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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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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 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462) 2014.9.30 |
시편(1) 복 있는 사람(1) (시1:1-6)
1.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는 사람
본문 1절 첫 부분을 보십시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이 구절에서 ‘악인들의 꾀’란 원어로 ‘악인들의 카운슬링(the counsel of the wicked)’이란 뜻입니다.
성도는 동료와 또래의 나쁜 충고를 거절하고 유행과 군중심리를 극복할 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카운슬링(상담)을 함부로 받으러 다니지 말고
예언해준다는 사람과 기도할 때마다 “무엇이가를 본다!”고 선전하는 사람은 일단 조심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3층천을 보았어도
14년 동안 그 본 것을 마음속에만 품고 있었습니다. 진짜 보는 사람은 본다고 선전하고 다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스스로 “환상을 본다!
치유를 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찾아가서 기도나 상담을 받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런 모습을 대단히 싫어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예수
점과 무속적인 기독교’를 싫어합니까? 간단히 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대표적인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는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준다는 ‘신 내림 특별기도’까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주를 이미 끊어주신 예수님을 철저히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기복적이고
미신적인 방법으로 갈급함과 불안함을 해소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목이 마를 때 물 대신 청량음료를 마시면 당장은 좋아도 조금 지나면 목이 더
마르게 됩니다. 갈급하고 불안할 때 기복적인 무속신앙에 의지하면 결국 영혼은 고통과 시련 속에 빠집니다.
집을 떠나 여행하면
잠깐은 좋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 되면 “역시 집이 최고야!”라고 합니다. 내 집을 놔두고 계속 여행만 하면 사마리아 여인처럼 마음의 갈증과
고통은 심해집니다. 영혼의 갈증은 기도원, 신령한 산, 신령한 물, 은사집회, 세미나, 성경공부 등을 많이 다닌다고 해갈되지 않습니다. 교회론이
흔들리면 영혼과 인생도 흔들립니다. 교회를 묵묵히 섬기며 꾸준히 사랑과 헌신을 실천할 때 영혼의 갈증도 해소되고 복도 많이 받게
됩니다.
2.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 사람
본문 1절 중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죄란 헬라어로 하말티아라고 하는데 그것은 목표한 과녁에 화살이 빗나간 것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을 목표로 하지 않고 다른 것을 목표로 사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길은 아무리 즐겁고 좋게 보여도 그 길로 가지 마십시오.
주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목회나 사업에서 눈앞의 성공만을 목표로 뛰면 자꾸만 넓은 길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성공 세미나는 많이 쫓아다니지만 항상
실패합니다. 어떤 최면술 학원 원장의 말에 의하면 자기 수강생의 3분의 1 가량이 목사라고 합니다. 거기서 능력을 배워 큰 교회를 만들겠다는
태도입니다. 그처럼 ‘능력’에 대한 개념 왜곡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한 상태입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성공이란 양적으로
커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달란트를 최대한 발휘하는 것입니다. 다 초대형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만 따라가지 마십시오. 자기 교회의 장점은
외면하고 남의 교회의 장점과 프로그램만 무조건 따라가면 대개 성과도 없고 리더의 리더십도 훼손됩니다. 그처럼 남만 부러워하고 좇아가는 삶을
버리고 자기 은사와 분복을 감사하며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 자체가 진짜 성공입니다.
곰도 뒹구는 재주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 있습니다. 그 재능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면 자기 장점 분야에서는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남의 성공만 쳐다보고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좁은 문으로 들어가 꾸준히 자기 길을 따라 가면 축복의 문은 반드시
열립니다.
1970년대에 서울 인근의 시골에서 한 목사님이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교인들은 10년 가까이 교회 부흥이
없자 비전이 없다고 하나씩 교회를 떠났지만 목사님은 언젠가 은혜의 때가 올 줄 믿고 묵묵히 교회를 섬겼습니다. 마침내 1970년대 말, 아파트
건축 붐이 일 때 서울의 아파트 지역에서 교회를 다시 개척해서 큰 교회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 목사님이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분들은 교회가 부흥이 안 될 때 기대치를 낮추고 인내했던 교인이라고 합니다. 지금 그 교회에는 유명인들이 많이 출석하지만 목사님은
어려웠을 때 같이 인내한 사람들에게 교회의 중직을 맡긴다고 합니다. 교회에서는 ‘전문적 능력’보다 ‘성품의 능력’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묵묵히 참는 길이 때로는 어리석게 보여도 결국 그 길이 가장 복된 길이 됩니다.
