 삶을 실천하는 것과, 이웃을 돌아보는 일 등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은사를 필요한 것에 쓸 수 있는 환경이 조성해 줌으로 교회공동체는 발전해나간다는 지적이다. 박목사는 또한 “현재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메시지가 혹 교회 공동체를 깨는 것은 없었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교회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교회지도자와 목회자들의 역할이 중요함을 제시했다.

또 한 목회자는 먼저 믿는 신자가 초신자들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필요하며, 평신도들간에 서로 돌아보며 관심을 기울이고 기도하는 것도 교회 공동체성 회복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호주에 있는 화란개혁파교회는 매주 토요일마다 장로들이 평신도들을 심방하면서 그 가정의 신앙생활과 여러 가지 형편사정을 조사해 담임목사에게 보고하고 있다. 이를 통해 평신도들간에 서로 돌아보고 기도하게 하며, 먼저 믿는 자가 초신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줌으로 교회공동체의식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것은 모든 신도들의 전반을 목회자에게만 맡겨놓는 한국교회에 좋은 본보기로 보여진다.

아울러 교회가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교회를 사회를 위해 개방하는 것도 이기주의적으로 흘러가는 교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는데 필요하다. 교회가 이웃을 위한 복지에 온 교인들이 함께 앞장서고 불신자들에게 다가감으로 교인들간의 교제와 교인과 일반인들간의 거리감도 줄어들어 복음전파에 많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한편 교회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성례-성찬식-를 자주 갖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즉 성찬식을 갖는 것도 바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받으므로 그 공동체에 속한 그의 백성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또 교회의 성례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바로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지체가 몸에 붙어 있는 한에 있어서만 그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는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로 있을 때 그 삶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며, 이를 위한 성례는 교인들의 교회 공동체성 회복에 필수불가결한 것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사회 공동체로서의 대안
기독교가 사회적 공동체로서의 역할이 미흡하다는 주장이 많은 가운데 기독교가 새롭게 나아가야 할 길을 위한 모색이 대두되고 있다.

특히 교회의 사회 공동체로서의 역할은 갈수록 그 비중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교회는 보다 좀더 적극적으로 사회의 감사자와 동역자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간 기윤실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논평을 내며, 기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사회 변화를 추구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기윤실에서 청소년과 학생들을 위하여 가수들의 대중가요와 음반에 관심을 기울여 그 선정성에 대해 문제를 삼어 문광부에 판매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적극적으로 사회의 변화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그 예가 되고 있다.

C신학교의 박모교수는 “개신교도 이제는 천주교처럼 일치 단결 되는 힘을 모아서 사회의 변혁에 앞장서야 한다”고 하며, “기윤실의 사회 참여처럼 보다 다양한 기독교적 목소리가 많아져서 사회의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다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가 사회 공동체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회의 담임목사의 의중이 제일 중요시되고 있다. 목회자가 사회의 기독교적 관심이 많으며, 그 교회는 다양한 사업을 전개 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바람직한 사회적 참여로는 소외 받고,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다양한 교회의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 일례로 교회가 어린이 도서관을 운영하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한다. 지역 주민을 위해서 기존의 교회에서 공부방이나 도서관을 지역 주민의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함으로써 국가나 사회가 하기 어려운 사업의 일부분을 감당하며, 사회 공동체로의 역할이 필요하다.

또한 성도들과 실직자를 위한 가정 상담과 고민을 청취하며 재취업을 위해서 교회가 다양한 진로를 알아 보아주는 것도 좋은 방안 일 것이다. 또한 각 교회에서 운영하는 부설 유치원과 어린이 집을 어려운 지역 주민에게 무료의 혜택을 주는 것도 필요 할 것이다.

교회의 주차장을 주일이 아닌 평일에는 지역 주민에게 개방하는 이모목사는 “교회가 주일만 문을 열고 평일은 문이 닫혀있는 교회의 모습을 탈피하고, 교회가 조금은 힘들어지고 손이 많이 가더라도 지역 주민을 위해서 교회를 개방할려고 하는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교회가 사회의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권위적인 교회, 닫혀있는 교회가 된다면, 어려운 이웃이나 지역주민들이 어떻게 교회를 찾을수 있느냐”고 교회의 변화를 강조했다.

다음으로 몇몇 교회에서는 운영을 하는 교육관의 활용 방안이다. 주일 이외에는 활용을 하지 못하는 교회의 여러 장소들을 지역주민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들 수 있다. 성경공부나 교인들을 위한 장이 아니면 활용하지 못하는 교육관에서 교회가 주최가 되어 교인과 지역주민들을 위한 평생교육의 장으로 변화하여, 각종 강좌를 개설하는 것도 그 좋은 실례가 될 것이다.

성인병 예방을 위한 세미나, 수지침 강좌, 또는 노인들을 위한 의료상담, 독서교실 강좌 등 강사들을 초청해 지역 주민에게 교육의 길을 열어주는 교회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많은 교회들이 조금만 교회의 주변이나 사회의 현실을 바라보고, 교회가 할 일을 찾으려고 한다면 교회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해야 할 일은 무수히 많이 있는 것을 인지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박병득 부장 김신규 기자 김성수 기자 공동취재·집필
(1711호 . 2003. 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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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 수필칼럼사설 현실교회에 대한 진단 김기원 목사 2003-09-15 3103
328 수필칼럼사설 무당문화와 기독교문화 이철재 감독 2003-09-15 3171
327 수필칼럼사설 선교, 제4의 물결 이철재 감독 2003-09-15 3174
326 수필칼럼사설 대형교회와 다중교회 이철재 감독 2003-09-15 2776
325 수필칼럼사설 주일학교 전문교회를 세우자 이철재 감독 2003-09-15 2939
324 수필칼럼사설 디지털 시대와 교회 이철재 감독 2003-09-15 3040
323 경포호수가에서 나이 드는 증세(症勢)들 피러한 2003-09-14 3778
322 경포호수가에서 손가락 하나 때문에... 피러한 2003-09-07 3011
321 생명환경자연 [더워진 한반도] '생태계 교란' 구성재기자 2003-09-06 3761
320 수필칼럼사설 [읽을꺼리30] 풀어주는 교회 김조년 교수 2003-09-05 2685
319 수필칼럼사설 “목회는 목사의 전유물이 아니다” 김원철 목사 2003-09-05 2727
318 수필칼럼사설 [읽을꺼리32] 하나님의 새로운 집 김영일 목사 2003-09-05 2750
317 수필칼럼사설 기독교 세미나의 기업화 김기원 목사 2003-09-05 2902
316 정치건강취미 자기파멸로 들어선 기독우파의 궐기 백찬홍 2003-09-04 3205
315 목회독서교육 교회성장과 조용기 목사의 리더십 김영빈 기자 2003-09-02 4345
314 경포호수가에서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는... 피러한 2003-08-31 3350
313 영성묵상훈련 <영성마당5> 영혼과 영성 김진 2003-08-26 2915
312 영성묵상훈련 <영성마당4> 그리스도교 영성에 대한 다섯 가지 오해 김진 2003-08-26 3724
311 영성묵상훈련 <영성마당3> 영성 이해의 두 흐름 김진 2003-08-26 2781
310 영성묵상훈련 <영성마당2> 영성은 하나의 유행이다? 김진 2003-08-26 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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