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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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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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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eulsoritimes.co.kr 2004.6.2
사단에게 기회를 주지마라
우리는 World cup 한·일 대회를 열게 될 때 `붉은 악마'의 출현을 지켜보았다. 스포츠 세계의 역설적 애칭이라고는 했었지만 그것이 한국사회에 엉뚱한 오만을 심었음을 뒤늦게 인정하게 된다.
하기는 이미 50여 년 전부터 인류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사회윤리의 고갈, 환경 파괴, 국제질서의 난맥상, 철학과 종교의 공백기에서 오는 정신적 공황을 극복하기에는 우리의 힘이 너무나 부족함을 느끼고 있어 왔다.
새천년의 감격도 잠시, 우리는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를 놓고 고민해야 했다. 월드컵이 지나고, 곧바로 우리 사회는 어떤 열기에 들뜨기 시작했다. 모여서 고함을 지르고 춤추고 깃발을 들면 모든 것이 해결되곤 하였다.
깃발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또한 촛불시대까지 동반하여 깊이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 사회의 흥분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정치적 소용돌이는 계속되어 옥석을 가리지 못하는 여론몰이의 희생자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특히 이 같은 사회변화 틈바구니에서 가장 총명하고 정직해야 할 종교가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담을 주고 있다. 또 다른 면으로는 종교 또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 중 한 부분인데도 소용돌이의 진원지가 어디인지도 모를 만큼 무지에 허덕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악성 퇴적물들이 사회 주요 공간에 널려 있다. 악성 퇴적물이란 단순한 배설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독이 있어서 다른 질병으로 변환을 일으키는 두려운 것들이다.
특히 기독교가 이를 조심해야 한다. 기독교의 상대, 또는 주된 적수는 사단이다. 사단은 일찍이 아담의 에덴을 무력화시킨 바가 있거니와 그 이후 인류의 삶에 결정적 비극을 선물한 악의 실체이며, 또 근원이기도 하다.
매우 흉악하며, 그 간계가 어찌나 능한지 가까이 덤벼들었다가 자칫 큰 코 다칠 수 있는 것들이다. 매력 있는 것들, 명예와 성취욕을 듬뿍 안겨주는 것들, 육신의 요구를 모두 채워주는 맘몬, 곧 物神의 이름인 사단을 물리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배척하기에는 우리 곁에 너무 가까이 있다. 또 너무 익숙하고 친숙한 관계가 되어버린 사단(마귀)을 어떻게 물리쳐야 할지 고민이 많다.
사단을 우리 곁에서 추방할 힌트는 예수의 광야 시험에서 찾을 수 있다. 40일 금식 광야의 날에 (배고프면)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던 사단에게 예수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 아니라 하셨다. 다시 사단은 예수를 높은 산으로 불러 세우고 뛰어 내리는 기적 행위를 요구했다. 이를 통해서도 예수를 굴복시키지 못한 사단은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내게 (딱) 절하라 그리하면 천하만국을 주리라 하였다. 이때도 예수는 사단아 물러가라! 하시며 그것들의 흉계에 넘어가지 않았다. 여기에 사단을 이기는 법, 물리치고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는 법이 있다. 오늘의 기독교 신자들이 마치 큰 바다 물결처럼, 해일처럼 공격해오는 사단의 유혹에서 벗어나 예수의 승리에 동참하려면 돌로 떡 만들지 말 것, 기적 좋아하지 말 것, 사단에게 절하지 말 것을 금기로 삼아야 한다.
〈無然〉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104
*들꽃피는 제102호 읽을꺼리
사단에게 기회를 주지마라
우리는 World cup 한·일 대회를 열게 될 때 `붉은 악마'의 출현을 지켜보았다. 스포츠 세계의 역설적 애칭이라고는 했었지만 그것이 한국사회에 엉뚱한 오만을 심었음을 뒤늦게 인정하게 된다.
하기는 이미 50여 년 전부터 인류는 방황하기 시작했다. 사회윤리의 고갈, 환경 파괴, 국제질서의 난맥상, 철학과 종교의 공백기에서 오는 정신적 공황을 극복하기에는 우리의 힘이 너무나 부족함을 느끼고 있어 왔다.
새천년의 감격도 잠시, 우리는 장차 어디로 갈 것인가를 놓고 고민해야 했다. 월드컵이 지나고, 곧바로 우리 사회는 어떤 열기에 들뜨기 시작했다. 모여서 고함을 지르고 춤추고 깃발을 들면 모든 것이 해결되곤 하였다.
깃발 시대가 온 것이다. 그리고 또한 촛불시대까지 동반하여 깊이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 사회의 흥분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정치적 소용돌이는 계속되어 옥석을 가리지 못하는 여론몰이의 희생자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특히 이 같은 사회변화 틈바구니에서 가장 총명하고 정직해야 할 종교가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부담을 주고 있다. 또 다른 면으로는 종교 또한 우리 사회의 구성원 중 한 부분인데도 소용돌이의 진원지가 어디인지도 모를 만큼 무지에 허덕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악성 퇴적물들이 사회 주요 공간에 널려 있다. 악성 퇴적물이란 단순한 배설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독이 있어서 다른 질병으로 변환을 일으키는 두려운 것들이다.
특히 기독교가 이를 조심해야 한다. 기독교의 상대, 또는 주된 적수는 사단이다. 사단은 일찍이 아담의 에덴을 무력화시킨 바가 있거니와 그 이후 인류의 삶에 결정적 비극을 선물한 악의 실체이며, 또 근원이기도 하다.
매우 흉악하며, 그 간계가 어찌나 능한지 가까이 덤벼들었다가 자칫 큰 코 다칠 수 있는 것들이다. 매력 있는 것들, 명예와 성취욕을 듬뿍 안겨주는 것들, 육신의 요구를 모두 채워주는 맘몬, 곧 物神의 이름인 사단을 물리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배척하기에는 우리 곁에 너무 가까이 있다. 또 너무 익숙하고 친숙한 관계가 되어버린 사단(마귀)을 어떻게 물리쳐야 할지 고민이 많다.
사단을 우리 곁에서 추방할 힌트는 예수의 광야 시험에서 찾을 수 있다. 40일 금식 광야의 날에 (배고프면)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던 사단에게 예수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 아니라 하셨다. 다시 사단은 예수를 높은 산으로 불러 세우고 뛰어 내리는 기적 행위를 요구했다. 이를 통해서도 예수를 굴복시키지 못한 사단은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내게 (딱) 절하라 그리하면 천하만국을 주리라 하였다. 이때도 예수는 사단아 물러가라! 하시며 그것들의 흉계에 넘어가지 않았다. 여기에 사단을 이기는 법, 물리치고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는 법이 있다. 오늘의 기독교 신자들이 마치 큰 바다 물결처럼, 해일처럼 공격해오는 사단의 유혹에서 벗어나 예수의 승리에 동참하려면 돌로 떡 만들지 말 것, 기적 좋아하지 말 것, 사단에게 절하지 말 것을 금기로 삼아야 한다.
〈無然〉
http://www.deulsoritimes.co.kr/technote/read.cgi?board=pa&nnew=2&y_number=104
*들꽃피는 제102호 읽을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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