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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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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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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완택목사의 <민들레교회이야기>2006.11.5 제613호 중에서,
사랑하는 민들레 자매.형제 여러분,
어느새 우리는 11월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절기는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立冬)에 들었습니다.
2006년 이 한 해도 어느새 저물어 갑니다. 해가 서산마루에 걸렸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서둘러 할 일이 무엇이겠습까?
만사 제쳐놓고 해 지기 전에 빈들로 달려가십시오.
그 빈들에 서서 텅 빈 빈들의 공혀(空虛)를 맛들이십시오.
‘텅 빈 빈들의 공허’ 가운데서 ‘텅 빈 빈들의 충만(充滿)을 만끽하게 될 것입니다.
늦가을 바람에
마른 수숫대만 서걱이는 빈들입니다.
희망이 없는 빈들입니다.
내일이 없는 빈들입니다.
아니, 그런데
당신은 누구입니까
아무도 들려 하지 않는 빈들
빈들을 가듣 채우고 있는 당신은(고진하 ‘빈들’ 전문)
내 후배 목사 고진하는, 1987년에 이 시를 (세계의 문학)에 발표하면서 ‘시인 고진하’가 되었습니다. 나는 이 시를 고진하 시의 서시(序詩)하고 봅니다. 그래서 고진하목사를 만나게 되면 한마디 해 줄려고 합니다.
“그대는 (빈들의 시인)이다. 그대의 모든 시는 ‘빈들’의 세례를 받아야 하는니..... 과연 그러한가?
나 북산(北山)은 1970년 11월 15일, 그해의 추수감사절에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신학대학을 졸업한 아들을 목회선상에 끌어넣기 위하여 어머니가 1970년 5월 3일에 성북동에서 용광교회를 개척했는데, 나는 그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면서도 강단에는 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이 때만 되면 어김없이 몸살을 앓습니다. 마치 오랜 산고 끝에 자식을 출산한 여인이 그때만 되면 몸살을 앓듯이 말입니다.
23년전 민들레 교회를 열기 전에, 십수년 동안에 나는 일하던 교회에서 네 번 떠났습니다.
두 번은 오라는 교회가 있어서 떠난 것이었고 두 번은 그 교회에서 나 스스로 떠나면서 내심 ‘이제 교회 목회는 이것으로 끝!’ 이라고 작심하면서 떠났습니다. 그렇게 떠날 때마다 나는 석별예배시간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한편을 읽고 떠나곤 했습니다.
주여,
나로 당신의 광야 파수꾼이 되게 하소서
돌에 귀 기울이는 자 되게 하소서
당신의 넓고 적막한 바다 위를
넉넉히 내다 볼 수 있는 밝은 눈을 주소서
양쪽 기슭의 외침으로부터
밤의 되울음 그윽한 곳으로 멀리....
황폐해진 당신의 땅으로 가게 하여 주소서
바람이 윙윙 불어오고
커다란 수도원이 수도복처럼
죽은 것 같은 삶을 싸고 있는 고요한 땅으로
나는 그곳에서 순례자의 벗이 되고 싶습니다.
그들의 목소리와 모습 속에서
어떤 유혹이 있을지라도 다시는 떨어짐이 없이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길 위에 서 있는 한 사람의
늙은 장님 뒤를 따라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이 기도시가 그때마다 나를 구원해 주었습니다.남들이 들으면 웃고 또 웃겠지만 ‘나의 광야행(廣野行)이야말고 나의 유일한 구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내놓고 보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이 깨닫음은 1990년11월15일,목회 20년을 맞이할 때에 얻었습니다.)
2003년 4월 6일 주일, 민들레교회를 시작해서 어언 20년, 그동안 내 안에 순례자의 기질이 많이 탈색되어버렸을 때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는 갑년(甲年)을 맞이한 나를 히말라야 순례길로 몰아 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역만리 히말라야의 칼리간다키 강가에서 20여일 걸어 고향길을 가는 티베트 남민들을 만나 순례자의 마음을 품게 하셨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남은 세월동안 과야 파수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빈들에서 ‘순례자의 벗’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해지지 전에 빈들에 서십시오.
‘텅 빈 빈들의 공허’를 가득 채우시는 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햇빛은 고마운 것, 해를 쳐다보며 사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불행한 날이 많을 것을 명심하고 얼마를 살든지 하루하루를 즐겨라. 사람의 앞날은 헛될 뿐이다....