3.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하나님은 오만한 사람을 싫어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더
주십니다. 그러므로 배우고 성공하고 물질이 많을수록 더욱 겸손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겸손한 리더는 사람의 마음도 얻고 하나님의 마음도 얻습니다.
특히 자녀의 축복을 원하면 자녀에게 무엇보다 겸손한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오만한 사람을 가까이 하면 같이 다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희망이 없는 사람에게 길을 열어주시려고 했는데 자기보다 조금 못하다고 사람을 무시하면 얼마나 주님과 반대되는 태도입니까? 왜
요새 사람들이 정치를 혐오합니까? 정치란 약자의 눈물을 씻어주는 것인데 요새는 자기 위치를 높이려는 수단으로 정치를 악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쁜 정치가 교단이나 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어느 날, 한 교회에서 부임한지 몇 달 되지 않은 여자 전도사가
“사모가 너무 나선다!”고 험담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 말은 우리나라에서 사모의 권위를 무너뜨리는데 쓰이는 가장 흔한 말입니다. 그 말은
듣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사실상 그 말은 목회에 있어서 사모의 중요성을 간과한 아주 정치적인 발언입니다.
교회에서 사모의 중요성과
역할은 거의 절대적입니다. 25년을 목사님을 보필하며 교회의 굳은 일을 다 했던 사모가 부임한지 몇 달 되지 않은 전도사보다 나서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목사 곁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나서는 것은 괜찮고 목사 곁은 결코 떠날 수 없는 사람이 나서는 것은 안 된다는 유교적 사고는
절대적으로 고쳐야 합니다.
사모도 중요한 사역자입니다.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에서는 사모를 독립적인 선교사로 대우합니다. 중요한
회의석상에는 사모도 참여시키고 총회 때도 사모와 같이 오도록 권면합니다. 그처럼 사모를 또 하나의 사역자로 존중하는 태도는 배워야 합니다.
무엇보다 사모는 목회자의 평생 동역자입니다. 사례도 받지 않고 주로 음지에서 헌신하는 사역자이기에 목사나 교인은 더욱 사모의 생각을 최대한
존중해야 합니다.
교회나 사회에서 자기의 존재의미를 살리려면 정치적 발언을 하기보다는 은밀한 사랑과 헌신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정치적 발언이 잦은 것은 희생과 헌신이 없이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으려는 몸짓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것은 행실입니다. 결국 중요한 자리는 결국
정치적 발언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는 희생과 헌신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또한 그렇게 되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가
됩니다.
4.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
복 있는 사람은 말씀을 가까이 합니다. 즉 월드(the world,
세상)보다 워드(the Word, 말씀)를 더 사랑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에서 ‘속박’을 느끼지만 어떤 사람은 말씀에서 ‘자유’를 느낍니다.
기차는 철로 위에 있을 때 자유가 있고 비행기는 항로를 따를 때 안전하듯이 사람은 말씀대로 살 때 가장 행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행복을
위해 말씀을 주셨기에 말씀대로 살면 불편한 것 같아도 나중에 보면 그것이 행복의 길입니다.
마태복음 7장을 보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인생은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말씀대로 살면 가정과 교회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5장에는 베드로가 말씀에
순종해서 많은 고기를 잡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처럼 말씀 속에 사업성공과 풍성한 삶을 누리는 길도 있습니다. 언뜻 보면 자본이 있는 사람이
성공할 것 같지만 결국 최종 승리는 말씀이 있는 사람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입니다. 그처럼 말씀을 어떤 선물보다 소중한 선물로 여기고 말씀을 가까이 하면 진정 복된 길이 펼쳐질 것입니다. 하루의 첫 시간에 말씀을
대하고 더 나아가 말씀대로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그 마음과 정성을 반드시 기억해주십니다.
인생은
찬스(chance)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초이스(choice)에 따라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어떻게 살기로 선택(초이스)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축복하기도 하고 심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하게 될 것입니다(6절). 무엇이
의인의 길이고 악인의 길입니까? 말씀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그 길을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관건입니다.
ⓒ 이한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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