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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8:2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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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2014.6.22 열린교회(용인) http://www.yeolin.or.kr |
비상(4) 새는 바람이 있어 비상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8:22-25
어제 토요일 저녁에 어느 집사님께서 마을 모임을 마치고 빵과 과일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으로 저녁밥을 먹고 수건과 와이셔츠를 빨았습니다. 몇 주 전에 빨래비누를 교회에서 만들었는데 교인들에게 판다고 하여 제가 팔지 말고 필요한 교인들에게 나누어 드리라고 했는데 그 비누로 빨았습니다. 아주 잘 빨렸습니다. 그래서 빨래를 하는 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좋은 빨래 비누 가끔 만들어 교인들에게 나누어 드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일기를 썼고 군대에 가서도 읽기를 썼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일기를 쓰면서 매일 매일 한 가지씩 남을 위해 선한 일을 하고 그것을 기록하곤 했습니다. 그날 선한 일을 하지 못했다면 억지로라도 남을 위해 선한 일을 하고 일기를 썼습니다. 여러 가지로 부족한 사람이지만 목회를 하면서도 어떻게든 교인들을 매일 매일 도울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하며 살지만 쉽지 않습니다. 물질 때문에 어려운 분들이 있으면 듬뿍 듬뿍 사업 자금도 드리고, 자녀 교육비로 고통당하는 성도님의 자녀들에게 장학금도 드리고, 취업에 어려운 청년들에게 취업도 시켜 드리고 했으면 좋겠는데 제가 능력이 없어 그렇지 못합니다. 물론 제가 능력이 없기 때문에 매일 모든 우리 교인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등록된 교인들 가정을 거의 빠짐없이 매일 매일 제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늘 부족합니다. 그래서 한 때는 매일 매일 “열린 편지”로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를 인터넷 이 메일로 보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빨래를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만 수고하면 이 좋은 빨래 비누 만들 수 있는데 정기적으로 이 비누를 만들어 교인들에게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범한 목사인 저도 그런 생각이 드는데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인생의 장애물을 만나 절망가운데 처할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실까요? 인생의 장애물을 만나 추락하길 원하실까요? 아니면 그 장애물을 뛰어 넘어 비상하길 원할까요?
1. 예수님은 큰 광풍을 통해 인생 항해의 키를 예수님께 맡기고 비상하길 원합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호수에서 배를 타고 거라사인 땅으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배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무엇을 만났습니까? 2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쳤습니다. 이 광풍은 “라일랖스”라고 하는데 “돌풍, 회오리바람”입니다. 광풍입니다. 미친바람입니다. 이 광풍은 헤르몬 산에서 내려와 요단 협곡을 거쳐 갈릴리 바다에 이르러서는 마치 폭풍우처럼 호수를 뒤흔든다고 합니다. 갈릴리 바다는 산에 둘러싸여 평소에는 아주 고요한 편이지만 때때로 전혀 예기치 않은 때에 폭풍이 갑자기 일어난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뜻하지 않게 광풍이 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잘 되던 사업에 광풍이 불어와 부도의 위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건강하게 살던 사람에게 어느 날 무서운 질병이라는 광풍이 불어와 인생의 위기를 당할 수 있습니다. 행복하던 가정에 사고라는 광풍이 불어와 침몰의 위기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안정된 직장에 광풍이 불어 올 수도 있고, 좋았던 인간관계에 광풍이 불어 올 수도 있습니다. 세월 호 침몰로 고통당하는 가정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인생항해에 예기치 않았던 광풍이 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어제 신문에 보니까 방화로 딸을 죽였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25년 동안 옥살이하는 재미동포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이미 80살이 되었습니다. 연세대을 졸업하고 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두 딸과 함께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기 위해 갔는데 큰딸이 우울증을 앓아 수양관에 보내어 놓고 면회를 갔는데 그날 수양관에 화재가 발생하여 딸이 죽었고 그 화재의 범인으로 몰려 25년간을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이런 광풍이 몰아치면 사람은 대부분 내가 무슨 죄가 있어서 그런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무엇을 잘 못해서 그런 광풍이 몰아쳤을까요? 22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스스로 떠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요구하여 순종했을 따름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살면 인생에 광풍이 없어집니까?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사는 길에도 때때로 광풍이 불어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갔는데 가뭄이 들었습니다. 아니 말씀 순종하고 따랐는데 왜 풍년을 만나야지 흉년을 만나냐고 항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사랑했는데 병들어 죽었습니다. 아니 왜 사랑하는 사람이 병들고 죽어야 하느냐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모세가 순종하고 바로에게 갔을 때 바로가 순수하게 백성을 풀어 주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이 인생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도 때때로 광풍을 만나기도 하고,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병들기도 하고, 부도나기도 하고, 죽습니다.