“그러니 좋은 날이 다 지나고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구나?‘ 하는 탄식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오기 전, 아직 젊었을 때에 너를 지으신 이를 기억하여라.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기 전, 비가 온 다음에 다시 구름이 몰려 오기전에 그를 기억하여라.
그 날이 오면 두 팔은 다리가 후들거리는 수문장 같이 되고, 두 다리는 허리가 굽은 군인같이 되고, 이는 맷돌 가는 여인처럼 빠지고, 눈은 일손을 멈추고 창밖을 내다보는 여인들 같이 흐려지리라. 거리 쪽으로 난 문이 닫히듯 귀는 먹어 방아소리 멀어져 가고 새소리는 들리지 않고 모든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리라. 그래서 언덕으로 오르는 일이 두려워지고 길에 나서는 일조차 겁이 나리라. 그러다가 영원한 집으로 돌 가면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애곡하리라.
(전도서 11장 7 -8절, 12장 1-5절)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노인(老人) 초년(初年)을 몇 년 살고 보니 한 가지 느끼는 점은 젊은이들이 점점 나를 멀리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따라서 자꾸 노여움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평소 안하던 생각과 일을 품고 하게 되고 자주자주 비겁해집니다. (노인 가운데 나처럼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노인은 본 일이 있습니까? 내가 아직 철 안 든 노인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시방 입동(立冬)의 때는 인생살이로 보면 노인의 때입니다.
서산낙일 해 떨어지는 때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서둘러 집으로 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들은 오히려 서둘러 빈들로 나가는, 빈들로 나가야 하는 때입니다.
빈들로 나가 해 지기 전에 너를 지으신 이, 주님을 깊이 기억하기 바랍니다.
빈들로 나가 너를 낳아주신 이 땅과 부모, 너를 사랑해주는 이웃과 교우들을 깊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해 지기 전에 ‘내 뜻대로’ 살아온 어리석고 부족한 너의 발걸음들에 대하여 진정으로 회개하며 용서를 비십시오. 그리고 ‘텅 빈 빈들의 충만’을 만끽하십시오.
해지기 전에 빈들에 서서 기억하고 회개하는 그대여, 복 받은 자여!
사랑하는 민들레 자매.형제 여러분,
어느새 우리는 11월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절기는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立冬)에 들었습니다.
2006년 이 한 해도 어느새 저물어 갑니다. 해가 서산마루에 걸렸습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서둘러 할 일이 무엇이겠습까?
만사 제쳐놓고 해 지기 전에 빈들로 달려가십시오.
그 빈들에 서서 텅 빈 빈들의 공혀(空虛)를 맛들이십시오.
‘텅 빈 빈들의 공허’ 가운데서 ‘텅 빈 빈들의 충만(充滿)을 만끽하게 될 것입니다.
늦가을 바람에
마른 수숫대만 서걱이는 빈들입니다.
희망이 없는 빈들입니다.
내일이 없는 빈들입니다.
아니, 그런데
당신은 누구입니까
아무도 들려 하지 않는 빈들
빈들을 가듣 채우고 있는 당신은(고진하 ‘빈들’ 전문)
내 후배 목사 고진하는, 1987년에 이 시를 (세계의 문학)에 발표하면서 ‘시인 고진하’가 되었습니다. 나는 이 시를 고진하 시의 서시(序詩)하고 봅니다. 그래서 고진하목사를 만나게 되면 한마디 해 줄려고 합니다.
“그대는 (빈들의 시인)이다. 그대의 모든 시는 ‘빈들’의 세례를 받아야 하는니..... 과연 그러한가?
나 북산(北山)은 1970년 11월 15일, 그해의 추수감사절에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신학대학을 졸업한 아들을 목회선상에 끌어넣기 위하여 어머니가 1970년 5월 3일에 성북동에서 용광교회를 개척했는데, 나는 그 교회의 예배에 참석하면서도 강단에는 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이 때만 되면 어김없이 몸살을 앓습니다. 마치 오랜 산고 끝에 자식을 출산한 여인이 그때만 되면 몸살을 앓듯이 말입니다.
23년전 민들레 교회를 열기 전에, 십수년 동안에 나는 일하던 교회에서 네 번 떠났습니다.
