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호수가에서피러한...............
조회 수 3023추천 수 02006.12.24 17:2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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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성탄과 동병상련(同病相憐)
아내가 감기몸살로 아파 누워있는데,
우리 멤버 중 두 사람은
수술(手術)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성탄과 연말을 앞두고
갑자기 주위에 아픈 사람이 많아져
마음이 편치 않은데 그 달갑지 않은 손님은
이제 나에게까지 노크해 왔다.
손오공이 말을 안 들을 때 금강고가
머리를 조여 아프게 했듯이,
갑자기 한쪽 머리가 조여 오면서
너무 아파서 일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평소에 병원 다닌 적이 거의 없었기에
건강만은 자신하고 있었던 내게
그런 육체적인 고통이 오자 오늘 문득
동병상련(同病相憐) 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사실 아내나 우리 멤버들이 아프다고 했을 때,
나는 막연하게 ‘왜들 이렇게 아프나...’
하는 정도에서만 생각 했었는데,
내 자신이 아프니까 그들의
고통이 이제는 남 얘기 같지 않고
내가 아픈 것처럼 안타깝고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은 간사한 인간의 한계(限界)를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내가 배고파봐야 남 배고픈 것을 안다고,
자신이 아파봐야 다른 사람이
아픈 것을 이해할 줄 아는 한계 말이다.
초보 도둑이 어느 집에 들어가,
‘꼼짝 마! 손들어!!’ 라고 말했는데
그 집 주인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자,
‘손들어! 너 왜 안 들어? 죽고 싶어?’ 라고 되묻자,
주인 왈, ‘저는 오십견 때문에 들 수가 없어요.’
‘그래! 나도 오십견에 걸렸는데...’
오히려 그는 본업을 잠시 뒤로 하고 그에게
치료방법을 가르쳐 주고 그냥
그 집에서 나왔다.
이렇듯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비슷한 경우나 형편에 있는
사람들은 상대를 더 잘 이해하고
동정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일 것이다.
성탄(聖誕)은 하늘과 땅이 하나 되는 날이다.
그 하나 됨이 사람들에게 소망(所望)을
주었지만, 그 분은 그것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시고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오셔야만 했다.
곧 태어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가난과 고독, 멸시와 핍박 등 사람들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고난(苦難)을
직접 겪으실 뿐 아니라,
강도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람처럼 무덤에 장사되는 경험까지
체득(體得)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었다.
도대체 그가 왜 이렇게까지 다양하게
우리가 겪는 모든 경험들을
필요로 했단 말인가.
사람은 누구나 어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동질(同質)감이 있어야만 감동을
받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동병상련의 의미이다.
보통 성탄(聖誕)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는 사건이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이 일은 왕이 궁(宮)을 버리고
백성들과 함께 텐트에서 거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하여 사람이 겪는 모든
어려움과 고난을 경험 해 보셨기에,
누구보다도 우리를 잘 이해하고 격려하며
가장 효과적으로 도와주실 수가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다 갖추게 된 셈이었다.
우리와 하나가 되시려고
내려온 세상(世上)은
하루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
정의(正義)란 이름으로 힘 있는 자들의
횡포가 멈출 날이 없는 곳이다.
겉은 파라다이스 같으나
실상은 지옥의 아비규환 같은
세상에 그가 육신(肉身)으로 온 것이다.
얼마 전 수능 발표 날,
어느 학부모는 내게 인생이 너무
허무(虛無)하다고 한숨을 내 쉬었다.
6년 동안 모든 가족이 희생했건만 한 과목을
잘못보아 예상 점수가 낮게 나오자
낙심(落心)이 되었던 모양이다.
젊을 때 이런 말을 들었다면 분명
나는 나쁘게만 생각했을 텐데 이제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내 자신도 그와 유사한 일을 너무 많이
겪었기에 동병상련처럼 안쓰러운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은 날마다 짊어져야 할
각자의 고통스러운 짐들이 얼마나 많은가.
다른 사람이 볼 땐 걱정거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알지 못하는
짐들로 인해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은
관계(關係)의 짐이다.
인간은 개인이나 집단적으로나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관계가 깊어질수록 믿고
사랑하는 사이보다는 서로의 가슴에 더욱
깊숙이 칼을 집어넣음으로 동병상련이 아니라,
동상이몽(同牀異夢) 일 때가 많기에 인간관계는
머리와 마음, 영혼까지 가장 큰 상처를
안겨주는 근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제 여부에 따라
인생은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
만약에 관계의 진리를 알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는 한 평생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배척하면서 관계를 통한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러나
철이 들었다는 것,
인생을 조금 안다고 하는 것은
모든 인간관계의 목적은 상대로 통해
내가 도움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상대를 통해
자신의 실상(實像)을 바로 알고,
성탄의 목적인 하나 됨을 위하여 자신을
그 분처럼 온전히 비우는 삶에
있음을 아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게 되지만 그것이 축복
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은
불로 태우거나 칼로 배를 갈라도
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동물과는 다르게
고통을 통해 영혼이 성장하기 때문에
이런 격언까지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당한 모든
고난과 고통은 다이아몬드이고,
독서와 학문은 황금이고
희생하고 봉사하는 것은 은이며
세상에서 맛 본 모든 쾌락과 행복은 쓰레기다.
만약 죽음 앞에서도
자신이 있는 사람은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는 저주가 아니라 축복(祝福)
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실제 그런 일이 가능키 위해서는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성탄의 정신(精神)은
하나 됨을 위한 ‘내려놓음’에 있다.
안셀름은 ‘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나?’라는
책에서 그는 인간의 죄의 빚을 갖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셨다고 했다.
그 대가(代價) 란 사람이 되시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만 하는
공생애동안의 대속적인 모든 삶 자체를 말한다.
인간과 동병상련의 마음을 갖기 위해
당신은 철저히 인간이
되셨던 것이다.
최근 ‘내려놓음’이라는 책이 8개월 만에
20만부를 돌파한 개신교계의 베스트셀러가 있다.
몽골선교사의 체험기 정도인데 왜 그 책에
독자들은 열광하고 있을까.
먼저 저자의 남다른 학력이 더 큰 감동을 주었다.
그는 서울대를 나오고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를
받고서 몽골로 바로 가서 평신도
선교사가 된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원인에 대해
본인은 스스로 이렇게 분석했던 것이다.
‘내가 하버드박사인데...라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까지 비우고,
자신이 가진 것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씩
내려놓음으로 그 분께 감사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모습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모양입니다.’
그의 버림과 낮아짐이
독자와 동병상련을 일으켰듯이,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철저히 낮아지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심으로
동병상련의 은혜는
하늘과 땅이 하나 되게 하였고,
높은 것과 낮은 것이
또한 정신과 육체가 하나 되고,
그리고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이
하나 됨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주여,
사람의 눈으로만
본다면 당신은
철저히 실패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바보 같은 당신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평생 동상이몽(同床異夢)속에
반목하며 분노의 칼을 갈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사람이 되심으로서,
왜 아픔을 주시는 걸까.
왜 시련을 주실까.
왜 만나게 했을까...라는
질문 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는
아픔만큼 깊어지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2006년 12월 24일 성탄절에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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