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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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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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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http://deulsoritimes.co.kr
2003.5.7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56
[1063]하늘의 분노를 들으라
자기를 속인다는 것은 인격의 파멸이요 파산을 말하는 것이다. 보라.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거짓 제사에 쉴날이 없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이사야의 부르짖음이다. 이는 하나님 자신의 심정이다. 그 마음 깊은 속을 이사야가 표현한 것이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이 또한 절규가 아닌가. 우리는 이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회초리를 들고 성전을 더럽히는 짐승만큼도 못한 인간들을 응징하는 예수의 심정을 이해해야 한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라 하였다. 탄식이요 통탄이다. 어찌해야 하는가. 오늘을 사는 사람들아, 이 말씀을 도덕적 범위 안에서 해결하려들지 마라. 도덕이 좋긴 좋다마는 인간의 본질을 구분하는 것으로는 `믿음'이냐가 되는 것이지 도덕률만으로는 안된다. 여기서 말씀하지 않는가. `소는, 나귀는' 이라 하는 지적을 보라. 짐승만큼도 못한 인간(선민이라는 자들, 기독교인이라는 자들)의 불신앙을 지적하고 있다. 이 성전을 헐어라! 목청이 터지도록 외치지만 듣지 않는다. 방음장치를 해 두고, 너는 짖어라 나는 내 길을 간다는 자들 앞에서 골고다 보다 더욱 처절한 배신을 느낀다.
제단의 제물로 예수를 매수하려는 자들이 예나 지금이나 태양을 가리고 진리를 혼잡케 한다. 그러나 예수는 분명히 성전에서 말하고 행동했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하는 말씀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더는 아니다. 짐승의 제사, 돈의 제사, 위선의 제사, 제사로 제사하는 방식으로는 안된다. 이 성전을 헐라! 반드시 헐어내야 한다. 내가 3일안에 일으키리라.
오늘의 기독교가 향방을 찾지 못함은 `성전'이라는 위선과 거짓, 때를 놓친 우상의 껍데기 같은 허위가 신자들의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하여 유혹이요 배반이다. 말씀을 듣지 않고 귀를 막아버린 세대, 말씀을 변형·변조시켜버린 음모, 아!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 하였거늘 귀를 막아 버린 세대가 자기들 입맛대로 기독교를 변질시켜 버렸다.
예수여, 어찌해야 하는가? 온 세상이 배반했지 않은가. 유대광야의 그 빛나는 승리, 돌로 떡을 만들지 않던 예수, 기적을 행하여 눈속임하지 않던 예수, 사단에게 절하지 않았던 예수를 오늘의 기독교는 알지 못하는 데 예수여, 어찌하면 좋은가.
하늘이여, 땅이여! 말해 주오. 잘못된 기독교의 앞날이 더는 없음을 말씀해 주오. 십자가의 예수를 온 몸으로 구체화 하는 자들을 일으켜 주오.(無然)
2003.5.7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56
[1063]하늘의 분노를 들으라
자기를 속인다는 것은 인격의 파멸이요 파산을 말하는 것이다. 보라.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거짓 제사에 쉴날이 없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는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이사야의 부르짖음이다. 이는 하나님 자신의 심정이다. 그 마음 깊은 속을 이사야가 표현한 것이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이 또한 절규가 아닌가. 우리는 이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회초리를 들고 성전을 더럽히는 짐승만큼도 못한 인간들을 응징하는 예수의 심정을 이해해야 한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라 하였다. 탄식이요 통탄이다. 어찌해야 하는가. 오늘을 사는 사람들아, 이 말씀을 도덕적 범위 안에서 해결하려들지 마라. 도덕이 좋긴 좋다마는 인간의 본질을 구분하는 것으로는 `믿음'이냐가 되는 것이지 도덕률만으로는 안된다. 여기서 말씀하지 않는가. `소는, 나귀는' 이라 하는 지적을 보라. 짐승만큼도 못한 인간(선민이라는 자들, 기독교인이라는 자들)의 불신앙을 지적하고 있다. 이 성전을 헐어라! 목청이 터지도록 외치지만 듣지 않는다. 방음장치를 해 두고, 너는 짖어라 나는 내 길을 간다는 자들 앞에서 골고다 보다 더욱 처절한 배신을 느낀다.
제단의 제물로 예수를 매수하려는 자들이 예나 지금이나 태양을 가리고 진리를 혼잡케 한다. 그러나 예수는 분명히 성전에서 말하고 행동했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하는 말씀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더는 아니다. 짐승의 제사, 돈의 제사, 위선의 제사, 제사로 제사하는 방식으로는 안된다. 이 성전을 헐라! 반드시 헐어내야 한다. 내가 3일안에 일으키리라.
오늘의 기독교가 향방을 찾지 못함은 `성전'이라는 위선과 거짓, 때를 놓친 우상의 껍데기 같은 허위가 신자들의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육체의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하여 유혹이요 배반이다. 말씀을 듣지 않고 귀를 막아버린 세대, 말씀을 변형·변조시켜버린 음모, 아!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아무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으라, 하였거늘 귀를 막아 버린 세대가 자기들 입맛대로 기독교를 변질시켜 버렸다.
예수여, 어찌해야 하는가? 온 세상이 배반했지 않은가. 유대광야의 그 빛나는 승리, 돌로 떡을 만들지 않던 예수, 기적을 행하여 눈속임하지 않던 예수, 사단에게 절하지 않았던 예수를 오늘의 기독교는 알지 못하는 데 예수여, 어찌하면 좋은가.
하늘이여, 땅이여! 말해 주오. 잘못된 기독교의 앞날이 더는 없음을 말씀해 주오. 십자가의 예수를 온 몸으로 구체화 하는 자들을 일으켜 주오.(無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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