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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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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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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장은 감당할 몫을 늘리는 것입니다.
2. 성장은 책임량이 많아 집니다.
3. 성장은 시간 활용이 넓어 집니다.
4. 성장은 내 문제를 뛰어넘어 다른 사람의 문제까지 감당해 줍니다.
지식이 쌓이면 선택의 폭이 넓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통사람보다 더 많은 책망을 받게 됩니다. 성장은 학습에서 옵니다. 많이 배웠어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성장이 없다는 말입니다.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은 구별된 언어를 구사하게 하고 책임 있는 행동이 따릅니다.
고통이나 고난을 직면했을 때 성숙된 변화를 창출할 수 있듯이 높은 지식과 깊은 사색을 직면하게 되면 그 또한 성숙된 인격의 변화가 찾아 옵니다. 내가 생존해야 하는 경쟁 속에서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이 모든 일들이 성장하는 길입니다.
옛날 웃 어른들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이는 그냥 먹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어른들에게 가서 지혜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장의 절정은 자기 시각으로 세상을 보던 것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눈이 떠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시각으로 힘들고 지친 자들을 볼 때는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는 판단과 정죄의 눈으로 외면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의 시각으로 그들을 볼 때는 내가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기에 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진리를 깨닫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덫들이 가로 막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리에서 인격이 정지하게 됐는지 생각해 봅니다. “너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아는 만큼 행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행함이 없으면 성장은 멈추고 있다는 말입니다. 성장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행복의 지수는 지성의 지수와 맞물리기 때문입니다. 지성은 키워야 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배워야 하고, 행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행복한 가정과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성의 지수를 힘써 높여 가야 합니다.
날마다 규칙을 정하고 그 정해진 규칙에 자신을 굴복시켜 나가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해야 합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무릎 꿇고 주님께 기도하는 생활, 내면의 질서를 잡기 위해 매주 책 한 권씩 읽어야겠다는 자기와의 약속, 성경 말씀으로 하루 일과의 문을 여는 습관을 갖는 일”
그러한 생활이 자신의 인격의 가치를 높여 줍니다. 건강한 몸 관리도 성장하는 인격으로 이어집니다. 건강한 몸은 건강한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서두에도 말했지만 성장은 감당할 몫을 늘리는 것이고 시간 활용을 넓히는 것입니다.
성장하지 못하는 요인을 살펴보면 항상 바쁘다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 특히 건강 관리에 무책임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늘 원망과 불평을 하며 이웃에 대한 판단이나 지적을 부끄럽지 않게 내 뱉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성장이 멈추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떠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떠지게 되면 가장 먼저 자신을 보게 됩니다. 자신을 얼마만큼 볼 수 있느냐가 성장의 척도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보는 사람은 성장의 기능이 활발하게 살아 움직입니다.
혹 문제가 있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수학을 배우면 산수가 아무것도 아니듯이 자신을 알게 되면 어떤 어려운 고지라도 점령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자신을 아는 성장입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보시는 나를 내가 보는 것” 그것이 나를 아는 것입니다.
나 자신은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마음이 무척 넓고 관용이 많은 줄 알았는데 말씀에 부딪치면서 직면하는 문제 앞에 섰을 때 무척이나 작고, 옹졸하고, 세심하고, 욕심 많고, 이기적인 자신을 보게 됩니다. 자신을 아는 것으로부터 오는 실망과 좌절 속에서 용기를 잃어버리고 부끄러워 움츠릴 때 주님의 위로가 옵니다.
“너의 끝은 나의 시작이니라, 염려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붙들어 주리라.” 그렇게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설 그때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의 출발이 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면 힘들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 지점을 잊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가 절대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지점을 잊어 버리면 그때부터 또 힘들어 집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과 무가치한 존재요 옹졸하고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고 난 후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실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므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의뢰할 때 주님으로부터 책임져 주시겠다는 결재가 떨어집니다.
그러기에 더 높은 인격성장의 고지에 다다르려면 더 깊이 숨겨있는 내 안의 나를 발견하여 끄집어 내야만 합니다. 꽁꽁 묶어 놓고 깊이 묻어 놓고 들키지 않으려고 숨겨 놓은 나를 과감하게, 용기 있게 풀어내어 놓으십시요. 그만큼 성장합니다.
성경에 바울 사도의 가치관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케 되기를 원하노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일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것과 내 가정, 내 자녀들 앞에서 교육적인 면으로 어떤 자세로 본을 보이며 살아야겠다는 각오와 결심으로 가치관이 세워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인생은 되는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난 목적이 있고 가치 있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요즘 수 많은 가정이 붕괴 되고 어린 자녀들이 거리로 나가 방황하고 헤매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혼인 서약은 여러가지 면에서 성장을 발돋움하는 것입니다. 그때 그 순간 혼인 서약을 통해 이미 삶의 가치관 정립을 해야만 바람직한 가정의 출발이 됩니다. 그것이 잘 이루어 지지 않은 결과가 사회를 혼란하게 합니다. 가정을 파괴하는 이혼은 온 세상을 어둡게 하고 전쟁의 불씨를 만들고 불행의 원인을 제공하게 됩니다.
인격 성장의 기능이 암초에 걸린 것입니다. 성장의 기능이 활발하지 않을 때 매사를 짜증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본인도 괴로운 일이지만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도 괴롭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렇듯 인간은 나이답게 성장해야 합니다. 아이 어른도 아니고, 어른 아이도 아닌 나이다운 인격은 참 중요합니다. 결국 그들이 소수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고 밝게 세워 갑니다.
2. 성장은 책임량이 많아 집니다.
