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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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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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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 발행일:2436. 20031101
* 글쓴이:박성흠
아름다운세상/ 산골 마을에서 보내 온 믿음의 편지 '민들레 공동체'
경남 산청 산골짜기 마을에 자리한 생활공동체 '민들레'에는 세 가정 14명의 식구들이 오손도손 살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비전을 품고 사는 이들은 후원금을 모아 교회가 없는 지역에 예배당을 세우고 무소유의 생활관 위에서 나눔과 절제의 삶을 실천한다굨
더 많이 갖기 위해 경쟁하며 한 없이 욕심의 보따리를 놓지 않는 세상에 대해 이들의 삶과 신앙은 진정한 풍요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듯 하다.
◈ "굳은 땅에 틔운 복음, 온 세상에"
김인수 전도사가 좀 거창하지만 '대표'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 생활공동체 '민들레'는 경남 산청 깊숙한 산골짜기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세 가정 14명의 식구들이 오손도손, 시끌벅적 살아가는 이 작은 공동체는 깊은 산골 마을에 자리하고 있어 겉으로 보기에 한적하다.
하지만 한적한 오솔길에 피어난 한 송이 민들레처럼 한들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14명의 식구들이 먹고 살아야 하고 먹고 살기만 하면 다인가? 이것 저것 벌려놓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산다는 것 자체가 민들레 하늘거리듯 할 수만은 없는 일 아닌가, 지지고 볶고 부대끼는게 사는 것일테니.
그런데, 생활 공동체에 일은 무슨 일. 같이 어울려 네 것, 내 것 없이 살기만 하면 될 듯 하지만 민들레공동체엔 해야 할 일들이 아주 많다. 영국으로 간 친구는 잘 있는지, 인도에서 건축 중인 신학교는 별일 없는지,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는 무탈한지 신경쓰고 챙겨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민들레공동체의 처음 시작은 김인수 전도사를 중심으로 무교회 지역 교회개척 사역이다.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하고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간사로 활동하면서 대학생선교를 꿈꾸던 청년 김인수가 농촌 사역으로 눈을 돌린 것은 1986년 겨울. 진주시 외곽 농촌 지역의 무교회 지역을 둘러보고 난 직후라고.
'민들레' 팻말을 달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것이 1991년이니까 그 이전부터 공동체의 싹은 트고 있었던 셈이다. 청년 김인수는 '서부경남선교동지회'를 결성하고 지리산 인근 경남서부 무교회 지역에 교회를 개척해 설립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개척해 설립한 교회만 20곳. 여기서 주목할 것은 무턱대고 들어가 '뚝딱 뚝딱' 예배당만 덩그러니 짓고 주민들 보고 '오라'고 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
1백여 호 되는 무교회 지역을 선정하고 그 지역에 젊은이를 들여보내 주민들이 복음을 받을 준비가 될 때까지 함께 생활하며 기다린다는 것이다. 분위기가 조성되면 빈 집을 얻어 살면서 예배를 시작하고 결신자들과 함께 목회자를 청빙해 자립 교회가 되도록 기도후원을 맺는다는 것. 그렇게 인내와 끈기로 맺어진 열매(교회)의 대부분은 쉽게 깨지지 않고 지금까지 민들레와 이런 저런 소식들을 나누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날 민들레공동체를 찾은 날은 익어가는 단감이 '쿵' 소리를 내고 떨어지던 때였다.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던 이가 설계하고 함께 지었다는 공동생활공간 거실에 걸린 게시판에는 인도와 캄보디아 영국에서 온 사진과 편지가 빼곡했다. 또 한 곳엔 그동안 '민들레'가 개척해 설립한 교회가 이런 저런 소식을 보내온 편지들이 가득했다.
"도대체 무슨 돈이 많아 이런 일들을 벌이느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혹시 어디서 막대한 후원이라도 들어오는 건 아니냐'는 복선이 깔린 음흉한 질문이었는데, 김 전도사는 금방 알아채고 받아친다.