두 번은 오라는 교회가 있어서 떠난 것이었고 두 번은 그 교회에서 나 스스로 떠나면서 내심 ‘이제 교회 목회는 이것으로 끝!’ 이라고 작심하면서 떠났습니다. 그렇게 떠날 때마다 나는 석별예배시간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한편을 읽고 떠나곤 했습니다.
주여,
나로 당신의 광야 파수꾼이 되게 하소서
돌에 귀 기울이는 자 되게 하소서
당신의 넓고 적막한 바다 위를
넉넉히 내다 볼 수 있는 밝은 눈을 주소서
양쪽 기슭의 외침으로부터
밤의 되울음 그윽한 곳으로 멀리....
황폐해진 당신의 땅으로 가게 하여 주소서
바람이 윙윙 불어오고
커다란 수도원이 수도복처럼
죽은 것 같은 삶을 싸고 있는 고요한 땅으로
나는 그곳에서 순례자의 벗이 되고 싶습니다.
그들의 목소리와 모습 속에서
어떤 유혹이 있을지라도 다시는 떨어짐이 없이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길 위에 서 있는 한 사람의
늙은 장님 뒤를 따라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이 기도시가 그때마다 나를 구원해 주었습니다.남들이 들으면 웃고 또 웃겠지만 ‘나의 광야행(廣野行)이야말고 나의 유일한 구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지내놓고 보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이 깨닫음은 1990년11월15일,목회 20년을 맞이할 때에 얻었습니다.)
2003년 4월 6일 주일, 민들레교회를 시작해서 어언 20년, 그동안 내 안에 순례자의 기질이 많이 탈색되어버렸을 때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는 갑년(甲年)을 맞이한 나를 히말라야 순례길로 몰아 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역만리 히말라야의 칼리간다키 강가에서 20여일 걸어 고향길을 가는 티베트 남민들을 만나 순례자의 마음을 품게 하셨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남은 세월동안 과야 파수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빈들에서 ‘순례자의 벗’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해지지 전에 빈들에 서십시오.
‘텅 빈 빈들의 공허’를 가득 채우시는 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햇빛은 고마운 것, 해를 쳐다보며 사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불행한 날이 많을 것을 명심하고 얼마를 살든지 하루하루를 즐겨라. 사람의 앞날은 헛될 뿐이다....
“그러니 좋은 날이 다 지나고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구나?‘ 하는 탄식소리가 입에서 새어 나오기 전, 아직 젊었을 때에 너를 지으신 이를 기억하여라.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기 전, 비가 온 다음에 다시 구름이 몰려 오기전에 그를 기억하여라.
그 날이 오면 두 팔은 다리가 후들거리는 수문장 같이 되고, 두 다리는 허리가 굽은 군인같이 되고, 이는 맷돌 가는 여인처럼 빠지고, 눈은 일손을 멈추고 창밖을 내다보는 여인들 같이 흐려지리라. 거리 쪽으로 난 문이 닫히듯 귀는 먹어 방아소리 멀어져 가고 새소리는 들리지 않고 모든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리라. 그래서 언덕으로 오르는 일이 두려워지고 길에 나서는 일조차 겁이 나리라. 그러다가 영원한 집으로 돌 가면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애곡하리라.
(전도서 11장 7 -8절, 12장 1-5절)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노인(老人) 초년(初年)을 몇 년 살고 보니 한 가지 느끼는 점은 젊은이들이 점점 나를 멀리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따라서 자꾸 노여움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평소 안하던 생각과 일을 품고 하게 되고 자주자주 비겁해집니다. (노인 가운데 나처럼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는 노인은 본 일이 있습니까? 내가 아직 철 안 든 노인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시방 입동(立冬)의 때는 인생살이로 보면 노인의 때입니다.
서산낙일 해 떨어지는 때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서둘러 집으로 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들은 오히려 서둘러 빈들로 나가는, 빈들로 나가야 하는 때입니다.
빈들로 나가 해 지기 전에 너를 지으신 이, 주님을 깊이 기억하기 바랍니다.
빈들로 나가 너를 낳아주신 이 땅과 부모, 너를 사랑해주는 이웃과 교우들을 깊이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해 지기 전에 ‘내 뜻대로’ 살아온 어리석고 부족한 너의 발걸음들에 대하여 진정으로 회개하며 용서를 비십시오. 그리고 ‘텅 빈 빈들의 충만’을 만끽하십시오.
해지기 전에 빈들에 서서 기억하고 회개하는 그대여, 복 받은 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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