3. 성장은 시간 활용이 넓어 집니다.
4. 성장은 내 문제를 뛰어넘어 다른 사람의 문제까지 감당해 줍니다.
지식이 쌓이면 선택의 폭이 넓어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보통사람보다 더 많은 책망을 받게 됩니다. 성장은 학습에서 옵니다. 많이 배웠어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성장이 없다는 말입니다.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은 구별된 언어를 구사하게 하고 책임 있는 행동이 따릅니다.
고통이나 고난을 직면했을 때 성숙된 변화를 창출할 수 있듯이 높은 지식과 깊은 사색을 직면하게 되면 그 또한 성숙된 인격의 변화가 찾아 옵니다. 내가 생존해야 하는 경쟁 속에서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이 모든 일들이 성장하는 길입니다.
옛날 웃 어른들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이는 그냥 먹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어른들에게 가서 지혜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장의 절정은 자기 시각으로 세상을 보던 것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눈이 떠지는 것입니다.
자신의 시각으로 힘들고 지친 자들을 볼 때는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는 판단과 정죄의 눈으로 외면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의 시각으로 그들을 볼 때는 내가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기에 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진리를 깨닫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덫들이 가로 막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리에서 인격이 정지하게 됐는지 생각해 봅니다. “너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의 말씀입니다.
아는 만큼 행동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행함이 없으면 성장은 멈추고 있다는 말입니다. 성장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행복의 지수는 지성의 지수와 맞물리기 때문입니다. 지성은 키워야 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배워야 하고, 행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행복한 가정과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성의 지수를 힘써 높여 가야 합니다.
날마다 규칙을 정하고 그 정해진 규칙에 자신을 굴복시켜 나가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해야 합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무릎 꿇고 주님께 기도하는 생활, 내면의 질서를 잡기 위해 매주 책 한 권씩 읽어야겠다는 자기와의 약속, 성경 말씀으로 하루 일과의 문을 여는 습관을 갖는 일”
그러한 생활이 자신의 인격의 가치를 높여 줍니다. 건강한 몸 관리도 성장하는 인격으로 이어집니다. 건강한 몸은 건강한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서두에도 말했지만 성장은 감당할 몫을 늘리는 것이고 시간 활용을 넓히는 것입니다.
성장하지 못하는 요인을 살펴보면 항상 바쁘다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 특히 건강 관리에 무책임한 사람을 보게 됩니다. 늘 원망과 불평을 하며 이웃에 대한 판단이나 지적을 부끄럽지 않게 내 뱉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성장이 멈추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떠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떠지게 되면 가장 먼저 자신을 보게 됩니다. 자신을 얼마만큼 볼 수 있느냐가 성장의 척도이기도 합니다. 자신을 보는 사람은 성장의 기능이 활발하게 살아 움직입니다.
혹 문제가 있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수학을 배우면 산수가 아무것도 아니듯이 자신을 알게 되면 어떤 어려운 고지라도 점령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자신을 아는 성장입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보시는 나를 내가 보는 것” 그것이 나를 아는 것입니다.
나 자신은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마음이 무척 넓고 관용이 많은 줄 알았는데 말씀에 부딪치면서 직면하는 문제 앞에 섰을 때 무척이나 작고, 옹졸하고, 세심하고, 욕심 많고, 이기적인 자신을 보게 됩니다. 자신을 아는 것으로부터 오는 실망과 좌절 속에서 용기를 잃어버리고 부끄러워 움츠릴 때 주님의 위로가 옵니다.
“너의 끝은 나의 시작이니라, 염려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붙들어 주리라.” 그렇게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설 그때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의 출발이 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면 힘들지 않는 삶을 살게 됩니다. 자기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 지점을 잊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가 절대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지점을 잊어 버리면 그때부터 또 힘들어 집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과 무가치한 존재요 옹졸하고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고 난 후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실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므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의뢰할 때 주님으로부터 책임져 주시겠다는 결재가 떨어집니다.
그러기에 더 높은 인격성장의 고지에 다다르려면 더 깊이 숨겨있는 내 안의 나를 발견하여 끄집어 내야만 합니다. 꽁꽁 묶어 놓고 깊이 묻어 놓고 들키지 않으려고 숨겨 놓은 나를 과감하게, 용기 있게 풀어내어 놓으십시요. 그만큼 성장합니다.
성경에 바울 사도의 가치관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만 존귀케 되기를 원하노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일도 두려울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것과 내 가정, 내 자녀들 앞에서 교육적인 면으로 어떤 자세로 본을 보이며 살아야겠다는 각오와 결심으로 가치관이 세워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인생은 되는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난 목적이 있고 가치 있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요즘 수 많은 가정이 붕괴 되고 어린 자녀들이 거리로 나가 방황하고 헤매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혼인 서약은 여러가지 면에서 성장을 발돋움하는 것입니다. 그때 그 순간 혼인 서약을 통해 이미 삶의 가치관 정립을 해야만 바람직한 가정의 출발이 됩니다. 그것이 잘 이루어 지지 않은 결과가 사회를 혼란하게 합니다. 가정을 파괴하는 이혼은 온 세상을 어둡게 하고 전쟁의 불씨를 만들고 불행의 원인을 제공하게 됩니다.
인격 성장의 기능이 암초에 걸린 것입니다. 성장의 기능이 활발하지 않을 때 매사를 짜증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본인도 괴로운 일이지만 그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도 괴롭다는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렇듯 인간은 나이답게 성장해야 합니다. 아이 어른도 아니고, 어른 아이도 아닌 나이다운 인격은 참 중요합니다. 결국 그들이 소수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고 밝게 세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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