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
회남에서‘마음편지’부치는 홍승표 목사
‘쌍비읍을 어떻게 쓰시나요?’
무심코 넘겨본 누런 갱지로 만든 책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ㅂ자를 두번 쓰지 않고 ㅂ자를 하나 쓴 뒤 중간에 선을 그어 쌍비읍을 쓰지 않느냐고 묻고 있었다. ‘요즘같은 바쁜 세상에 누가 ㅂ자를 두번 써서 쌍비읍을 쓰나’ 하는 엇나간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이런 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 ‘회남에서 온 마음의 편지-마음 하나 굴러간다’(호미)의 저자는 회남교회라는 작은 시골교회를 12년째 섬기고 있는 홍승표 목사(37)였다.
5년 전부터 매주 예배시간을 위해 손으로 써서 복사를 한 주보에 ‘목회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홍목사가 연재하는 글을 모은 것이었다. 대청호를 끼고 선 회남교회 주변의 시골풍경과 혼자 두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의 심정, 담박한 시골살림의 재미가 솔솔 풍겨나오는 ‘구수한 된장국’ 같은 책이었다. 책을 보니 이미 그 주보를 받아보는 도시의 팬들이 100여명이나 되는 모양이었다. 그곳에 한번 가볼까. 책을 읽고 나니까 그곳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슬며시 드는 것이었다.
대청호를 끼고 있는 충청남도 보령군 회남면 조곡리는 대전시와의 경계에서 차로 5분거리에 있는 곳이다. 잔잔한 호수 옆에 선 회남교회는 ‘그림 같은 시골교회’와는 거리가 좀 있는 컨테이너 박스를 조립한 허름한 2층건물이었다. 1층은 살림집, 2층은 교회인데 십자가 표시가 아니라면 교회인지 모르고 지나칠 뻔했을 정도여서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찾느라 힘들지는 않았나요?”
생활한복 차림에 나무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는 홍목사는 컨테이너 박스 뒤로 숨은 단칸 황토방으로 안내했다. 교회와 단칸방 사이에는 다섯살난 ‘바람’이와 세살배기 ‘한주’의 집이 있다. 두마리 모두 암캐인데 바람이는 몸이 좀 크고 한주는 좀 작다. 지난해 겨울 친구가 지어준 황토방 한쪽 구석에는 다기세트가 정갈하게 자리잡았고 앉은뱅이 책상이랑 단소 몇개가 벽에 기대어 있었다. 단소는 홍목사가 2년 전부터 재미를 붙여 불고 있는데, 그의 단소 스승이자 인생의 사표이기도 한 이현주 목사가 만들어준 것이라고 했다.
“1990년 아내랑 돌잡이 딸과 함께 가방 하나 들고 이곳 목사로 부임했어요”
그때는 지금과는 달리 아스팔트 포장길도 아니었다고 한다. 기껏해야 교인 100명이 채 못되는 작은 교회의 젊은 목사는 이내 이곳과 마을사람들이 좋아졌고, 마을사람들도 젊은 목사부부와 그들의 딸 ‘민주’를 이웃사촌으로 받아들였다. 아들 배한이도 곧이어 태어났다. 매운탕집 아저씨는 가끔 잡어탕을 해먹으라며 물고기를 가져오기도 하고, 이웃집 할머니는 찐 옥수수를 간식으로 가지고 온다. 그러나 이웃들은 교회에는 그리 자주 나오지 못하는데, 홍목사는 굳이 “꼭 교회에 나오라”고 강요하지 못한다.
“모두들 생업에 바쁘시니까요. 농사일이나 고기잡는 일을 해야 하는 분들 보고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호통을 칠 수는 없더군요”
홍목사는 편안한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한다. 윽박지르고 겁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우러나서 하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도 교인 수는 100명을 넘지 못했다. 홍목사는 주일예배 때도 생활한복 차림일 때가 많다. 물론 성탄절이나 부활주일 같은 절기에는 목사 가운을 입는다. 예배시간 후에는 직접 배운 ‘도인체조’를 교인들에게 가르치기도 하고, 단소 부는 법을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도 시간을 낸다. 지난 학기에는 인근 회남초등학교에서 화요일과 금요일에 아이들에게 단소를 가르쳤다.