"우리 돈 없습니다. 식구들이 때로 먹을 것이 없어서 푸성귀만 뜯어먹을 때도 있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김 전도사의 설명은 '이그 순박하기는…'하고 혀를 찰 정도다. "전국의 지인들이 보내주는 후원금이 있구요, 얼마나 되는지 정리는 안해봤습니다만 개인후원자들도 있어요. 그리고 제가 강연으로 받는 사례(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강의를 한다고 했다)도 있구요, 우리가 공방에서 직접 만드는 각종 팬시용품도 있지요. 그런데 중요한 건 돈이 아니에요. 해야 할 이라고 판단이 되면 반드시 시작하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는 분이 계시더라구요"
공동체 생활의 기본은 '무소유'. 소유의 구분은 분명 있지만 이익을 좇아 살지 않는 것이 무소유의 기본 개념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설명하는 민들레공동체의 재정 상태는 그다지 체계적이지 못해 보인다. 그래도 "돈의 권세를 이기는 건 공동체의 기본 개념인 '무소유'가 아니냐"는 반문에는 고개가 끄떡여지는 대목이다.
공동체 생활. 사실 김 전도사 스스로도 아직 어떤 성과가 있을지 자신하지 못한다. 아내와 아이 셋 그리고 두 가정 열네명의 식구가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었다. 그동안 거쳐간 사람들이 있고 또 누가 들어와 같이 살자고 하면 식구들과 조금 망설이겠지만 결국은 틈을 내어줄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시도이고 그 결과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하지만 민들레 사람들이 말하는 "내꺼, 우리꺼 챙기기 시작하면 선교는 못했을 것"이라는 말은 답을 주는 듯하다.
김 전도사가 '밥 종'을 울리자 위 아래에서 사람들이 공동체 공간으로 모여들었다. 기자가 대접받은 구수한 된장국과 시장기를 더욱 돋우는 기름 지짐. "열 네 식구가 함께 밥을 먹다 보니 자연스럽게 돈을 적게 들이는 방법을 깨치게 되더군요" 무채에 부추지짐 그리고 된장국과 멸치조림. 사람들은 '기자 덕분에 좋은 반찬이 많이 나왔다'고 좋아했다.
내 것 네 것의 구별은 하지만 이익을 좇아 살지 않는다는 이해하기 힘든 민들레 사람들. 내 집, 내 아내, 내 남편, 내 아기, 내 차가 당연한 시대에 무소유를 실천하는 조금 엉뚱한 사람들. 그런데도 기자는 '민들레'를 뒤로 하고 몰고 나오는 작은 차가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jobin@kidokongbo.com
◈'참된 무소유를 지향한다'
현실적 아나키스트 김인수
민들레공동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 사람은 본래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한 대학생 선교 활동가다. 지금도 서울대 농과대학에서 지역사회 발전에 미치는 농촌 교회의 영향이라는 알듯말듯한, 조금 무거워 보이는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을만큼 학구적인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농촌선교 운동가로 무 교회 지역에서 교회 개척 운동을 하며 생활공동체의 대표로 산다는 것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이다.
뒤늦게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한 이후로 그에게는 자연스럽게 '전도사'라는 직함이 따라 다닌다. 예장 고신이 그의 신앙 배경이긴 하지만 딱히 소속된 교단이 없는 그를 사람들은 서슴없이 전도사라 부르고 그 역시 전도사로 불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했다.
일반적인 공동체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선교'에 심혈을 기울인다. 무교회 지역을 찾아 주민들의 마음을 얻어내고 교회를 세웠다. 일단 교회가 설립되면 교단에 적을 둔 목회자를 청빙해 교회를 맡기고 또 다른 후보지를 찾는다. 인도와 캄보디아 등에서 세계선교 활동도 왕성하게 하고 있다.