중요한 것은 광풍이 일어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광풍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입니다. 이것이 차이입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이 광풍에 대처합니까?
대부분의 제자들은 갈릴리 호수에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뱃사람들입니다. 어릴 때부터 갈릴리 호수에서 배를 타고 고기를 잡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광풍으로부터 배를 보호하기 위해 애를 썼을 것입니다. 물도 퍼내고 돛을 내리기도 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항해 기술을 총 동원하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애를 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위태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어떻게 합니까?
24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배에서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깨우는 것입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자신들이 할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주님께 그 문제를 풀어 달라고 맡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 항해에서 광풍을 만났을 때 광풍 타고 비상하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평소에는 내 인생의 키를 내가 잡고 운행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막상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광풍을 만나면 내 힘으로 안 되는 것도 있구나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이 있으니 내 힘이 아닌 다른 힘으로 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입니다.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고 자신이 왕이고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산 사람이 자신 외에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전문가 중의 전문가이신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 인생의 구세주라고 부르며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광풍 때문입니다. 광풍이 없었다면 자신이 주인이 되어 인생항해를 했을 텐데 광풍으로 예수님께 인생의 키를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수영을 잘하려면 힘을 빼야 합니다. 운동을 잘하려면 자세가 좋아야 합니다. 치료를 받으려면 의사의 말을 따라야 합니다. 광풍은 우리를 추락시켜 침몰시키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키를 참 주인이신 예수님께 맡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지금 닥친 광풍이 무엇입니까? 혼자 붙들고 고민하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께 다 맡겨 버리시길 바랍니다. 혼자 붙들고 괴로워하지 마시고 예수님께 맡겨 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광풍을 잠재워 주실 것입니다. 제가 가끔 시골에 계신 어머님께 갑니다. 시골에 갔다오면 어느 때엔 차 속에 시골 파리들이 들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나는 놈 위에 붙어가는 놈 있다.” 그러나 붙어 가면 바람 세게 불면 떨어질 수 있습니다. 흔들리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더 안전한 것이 타고 가는 것입니다. 시골 파리는 평생 걸려도 이곳에 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 차를 타고 오면 하루도 걸리지 않아 오게 됩니다. 광풍이 불면 광풍 타고 예수님께 다 맡기고 비상해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 맡기면 인식의 한계, 능력의 한계를 뛰어 넘게 됩니다. 위기 가운데 영웅은 나오는 것입니다. 연은 바람타고 비상하는 것입니다. 새는 바람이 없으면 비상할 수 없습니다. 유명한 서핑 선수는 큰 파도를 기다렸다가 그 파도타고 비상하는 것입니다. 바람타고 나라가면 강도 산도 건널 수 있습니다. 광풍을 두려워하지 말고 광풍으로 예수님을 내 인생 항해의 주인으로 모시고 광풍 타고 비상하는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 매달 “건강과 생명”이라는 기독교 신앙 잡지가 옵니다. 그 책을 주관하시는 분이 ‘비타민C 박사’라는 별명이 붙은 서울의대 이왕재 교수님이 십니다. 제가 그 교수님의 간증을 읽어보았습니다. 부모님 신앙으로 교회도 다니고 교사도 했지만 신앙생활을 40여 년 동안 해오면서도 하나님이 지으신 생명에 대한 섭리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창세기 말씀은 너무 재미없었고 통독하라고 하면 의무적으로 읽고 지나쳐버렸답니다. 그런데 결혼 9년 만에 시험관 수정을 통해 얻은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가 교통사고로 죽음의 위기에 처했답니다. 4년 6개월 된 어린 아이의 몸 한가운데로 중형 승용차가 지나간 것입니다. 중환자실에 놓아둔 채 집으로 돌아와 밤새워 눈물로 기도드렸답니다. 40여 년을 살면서 그때만큼 간절히 기도해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의사이지만 자신이 다스릴 수 없는 광풍이 다가 온 것입니다. 기독교 동료 교수들이 같이 기도하고 서울의대 기독동문들이 같이 기도했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답니다.
