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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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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오줌이 반성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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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오줌 마시며 어제 뱉은 말과 욕망을 주어 담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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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겨울을 대비하여 내복을 챙겨두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도 겨울철에는 꼭 내복을 챙겨 입을 것을 당부했습니다. 내복을 입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일이 나를 살리고 지구를 살리는 길이라고 힘 주어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성도는 "목사님, 요즘 날씨가 봄 날씨인데 무슨 내복이에요" 그럽니다. 그래도 날씨가 추워지면 꼭 내복을 챙겨 입자고 다시 다짐을 받아두었습니다. 요즘 우리 동네에 노랗게 민들레꽃이 피었습니다. 소설(小雪) 지나 대설(大雪)인데 민들레꽃이 피다니. 동네 사람들은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걱정스러워 하는 모습입니다. 얼마 전에는 남녘 땅에 있는 어느 과수원에 배나무가 배꽃을 피웠다는 뉴스를 들은 바 있습니다. 배를 딴 뒤에 추운 겨울이 와야 하는데, 봄 날씨처럼 계속 따뜻하니 배나무가 봄인 줄 알고 꽃을 피웠다는 것입니다. 과수원 주인은 올해 배꽃을 피웠으니 내년 배농사는 다 지었다고 한탄을 했습니다. 또 엊그제는 여름에나 오는 대풍이 지금 일본 해안 가까이에 몰려오고 있다는 보도를 듣기도 했습니다. 이제 계절의 구분이 없어지는 모양입니다. 지구온난화로 겨울도 없어지고, 지금은 모두 열대지역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100년 안에 남극의 얼음이 모두 녹아 내릴 거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면 지구는 끝장이겠지요. 세상은 돌고 돌아 하느님의 때를 살라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은 잘 아는 바와 같이 사람들이 철없이 산 결과입니다. 철 따라 살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자기 편리한 대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따뜻한 곳만 찾고, 편리한 것만 구하고, 더 풍요롭게 살 꿈을 꾸며 사는 한, 지구는 분명 파멸을 향해 갈 수밖에 없겠지요. 11월 24일부터 에덴기도원에서 민들레성서연구원이 주관한 성서공동연구 모임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성경공부를 하기 전에 노래를 부르는데, 이 번 모임에서 가장 히트한 노래는 <민들레의 노래>에 수록된 외국 번안곡 "세상은 돌고 돌고 돌아"라는 곡입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 노래를 너무 많이 불러 돌 지경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이렇습니다. 세상 모두 돌고 돌고 돌아 다
때가 있네 마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돌고 돌아가듯 세상도 돌고 돌아갑니다. 그리고 돌고 돌아가야 세상이 살아 갈 수 있고, 흐르고 흘러야 생명이 살아 갈 수 있습니다. 돌고 돌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때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봄의 때와 여름의 때, 가을의 때와 겨울의 때가 있어야 합니다. 물이 흐를 때와 멈출 때, 비가 내릴 때와 비가 그칠 때, 해가 뜰 때와 해가 질 때, 꽃이 필 때와 꽃이 질 때, 머무를 때와 떠날 때가 있어 세상의 뭇 생명이 살아갑니다. 그것처럼 우리는 바로 세울 때와 무너트릴 때, 잡아야 할 때와 놓아야 할 때, 손잡을 때와 싸울 때를 깨달아 살아가야 합니다. 한결 같이 성장과 발전, 풍요와 편리라는 한 길만을 가는 것이 아니라 버릴 때와 취할 때를 분명히 하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 우리가 무엇을 하며 살 때인지를 잃고 살아갑니다. 먹을 때와 비울 때 중에서 먹을 때만 찾아가고, 취할 때와 버릴 때 중에 취하기만 하고, 발전할 때와 후퇴할 때 중에 발전만을 고집하며 삽니다. 그래서 때를 잃어버린 세상은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쏠려 쓰러지고 있습니다. 겨울철에도 여름처럼 살려고 하니 에너지를 계속 쓰게 되고 그래서 온난화가 일어나고, 고기만 찾아 먹으니 굶어죽는 이들이 생기고, 자동차만 끌고 다니니 공기가 오염되고, 큰 집 큰 교회만 지으려하니 작은 것의 소중함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때를 잃고 살아가는 사람은 철없는 사람입니다. 