그는 "내 것 네 것을 구분할 뿐 이익을 좇아 살지 않는 것이 무소유"라고 말한다. 혹시 누가 "당신 아나키스트냐고 공격하면 어쩔테냐"고 물었다. 김 전도사는 태연하게 말했다." 초등학교만 마치고 집에서 학업을 하는 아들녀석(김진혁ㆍ17)이 그러더군요
"아빠는 보수주의와 잘 어울리는 급진주의자'라고요굨" 하루이틀 만난 기자 보다는 아들이 더 아빠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현실 급진주의자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jobin@kidokongbo.com
◈ 십자가, 쉽게 볼 수 있지만 교회 없는 마을 너무 많다
대한민국에는 교회 없는 곳이 없다? 서울은 물론이고 아무 도시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교회 십자가이고 '대한 예수교…' 또는 '기독교 대한…'으로 시작하는 교회 간판이니 '대한민국에는 교회 없는 곳이 없다'는 말에 수긍할 수도 있는 일이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와서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밤하늘을 수놓은 네온 불빛의 교회 십자가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흔한 게 교회다. 아파트마다 '우리 교회로 오라'며 광고하는 전도지가 광고 전단지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도 사실이어서, 마음만 먹는다면 교회를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대한민국에는 교회 없는 곳이 없다'는 말은 틀렸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교회 없는 마을이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 많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른바 '무 교회 지역'으로 불리는 곳인데, 지리산의 경남 서부지역에만도 1백 곳이 넘는 마을이 '무 교회 지역'으로 남아 있다.
김인수전도사는 "우리나라 평균 복음화율은 25퍼센트에 달하지만 지리산 인근 경남 서부지역의 복음화율은 4∼5퍼센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 전도사는 자료조사를 통해 경남서부 지역 2개시 8개군에 걸쳐 아직도 1백개 지역에 교회를 개척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가 말하는 1백개 교회개척 후보지는 단순히 1백개 마을이 아니다. 여러 마을을 합쳐 1백호(戶) 정도 되는 규모에 1개 교회를 설립하도록 해서, 경남 서부지역에만 1백 개 지역이 무교회 지역으로 남는다는 것. 수년동안 발로 뛰어 조사해 마련한 자료다.
jobin@kidokongbo.com
* 글쓴이:박성흠
아름다운세상/ 산골 마을에서 보내 온 믿음의 편지 '민들레 공동체'
경남 산청 산골짜기 마을에 자리한 생활공동체 '민들레'에는 세 가정 14명의 식구들이 오손도손 살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비전을 품고 사는 이들은 후원금을 모아 교회가 없는 지역에 예배당을 세우고 무소유의 생활관 위에서 나눔과 절제의 삶을 실천한다굨
더 많이 갖기 위해 경쟁하며 한 없이 욕심의 보따리를 놓지 않는 세상에 대해 이들의 삶과 신앙은 진정한 풍요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듯 하다.
◈ "굳은 땅에 틔운 복음, 온 세상에"
김인수 전도사가 좀 거창하지만 '대표'라는 직함을 갖고 있는 생활공동체 '민들레'는 경남 산청 깊숙한 산골짜기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세 가정 14명의 식구들이 오손도손, 시끌벅적 살아가는 이 작은 공동체는 깊은 산골 마을에 자리하고 있어 겉으로 보기에 한적하다.
하지만 한적한 오솔길에 피어난 한 송이 민들레처럼 한들거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14명의 식구들이 먹고 살아야 하고 먹고 살기만 하면 다인가? 이것 저것 벌려놓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산다는 것 자체가 민들레 하늘거리듯 할 수만은 없는 일 아닌가, 지지고 볶고 부대끼는게 사는 것일테니.
그런데, 생활 공동체에 일은 무슨 일. 같이 어울려 네 것, 내 것 없이 살기만 하면 될 듯 하지만 민들레공동체엔 해야 할 일들이 아주 많다. 영국으로 간 친구는 잘 있는지, 인도에서 건축 중인 신학교는 별일 없는지,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는 무탈한지 신경쓰고 챙겨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민들레공동체의 처음 시작은 김인수 전도사를 중심으로 무교회 지역 교회개척 사역이다.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하고 대학생 선교단체에서 간사로 활동하면서 대학생선교를 꿈꾸던 청년 김인수가 농촌 사역으로 눈을 돌린 것은 1986년 겨울. 진주시 외곽 농촌 지역의 무교회 지역을 둘러보고 난 직후라고.
