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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재운이

수필칼럼사설 윤동재.권정생............... 조회 수 3202 추천 수 0 2007.10.29 15:04:17
.........
출처 :  
"재운이"  

윤동재  

재운이는 일 년 내내 옷이 한 벌뿐이다.  
지난번 운동회 총연습 때 일이다.  
재운이는 그 날도 한 벌뿐인 그 옷을 그냥 그대로 입 은 채
깜둥 고무신 신은 발을 짚으로 동여매고
우리 5학년 계주 선수로 뛰었다.  

재운이가 힘껏 뛰어 근 십 미터나 뒤지고 있던
우리 청군이 조금 앞서 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나무 그늘 밑에 책상을 내어놓고
팔짱을 낀 채 앉아 보고 계시던 교장 선생님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마이크 앞으로 가시더니
청백 계주를 중단시키고
"앞에 가던 아이 빨리 조회대 앞으로 와!"하셨다.  

재운이가 뛰어가자 교장 선생님은 대뜸
재운이 볼때기를 힘껏 두 대 후려치셨다.  
재운이는 눈물을 닦으며 어쩔 줄 몰라했다.  

우리 청군 응원석은 기가 죽어
더러는 또 재운이가 우는 걸 보고
따라 우는 아이도 있었다.  
윗마을의 미애와 승숙이는
볼때기를 맞는 재운이보다
더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너는 운동회 날 이런 꼴로 운동장에 돌아다녔다간 혼날 줄 알아.
학교 망신을 시켜도 분수가 있지.
머리도 좀 깎고 운동복도 하나 사고
운동화도 하나 사도록 해‥‥‥

올봄에 교육대학을 졸업하셨다는 우리 선생님도
교장 선생님께 불려 가서 우리 청군이 보는 앞에서
백군이 보는 앞에서
재운이가 보는 앞에서
꾸중을 참 많이 들었다.  

우리 선생님이 자취하고 계시는 마을 아이들은
그 날 저녁 선생님이 재운이를 데리고 가
손발을 깨끗이 씻겨 주고 머리도 감겨 주면서
우시더라는 것이었다.  
정말 우시더라는 것이었다.  

그 마을 아이들은 선생님이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며
우리 선생님 별명을 울보라고 지어 부르고 있다.  

그런데 선생님은 대구에 나가
재운이의 운동복, 운동모, 운동화를 사다 주셨다.  
그러나 재운이는 아직 한 번도
그 운동복을 입고
그 운동모를 쓰고
그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나온 적이 없다.  

더욱이 재운이는 운동회가 열리던 날은
결석을 하고 말았다.
재운이가 결석했어도 우리 청군은
청백 계주에서 백군을 이기기는 했지만
우리 학년 아이들뿐만 아니고
다른 학년 아이들도 모두
재운이가 계주 선수로 뛰지 못한 것을
몹시 서운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말이 달리듯이 껑중껑중
때로는 팔을 빙빙 휘두르면서 달리는
재운이의 모습은 약간 우습기도 하고
우리 5학년에서는 가장 잘 달리기도 했는데‥‥‥

재운이 는 일 년 내내
옷이 한 벌뿐이다.

*******************
재운이네 동무들에게

권정생  

재운이는 왜
운동회날 결석을 했을까?  

재운이는 교장 선생님께 맞은 볼때기가
언제까지 아플까?

재운이는 선생님이 사다 주신
체육복과 운동화를 어디다 감춰 뒀을까?  

미애와 승숙이가 울고
동무들 모두가 울어 주었는데도
재운이는 왜 동무들과 함께
운동회날 달리기를 안 했을까?

교장 선생님의 꾸중대로
머리 깎고
체육복 입고
운동화 신고
그러면 다 될 텐데
그게 왜 안 되는 걸까?

재운이네 동무들은 모두
알고 있을 게다.

오랫동안 정들었던
우리 집 소를 팔아 버린 뒤
그 허전했던 마음을.
아무리 새로 사 온 소가 훌륭해도
사랑하고 아끼던
늙은 우리 암소가 불쌍하다는 것을.

서울 구경 가서  
화려한 거리를 구경하고
공원을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고향의 바다와 산과
비좁은 우리 집이 그리운 것을.

그렇지?
재운이에겐
미애와 승숙이가 흘린 눈물만으로는
교장 선생님께 얻어맞은 볼때기의 아픔이
그 쓰린 아픔이
가시어질 수 없었을 게다.

재운이는 벌써 전부터
깜둥 고무신으로 외톨이가 되어 가면서
얼마나 참고 살았을까?
한 벌뿐인 옷으로
일 년 내내 견디면서 살아온
재운이

동무들은 그런 재운이를 두고
운동화 신고
체육복 입고
서로 자랑하며
서로 뽐내며
재운이를 멀리 멀리
모르는 사이에 따돌려 버렸지

재운이가 고무신 신고 있었을 때
동무들 중에 누구 하나라도
같이 고무신 신고
같이 뜀박질을 했더라면
재운이는 외롭지 않았을 텐데

교장 선생님이 꾸중하시며
볼때기 때렸을 때
함께 울어 준 동무들이
좀더 용감하게 감싸 줬더라면
동무들 모두가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어버리고
체육복 같은 것도
훌훌 벗어 던져 버리고
런닝샤스와 팬티 차림으로
맨발이 되었더라면

그래서 모두 같이
교장 선생님께 볼때기를 맞았더라면
꾸중을 들었더라면

재운이가 맞은 볼때기는
훨씬 덜 아팠을 텐데  
가슴까지 한이 되어 남지 않았을 텐데

재운이가 결석한 운동회날도  
동무들은 못나게시리
저희들끼리만
운동화 신고
체육복 입고
달리기를 했겠지.
재운이의 슬픔은
잠깐 동안 그렇게만 흘려 버리고
몇 방울의 눈물만으로 끝내 버리고

부끄러운 동무들
못난 동무들
재운이는 그런 동무들이
더 없이 원망스러웠을 게다.  

진짜 운동회는
마음의 운동회가 되어야 하는데
체육복 입고
운동화 신고
많은 구경꾼 앞에서
자랑하는 운동회
교장 선생님의
체면 세워 주는 운동회
그런 운동회는 정말 운동회가 아닐 게다.

차라리
우리 모두
운동화 벗어 던지고
체육복 벗어 던지고
깜둥 고무신 신고
재운이화 함께
미애도 승숙이도
모두가 함께 가난하게 되어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딩구는 게
진짜 운동회일 게다.

재운이는 교장 선생님께 맞은 볼때기가
언제까지 아플까?
어른이 되도록
할아버지가 되도록
낫지 않을지도 모를 게다.

승숙이도 잊어버릴 테고
미애도 어느 새 잊어버릴 테고
동무들 모두 다 잊어버리겠지만......  (1987.2)

**
이 시를 앞의 윤동재 "재운이'와 견주어서 읽어 보라.
사람들은 권정생을 그저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하지만 선생은 단순히 부드러운 분이 아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강한 자들에 대한 분노와, 그리고 그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지 않는-그리고 기껏 동정하기만 하려는 - 이들 모두에 대한 안타까움과 진정한 연대성의 세계로 우리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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