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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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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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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춘 교수
출처: 복민원 제6기 목회연구세미나 강의 자료
푸쉬코스목회와 프뉴마티코스목회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득한 교회)
오성춘 교수 (장신대 실천신학)
수도권지역에서 목회하다가 서울의 모교회에 부임한 목사님이 이런 질문을 하였다. "제가 이 교회에 부임하고 나서 가라앉은 분위기를 쇄신하고 성도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기 위하여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하는 구호를 따라하게 하고 좋은 교회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힘이 있는 장로님이 조용히 나를 보자고 하더니 '이 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목사님의 의도는 알지만 계속해서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라고 하는 것은 교인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다시는 그런 구호를 하지 마세요' 이 말을 듣고 나서 많은 갈등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좋은 교회도 아닌 교회를 좋은 교회라고 부르게 하는 것은 거짓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하는 구호를 내세운 이후에 교회의 분위기가 크게 쇄신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 목사님은 이런 사실을 소상히 이야기하고 나서 침체된 우리 교회를 향하여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하고 선언하게 하는 것은 잘못일까요? 그런 구호는 교인들을 스스로 속이게 하는 구호일까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라고 이야기해야 합니까? 등의 질문을 했다.
그 교회는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 교회이다. 여러 번 교회가 갈라지는 아픔을 경험하였고, 담임 목사와 교인들간의 갈등이 계속되어 왔고, 전임자도 자의로 나간 것이 아니라 거의 쫓겨나다시피 나갔다. 그래서 교인들 사이에는 과거의 상처들이 치유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고, 당회원 장로들은 모래 알갱이 같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고, 교회 안에는 알게 모르게 과거에 나뉘어져 싸우던 갈등이 숨겨져 있었다. 이런 교회를 좋은 교회라고 말한다면 이 세상에 좋지 않은 교회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나되지도 못하고, 서로 간에 사랑이 없고, 하나님께 헌신하지도 못하는 교인들에게 '당신은 훌륭한 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룩한(?) 사기일까?
그 목사님과 나는 이 문제를 깊이 이야기하는 가운데서 성경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성경은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같은 것이라도 다르게 본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면 거라사 지방의 공동묘지에서 살고 있던 군대 귀신들린 자를 생각해 보자. 거라사 지방의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사람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귀신들린 미친놈이라고 보았다. 유대인들이 그를 보았다면 개같은 이방인이요 더러운 귀신들린 사탄의 사자로 손가락질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거라사 지방의 전도자로 보았다. 예수님은 현재의 그의 모습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고침을 받고 하나님의 크신 일을 증거하게 될 미래의 모습을 보시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밤새도록 풍랑가운데 배를 타고 거라사 지방으로 건너가서 오직 그 한사람을 만나서 그를 치료하고 그에게 큰 사명을 주고 돌아오신다(막4:35-5:20).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을' 보는 자들이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2).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신령한 자"라고 부른다. 신령한 자는 헬라어로 '프뉴마티코스'( )라고 하는데, 즉 '성령께 속한 자'이다. 영어 성경에는 'the man with the Spirit' 즉 성령을 받은 자, 성령충만한 자, 성령이 그 속에 거하는 자로 번역되었다.