방사선 촬영을 한 친구 교수는 “간장의 형체가 그려지지 않을 정도로 망가져 있음에도 큰 출혈이 없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며 위로하더랍니다. 담관이 파열되어 담즙이 혈액으로 흘러 들어갔을 텐데 이상이 나타나지 않았답니다. 폐와 심장까지도 큰 손상을 당했을 것인데 자동차 앞바퀴에 짓이겨진 간장이 2주 만에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재생되었답니다. 자신이 직접적으로 체험을 하니까 의사로서 가지고 있는 기적의 비논리성 혹은 비합리성의 시비가 자신 안에서 일거에 제거되고 말았답니다. 교만하기 쉬운 지식집단인 서울대 의대 교수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사건이 되었다고 합니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자신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은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우리의 삶을 지키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고 합니다. 소극적인 신앙이 간증하는 신앙으로 바뀌었답니다. 가족만을 위해 기도하던 신앙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신앙으로 바뀌었답니다. 사고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은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인생의 광풍이 내리치고 있습니까?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포기하라는 신호가 아닙니다. 그 광풍으로 주님 만나 주님께 모든 것 맡기고 광풍타고 비상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큰 광풍을 만나면 광풍에 침몰될 것이 아니라 그 광풍을 뚫고 힘차게 하늘로 비상해야 합니다. 골리앗을 만난 다윗처럼 민족을 구원하는 자로 비상해야 합니다. 살인자로 몰려 광야로 도망간 모세처럼 광풍 타고 민족의 지도자로 비상해야 합니다. 노예로 팔려간 요셉처럼 광풍타고 가족을 살리는 자로 비상해야 합니다. 아이를 낳지 못한 한나처럼 광풍타고 기도의 사람으로 비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7:7)”
2. 예수님은 큰 광풍을 통해 큰 믿음으로 광풍을 잔잔케 하시는 주님을 체험함으로 비상하길 원하십니다.
주님께 나와 부르짖는 그들에게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24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원망을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그들의 불평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귀찮아하시지 않습니다. 그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연약함을 비난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잠을 깼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들을 괴롭히는 바람을 꾸짖으십니다. 그들을 삼키려는 바다에게 명령하십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우리에게 닥쳐온 광풍,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광풍을 예수님께서 직접 개입하십니다.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침묵하시는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주무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외면하는 예수님이 아니십니다. 주님이 직접 개인하시면 능력의 한계를 순식간에 뛰어 넘어갑니다. 천지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니까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강이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눈먼 자가 눈을 뜨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광풍 가운데 침묵하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는 신호입니다. 인내하라는 신호입니다. 한두 번 해보고, 일이년 해보다가 안 되면 쉽게 포기하는데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났기까지 25년을 기다렸습니다. 모세는 민족 지도자로 서기까지 40년을 기다렸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은 해방되기까지 400년을 기다렸습니다. 세상을 바꾼 작은 우연들(마리 노엘 샤를 지음)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연'의 도움을 받아 탄생해 인류의 삶을 변화시킨 발명품 50가지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세렌디피티의 법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쉽게 된 것이 없습니다. 가황이라는 방법을 개발하여 고무 산업을 발전시킨 찰스 굿이어(Charles Goodyear)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가 그것을 발견하기까지는 수많은 실패를 하고 불운, 좌절로 고통받아야 했고, 금전적 실패로 빚을 지고,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12명의 아이들 중 6명이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아내와 함께 운영하던 철물점을 나렸야 했는데 1840년 1월의 어느 날, 굿이어는 빚쟁이들과 한바탕 말다툼을 벌였다고 합니다. 이 때 그는 우편 행낭의 재료로 썼다가 불행을 가져왔던 문제의 고무 조각들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화가 난 나머지 그 조각들을 방에 내던져버렸답니다. 내동댕이쳐진 고무 조각들 가운데는 뜨거운 난로 위에 떨어진 것도 있었는데 약 1시간 후, 빚쟁이들이 돌아간 뒤에 굿이어는 난로에 떨어진 고무 조각을 치우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열에 녹아내렸을 줄 알았던 그 고무 조각은 놀랍게도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답니다. 고무는 색이 짙게 변해 있었고, 언뜻 보기에는 가죽으로 혼동할 만큼 생김새가 달라져 있었답니다. 가황법의 원리가 우연히 밝혀진 것입니다. 결국 빚 때문에 감옥신세를 졌지만 감옥에서 나온 후 드디어 안정화된 고무를 압축 증기를 이용해 단단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한 연못에 수련이 있는데 매일 두배씩 늘어나고 48일이면 완전히 연못을 덮는다면 며칠이 연못의 절반을 덮는 시점일까요? 24일 아닙니다. 하루 전인 47일입니다.