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
민들레교회이야기 제638호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우리는 사순절 넷째주일에 고린도 후서 5장 17-21절을 읽고 사순절 순례길은 화해(和解)의 길(道)임을 새롭게 깨닫고 그 길을 모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 주셨고 또 사람들을 당신과 화해시키시는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인간과 화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화해의 이치를 우리에게 맡겨 전하게 하셨습니다.” (II 고린토 5장 18-19절)
사순절 순례길은 화해의 길입니다. 길을 가는 것 자체가 화해입니다. 그러나 화해 없이는 그 길을 가지 못합니다. 그 길을 가면서 그 길을 가는 만민(萬民)과 그 길에 사는 만물(萬物)과 화해없이 간다면 그것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고 침략입니다.
길을 가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요구되는 것은 길(道)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친교 (Koinonia)와 화해(和解)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하나입니다. 길의 모든 것과 친교와 화해를 할 수 없다면 결코 그 길을 가지 마십시오. 친교와 화행벗이 가는 것은 침략이요 모독입니다.
찬송 270장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가 옛 찬송가에는 “우리가 지금은 길 가는 나그네…”로 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 표현이 환장하게 좋습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그리스도야 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에베소서 2장 14-16절의 요약)
하느님께서 이 화해의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화해의 이치를 우리에게 맡겨 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길 가는 나그네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의 별명이 ‘길가는 나그네’인 것은 잘 아시지요? 그 길은 ‘예수라는 길’을 통해 하느님에게 잇대어 있습니다.(민)
--------------------------
섬김의 도(道)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우리는 사순절 다섯째 주일에 요한복음 13장 1-17절을 읽고 사순절 순례길은 섬김의 도(道)를 행하는 것임을 새롭게 깨닫고 그 길을 모셨습니다.
사람이 죽음에 이르러 말을 남기면 유언(遺言)이 됩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유언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 유언이 재산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법원에 가서 검인을 받고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음에 이르러 어떤 행동을 남기게 되면 유행(遺行)이 되는 걸까요? 사전에는 ‘유행(遺行)’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한자자전에는 ‘유행(遺行)’을 ‘실행(失行)’이라고 좋지 않게 새겼습니다. 그러나 나는 굳이 “예수께서 저녁을 잡수시다가 식탕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으로 닦아 주신 행동”(요한 13장 4-5절)을 유행(遺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의 유행(遺行)에는 다음과 같은 유언(遺言)이 뒤 따릅니다.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장 13-14절)
예수의 말씀 앞에는 언제나 그 말씀을 행하신 행동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스승이시오 주님이십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여러분.
“사람의 아들(人子)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마가복음 10장 45절)
우리 주님은 죽음에 이르러 유행(遺行)을 남기셨습니다. 그런데 남의 발을 씻어주는 것은 사랑할 때만 할 수 있습니다. 돈을 받기 때문에 종이기 땜누에 발을 씻어 주는 것은 진정으로 씻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남기신 유행(遺行)을 사랑으로 서로 실천함으로 복을 받을 것입니다.(민)
------------------
평화행진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우리는 종려주일에 누가복음 19장 28-40절을 읽고 사순절 순례길이 곧 평화의 길임을 새롭게 깨닫고 평화행진을 행(行)하겠다고 기도를 바쳤습니다.
예수는 어린 나귀타고 앞으로 나아가시고 보잘것 없는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펴고 나뭇가지 꺽어다가 길에 펴고 ‘호산나!’ 외치는 풍경은 그대로 평화행진입니다. 평화행진은 당연히 부활의 기쁜 소식으로 이어집니다.
산책명상
틱닛한
내손을 잡아라
함께 걷자.
우리는 다만 걸을 것이다.
닿을 곳에 대한 생각없이
다만 걷기를 즐길 것이다.
평화롭게 걸어라.
행복하게 걸어라.
우리 산책은 평화로운 산책이다.
우리 산책은 행복한 산책이다.
그때 우리는 배운다.
평화로운 산책은 없고
평화 곧 산책임을.
행복한 산책은 없고
행복 곧 산책임을.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걷는다.
언제나 손에 손잡고
모든 사람을 위해서 걷는다.
걸으면서 순간마다 평화를 만져라.
걸으면서 순간마다 행복을 만져라.
발짝마다 한 송이 꽃을 피운다.
네 발로 땅에 입 맞추어라.
네 사랑과 행복을 땅에 새겨 놓아라.
우리가 우리 안에서 충분히 안전할 때 땅은 안전할 것이다.