프뉴마티코스는 육에 속한 사람(고전2:14)과 대조된다. 육에 속한 자의 헬라어 원어는 푸쉬코스( )인데 영어 성경은 the natural man 또는 the man without the Spirit로 번역되었다. 육에 속한 자는 비그리스도인 또는 성령을 받지 못한 자이다. 그러기 때문에 푸쉬코스는 혼에 속하여 혼의 판단을 따른다. 푸쉬케는 인간의 정신, 논리, 합리적 판단, 과학적 검토 등을 관장하는 기능이다. 푸쉬코스는 사물을 볼 때에 과학적인 눈을 가지고 논리적인 추론을 하여 합리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자이다. 그러므로 푸쉬코스는 언제든지 현재의 일을 보며, 인과관계를 살피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거기에서 출발한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소크라테스를 푸쉬코스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볼 것이다. 그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정이나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이성의 판단에 따라서 사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장로님은 푸쉬코스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 교회의 과거를 잘 아는 분이다. 그리고 그는 그 교회 안에 어떤 상처와 갈등과 냉냉한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 장로님의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교인들 가운데 무슨 선한 것이 있을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잠복되었던 문제가 터질른지 모른다. 그 교회는 결코 좋은 교회가 아니다. 좋은 교회가 아닌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좋은 교회라고 하는 것은 거짓이요 사기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라는 구호는 중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다. 우리는 세상의 판단에 따르지 아니한다. 우리는 합리적인 이성을 따라서 판단을 내리는 자가 아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보면서 거기에 기초하여 결단하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자들이다(고전2:12).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고전2:13) 분별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고전2:12) 발견하는 자들이다.
프뉴마티코스, 즉 성령의 사람은 무엇을 보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또는 어떠한 사건에 부딪치든지 거기에 임재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자들이다. 귀신들린 자든지, 장애인이든지, 죄인이든지, 소외된 자든지, 누구를 보든지 그를 사랑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그 보혈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발견하는 영적인 눈을 가진 자들을 바울은 프뉴마티코스라고 불렀다.
성령의 사람은 지금 거기에 오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기 때문에 그 사람이나 그 사건의 현재의 모습을 볼뿐 아니라 거기에 오셔서 그 사람을 새롭게 고치시고 그 사건을 영광의 사건으로 만들어 가실 하나님을 보며 또한 새롭게 된 그 사람과 사건을 본다. 즉 성령의 사람은 믿음의 눈으로 현재를 보기 때문에 현재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며, 소망의 눈으로 그것을 보기 때문에 미래에 하나님이 만드실 아름다운 비전을 보며, 사랑의 눈으로 거기에 임하기 때문에 사랑으로 거기에 임재하신 하나님과 함께 거기에서 새 일을 시작한다.
그 목사님은 아직 거기까지 못 미쳤지만 그래도 침체에 빠지고 상처로 얼룩진 교회를 보면서 하나님이 행하실 미래를 보고 있다. 목사님의 구호는 하나님의 성취하실 미래를 보면서 기도하는 간구요 믿음이요 사랑의 실천이다. 푸쉬코스의 눈으로 보면 결코 좋은 교회가 아니다. 그러나 프뉴마티코스의 눈으로 보면 그 교회는 아름다운 교회요 좋은 교회요 영광으로 가득한 교회이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이 거기에 오셔서 상처 입은 자들을 싸매시고 치유하고 있으며, 갈등을 화해로 침체를 감격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시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하나님께서 거기에 계셔서 영광스러운 교회로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하나님과 함께 그들 가운데서 사랑의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고전2:12) 발견한다. 이제 그 교회는 좋은 교회가 될 것이다.
누가 한국 교회를 보고 절망하는가? 누가 한국 교회에 칼을 휘두르고 있는가? 누가 한국 교회에 미래가 없다고 하는가? 누가 한국 교회는 쇠퇴할 것이라고 하는가? 그들은 푸쉬코스들이다. 하나님의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은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리스도가 없는 자들은 그런 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많고, 침체되고, 타락하고, 세속화되고, 문제 많은 한국 교회 가운데 임재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본다. 하나님은 모든 죄를 씻으시고 문제를 고치시고 상처를 싸매시고 영광스러운 교회로 만들고 있다. 성령의 눈으로 한국교회를 바라보자. 거기서 새 일을 창조하시는 우리 주님을 보자, 그 분이 만드실 한국 교회를 바라보자. 목회는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서 성취하고자 하는 그 일을 그분의 이름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출처: 복민원 제6기 목회연구세미나 강의 자료
푸쉬코스목회와 프뉴마티코스목회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득한 교회)
오성춘 교수 (장신대 실천신학)
수도권지역에서 목회하다가 서울의 모교회에 부임한 목사님이 이런 질문을 하였다. "제가 이 교회에 부임하고 나서 가라앉은 분위기를 쇄신하고 성도들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기 위하여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하는 구호를 따라하게 하고 좋은 교회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 노력해 왔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힘이 있는 장로님이 조용히 나를 보자고 하더니 '이 교회는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목사님의 의도는 알지만 계속해서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라고 하는 것은 교인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다시는 그런 구호를 하지 마세요' 이 말을 듣고 나서 많은 갈등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좋은 교회도 아닌 교회를 좋은 교회라고 부르게 하는 것은 거짓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하는 구호를 내세운 이후에 교회의 분위기가 크게 쇄신된 것도 사실입니다."
