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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성경본문 : | 요21:1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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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영봉 목사 |
참고 :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
2014 년 1 월 5 일 주일 설교 '성지묵상 연속설교'(10)
"첫 사랑의 기억"(A Memory of First Love)
요한복음 21:15-17
Happy New Year!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교우 여러분의 영혼 위에 그리고 가정과 직장 위에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Happy New Year! I pray that the Lord’s grace and love may be upon your spirit, your family, and your work.
오늘로 '성지묵상 연속설교'를 마칩니다. 그동안 함께 순례를 하는 심정으로 경청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Today, I will conclude the Pilgrimage sermon series. Thank you very much for listening to the series with the
heart of being on pilgrimage together.
예수님의 일생에 있어서 중요한 지명이 몇 군데 있습니다. 태어나신 베들레헴, 자라신 곳 나사렛, 세례 받으신
요단 강, 금식하며 기도하신 유다 광야, 공적 활동을 시작하신 갈릴리 그리고 죽음 당하신 예루살렘입니다.
In the life of Jesus, several geographical places are very importatnt. Those places are Bethlehem where he was
born, Nazareth where he grew up, the Jordanian River where he was baptized, the wilderness of Judea where he
fasted and prayed, Galilee where he started his public ministry, and Jerusalem where he was put to death.
오늘은 갈릴리에 대해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갈릴리는 베들레헴이나 나사렛 같은 동네 이름이 아닙니다.
미국으로 따지면 주(state)에 해당한다 할 수 있습니다. 한 주 안에 여러 동네가 있듯, 갈릴리 안에 수백개의 동네가
있었습니다.
Today, I’d like to talk about Galilee. Galilee is not a name of a town like Bethlehem or Nazareth. It is more like a
state of U.S. As there are many towns in a state, hundreds of towns existed in Galilee.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갈릴리의 나사렛이라는 동네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내십니다.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시기 전까지 그분이 어떻게 사셨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그분은 평범한 목수로
사시다가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시고는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유다 광야에 나가 40 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십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세례 요한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나사렛을 떠나 갈릴리 호수 근처의 가버나움에서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지도 1)
Jesus who was born in Bethlehem spent his youth and young adulthood in the town of Nazareth. It’s not known
how he had lived his life before he publicly made himself known. After living an ordinary life as a carpenter, Jesus
determined it was time for Him and then was baptized in the Jordanian River. After his baptism, he went out to the
wilderness of Judea and then fasted and prayed for forty days there. Soon after that, he heard that John the Baptist
was arrested. Jeshs thought that it was his time and left Nazareth. He started his ministry in Capernaum near the
Sea of Galilee. (Map 1)
저희 일행이 갈릴리 호수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뉘엿 뉘엿 넘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숙소에서 호수까지 반 마일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짐을 풀고 저녁 식사로 모일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호수가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호수에는 갈대가 촘촘히 자라 있었고, 호수 위로는 하얀 달이 떠 있었습니다. (사진 1) 주변은 한적했고 고요했습니다.
When my pilgrimage group arrived at the Sea of Galilee, it was near sunset. Our hotel was a half a mile away
from the lake. After unloading our luggages, we had some extra time before dinner. So, I went out to walk around
the lake. In the lake, reeds were growing in dense, and bright moon was shining upon the lake. (Photo 1) The
surrounding was quiet and tranquil.
저는 아내와 떨어져 홀로 그 호수가에 섰습니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몇 번 했습니다. 그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식과 평안이 제 마음을 채웠습니다. 마치 번잡한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 고향에 온 느낌이었습니다. 이곳이 바로
주님께서 걸으시고 말씀하셨던 그곳이라고 생각하니 거룩한 전율이 제 몸을 스쳤습니다.
I left my wife behind my wife and stood alone by the lake. I closed my eyes and took a deep breath several
times. At that moment, I was filled with rest and peace which was beyond my description. I felt as if I came back
home away from the bustling life of city. I felt a sacred quiver of shiver run through me because of the thought that I
was standing on the spot where Jesus walked and spoke.
이상하게도,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으셨던 '비아 돌로로사'를 걸을 때보다 주님의 임재를 더 친밀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제 묵상을 방해했지만, 갈릴리 호수가에서는 아무 것도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호수가 벤치에서 눈 감고 묵상하는데, 마치 예수께서 옆에 앉아 계신 것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곳에
앉아 한참을 기도했습니다.
