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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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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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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필로 쓰는 최완택목사의 민들레교회 이야기
제 618호 중에서 2007.1.27
<깊은 데로 가서>
사랑하는 민들레 형제․자매 여러분.
2007년 새해가 열리면서 인사하고 이제 한겨울인 소한(小寒)절기 지나고 어느새 대한(大寒)절기의 막바지, 즉 겨울의 막바지에 여러분 앞에 섭니다.
소한 절기의 한가운데인 지난 1월 14일에 여러분 앞에서야 했는데 저는 그때 그냥 깊은 데 숨어버렸습니다. ‘깊은 데’는 ‘심연(深淵)’입니다. 심연은 말 그대로는 ‘깊은 못’이지만, 거기서 나온 다른 뜻은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구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영문모를 내 인생의 ‘깊은 데’를 내내 느꼈습니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40년 가까이 목회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내 실존이 심연에 빠져있다는 의식 때문에 할 말을 잃었고, 나아갈 바를 모르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방 심연 속에서 허덕이는 점깊은 얼굴 몇을 기억하면서 내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으로 인해 나는 더 깊은 ‘깊은 데’에 처해 있음을 통렬하게 느겼습니다.
아아, 지난 한달 나의 화두는 내내 ‘깊은 데’였습니다. 시방 나는 이글을 터져나오는 영문모를 울음을 꾹꾹 누르며 마지못해, 그러나 한편 묘한 희열을 느끼며 쓰고 있습니다.
“바닥의 바닥, 심연의 심연을 노래해다오.”
(박두진, 서한체(書翰體)의 끝부분)
2007년 새해 머리에 이시를 여러분에게 소개하면서 나는 “자유 절정을 노래해다오, 자유 심연을 노래해다오”라고 나 먼저 화답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심연에 그냥 빠져 버렸습니다. 그동안 나의 유일한 노래는 시편 130편의 순례자의 노래였습니다.
주님, 내가 깊은 구렁 속에서 당신을 부르오니,
주님, 이 부르는 소리 들어 주소서,
애원하는 이 소리, 귀 기울여 주소서.
부르고 불러보아도 좀처럼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내가 부르는 소리만 공허하게 구렁속으로 빈 소리 내며 꺼져가는 듯 했습니다. 이렇게 허허한 나날을 보내던 가운데 어느날 밤에 깊은 구렁 속에서 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깊은 데로 가라!”
이 소리에 놀라 깨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더 깊은 곳으로 갈 수 있겠습니까? 시방 나는 바닥의 바닥을, 심연의 심연을 체감(體感)하고 있는 가운데 있는데, 이 소리는 나를 더 공허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망연자실(茫然自失) 가운데 잠시 후 그 소리가 주님의 말씀이라는 깨달음이 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나를 부르시면서 맨 처음에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누가복음 5장 4절)
이 말씀은 스승 예수께서 첫 번째로 부르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첫 번째로 부르신 제자입니다.
성서를 열었습니다.
네 사람이 복음서를 썼는데 누가만 ‘깊은 데로 가서’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래서 ‘깊은 데로 가서’를 새롭게 새길 수 있기를 바라면서 성서학자들의 의견을 보았는데, 내 방에 있는 학자들(책들)은 이 대목에서 하나같이 침묵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이 이야기의 핵심은 ‘깊은 데로 가서...’라는 부름인데 학자들을 왜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 성서의 물음은 성서가 대답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이 바로 그 대답이었습니다.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누가복음 5장 5절)
이 아름다운 대답! 여기서 ‘선생님’이라는 희랍어는 Epistata인데, 누가복음에만 나오고 선생님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는 ‘디다스칼로스’라는 말보다 공경심이 더 담긴 친숙한 관계를 강조하는 말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스승 예수에 대한 제자 베드로의 마음을 느끼게 되지요? 나는 베드로의 이 말의 진실을 이렇게 읽습니다.
“스승님, 고기잡이라면 제가 바로 도사입니다. 도사인 제가 밤새도록 애썼어도 못잡았는데, 느닷없이 깊은 데로 가라시니,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고기들은 본래 좀 얕은데 많이 모여드는 법인데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쳐 잡으라니요?... 그러나 스승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치셌습니다.!”