“종교는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나 부처님의 자비가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요”
홍목사의 이런 생각은 그가 존경하는 이현주 목사에게서 자연스레 물려받은 것이다. 이목사의 지도로 함께 마음공부를 했고, ‘도덕경’ ‘금강경’ ‘대학’ ‘중용’도 읽어내려갔다. 이목사는 그의 열렬한 주보 독자이기도 하다. 이번에 낸 책에도 그가 발문을 썼다.
“지난해 2월 아이엄마를 교통사고로 잃고 한동안 멍했습니다. 그때 가장 큰 힘이 되어주신 분도 이목사님입니다”
바로 옆자리에 타고 있던 아이엄마를 보내고서, 마음을 잡기 위해 친구의 도움으로 황토방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죽음이 별로 멀리 있지 않다는 것과, 삶과 죽음이 결국은 한 뿌리임을 알게 되었다.
“날마다 다니는 산책길에서 보는 풀 한포기, 새 한마리가 더 소중해지더군요. 천천히 하나씩 음미하면서 사는 생활이 참 행복한 건데도 뭣이 그리 바쁘다고 많은 것을 휙휙 지나쳐버렸구나 싶고요”
그래서 홍목사는 더욱 손으로 쓰는 4쪽짜리 주보를 더 꼼꼼히 준비한다. 좋은 시를 보면 1주일 내내 음미하다가 주보에 소개하기도 하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들에 눈과 귀를 기울였다가 ‘목회 이야기’에 쓴다. 그리고 주보를 써서 우체국에 가져다가 100여장의 우표를 하나씩 꼼꼼하게 풀칠해 부친다.
“우체국 직원이 제가 우표 부치는 걸 보고 답답했는지, 풀과 우표를 홱 뺐더니 한꺼번에 쭉쭉 풀칠을 하고는 뚝뚝 떼서 우표를 붙이더군요. 그렇게 할 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닌데…”
우표 한장마다 풀칠을 해 정성스레 붙이면서 그들을 생각하는 마음도 함께 붙인다고, ㅂ을 두번씩 써서 쌍비읍을 만드는 시골교회 목사님은 사람좋게 웃는다.
▶마음편지 사연들
▲요 몇년동안 제가 사는 곳에는 도토리나무에 도토리가 거의 안 열린답니다. 왜 그러냐고 제가 물으니 우리 교회 교우님은 “도토리나무는 들녘을 바라보고 도토리를 낸대요” 하십니다. 들녘에 풍성히 낟알이 맺히면 도토리는 안 나오고, 들녘이 썰렁할 만큼 낟알이 시원찮으면 도토리가 많이 나온다는 얘기라네요. 참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사는 시골은 밤이 밤다워 참 좋습니다. 오늘날 도시는 밤을 잃어버렸습니다. 밤과 낮은 하나입니다. 밤이 살아야 낮이 살고, 낮이 살아야 밤이 살죠. 시골에서는 가로등을 일부러 꺼놓는 일도 있습니다. 밤에 환히 불을 밝히면 곡식이 자라나지 못하니까요. 어디 곡식뿐이겠어요. 온갖 살아있는 것은 낮만큼 밤도 필요하겠죠. 밤에는 불끄고 잡시다!
▲어제 산책길에 홍시를 두개 주웠습니다. 길가에 앉아서 한개를 먹고 더 먹을까 하다가 “너만 입이냐!”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풀섶에 놓아두고 돌아왔습니다. 김남주님의 시 ‘옛마을을 지나며’가 생각나더군요. ‘찬서리/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조선의 마음이여’. 조선의 마음 곁으로 조금 다가간 것 같아 스스로 대견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뒷간에 써붙여놓고 들여다보고 되뇌는 글귀입니다. ‘이름없이/정직하고/가난하게’. 이렇게 글귀대로 되는 만큼 평안할 것 같습니다. 그 길이 아직 멀었지만, 읽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이무경기자 lmk@kyunghyang.com/
* 경향신문에 난 홍승표 목사님 기사
|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