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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삶의 재충전

생명환경자연 사티쉬 쿠마르............... 조회 수 3479 추천 수 0 2003.09.22 21: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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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살며 생각하며

삶의 재 충전

20세기에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크게 만들려고 야단이었다. 큰 학교, 큰 병원, 큰 사업, 큰 정부 말이다. 균형된 사회에서는 큰 것에 대한 선호는 없어야 한다. 모든 것은 크기가 적절한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과제는 모든 것이 제 크기와 제 위치를 갖고 있는지 알아보는 일이다. 우리가 물건을 부적당한 곳에 두면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조그마한' 풀이 잔디밭에서 자라고 거대한 참나무가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우리가 밖에 나가서 서늘한 풀 위에 눕고자 할 때, 그 때에는 참나무가 우리에게 소용이 없다. 그러나 키 큰 참나무 위에 새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자 할 때 우리는 고개를 들어 참나무를 보려 한다. 풀도 참나무도 제 자리에 있을 때에는 너무 작지도 너무 크지도 않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을 때 일어서서 강의를 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 때에는 차를 준비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생활 속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른 어떤 행동과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깨닫는다면, 그러면 우리의 삶은 훨씬 더 균형이 잡힌다. 우리가 '왜 내가 저녁 준비를 해야 하는가, 왜 내가 빨래를 해야 하는가? 나는 중요한 할 일이 많은데, 어째서 내 아내가 혹은 내 남편이 이 일을 하지 않는가, 또는 어째서 내 딸이 이 일을 하지 않는가? 또는 왜 집안일 도와줄 사람을 두지 않는가'라고 말한다면 그 때는 우리 마음이 그 일에 들어가 있지 않고 따라서 그 일은 고역이며 짐이 되어 버린다. 우리 마음이 일 속에 들어가 있으면 그 때는 그것이 의식이요 소중한 것이 된다.

우리는 열가지 일을 동시에 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음식만들기를 전체적으로 완전히 의식하고 있을 때에만 그것이 영적 행동이 된다. 오늘날 사람들의 생활은 볼품없고 맥빠지고 단조롭게 되어 버렸다. 의사이건 변호사이건 운전사이건 우리가 무엇이건 간에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일 속에 있지 않다. 아주 흔히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을 한다. 그것이 우리 삶의 의미이고 목적인가? 진정한 일은 어디에 있는가? 진정한 일이 부엌에 있지 않다면, 사무실에 작업장에 채소밭에 있지 않다면,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언제 우리의 진짜 일을 하는가? 우리 삶의 매순간이 진짜 일이며 우리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하느님을 깨닫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진정한 일에는 세 차원이 있다. 첫째는 지구, 흙, 환경, 자연에 관계된 것이다. 두 번째는 사회와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 관련된 것이다. 세 번째는 우리의 영혼, 우리의 자아실현에 관련된 것이다.

자연과 환경에 대한 우리의 관계부터 시작하자. 환경이 위협받고 있고 우리의 적절한 관심이 필요하니까. 우리는 땅에서 나오고 흙으로 만들어져 있다. 우리가 땅의 열매를 먹지 않았다면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날마다 우리는 땅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우리의 양식과 숲도 땅에서 나온다. 우리의 집, 벽돌, 돌, 슬레이트, 목재, 진흙, 쇠도 땅에서 나왔다. 우리가 땅을 보살피지 않고 보충하지 않고 계속해서 사용한다면 우리는 탐욕스러운 소비자일 뿐이다. 우리는 땅에서 오직 절대적이고 기본적인 필수품,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만 취해야 한다. 땅은 모든 것이 풍성하게 가지고 있지만 거기에서 우리의 몫은 우리가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 뿐이다.

이것을 예시하는 이야기가 있다. 마하트마 간디가 인도의 초대 수상 네루와 함께 알라하바드 시에 머물고 있었다. 아침에 간디가 손과 얼굴을 씻고 있었다. 네루가 인도의 문제들을 이야기하면서 항아리의 물을 부어주고 있었다. 진지한 논의에 열중해서 간디는 자신이 씻고 있다는 것을 잊었다. 그 때 일이 일어났다. 그가 얼굴 씻기를 마치기 전에 항아리가 비었다. 그래서 네루가 '잠깐 기다리세요. 물을 한 항아리 더 가져오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간디는 '뭐라고! 내가 세수를 끝내지도 않고 물 한 항아리를 다 썼단 말인가? 이런 낭비를 하다니!' 눈물이 눈에서 흘러 내렸다. 네루는 충격을 받았다. '왜 우십니까? 왜 물 걱정을 하십니까? 우리 시에는 갠지스강, 줌나강, 사라스와티강, 이렇게 큰 강이 셋이나 있습니다.' 간디는 '네루, 자네 말이 옳아. 여기에는 큰 강이 세 개 있지. 그러나 그 중에서 내 몫은 하루 아침에 물 한 항아리이고 그 이상은 아니야'라고 말했다.