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9달까지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고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아무나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때나 체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메가톤급 광풍 가운데 메가톤급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면 메가톤급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께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은혜로 그 사람만 체험하는 독특한 하나님 체험을 하게 합니다. 이것은 이론도, 논증도, 과학도 아닙니다. 절박한 순간, 믿음의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독특한 신앙 체험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통한 예수님의 궁극적인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25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라고 질문합니다.
정작 믿음을 보여주어야 할 시점에 믿음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믿음이 약하다는 말씀입니다. 이미 이들은 베드로 장모의 병을 고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각색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가버나움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신 것을 본 사람들입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크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 한 마디로 모든 것을 다스리는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믿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이 큰 광풍을 통하여 그들이 어떻게 변합니까? 바로 다음에 나오는 그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그들이 두려워하고 놀랍니다. 이 두려움은 광풍을 보고 두려워하는 두려움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 그 분 앞에서 가지는 경외감입니다. "포본 메간"입니다. 메가톤 급 두려움입니다. 믿음으로 이끄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경외감 행16:29)입니다. 호렙산에서 모세(출3:1-6)가 경험했고,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삿 13:22)가 경험한 신적 본질을 경험한 두려움입니다. 믿음이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광풍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은 무시했지만 이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인생에 다가오는 광풍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메가톤급 광풍 가운데 메가톤급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귀신이나 질병뿐만 아니라 자연계를 통치하신 분임을 믿습니다. 광풍 가운에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원하십니다.
가이드 포스트에 실린 리처드 용재 오닐이라는 사람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촉망받는 음악가 중 한 사람인 비올라 주자라고 합니다. 클래식계의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에버리 피셔 상을 수상했고 전 세계 음악 천재들이 모인다는 줄리어드 음악원 역사상 유일하게 전액 장학생으로 졸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큰 광풍을 만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광풍에 매몰된 것이 아니라 광풍 속에서 주님께 붙들여 큰 광풍 때문에 비상한 사람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6.25 전쟁고아로 네 살이 되던 1957년 미국 가정에 입양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릴 적 앓은 열병의 후유증으로 정신지체 장애를 갖게 되었고 꽃다운 나이 스물다섯에 미혼모로 용재를 낳았다고 합니다. 그녀의 양부모는 장애를 가진 양딸과 더불어 용재까지 키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양 할아버지는 텔레비전 수리점을 하셨고 양 할머니는 학교 임시 교사나 비서일을 하셔서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답니다. 그래서 제일 싼 바이올린에 레슨비가 제일 싼 선생님에게서 바이올린을 배웠답니다. 그런데 그 싸구려 바이올린이 오히려 그를 더욱 음악적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싼 악기여서 소리가 너무 좋지 않으니까 좋은 소리를 찾아내려고 애쓰다 보니 귀가 좋은 소리를 찾고 만들어 내는 데 단련이 되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시력에 문제가 있어고 어머니는 정신지체 장애자로 정신연령이 거의 일곱 살 수준이었고 마을에서 유일한 동양인으로 학교에 가면 놀림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환경이 그를 조숙하게 만들었고 그의 슬픔은 황홀한 음악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바이올린으로 찬송가를 연주하였고 그러므로 말미암아 교회의 후원과 독지가의 4년 동안의 후원으로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인으로 세계적인 작곡가가 된 진은숙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곡가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 상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어린 시절 광풍을 만난 사람이었습니다. 개척 교회 목사의 둘째 딸로 태어나 극한 가난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16세 때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는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돈 없어서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아르바이트를 멈춘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삼수 끝에 서울대 음대에 진학했고 대학 시절에도 과외나 교회 반주로 1주일에 30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며 독일 함부르크 음대로 유학을 갔다고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도 신념만 가지면 대단한 일들을 합니다.