Strangely, I felt the presence of Lord a lot more intimately than when I walked along ‘Via Dolorosa’ where the
Lord carried His cross. Many things prevented me from meditation there, but nothing bothered me at the Sea of
Galilee. When I sat a bench by the lake and closed my eyes and meditated, I felt as if Jesus were sitting next to me.
I prayed for a long time on that bench.
갈릴리는 예수님에게나 제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곳입니다. 첫 사랑의 기억이 서린 곳이기
때문입니다.
Galilee was a very important place for Jesus as well as for the disciples. It was a place symbolizing their first
love.
주님께서 제자들을 처음 만나시고 부르신 곳이 갈릴리입니다. 제자들마다 주님을 만난 경위가 다르고 주님을
따라 나선 동기가 달랐으니, 오늘은 베드로의 경우만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어떻게 만나주셨고
또한 베드로는 어떻게 주님을 따라 나서게 되었습니까? 그 첫 사랑의 이야기가 누가복음 5 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Galilee was where the Lord met the disciples for the first time and called them to be His disciples. Every disciple
had different details of his encounter with the Lord and different reasons why they decided to follow Jesus Christ.
Today, we will think about Peter’s case. How did the Lord meet Peter and how did Peter decide to follow the Lord?
Their story of first love is written in the Gospel Luke Chapter 5.
그 날, 어부로 잔뼈가 굵어진 베드로는 동료들과 함께 호수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밤, 밤새도록
허탕만 쳤습니다. 빨리 정리하고 집에 가서 쉬려고 했는데, 낯선 사람이 다가옵니다. "잠시 배를 사용해도
되겠느냐?"고 물으셔서 그렇게 하라고 했더니, 그분은 배에 오르셔서 해변에 모인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십니다.
베드로는 그물을 손질하면서 말씀에 귀 기우립니다. 전에 들어보지 못한 말씀이었습니다. '이분은 누구신데 저런
말씀을 하시나?' 베드로는 그분의 정체가 궁금해졌습니다.
On that day, Peter, who was a professional fisherman all through his life, was fixing nets with his colleagues by
the lake. He could not catch anything last night. He just wanted to tidy up as quickly as possible to go home and get
rest. However, a strange man walked towards him. He asked Peter to use his boat. Peter allowed, and then the
stranger got on the boat and spoke to the people gathered around the lake. Peter listened to him while fixing the
nets. The words were nothing like what he had heard before. He wondered who the stranger, who spoke as such,was.
설교를 마친 후, 그분은 베드로에게 말을 거십니다. "깊은 데로 나가, 그물을 내려서, 고기를 잡아라."(눅 5:4)
베드로는 거부할 수 없는 권위를 그분에게서 느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5 절)라고 대답하고는 배를 저어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립니다. 얼마 후, 그물에 손을 댄 베드로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힌
것입니다. 그 때, 베드로는 그분이 누구신지 깨달았고, 그 날로 그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After the stranger finished his speaking, he said to Peter, “Put out into deep water, and let down the nets for a
catch (Luke 5:4).” He was so authoritative in his command that Peter felt he couldn’t refuse. So Peter answered,
“Master, we’ve worked hard all night and haven’t caught anything. But because you say so, I will let down the nets.”
And then he rowed his boat to deep water and let down the nets. Sometime later, he put his hands on the nets and
was startled. So many fish were caught to cause the nets to tear. At that moment, Peter realized who he was and
bcame His disciple from that day.
베드로와 예수님 사이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도 수제자로 인정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 모두와 함께 할 수 없을 때에도 베드로와 다른 두 제자만큼은 옆에 두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특별한 사랑과 신뢰를 감사했고 그래서 몸을 바쳐 충성을 다했습니다. 목숨까지도 주님께 드리고 싶었습니다.
진실한 사랑을 경험하면 자신의 것을 다 주고 싶어지는 법입니다.