아아! 이 베드로는 이제 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사람으로 그의 업(業)을 대전환하게 됩니다. 낚는다는 말이 고기일 때 그것은 죽이는 것이지만 사람을 낚는다고 하면 살린다는 말로 대전환됩니다.
아아! 주님은 우리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부르셨습니다.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물에 그물을 던지는 건 누구나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밑을 알 수 없는 수렁, 그 깊은 데 그물을 던지는건 오로지 부름을 받은 사람, 그리고 부름을 받고 ‘그러나 스승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하고 순종하면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는 일로 이루어집니다.
아아! 이 단순명료한 진리를 깨닫기까지 나는 일년 가운데 가장 어두운 계절인 1월 한달을 깊은 데서 부르짓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를 한 처음에 부르시던 주님의 음성을 새롭게 들으면서, 아아! 내 존재의 심연에 내 깊은 수렁 속을 뚫고 들려오는 말씀에 전율합니다. 시방, 나는 내가 괴로워해 온 깊은데 바로 그 심연이 바로 그물을 던지는 자리임을 감동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뵙고도 오히려 더 깊은 공허를 느낀 베드로는 동료제자들에게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하면서 다시 어둡고 깊은 바다로 갔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으나 아무 것도 못 잡았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가 나타나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 보아라.”(요한복음 21장)
이 말씀은 처음 제자들을 부르시며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라”는 스승님 처음 말씀에 대한 당신 자신의 화답입니다.
시방 절기는 입춘의 문턱인 한 겨울의 막바지 대한의 깊은데 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십시오. 이 세상의 그 어느 보석보다 더 아름답고 이 세상의 그 어느 빛보다 빛나는 금성(金星․Venus)을 건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을 통해 “나 예수는 빛나는 샛별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계시록 22장 16절).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깊은데(深淵) 처하게 되거든 망설이지 말고 바로 거기에 그물을 던지십시오. 오히려 대어(大漁)를 낚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대어로 인해 그대의 가치관이 바뀌고 그대의 인생이 새롭게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민)
제 618호 중에서 2007.1.27
<깊은 데로 가서>
사랑하는 민들레 형제․자매 여러분.
2007년 새해가 열리면서 인사하고 이제 한겨울인 소한(小寒)절기 지나고 어느새 대한(大寒)절기의 막바지, 즉 겨울의 막바지에 여러분 앞에 섭니다.
소한 절기의 한가운데인 지난 1월 14일에 여러분 앞에서야 했는데 저는 그때 그냥 깊은 데 숨어버렸습니다. ‘깊은 데’는 ‘심연(深淵)’입니다. 심연은 말 그대로는 ‘깊은 못’이지만, 거기서 나온 다른 뜻은 ‘좀처럼 빠져나오기 힘든 구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영문모를 내 인생의 ‘깊은 데’를 내내 느꼈습니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40년 가까이 목회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내 실존이 심연에 빠져있다는 의식 때문에 할 말을 잃었고, 나아갈 바를 모르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방 심연 속에서 허덕이는 점깊은 얼굴 몇을 기억하면서 내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으로 인해 나는 더 깊은 ‘깊은 데’에 처해 있음을 통렬하게 느겼습니다.
아아, 지난 한달 나의 화두는 내내 ‘깊은 데’였습니다. 시방 나는 이글을 터져나오는 영문모를 울음을 꾹꾹 누르며 마지못해, 그러나 한편 묘한 희열을 느끼며 쓰고 있습니다.
“바닥의 바닥, 심연의 심연을 노래해다오.”
(박두진, 서한체(書翰體)의 끝부분)
2007년 새해 머리에 이시를 여러분에게 소개하면서 나는 “자유 절정을 노래해다오, 자유 심연을 노래해다오”라고 나 먼저 화답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심연에 그냥 빠져 버렸습니다. 그동안 나의 유일한 노래는 시편 130편의 순례자의 노래였습니다.
주님, 내가 깊은 구렁 속에서 당신을 부르오니,
주님, 이 부르는 소리 들어 주소서,
애원하는 이 소리, 귀 기울여 주소서.