중국 전한의 역사학자 사마천은 정치범으로 몰려 신체의 일부가 잘리는 형을 받으면서도 비관하여 좌절하지 않고 [사기]를 남겼습니다. 제나라의 위대한 병법가 손자도 동료의 모함으로 두 다리를 절단 당했으나 좌절하지 않고 [손자병법]을 남겼습니다. 고대 아테네의 유명한 웅변가이자 정치가였던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 )는 말더듬이었지만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로 가서 조약돌을 입에 물고 연습하여 능변의 웅변가가 되었습니다. "신화창조의 비밀 한국 기업의 세계 시장 공략기"를 읽어 보았습니다. (주)홍진 HJC, (주)하나코비, 오로라월드(주), (주)두산중공업, (주)삼성전자,(주)현대자동차 이야기가 실려 있었습니다. 어느 기업하나 어려움없이 일어선 기업은 없습니다. 그들의 특징은 결코 좌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계 시장을 석권하는데 결코 어떤 일이 닦쳐도 좌절하지 않고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한계 상황을 이용하여 기술을 더 발전시켰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혁신가입니까(아담 브라이언트 지음)”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현재 가장 주목 받고 있는 IT기업, 의류회사, 의학회사, 게임회사, 체인점 운영자, 요리사까지 140명의 현직 ‘리더’ CEO들에게 어떻게 창조와 혁신이 살아 숨 쉬는 기업문화를 만드는지를 묻고 그 비법을 정리한 책입니다. 한 마디로 성공의 관건은 혁신을 하려는 기업문화라는 것입니다. 관료주의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조금 더 유용한 상품을 내놓으려 ‘노력하고’, 소통을 잘하려고 ‘노력하는’ 기업문화가 정착되어 있을 때 기업은 지속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책에 그런 말이 나옵니다. ‘더 이상 믿을 수 없을 때까지 서로를 믿어라.’ 팀웍은 믿음이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 자신을 기준으로 하는 신념이 아니라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를 때 갈릴리에서 죽이려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것이 예수님의 목적입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이 일 이루기까지는 중간에서 광풍으로 죽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27장에 바울이 풍랑을 만나 파선의 위기에 처할 때 어떤 생각을 합니까?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행 27:24-25)" 요나가 풍랑을 만나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를 그 풍랑으로 죽이지 않습니다. 그 풍랑을 통해 니느웨로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니느웨에서 요나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아직 하실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수많은 니느웨 백성을 구원해야 합니다. 요한 웨슬레는 "하나님이 내게 향하신 그 크신 뜻을 이루기까지는 나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광풍이 일고 있습니까? 그 광풍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계기가 되어 더욱 큰 은혜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삼손이 아무리 타락했을 지라도 하나님은 광풍을 만나게 하지만 결국 그들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광풍 없는 모세, 광풍 없는 아브라함, 광풍 없는 요셉, 광풍 없는 선지자, 광풍 없는 바울, 광풍 없는 야곱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광풍으로 더욱 큰 믿음을 가지고 비상하였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다가오고 어떤 광풍이 분다하여도 주님을 믿는 믿음 잃지 말고 믿음으로 광풍타고 비상하는 인생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내게 다가온 광풍 두려워하지 말고 그 광풍에 개입하시는 예수님을 체험함으로 큰 믿음을 가지고 비상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4.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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