(‘부디 나를 참 이름으로 불러다오’ 이현주 옮김, 두레)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우리는 사순절 넷째주일에 고린도 후서 5장 17-21절을 읽고 사순절 순례길은 화해(和解)의 길(道)임을 새롭게 깨닫고 그 길을 모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 주셨고 또 사람들을 당신과 화해시키시는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인간과 화해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화해의 이치를 우리에게 맡겨 전하게 하셨습니다.” (II 고린토 5장 18-19절)
사순절 순례길은 화해의 길입니다. 길을 가는 것 자체가 화해입니다. 그러나 화해 없이는 그 길을 가지 못합니다. 그 길을 가면서 그 길을 가는 만민(萬民)과 그 길에 사는 만물(萬物)과 화해없이 간다면 그것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고 침략입니다.
길을 가는 사람에게 제일 먼저 요구되는 것은 길(道)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친교 (Koinonia)와 화해(和解)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하나입니다. 길의 모든 것과 친교와 화해를 할 수 없다면 결코 그 길을 가지 마십시오. 친교와 화행벗이 가는 것은 침략이요 모독입니다.
찬송 270장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가 옛 찬송가에는 “우리가 지금은 길 가는 나그네…”로 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 표현이 환장하게 좋습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그리스도야 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에베소서 2장 14-16절의 요약)
하느님께서 이 화해의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화해의 이치를 우리에게 맡겨 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길 가는 나그네입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의 별명이 ‘길가는 나그네’인 것은 잘 아시지요? 그 길은 ‘예수라는 길’을 통해 하느님에게 잇대어 있습니다.(민)
--------------------------
섬김의 도(道)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우리는 사순절 다섯째 주일에 요한복음 13장 1-17절을 읽고 사순절 순례길은 섬김의 도(道)를 행하는 것임을 새롭게 깨닫고 그 길을 모셨습니다.
사람이 죽음에 이르러 말을 남기면 유언(遺言)이 됩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 유언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 유언이 재산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법원에 가서 검인을 받고 처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죽음에 이르러 어떤 행동을 남기게 되면 유행(遺行)이 되는 걸까요? 사전에는 ‘유행(遺行)’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한자자전에는 ‘유행(遺行)’을 ‘실행(失行)’이라고 좋지 않게 새겼습니다. 그러나 나는 굳이 “예수께서 저녁을 잡수시다가 식탕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뒤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으로 닦아 주신 행동”(요한 13장 4-5절)을 유행(遺行)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수의 유행(遺行)에는 다음과 같은 유언(遺言)이 뒤 따릅니다.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장 13-14절)
예수의 말씀 앞에는 언제나 그 말씀을 행하신 행동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스승이시오 주님이십니다.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여러분.
“사람의 아들(人子)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마가복음 10장 45절)
우리 주님은 죽음에 이르러 유행(遺行)을 남기셨습니다. 그런데 남의 발을 씻어주는 것은 사랑할 때만 할 수 있습니다. 돈을 받기 때문에 종이기 땜누에 발을 씻어 주는 것은 진정으로 씻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남기신 유행(遺行)을 사랑으로 서로 실천함으로 복을 받을 것입니다.(민)
------------------
평화행진
사랑하는 민들레 식구 여러분.
우리는 종려주일에 누가복음 19장 28-40절을 읽고 사순절 순례길이 곧 평화의 길임을 새롭게 깨닫고 평화행진을 행(行)하겠다고 기도를 바쳤습니다.
예수는 어린 나귀타고 앞으로 나아가시고 보잘것 없는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펴고 나뭇가지 꺽어다가 길에 펴고 ‘호산나!’ 외치는 풍경은 그대로 평화행진입니다. 평화행진은 당연히 부활의 기쁜 소식으로 이어집니다.
산책명상
틱닛한
내손을 잡아라
함께 걷자.
우리는 다만 걸을 것이다.
닿을 곳에 대한 생각없이
다만 걷기를 즐길 것이다.
평화롭게 걸어라.
행복하게 걸어라.
우리 산책은 평화로운 산책이다.
우리 산책은 행복한 산책이다.
그때 우리는 배운다.
평화로운 산책은 없고
평화 곧 산책임을.
행복한 산책은 없고
행복 곧 산책임을.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걷는다.
언제나 손에 손잡고
모든 사람을 위해서 걷는다.
걸으면서 순간마다 평화를 만져라.
걸으면서 순간마다 행복을 만져라.
발짝마다 한 송이 꽃을 피운다.
네 발로 땅에 입 맞추어라.
네 사랑과 행복을 땅에 새겨 놓아라.
우리가 우리 안에서 충분히 안전할 때 땅은 안전할 것이다.
(‘부디 나를 참 이름으로 불러다오’ 이현주 옮김, 두레)
|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