부르고 불러보아도 좀처럼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내가 부르는 소리만 공허하게 구렁속으로 빈 소리 내며 꺼져가는 듯 했습니다. 이렇게 허허한 나날을 보내던 가운데 어느날 밤에 깊은 구렁 속에서 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깊은 데로 가라!”
이 소리에 놀라 깨었습니다. 세상에, 어떻게 더 깊은 곳으로 갈 수 있겠습니까? 시방 나는 바닥의 바닥을, 심연의 심연을 체감(體感)하고 있는 가운데 있는데, 이 소리는 나를 더 공허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망연자실(茫然自失) 가운데 잠시 후 그 소리가 주님의 말씀이라는 깨달음이 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나를 부르시면서 맨 처음에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누가복음 5장 4절)
이 말씀은 스승 예수께서 첫 번째로 부르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 역시 첫 번째로 부르신 제자입니다.
성서를 열었습니다.
네 사람이 복음서를 썼는데 누가만 ‘깊은 데로 가서’라는 말을 썼습니다. 그래서 ‘깊은 데로 가서’를 새롭게 새길 수 있기를 바라면서 성서학자들의 의견을 보았는데, 내 방에 있는 학자들(책들)은 이 대목에서 하나같이 침묵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이 이야기의 핵심은 ‘깊은 데로 가서...’라는 부름인데 학자들을 왜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 성서의 물음은 성서가 대답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대답이 바로 그 대답이었습니다.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누가복음 5장 5절)
이 아름다운 대답! 여기서 ‘선생님’이라는 희랍어는 Epistata인데, 누가복음에만 나오고 선생님이라는 뜻으로 널리 쓰이는 ‘디다스칼로스’라는 말보다 공경심이 더 담긴 친숙한 관계를 강조하는 말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스승 예수에 대한 제자 베드로의 마음을 느끼게 되지요? 나는 베드로의 이 말의 진실을 이렇게 읽습니다.
“스승님, 고기잡이라면 제가 바로 도사입니다. 도사인 제가 밤새도록 애썼어도 못잡았는데, 느닷없이 깊은 데로 가라시니,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고기들은 본래 좀 얕은데 많이 모여드는 법인데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쳐 잡으라니요?... 그러나 스승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치셌습니다.!”
아아! 이 베드로는 이제 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사람으로 그의 업(業)을 대전환하게 됩니다. 낚는다는 말이 고기일 때 그것은 죽이는 것이지만 사람을 낚는다고 하면 살린다는 말로 대전환됩니다.
아아! 주님은 우리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부르셨습니다.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물에 그물을 던지는 건 누구나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밑을 알 수 없는 수렁, 그 깊은 데 그물을 던지는건 오로지 부름을 받은 사람, 그리고 부름을 받고 ‘그러나 스승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하고 순종하면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는 일로 이루어집니다.
아아! 이 단순명료한 진리를 깨닫기까지 나는 일년 가운데 가장 어두운 계절인 1월 한달을 깊은 데서 부르짓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나를 한 처음에 부르시던 주님의 음성을 새롭게 들으면서, 아아! 내 존재의 심연에 내 깊은 수렁 속을 뚫고 들려오는 말씀에 전율합니다. 시방, 나는 내가 괴로워해 온 깊은데 바로 그 심연이 바로 그물을 던지는 자리임을 감동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뵙고도 오히려 더 깊은 공허를 느낀 베드로는 동료제자들에게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하면서 다시 어둡고 깊은 바다로 갔습니다.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으나 아무 것도 못 잡았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가 나타나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 보아라.”(요한복음 21장)
이 말씀은 처음 제자들을 부르시며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라”는 스승님 처음 말씀에 대한 당신 자신의 화답입니다.
시방 절기는 입춘의 문턱인 한 겨울의 막바지 대한의 깊은데 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십시오. 이 세상의 그 어느 보석보다 더 아름답고 이 세상의 그 어느 빛보다 빛나는 금성(金星․Venus)을 건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을 통해 “나 예수는 빛나는 샛별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한계시록 22장 16절).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깊은데(深淵) 처하게 되거든 망설이지 말고 바로 거기에 그물을 던지십시오. 오히려 대어(大漁)를 낚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대어로 인해 그대의 가치관이 바뀌고 그대의 인생이 새롭게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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