이것이 생태학적 사고, 자원의 보존, 보충을 보여주는 예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수도꼭지를 열어둔 채 버려둔다! 낭비는 우리 문명의 저주이다. 공장은 끊임없이 물건을 만들어낸다. 우리 사회에 그 물건이 필요한지 어떤 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 물건을 만들고 그것을 갖고 그리고 던져 버린다. 또 사람들에게 계속 일거리를 준다. 그 때문에 일이 억압적이고 지루하고 맥빠지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의 필요에 충당할 풍요로움이 있다. 부족은 없다. 씨앗 하나를 땅에 심으면 해를 거듭하며 셀 수도 없는 많은 열매를 주는 커다란 나무를 얻게 된다. 사과나무 하나를 심으면 얼마나 많은 사과를 얻는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위해서는 충분하다. 그러나 사람들의 탐욕을 위해서는 넉넉하지 않다. 우리는 소박한 기본적인 욕구에로 돌아가야 한다. 땅은 그것을 충족시킬 수 있다. 우리의 진정한 욕구는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다. 정서적인 것, 영적인 것, 지적인 것, 문화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런 육체적이 아닌 욕구를 충족시킨 데는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욕구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사랑에 대한 욕구이다. 이 세상에 사랑의 결핍이 있는가? 아니다. 더 많이 주면 줄수록 더 많이 있다. 그런 데도 우리는 사랑을 주고 받는데 인색하다. 우리는 자주 서로에게 겁을 먹고 의심을 한다. 누가 우리를 껴안으면 우리는 왜 이러지, 뭐가 잘못된 거지, 우리가 무슨 짓을 했지? 하고 생각한다. 우리는 정말로 사랑을 주고 받는 방법을 잊어 버렸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창조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도 자원의 고갈은 없다. 그러니까 시를 짓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자. 우리의 진정한 욕구가 충족되도록 즐기고 축하할 시간을 더 많이 만들자. 우리는 더 많은 자동차, 집, 옷, 가구를 가짐으로써 만족하고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불만이 주위에 가득하다. 이 불만의 치유책은 무엇인가? 더 많은 물건은 아니다.

우리의 첫 번째 생각은 우리가 땅에서 취하는 것을 제한하는 일이 되어야 하고 두 번째 생각은 우리가 취한 것을 유용하게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하나의 예로 모든 사람이 종교적인 책임으로서 나무를 심어야 하는 불교전통이 있다. 불도였던 야쇼카왕은 인도사람 누구나 나무 다섯그루를 심고 그것들을 보살피도록 권고했다.

리처드 세인트 죠지는 잡지 '리서전스'에 아이의 출생을 기념해서 생일목을 심어야 한다고 말하는 글을 썼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우리는 생일에 나무를 심을 수 있고, 더 좋은 일은 생일마다 나무를 한 그루 심는 것이다.

우리가 나무 하나를 쓰고 하나를 심는다면 그것은 되돌려 주는 것이다. 그러나 나무 하나를 쓰고 다섯 그루를 심는다면 그것은 보충이다. 우리는 날마다 땅을 보충하는 일을 해야 한다. 우리가 개발해야 하는 수행은 날마다 땅을 보충해야 하는 일이다. 우리는 날마다 땅으로부터 얻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되돌려주어야 한다. 그것은 어머니 대지에게 진 일종의 빚이고 우리는 빚을 갚아야 한다. 우리가 은행에 빚이 있으면 은행에서 편지를 보낼 것이다. 어머니 대지는 편지를 쓰지 못하므로 우리 스스로 기억해야 한다. 땅을 보충함으로써만 우리는 지구라는 은행이 계속 돌아가게 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파산을 하고 만다.

다음은 사회에 대한 보충의 차례다. 우리는 우리의 조상들, 예수 그리스도와 붓다, 어머니들, 아버지들, 누이들, 형제들, 남편들, 아내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은 우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해주었는가! 우리가 과거 세대로부터 얻는 것처럼 미래의 세대에게 무언가 돌려주어야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사회에 주는 선물이다. 돈을 버는 것은 그 부산물이다. 우리의 일은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섬김의 행동, 예술의 한 형태, 자기 성취의 방법이어야 한다.

우리가 땅과 사회에 진 빚을 갚는 동안 우리는 또 자신을 다시 채워야 한다. 우리의 영혼은 많은 소모를 겪는다. 때로는 노여움으로 때로는 욕정과 탐욕으로 또 때로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영혼은 날마다 상처를 입는다.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만드는 온갖 세력이 있다. 우리의 영혼을 치유할 수 없으면 우리는 온전할 수 없다. 그러면 사회와 지구도 온전할 수 없다. 그래서 명상으로, 금식으로 산책을 하고 흐르는 물 곁에 앉아 있음으로, 꽃을 바라보고 순례나 피정을 가는 것으로,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경전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자신을 다시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 자신이 행복하지 못하면 우리는 누구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물질적 성장에 사로잡혀 있다. 얼마나 더 많은 것이 필요한가? 끝이 없다. 그만하면 되었다는 때를 알지 못하면 충분한 때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 순간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제 우리의 에너지, 주의력, 시간을 보다 깊은 것, 보다 의미있는 것, 영적인 것에 바칠 수 있도록 물질적 성장에 대해서는 '그만 하면 됐다'라고 말할 때가 되었다.

현대적 기술 때문에 기본적인 필요는 절반의 시간이면 충족시킬 수 있는데, 우리는 나머지 시간을 영적이고 문화적인 추구에 쓰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하고 낭비적인 물건을 계속 생산해낸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지구에 대해서도 파괴적인 일이다.

우리의 문제는 충분히 자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잠을 자야 할 밤 시간에 텔레비젼을 보고 또 다른 곳으로 통근하기 위해 일찍 일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몇시간씩 통근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피곤하고 기진맥진하고 바쁘다. 우리는 상식을 잃어버렸다. 잘 자지 못하고 잘 먹지 못하고 너무 많이 일을 한다. 잠을 자면서 우리는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다. 자고 있을 때 우리는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꿈은 섬세한 활동이다. 우리가 자신에게 꿈꿀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인생은 무슨 살 가치가 있는가? 꿈은 영혼을 다시 온전하게 한다.♣

글/ 사티쉬 쿠마르, 인도출신 녹색운동가이며, 세계적인 교육센터인 슈마허 칼리지를 설림 운영하면서 저명한 생태잡지인 Resurgence의 편집자로 일한 사티쉬 쿠마르가 쓴'Sharpham Miscellany: Essays in Spirituality and Ecology(1992)'로 녹색평론 95년 7-8호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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