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호수가에서피러한...............
조회 수 3163추천 수 02004.10.19 09: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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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덧없는 인생
‘대부’의 말론 브란도는 헐리우드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할 정도로 미국 영화의 산 증인이다.
그가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난 후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그는
세계 최고의 스타이지만 인간적으로는
무척이나 불행한 사람이었다.
이혼한 세 명의 부인과 가정부로부터
낳은 자식들과 사생아들이 그의 많은 유산을 두고
지금 골육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인생은 참으로 덧없는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긴 왕건은 인생의 헛됨을 노래했던
솔로몬처럼 지혜롭게도 인생의 실체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볼 때 성공하고 유명하다는 사람들일수록
겉과 속이 다른 이러한 모습들을 볼 때
평범한 사람들은 인생이 더 부질없음을 깨닫게 된다.
태어날 때부터 죽어가고 있는 인생은 그렇지 않아도
허무한 것인데 더 덧없게만 느껴지는 것은,
앞만 보고 살아가는 특성 때문이다.
사람은 항상 앞만 보고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성공하기 위해 사는 것처럼
좌우를 보지 않고 오직 앞만 보고 살아가고 있다.
"아내 딸에게 보내주십시오."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현대비자금 사건으로
20년 징역을 구형받으면서 눈물로 진술하였다.
그는 단 하루의 휴가도 없이
전 김대중대통령을 위해 12년 동안 일하면서,
결혼 36년 동안 가족과 함께
단 한 번의 휴가도 가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렇게 앞만 보고 살아온 결과는
한쪽 눈의 실명(失明)과 함께
20년을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란 말인가.
자신의 그러한 삶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는 지금
아내에게 날마다 편지를 쓰고 있다.
현대인은 성공에 대한 강한 욕망 때문에
100m 단거리 선수처럼
오직 앞만 보고 뛰어가느라고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자아(自我)와 함께
정말로 보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토마스 호헨제는 성공에 대한 잘못된 신화를 이렇게 지적했다.
‘무언가를 진실로 원하면 이루어진다.’
‘자신의 성공은 오로지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성공은 99퍼센트의 노력과 1퍼센트의 영감에 달려 있다.’
문제는 그 말들을 믿고 한 눈 팔지 않고
앞으로만 갔지만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세상을 원망하며 스스로를 실패자로 여기는 것이다.
바퀴벌레는 앞으로밖에 갈 줄 모른다.
인생은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다.
뒤로도 옆으로도 간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가을이 오는 것을 보고서
해가 서쪽으로 지는 것을 보고서
...
그 때라도
인생의 덧없음을 알고
한 박자 늦게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인생이 덧없음을 느끼고 있는가.
그것은 둘째로 인생에서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옛 어른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통찰로서 자신을 돌아보았던 것이다.
우리 삶에서 영원한 것이 없다는 무상(無常)관,
일체가 깨끗하지 않다는 부정(不淨)관,
자아가 없다는 무아(無我)관이다.
이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하늘 아래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이러한 자아통찰을 통해 인지했던 것이다.
헤르만헤세의 ‘지와 사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은
괴로움도 기쁨도 ‘영원한 것이 없다.’라는 말이다.
이렇게 세상은 유한적(有限的)임을 알기에
나르시스처럼 이성적인 사람이 있고,
방탕하게 살아가는 골드문트 같은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엔 그 무엇도 영원한 것이 없음에도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때 우리는
작은 일에도 상처를 받으며 시험이 드는 것이다.
강릉에 사는 어느 어르신네는
교통사고로 부인을 몇 달 전에 잃었는데,
젊은 가해자가 돈을 갖고 합의를 보려고 찾아왔을 때
그는 돈을 거부하고 이런 제안을 했던 것이다.
나는 부인을 이미 잃었지만 다시 만날 수가 있소.
젊은이도 내 부인처럼 그 나라에 갈 수 있도록
신앙을 갖는다면 합의금도 필요 없소.
이 말을 한 후에 그 어른은 가해자에게 오히려
30만원을 주었다는 기사가 강원일보에 나왔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가장 큰 의문은
‘인생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이다.
바이블에서는 이 물음에 대한 답으로,
인생은 영원한 본향을 찾아가는 나그네라고 했다.
그러므로 짧은 생을 아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영원한 본향을 대비하는 것이 과제인 셈이다.
결국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살아있을 때 영원한 것을 대비하는 사람이다.
영원할 수 없는 것을 통해서 영원한 것을 얻어야 한다.
일시적 소유를 영원한 부로
순간의 시간을 영원한 시간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 땅의 상(償)보다 그 앞에서 면류관을 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생이 덧없이 느껴지는 것은
모든 인간은 결국 죽음 앞에 홀로서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본능에 따라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게 감각적 쾌락을 쫓아 살면서
만족한 사람이 없기에 윤리적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윤리적 삶도 만족할 수 없는 것은
모든 인간은 언제 가는 죽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죽음 속에 삶이 있고 삶 속에 죽음이 있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죽음과 삶의 경계는
먼 곳이 아니라 가까이 있음을 알고
하루하루의 삶이 더 무겁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깊은 잠에서 깨어날 때
이곳이 혹 딴 세상이 아닌가하고
두리번거리며 아이처럼 두려움에 떤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교를 가지며
신 앞에서 홀로 서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신은 나의 모든 것을 보고 있으므로
나 외에 그 누구도 자신의 문제를 넘길 수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앞에 홀로 선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이며
얼마나 고독한 일이던가.
서양에서는 합리주의가 계몽주의로 발전되면서
자연스럽게 개인의 자율적 선택의지를
강조하는 반면에 비해,
우리네는 개인보다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므로
자신을 주체로 신 앞에 세우는 일이 그들보다
부족하여 더 어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주여,
당신은
가을을 통하여
수없는 죽음들을 통하여
아니,
아침마다 대지에 내리는
이슬을 통하여
인생의 덧없음을 가르쳐 주셨건만
어이하여 이제야
그러한 사실 앞에서
허망함을 느낀단 말인가요.
이제는
성공이라고 알고 있는 것이 거짓이며
단순하다고 치부했던 것이
진실임을 알게 하소서
...
2004년 10월 17일에 피러한이 강릉에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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