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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22:16-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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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460) 2014.9.26 |
요한계시록(96) 기다림은 헛되지 않습니다
(계22:16-21)
< 말씀을 중시하십시오 >
요한계시록의 초점은 ‘교회에 다니는 성도의 구원과 위로와
소망’입니다(16-17절).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영혼을 살리고 위로하고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교회는 구제기관이 아닙니다.
불신자들이 교회를 비난하는 제일 이유는 구제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는 힘써 구제도 해야 하지만 교회는 본질적으로 구제 기관은
아닙니다. 또한 교회는 친교기관도 아닙니다. 어떤 분은 교회를 친교기관으로 알고 교회에 와서 자신을 알아달라고 하지만 알아달라고 하면 더
알아주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진리입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되려면 말씀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특히 요한계시록 말씀에서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라고 강력하게 경고합니다(18-19절). 누가 말씀을 더합니까? 이단들이 “계시
받았다!”고 하면서 말씀을 더합니다. 누가 말씀을 뺍니까?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다 상징이다!”고 하면서 말씀을 뺍니다. 그렇게 말씀을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온전한 하나님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기 직전에 꼭 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듣는
귀’입니다. 말씀이 그대로 가감 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지는 ‘듣는 귀’가 있으면 반드시 복도 따라옵니다. 그러나 ‘듣는 귀’가 없으면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삶에서 ‘말씀이 끊어지는 것’이 얼마나 큰 불행인지 모릅니다.
언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지는
잘 몰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전에는 반드시 말씀이 꿀처럼 달게 느껴집니다. 즉 말씀이 꿀처럼 달게 느껴질 때는 큰 축복이 이르기 직전의
때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복된 삶을 원하면 가장 중요한 기도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기도입니다. “하나님! 제 마음이 말씀에 열린 마음이 되게
하시고 제 귀가 듣는 귀가 되게 하소서!”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릴 때 신비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도 시작될
것입니다.
< 기다림은 헛되지 않습니다 >
마지막으로 주님이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자
사도 요한이 화답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0절).” 이 구절에서 ‘속히’란 말은 ‘곧(soon)’이란 의미도 있지만
‘진짜로(indeed)’란 의미도 있습니다. 성도의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뜻입니다. 왜 춘향전이 많은 사람들의 감동과 공감을 줍니까? 그
소설의 핵심 내용이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핵심 내용도 “기다림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씀이 약 450번 예언되어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신구약에는 예수님의
재림예언이 초림예언보다 훨씬 많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다시 만나고 천국을 얻을 날을 기다리며 늘 넘치는
천국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천국은 ‘상상 속의 장소’가 아니라 ‘구체적인 장소’입니다. 그 약속된 천국 소망을 가지고 살 때 삶이
힘들어도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이 말씀이 사도 바울의 승리의 비결이었습니다. 그는 보이는
일시적인 것보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볼 줄 알았습니다. 그처럼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아는 믿음을 키우고 주님을 만나 큰 위로를 받을
날을 기다리며 늘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나치 수용소에 있었던 빅터 프랭클은 말했습니다. “수용소에서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니까 절망하고 낙망하는 사람들은 빨리 죽었지만 소망을 잃지 않은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기다리면서
포기하지 않고 결국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 기다림이 있었기에 초대 교회 성도들은 어려움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삶에 참된 신앙의 맛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예수님이 나실 때 시므온이란 노인이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나고
아이를 품에 안고 감격하면서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하신 대로 구세주를 보여주셨군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그처럼 우리의 기다림도
헛되지 않고 조만간 시므온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주님의 신부로서 믿음의 정절을 지킴으로 주님 만나 뵈올 때
기쁨으로 만나 뵈옵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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