The love between Peter and Jesus started like that. Peter was recognized as the Jesus’ favorite disciple. Even
when Jesus could not be together with all twelve disciples, He always had Peter and the other two disciples next to
Him. Peter was thankful for the Lord’s special love and faith in him, and therefore, he was faithful to the Lord with all
his strength. Peter even wanted to give his life to the Lord. When one experiences the true love, it is natural for him
or her to give everything to the loved one.
예수께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라고 예고하셨을 때,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비록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절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 (마 26:33)
When Jesus foretold that He would suffer and be crucified, Peter said, “Even if all fall away on account of you,
I never will (Matthew 26:33).”
이 얼마나 대단한 사랑의 고백입니까? 이 때, 베드로는 진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뜨거운 사랑의
고백에 찬 물을 끼얹으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오늘 밤에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34 절). 이 대답에 베드로는 발끈합니다. "내 진심을 그렇게도 모르십니까?"라는 뜻으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을지라도, 절대로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마 26:35)
What an amazing confession of love is this? At this time, Peter meant it. Jesus, however, put a damper on
Peter’s passionate confession of love. “Truly I tell you,” Jesus answered, “this very night, before the rooster crows,
you will disown me three times” (Matthew 26:34). In this response, Peter flied into a rage. As if Peter wanted to say,
“you really don’t know my heart,” he responded to Jesus, “Even if I have to die with you, I will never disown you.
(Matthew 26:35)”
베드로에게는 그럴 자신이 있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베드로는 가야바 법정에서 자신의 사랑의 실상을 목도합니다. 예수님이
재판을 받는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는데, 어느 여종이 다가와 "당신도 예수와 한패지요?"라고 묻습니다. 베드로는
엉겁결에 아니라고 대답했고, 계속되는 질문에 거듭 부인합니다. 한 번은 실수라고 할 수 있지만, 두 번, 세 번 그렇게
했을 때는 실수라고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세 번째 부인할 때는 저주까지 퍼부었습니다. 그 때 닭이 울었고,
베드로는 어둠 속으로 나가 심하게 통곡했습니다.
Peter was sure of himself. He couldn’t imagine he would ever disown Jesus even at the risk of his death.
However a few hours later, he witnessed the reality of his love for Jesus in Caiaphas’ courtyard. When he was
watching afar Jesus on trial, a servant girl came up to Peter and asked him, “You also were with Jesus of Galilee.”
Without thinking, Peter denied at first and kept denying as his response to the repeated questions. The first
response could be considered as a mistake but two or three times of the same answer could not be a mistake.
Furthermore, when he denied the third time, he even called down curses. A rooster then immediately crowed, and
Peter went outside in darkness and wept bitterly.
베드로는 생명을 바치기까지 예수님을 사랑하고 싶었지만 초라하게 실패했습니다. 상상하지 못했던 그 참담한
실패로 인해 그는 절망에 빠졌을 것입니다. 모든 의욕과 열정이 한 순간에 증발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는 '사람 낚는
어부'로서의 꿈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3 년 동안 그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그 모든 열정이 차갑게 식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사랑했던 제자들 또한 주님을 사랑한다던 제자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자리에서 주님은 외롭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십니다.
Peter wanted to love Jesus to the extent that he gave his life, but he miserably failed. By the unthought
miserable failure, Peter would probably be plunged in despair. All his intention and passion evaporated in a
moment. He had to give up to be a fisher of people. The passion that used to beat his heart highly for 3 years
became cold. Like that, at the place where all disciples whom Jesus loved and who loved Jesus left, Jesus was
crucified alone.
예수께서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째 되는 날, 그분을 가까이 따르던 여인들이 무덤을 찾습니다. 그들은 무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고, 그 안에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당황하고
두려워하던 여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말을 건넵니다. 천사는, 예수께서 예언하신대로 부활하셨다고 전하면서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On third day after Jesus was buried in the tomb, women who closely followed Jesus visited the tomb. They saw
that the door of the tomb was opened and realized that the dead body of Jesus was disappeared. To the women
who were perplexed and feared, an angel appeared and told them Jesus was resurrected as he prophesied, and
asked like this:
빨리 가서 제자들에게 전하기를,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 나셔서,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니,
그들은 거기서 그를 뵙게 될 것이라고 하여라. (마 28:7)
Then go quickly and tell his disciples: “He has risen from the dead and is going ahead of you into Galilee.