맨 날 좋은 것 편리한 것 배부른 것 따뜻한 것 큰 것 고급스러운 것만 찾아다니는 현대인은 분명 철없는 인간들입니다. 교회마저도 철을 잃어버렸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라 하신 주님 말씀은 들으려 하지 않고, 크고 많고 거대하고 웅장한 교회건물을 짓고 그곳에 주님이 계시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참으로 철없는 생각이요,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짓입니다. 예수 잘 믿으면 큰집에서 살고 돈 많이 벌고 무병장수 하는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설교하는 목사야말로 철없는 목사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왜 오셨는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삶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려 하지 않고 오직 철없는 세상에 발맞추어 철없는 짓들만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봄의 때에는 봄의 일을, 여름의 때에는 여름의 일을, 가을의 때에는 가을의 일을, 겨울의 때에는 겨울의 일을 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도리이며,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때가 바로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 일에 충실하고 교회를 오래 다녔다할지라도 하느님의 때, 곧 창조질서를 거역하고 산다면 그 사람은 분명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름지기 버릴 때와 취할 때, 모을 때와 나눌 때, 세울 때와 무너트릴 때를 분별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세상의 요구를 마치 주님이 바라시는 일이라고 여기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주님의 때를 찾아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포크레인과 호미 지난 11월 중순에 집안 어르신이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선산에 모시기로 하고 포크레인을 불러 산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일을 거들었습니다. 묘 자리를 본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햇볕 잘 들고 물이 없어 명당자리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가을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포크레인의 기계음이 요란스럽게 울리더니 크고 작은 나무들을 무너트리고 산길을 내었습니다. 포크레인이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나무들은 무기력하게 쓰러지고 무참하게 짓밟히고 산은 곧 점령되고 말았습니다. 묘 자리로 예정했던 곳에 이르러서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낑낑 버티는 것도 잠시 부지직거리며 쓰러졌습니다. 나무에서 나는 "부지직부지직" 소리는 마치 "으악 -! 으악 -!" 나무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 같았습니다. 한 시간도 안 돼, 포크레인은 그 곳에 자리 잡고 살았던 크고 작은 나무들을 모조리 뽑아버리고 50여 평의 묘 자리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포크레인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포크레인이 손 갈퀴를 한 번 하늘 높이 쳐들어 올렸다가 이내 내리치면 나무도 쓰러지고 땅도 파헤쳐지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혹시 저 포크레인의 모습이 내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내 발은 뭇 생명을 짓밟는 포크레인의 발은 아닐까, 내 손은 생명을 파헤치는 손아귀는 아닐까, 나의 소리는 듣기 싫은 기계음은 아닐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포크레인처럼 생명을 짓밟고 하느님의 창조세계를 파헤치고, 창조질서를 거역하며 살아온 포크레인과 같은 삶. 그것이 나의 삶이 아니었을까. 전지전능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저 포크레인을 보면서 나의 모습과 또 나와 같은 삶을 사는 인간의 모습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포크레인과 같은 삶의 방식을 버려야 합니다. 무지막지하게 쓰러트리고 무너트리고 파헤치며 끝장내야 직성이 풀리는 포크레인과 같은 죄악을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의 터전은 정말 끝장나고 말 것입니다. 어머니는 밭에 쪼그리고 앉아 호미로 땅을 파고 씨앗을 심고 가꾸며 사십니다. 