그 목사님은 이런 사실을 소상히 이야기하고 나서 침체된 우리 교회를 향하여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하고 선언하게 하는 것은 잘못일까요? 그런 구호는 교인들을 스스로 속이게 하는 구호일까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라고 이야기해야 합니까? 등의 질문을 했다.
그 교회는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는 교회이다. 여러 번 교회가 갈라지는 아픔을 경험하였고, 담임 목사와 교인들간의 갈등이 계속되어 왔고, 전임자도 자의로 나간 것이 아니라 거의 쫓겨나다시피 나갔다. 그래서 교인들 사이에는 과거의 상처들이 치유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고, 당회원 장로들은 모래 알갱이 같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고, 교회 안에는 알게 모르게 과거에 나뉘어져 싸우던 갈등이 숨겨져 있었다. 이런 교회를 좋은 교회라고 말한다면 이 세상에 좋지 않은 교회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하나되지도 못하고, 서로 간에 사랑이 없고, 하나님께 헌신하지도 못하는 교인들에게 '당신은 훌륭한 교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거룩한(?) 사기일까?
그 목사님과 나는 이 문제를 깊이 이야기하는 가운데서 성경의 가르침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성경은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같은 것이라도 다르게 본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면 거라사 지방의 공동묘지에서 살고 있던 군대 귀신들린 자를 생각해 보자. 거라사 지방의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사람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귀신들린 미친놈이라고 보았다. 유대인들이 그를 보았다면 개같은 이방인이요 더러운 귀신들린 사탄의 사자로 손가락질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거라사 지방의 전도자로 보았다. 예수님은 현재의 그의 모습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고침을 받고 하나님의 크신 일을 증거하게 될 미래의 모습을 보시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밤새도록 풍랑가운데 배를 타고 거라사 지방으로 건너가서 오직 그 한사람을 만나서 그를 치료하고 그에게 큰 사명을 주고 돌아오신다(막4:35-5:20).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을' 보는 자들이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2).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신령한 자"라고 부른다. 신령한 자는 헬라어로 '프뉴마티코스'( )라고 하는데, 즉 '성령께 속한 자'이다. 영어 성경에는 'the man with the Spirit' 즉 성령을 받은 자, 성령충만한 자, 성령이 그 속에 거하는 자로 번역되었다.
