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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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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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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택목사의 기독교고전산책15] 신도의 공동생활
고대로부터 교회는 함께 시를 읊어드리는 기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함께 드리는 모든 경건회를 시편으로 시작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것을 많이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편의 기도로 새롭게 되돌아가야만 합니다. 시편은 성서 전체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거의 예외 없이 사람들의 기도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1906년 2월4일 독일 브로츨라프에서 태어났다. 그는 독일제국의 엘리트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 카를 본회퍼는 권위 있는 정신병리학자로서 다년간 베를린 대학의 교수를 역임했으며 학계에서 신망이 높은 학자였다. 그의 어머니 역시 신앙으로 유서 깊은 훌륭한 가계 출신이다.
본서 신도의 공동생활에서 그는 성도의 모임에는 뛰어난 인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와 형제들을 참으로 섬기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권위 아래에 굴복해서 형제들 중의 하나가 된 사람만이 그런 권위를 인정받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값싼 은총을 전하는 것이 현대 교회의 치명적인 적이라고 말한 그는 또한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하면서 유대인들을 위해 소리 높여 외치는 자만이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를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유석성(서울신대) 교수는 본회퍼는 신앙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을 살았다. 그의 삶은 세상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책임과 교회의 역할을 일깨워줬다. 신학계에서는 처음으로 책임윤리를 말한 본회퍼는 그의 신학과 삶에서 신앙과 행동,개인적 경건과 정치적 책임이 분리되지 않고 일치함을 제시하고 실제로 보여줬다고 했다.
레나테 빈트가 쓴 본회퍼 전기 침묵의 반역자에 따르면 1933년 1월30일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본회퍼는 그의 저서 윤리학에서 히틀러의 위선과 허위를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악한 행위보다 더욱 악한 것은 악한 존재다. 다시 말하면 거짓말쟁이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더욱 악하다.
본회퍼는 반나치 저항운동에 가담하여 히틀러의 독재정권과 싸우다가 1943년 4월 5일 독일제국에 대한 음모 혐의로 게슈타포(비밀국가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감옥에서 침착하고 밝고 의연하게 지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죄수들과 마찬가지로 미칠 것만 같은 감정에 휘말려 불안감과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 자기 자신과 싸워야 했다.
1945년 4월9일 그는 게슈타포 장관의 직접 명령으로 39세를 일기로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디트리히 본회퍼,그들 형제 가운데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1906년 2월 4일 브로츨라프에서 출생. 1945년 4월9일 플로센부르크에서 죽다.(비문에서)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고대로부터 교회는 함께 시를 읊어드리는 기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함께 드리는 모든 경건회를 시편으로 시작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것을 많이 잃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편의 기도로 새롭게 되돌아가야만 합니다. 시편은 성서 전체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하겠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거의 예외 없이 사람들의 기도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1906년 2월4일 독일 브로츨라프에서 태어났다. 그는 독일제국의 엘리트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 카를 본회퍼는 권위 있는 정신병리학자로서 다년간 베를린 대학의 교수를 역임했으며 학계에서 신망이 높은 학자였다. 그의 어머니 역시 신앙으로 유서 깊은 훌륭한 가계 출신이다.
본서 신도의 공동생활에서 그는 성도의 모임에는 뛰어난 인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와 형제들을 참으로 섬기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권위 아래에 굴복해서 형제들 중의 하나가 된 사람만이 그런 권위를 인정받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값싼 은총을 전하는 것이 현대 교회의 치명적인 적이라고 말한 그는 또한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 정책에 반대하면서 유대인들을 위해 소리 높여 외치는 자만이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를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유석성(서울신대) 교수는 본회퍼는 신앙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을 살았다. 그의 삶은 세상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책임과 교회의 역할을 일깨워줬다. 신학계에서는 처음으로 책임윤리를 말한 본회퍼는 그의 신학과 삶에서 신앙과 행동,개인적 경건과 정치적 책임이 분리되지 않고 일치함을 제시하고 실제로 보여줬다고 했다.
레나테 빈트가 쓴 본회퍼 전기 침묵의 반역자에 따르면 1933년 1월30일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자 본회퍼는 그의 저서 윤리학에서 히틀러의 위선과 허위를 다음과 같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악한 행위보다 더욱 악한 것은 악한 존재다. 다시 말하면 거짓말쟁이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 더욱 악하다.
본회퍼는 반나치 저항운동에 가담하여 히틀러의 독재정권과 싸우다가 1943년 4월 5일 독일제국에 대한 음모 혐의로 게슈타포(비밀국가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감옥에서 침착하고 밝고 의연하게 지내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죄수들과 마찬가지로 미칠 것만 같은 감정에 휘말려 불안감과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 자기 자신과 싸워야 했다.
1945년 4월9일 그는 게슈타포 장관의 직접 명령으로 39세를 일기로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디트리히 본회퍼,그들 형제 가운데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 1906년 2월 4일 브로츨라프에서 출생. 1945년 4월9일 플로센부르크에서 죽다.(비문에서)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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