'민들레' 팻말을 달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것이 1991년이니까 그 이전부터 공동체의 싹은 트고 있었던 셈이다. 청년 김인수는 '서부경남선교동지회'를 결성하고 지리산 인근 경남서부 무교회 지역에 교회를 개척해 설립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개척해 설립한 교회만 20곳. 여기서 주목할 것은 무턱대고 들어가 '뚝딱 뚝딱' 예배당만 덩그러니 짓고 주민들 보고 '오라'고 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
1백여 호 되는 무교회 지역을 선정하고 그 지역에 젊은이를 들여보내 주민들이 복음을 받을 준비가 될 때까지 함께 생활하며 기다린다는 것이다. 분위기가 조성되면 빈 집을 얻어 살면서 예배를 시작하고 결신자들과 함께 목회자를 청빙해 자립 교회가 되도록 기도후원을 맺는다는 것. 그렇게 인내와 끈기로 맺어진 열매(교회)의 대부분은 쉽게 깨지지 않고 지금까지 민들레와 이런 저런 소식들을 나누고 있다.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날 민들레공동체를 찾은 날은 익어가는 단감이 '쿵' 소리를 내고 떨어지던 때였다. 공동체에서 함께 생활하던 이가 설계하고 함께 지었다는 공동생활공간 거실에 걸린 게시판에는 인도와 캄보디아 영국에서 온 사진과 편지가 빼곡했다. 또 한 곳엔 그동안 '민들레'가 개척해 설립한 교회가 이런 저런 소식을 보내온 편지들이 가득했다.
"도대체 무슨 돈이 많아 이런 일들을 벌이느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혹시 어디서 막대한 후원이라도 들어오는 건 아니냐'는 복선이 깔린 음흉한 질문이었는데, 김 전도사는 금방 알아채고 받아친다.
"우리 돈 없습니다. 식구들이 때로 먹을 것이 없어서 푸성귀만 뜯어먹을 때도 있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김 전도사의 설명은 '이그 순박하기는…'하고 혀를 찰 정도다. "전국의 지인들이 보내주는 후원금이 있구요, 얼마나 되는지 정리는 안해봤습니다만 개인후원자들도 있어요. 그리고 제가 강연으로 받는 사례(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강의를 한다고 했다)도 있구요, 우리가 공방에서 직접 만드는 각종 팬시용품도 있지요. 그런데 중요한 건 돈이 아니에요. 해야 할 이라고 판단이 되면 반드시 시작하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는 분이 계시더라구요"
공동체 생활의 기본은 '무소유'. 소유의 구분은 분명 있지만 이익을 좇아 살지 않는 것이 무소유의 기본 개념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설명하는 민들레공동체의 재정 상태는 그다지 체계적이지 못해 보인다. 그래도 "돈의 권세를 이기는 건 공동체의 기본 개념인 '무소유'가 아니냐"는 반문에는 고개가 끄떡여지는 대목이다.
공동체 생활. 사실 김 전도사 스스로도 아직 어떤 성과가 있을지 자신하지 못한다. 아내와 아이 셋 그리고 두 가정 열네명의 식구가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새 10년을 훌쩍 넘었다. 그동안 거쳐간 사람들이 있고 또 누가 들어와 같이 살자고 하면 식구들과 조금 망설이겠지만 결국은 틈을 내어줄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시도이고 그 결과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하지만 민들레 사람들이 말하는 "내꺼, 우리꺼 챙기기 시작하면 선교는 못했을 것"이라는 말은 답을 주는 듯하다.
김 전도사가 '밥 종'을 울리자 위 아래에서 사람들이 공동체 공간으로 모여들었다. 기자가 대접받은 구수한 된장국과 시장기를 더욱 돋우는 기름 지짐. "열 네 식구가 함께 밥을 먹다 보니 자연스럽게 돈을 적게 들이는 방법을 깨치게 되더군요" 무채에 부추지짐 그리고 된장국과 멸치조림. 사람들은 '기자 덕분에 좋은 반찬이 많이 나왔다'고 좋아했다.
