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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들려야 말을 하죠...

경포호수가에서 피러한............... 조회 수 2960 추천 수 0 2003.09.23 09:56:18
.........
출처 :  




 

들여야 말을 하죠...


대부분 사람들처럼 저도 영어(英語) 공부를 10년 넘게 했지만
외국인과의 대화(對話)는 아직도 초등학생 수준입니다.

매년 '해외의료봉사' 갈 때마다 절실하게 느끼는 것은
'영어가 제대로 들려야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 의사표시(意思表示)는 상대에게 대충이라도 전할 수 있겠는데,
문제는 상대(相對)의 말을 정확하게 알아듣지 못할 때가 많아
억지 웃음으로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평소에 영어(英語)로 말하는 것도 잘 못하지만
'듣는 일'(hearing)은 더 큰 문제라고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고민(苦悶)을 듣고있던 어느 영어 교수님이
조심스럽게 저에게 이렇게 조언(助言)하시더군요...


'연구(硏究)에 의하면... 말할 줄 아는 만큼 들린다고 합니다.'
'그.래..요?... ' (애고 챙피해라...-.-.)



옛날 학교 다닐 때 방학(放學)을 이용하여
대전 어느 농아인 학교에서 한 주간동안 봉사(奉仕) 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를 안내(案內)했던 분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농아(聾啞)인들은 맹아(盲啞)인에 비해 생각도 느리고
지능지수(知能指數)도 떨어집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말을 할 때 그 소리를 자신의 귀로 들을 수 있어야
뇌가 회전(回轉)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데,

농아인들은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할 기회가 적어
지능(知能)과 의식(意識)까지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시각(視覺)장애인들은 박사(博士)들도 많은데
언어(言語)장애인들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 증명(證明)이라도
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므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는 것이요
말할 수 있다는 것은 들을 수 있으므로
지식과 지혜에 큰 도움을 받고있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들음'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만약 눈과 귀 중에 하나만
선택하라면 대부분 '눈'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아프칸 카불에서는 9.11 테러 이후에
많은 NGO 단체들이 봉사(奉仕)하기 위해 그곳에 들어갔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카불시에 들어가서 가장 문제(問題)가 되었던 점은
숙박의 문제가 아니라 영어와 아프간 말을
제대로 알아듣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을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카불대학생 중에서 뽑았는데
영어를 조금만 할 줄 알아도 월 500$를 주었고,
유창한 사람은 월 2,000$를 주고 통역(通譯)으로 썼다는 것입니다.

영어 하나 제대로 들을 줄 알고
말할 줄 알아도 이런 유익(有益)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가 신(神)의 음성을 바로 들을 수만 있다면
아니 우리의 이웃과 가족들의 소리들을 바로 들을 줄만 안다면
이러한 외적인 유익(有益)을 떠나서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가 '고도원'에서 본 글인데
위대한 연설(演說)가들이 공통적으로 지킨 원칙이
"KISS"(Keep It Simple, Stupid)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곧 어떤 대화든지 단순(單純)하게 말하고
그리고 머리 나쁜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쉽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대화(對話)하는 것이 단순하고
쉽게 이해(理解)하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상대가 말할 때 그 사람 입장에서 잘
'들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먼저 상대(相對)의 소리를 들어주어야
상대도 내 말을 듣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인(詩人)은 말하기를,
밤새껏 이야기 할 수 있는 친구 3명만 있어도
행복(幸福)한 사람이라는 했습니다.

현대인들은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습니다.
그래서 애견동물들을 그렇게 사랑하나봅니다.
일본(日本)에서는 '돌'을 개처럼 공원에 끌고 다니는 사람이
늘어만 가고 있다고 합니다.


길을 가다가 정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어도
악수(握手)와 간단한 안부(安否)를 물은 후에는 '다음에 또 보자'하면서
서로 갈 길만 갈 뿐입니다.


현대인은 이렇게 모두가 바쁘게 살다보니 대화의 상대가 없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신의 말을 들어 줄 사람을 찾고있습니다.





쌀알로 점을 보는 점쟁이를 찾아간 어느 부인은
그동안 이야기 상대가 없어 말못했던 속상했던 일들을,
남편 외도부터 시작해서 자식들 이야기, 너무 답답해서 죽고 싶었다는
별별 이야기들을 쉬지 않고 다 쏟아놓고 있었습니다.  

그 때 용하다는 점쟁이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상(床) 위에 있는 쌀알을 세며 그 말들을 들어만 주었습니다.

그리고서 점괘를 말해주었더니,
'어쩜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듯이 그렇게 잘 맞히느냐'하며 놀라워합니다.

사실은 그녀의 말을 경청(敬聽)한 점쟁이가
그녀의 말한 내용과 마음 상태를 그대로 말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아낙은 자기가 한 말인지도 모르고
점쟁이가 용하기 때문에 다 알아 맞추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우리들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방법입니다.
있는 그대로 들어만 주어도
문제의 반은 이미 해결된 셈입니다.


성(聖) 프란스시코는
지나가는 새와도 대화(對話)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새들의 언어를 터득(攄得)했다는 말이 아니라
새 소리까지 들을 줄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자(聖子)의 성(聖)자는
귀(耳)와 입(口), 그리고 왕(王)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귀는 크고 입은 작은 왕'이라는 뜻입니다.
곧 '말은 적게 하고 듣는 것은 많이 하는 왕'이란 의미입니다.





그는 '내 양은 내 음성(音聲)을 듣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양(羊)은 모든 가축 중에 가장 약(弱)한 동물입니다.
특별히 눈이 나빠서 적(敵)이 눈앞에 있어도 도망갈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팔레스틴에서는 양(羊)과 함께 염소를 키웁니다.

그 이유는 염소는 눈도 좋고 꾀도 많아
이리 떼가 나타나면 빨리 도망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양들은 염소가 지금 어딜 뛰어가는 이유(理由)도 모른 채 미련하게
따라갔지만 그 덕에 목숨은 건지는 것입니다.


염소는 이렇게 잘 보고 잘 들을 수는 있지만
문제는 꾀가 많아 목자(牧者)가 불러도
양과 함께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行動)합니다.

그러나 양(羊)은 목자의 음성(音聲)이 들리면
바로 일어서서 그를 따라갑니다.

양은 이렇게 심히 약하나 목자의 소리에 민감하기에 오히려
염소보다 더 보호(保護)함을 받기가 쉽니다.

그래서 양(羊)은 다른 곳은 몰라도
귀에 병이 들면 죽는 다는 것을 '양과 목자'라는 책에서 보았습니다.



모든 종교(宗敎)에서 말하는 기도(祈禱)라는 것도
사실은 그의 음성(音聲)을 듣는 훈련입니다.

우리가 그의 음성만 들을 수 있다면
우리들의 이웃의 소리도 들을 수 있고 그리고 중요(重要)한 것은
자신의 어떤 소리도 그들이 이해(理解)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내 평생(平生) 말하는 자가 아니라
듣는 자의 자리에 서게
하소서...


2003년 9월 셋째 월요일 22일에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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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Andre Gagnon-Chanson Sans Paro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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