프뉴마티코스는 육에 속한 사람(고전2:14)과 대조된다. 육에 속한 자의 헬라어 원어는 푸쉬코스( )인데 영어 성경은 the natural man 또는 the man without the Spirit로 번역되었다. 육에 속한 자는 비그리스도인 또는 성령을 받지 못한 자이다. 그러기 때문에 푸쉬코스는 혼에 속하여 혼의 판단을 따른다. 푸쉬케는 인간의 정신, 논리, 합리적 판단, 과학적 검토 등을 관장하는 기능이다. 푸쉬코스는 사물을 볼 때에 과학적인 눈을 가지고 논리적인 추론을 하여 합리적으로 판단을 내리는 자이다. 그러므로 푸쉬코스는 언제든지 현재의 일을 보며, 인과관계를 살피며,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 거기에서 출발한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소크라테스를 푸쉬코스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볼 것이다. 그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감정이나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이성의 판단에 따라서 사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장로님은 푸쉬코스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그 교회의 과거를 잘 아는 분이다. 그리고 그는 그 교회 안에 어떤 상처와 갈등과 냉냉한 기류가 흐르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 장로님의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교인들 가운데 무슨 선한 것이 있을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잠복되었던 문제가 터질른지 모른다. 그 교회는 결코 좋은 교회가 아니다. 좋은 교회가 아닌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좋은 교회라고 하는 것은 거짓이요 사기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는 좋은 교회"라는 구호는 중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다. 우리는 세상의 판단에 따르지 아니한다. 우리는 합리적인 이성을 따라서 판단을 내리는 자가 아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보면서 거기에 기초하여 결단하는 자들이 아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자들이다(고전2:12).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고전2:13) 분별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고전2:12) 발견하는 자들이다.
프뉴마티코스, 즉 성령의 사람은 무엇을 보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또는 어떠한 사건에 부딪치든지 거기에 임재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자들이다. 귀신들린 자든지, 장애인이든지, 죄인이든지, 소외된 자든지, 누구를 보든지 그를 사랑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그 보혈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찾아오신 하나님을 발견하는 영적인 눈을 가진 자들을 바울은 프뉴마티코스라고 불렀다.
성령의 사람은 지금 거기에 오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기 때문에 그 사람이나 그 사건의 현재의 모습을 볼뿐 아니라 거기에 오셔서 그 사람을 새롭게 고치시고 그 사건을 영광의 사건으로 만들어 가실 하나님을 보며 또한 새롭게 된 그 사람과 사건을 본다. 즉 성령의 사람은 믿음의 눈으로 현재를 보기 때문에 현재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며, 소망의 눈으로 그것을 보기 때문에 미래에 하나님이 만드실 아름다운 비전을 보며, 사랑의 눈으로 거기에 임하기 때문에 사랑으로 거기에 임재하신 하나님과 함께 거기에서 새 일을 시작한다.
그 목사님은 아직 거기까지 못 미쳤지만 그래도 침체에 빠지고 상처로 얼룩진 교회를 보면서 하나님이 행하실 미래를 보고 있다. 목사님의 구호는 하나님의 성취하실 미래를 보면서 기도하는 간구요 믿음이요 사랑의 실천이다. 푸쉬코스의 눈으로 보면 결코 좋은 교회가 아니다. 그러나 프뉴마티코스의 눈으로 보면 그 교회는 아름다운 교회요 좋은 교회요 영광으로 가득한 교회이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이 거기에 오셔서 상처 입은 자들을 싸매시고 치유하고 있으며, 갈등을 화해로 침체를 감격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시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하나님께서 거기에 계셔서 영광스러운 교회로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하나님과 함께 그들 가운데서 사랑의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을"(고전2:12) 발견한다. 이제 그 교회는 좋은 교회가 될 것이다.
누가 한국 교회를 보고 절망하는가? 누가 한국 교회에 칼을 휘두르고 있는가? 누가 한국 교회에 미래가 없다고 하는가? 누가 한국 교회는 쇠퇴할 것이라고 하는가? 그들은 푸쉬코스들이다. 하나님의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은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리스도가 없는 자들은 그런 판단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많고, 침체되고, 타락하고, 세속화되고, 문제 많은 한국 교회 가운데 임재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본다. 하나님은 모든 죄를 씻으시고 문제를 고치시고 상처를 싸매시고 영광스러운 교회로 만들고 있다. 성령의 눈으로 한국교회를 바라보자. 거기서 새 일을 창조하시는 우리 주님을 보자, 그 분이 만드실 한국 교회를 바라보자. 목회는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서 성취하고자 하는 그 일을 그분의 이름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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