내 것 네 것의 구별은 하지만 이익을 좇아 살지 않는다는 이해하기 힘든 민들레 사람들. 내 집, 내 아내, 내 남편, 내 아기, 내 차가 당연한 시대에 무소유를 실천하는 조금 엉뚱한 사람들. 그런데도 기자는 '민들레'를 뒤로 하고 몰고 나오는 작은 차가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jobin@kidokongbo.com
◈'참된 무소유를 지향한다'
현실적 아나키스트 김인수
민들레공동체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 사람은 본래 대학에서 농업을 전공한 대학생 선교 활동가다. 지금도 서울대 농과대학에서 지역사회 발전에 미치는 농촌 교회의 영향이라는 알듯말듯한, 조금 무거워 보이는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을만큼 학구적인 인물이다. 그래서인지 농촌선교 운동가로 무 교회 지역에서 교회 개척 운동을 하며 생활공동체의 대표로 산다는 것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사람이다.
뒤늦게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한 이후로 그에게는 자연스럽게 '전도사'라는 직함이 따라 다닌다. 예장 고신이 그의 신앙 배경이긴 하지만 딱히 소속된 교단이 없는 그를 사람들은 서슴없이 전도사라 부르고 그 역시 전도사로 불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했다.
일반적인 공동체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선교'에 심혈을 기울인다. 무교회 지역을 찾아 주민들의 마음을 얻어내고 교회를 세웠다. 일단 교회가 설립되면 교단에 적을 둔 목회자를 청빙해 교회를 맡기고 또 다른 후보지를 찾는다. 인도와 캄보디아 등에서 세계선교 활동도 왕성하게 하고 있다.
그는 "내 것 네 것을 구분할 뿐 이익을 좇아 살지 않는 것이 무소유"라고 말한다. 혹시 누가 "당신 아나키스트냐고 공격하면 어쩔테냐"고 물었다. 김 전도사는 태연하게 말했다." 초등학교만 마치고 집에서 학업을 하는 아들녀석(김진혁ㆍ17)이 그러더군요
"아빠는 보수주의와 잘 어울리는 급진주의자'라고요굨" 하루이틀 만난 기자 보다는 아들이 더 아빠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현실 급진주의자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jobin@kidokongbo.com
◈ 십자가, 쉽게 볼 수 있지만 교회 없는 마을 너무 많다
대한민국에는 교회 없는 곳이 없다? 서울은 물론이고 아무 도시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교회 십자가이고 '대한 예수교…' 또는 '기독교 대한…'으로 시작하는 교회 간판이니 '대한민국에는 교회 없는 곳이 없다'는 말에 수긍할 수도 있는 일이다.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와서 놀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밤하늘을 수놓은 네온 불빛의 교회 십자가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로 흔한 게 교회다. 아파트마다 '우리 교회로 오라'며 광고하는 전도지가 광고 전단지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도 사실이어서, 마음만 먹는다면 교회를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대한민국에는 교회 없는 곳이 없다'는 말은 틀렸다.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교회 없는 마을이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 많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른바 '무 교회 지역'으로 불리는 곳인데, 지리산의 경남 서부지역에만도 1백 곳이 넘는 마을이 '무 교회 지역'으로 남아 있다.
김인수전도사는 "우리나라 평균 복음화율은 25퍼센트에 달하지만 지리산 인근 경남 서부지역의 복음화율은 4∼5퍼센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 전도사는 자료조사를 통해 경남서부 지역 2개시 8개군에 걸쳐 아직도 1백개 지역에 교회를 개척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가 말하는 1백개 교회개척 후보지는 단순히 1백개 마을이 아니다. 여러 마을을 합쳐 1백호(戶) 정도 되는 규모에 1개 교회를 설립하도록 해서, 경남 서부지역에만 1백 개 지역이 무교회 지역으로 남는다는 것. 수년동안 발로 뛰어 조사해 마련한 자료다.
jobin@kidokong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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