어머니에게는 포크레인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호미 한 자루면 충분합니다. 땅이 깊게 파헤치면 땅이 아프지는 않을까, 아주 살살 땅을 일구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포크레인, 너와 나 사이에 있는 포크레인, 지구 가득 기계음을 울리고 있는 포크레인을 버리고 어머니의 호미를 들고 땅을 일구지 않는 한, 봄여름가을겨울은 사라지고, 하느님의 숨결도 멈춰서고, 사람도 사라져 이 지구에는 생명이 없는 포크레인만 남을 것입니다. 제 오줌이 반성합니다 녹색평론사에서 발행한 <우리들의 하느님>이라는 권정생 선생님의 책에 나오는 "제 오줌이 대중합니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제 오줌을 대중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습니다. 권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이 말의 요지는, 옛날 시계가 없던 시절에 갓 시집온 새댁이 밤중에 일어나 제삿밥을 지으러 부엌으로 가자, 인기척 소리에 사랑방 시아버지가 내다보고 며느리에게 "아직 이르지 않느냐?"고 묻으니, 며느리가 "제 오줌이 대중합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서 첫 번째 오줌이 마려울 때 일어나면 그 때가 바로 제삿밥 지을 때가 딱 들어맞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제 오줌을 마시고 있습니다. 오줌을 마신 지 두 달이 가까워 옵니다. 우리 교회 송명희 집사님은 당신도 얼마 전부터 오줌을 마셨더니 몸 상태가 무척 좋아졌다고 하면서, 저에게도 요료법을 할 것을 권했습니다. 평소에 목사인 저의 몸이 건강치 못하다고 생각했던 집사님은 요료법을 하면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요료법은 시간도 필요 없고, 돈이 들지 않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건강법이라는 말에 한번 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사가 보약 같은 것은 엄두도 못 낼 일이니, 자기 오줌을 마시는 것은 돈도 들지 않고 시간도 필요치 않으니 얼마나 좋은 것이겠습니까. 두 달 전 주일 어느 날, 새벽예배에 가기 전에 첫 오줌을 떨리는 마음으로 유리컵에 받아 코를 손으로 막고 한 모금 꿀꺽 마셨습니다. 오줌 특유의 냄새가 코와 입안 가득 돌았습니다. 순간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차가운 물로 헹구고 양치를 했더니 괜찮아졌습니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다는 말이 맞습니다. 처음 그렇게 하고 나니 둘째 날부터는 두 모금, 세 모금 마실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아침에 밥 먹 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제 오줌을 아내와 함께 마시고 있습니다. 이제는 제 오줌은 그냥 배설해 버리면 되는 오줌이 아닙니다. 내 몸의 수천 키로의 혈관을 돌고 돌아 나온 제 오줌은 그냥 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살리는 생명수입니다. 그리고 저는 권정생 선생님께서 하신 "제 오줌이 대중합니다"라는 말을 다른 의미에서 실감하고 있습니다. 전 날 고기를 먹으면 제 오줌의 냄새가 지독하고 그 맛도 쓰고 찝찌르한 것이 먹기가 역합니다. 심지어는 고기를 먹지 않고 야채와 곡류를 먹었어도 스트레스를 받고 마음에 걱정 근심 속에 하루를 살면, 그 오줌의 맛 역시 고기 먹었을 때 보다 더 역한 맛을 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제 오줌이 제 전 날의 삶을 반성하게 하는 것이지요. 매일 아침에 저는 오줌을 마시면서 전 날의 삶을 반성하고 오늘 하루의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제 배설물인 오줌을 마시면서 모든 사람이 자기의 배설물을 다시 자기의 입으로 들어가게 하는 수행을 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순결해지리란 생각을 해 봅니다. 자기가 배설한 오줌을 다시 마시고, 자기가 내뱉은 말을 다시 주어 먹고, 마음 속으로 내뱉은 탐욕의 마음을 다시 마음 속으로 주어 담을 수 있다면, 자기가 타고 다니는 자동차의 매연을 자기 코로 다시 마실 수 있다면, 아니 우리가 지금 자기가 내뱉고 토해낸 온갖 배설물을 마시며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산다면, 진정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욱 맑아질 것이며, 우리의 삶과 영혼 또한 맑아지고 빛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 아침에도 제 몸에서 나온 오줌을 마시며 어제의 나의 삶을 반성해 보고, 오늘의 삶을 다짐해 봅니다. 어제 내 입으로 내뱉은 수없이 많은 말들을 다시 주어 담으며, 오늘의 나를 다시 세워 봅니다. 오줌을 마시며 드리는 기도 주님. 주님. 주님, 바라옵기는 오늘 아침에 받아먹은 제 오줌은
매일 마시는 제 오줌으로 매일 마시는 제 오줌으로 주님은 물 길으러 야곱의 우물에
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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