There you will see him.” Now I have told you. (Matthew 28:7)
주님께서 왜 갈릴리로 가셨을까요? 왜 제자들을 갈릴리로 부르셨을까요? 첫 사랑의 장소로 부르신 것입니다.
위기에 빠진 부부가 새롭게 출발하기 위해 처음 만났던 장소를 찾곤 하지요. 처음 만났던 장소로 돌아가 처음 서로를
만났을 때의 감정을 회복하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첫 사랑의 기억이 서린 곳으로 부르십니다.
Why did Jesus go to Galilee? And why did he call his disciples to Galilee? Jesus called them to the place of the
frist love. Desperate couples would visit the place where they met first time to renew their relationships. By going
back to the place where they met first, they try to recover the emotional feelings they had at that time. Like this,
Jesus called his disciples into the memorable place of their first love.
베드로는 여인의 말대로 갈릴리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갈릴리에서 너희를
만날 것이다"라는 말은 "조지아에서 너희를 만날 것이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갈릴리 그 넓은 땅에서 어디로 가야
그분을 만날 수 있단 말입니까? 하는 수 없이, 베드로와 그 일행은 갈릴리 호수로 돌아갑니다. 아, 그런데 바로 그곳이
주님께서 생각했던 그곳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갈릴리 호수에서 첫 사랑을 회복하는 이야기입니다.
Peter went back to Galilee as the women said. But he did not know where he had to go. The words, “I will meet
you at Galilee,” are the same words like this, “I will meet you at Georgia.” Where I should go to meet him? For lack
of anything better, Peter and his company went back to the Sea of Galilee. That was the place Jesus thought of.
The scripture we read today is the story of recovering the first love at the Sea of Galilee.
갈릴리 호수로 돌아온 베드로는 고기를 잡고 싶어졌습니다. 3 년이 넘게 손을 놓았던 일입니다. 복잡한 심사를
달래는 데는 육체 노동이 적격입니다. 베드로는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한 머리와 마음을 잠시라도 비우기 위해
배에 오릅니다. 주님을 만날 때까지 할만한 일은 그것 밖에 없었습니다. 아, 그런데 도무지 고기가 잡히지 않습니다.
아무리 3 년 동안 손을 놓았다고 해도 그렇지. 초보자도 몇 마리쯤은 잡는 법인데, 어찌 한 마리도 그물에 걸리지
않는가 말입니다. 모처럼 머리를 식히려고 그물을 잡은 것인데, 오히려 심사가 더 뒤틀렸을 것입니다.
Peter would like to fish after coming back to the Sea of Galilee. He did not do this job for three years. Physical
labor is the best thing to take care of agitated and disturbed mind. Peter who was agitated and disturbed in mind by
many thoughts got on the boat. That was the only job he could do until he met Jesus again. But, he could not fish
any one. Even if he did not fish for 3 years, he could not understand how come he couldn’t fish any, even beginners
could fish several. To relax his agitated mind, he wanted to fish after long time, but rather, his mind would become
cranky.
새벽이 되어 고기 잡기를 포기하고는 호수가로 돌아와 그물을 정리합니다. 그 때,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건넵니다.
"무엇을 좀 잡았습니까?" 베드로와 그 일행은 지나가는 행인인 줄 알고 눈길도 주지 않고 "아무 것도 못
잡았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 보라고 합니다. 베드로는 그 말에 멈칫 했을
것입니다. 3 년 전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의 마음에 "혹시?" 하는 의문이 떠올랐지만,
금새 머리를 흔들어 떨쳐 버렸을 것입니다. 그럴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속는 셈치고 배 오른쪽에
그물을 던집니다.
Peter gave up fishing at dawn and arranged his net after came back to lake-front. At that moment, someone
came to him and talked to him. “Did you catch some fish?” Peter and his company thought the man was just a
passerby. So, they did not give a look to the man and said, “No, not at all.” Then, the man said, “Cast net to the
right side of the boat.” Peter probably would wince at this word. The memory of 3 year ago when he met Jesus first
time came into his mind. The question of “Maybe?” came into his thought, but he would shake his head. He thought
it would be impossible. But, he casted his net to the right side of the boat, assuming it would be deceiving.
잠시 후, 잡아 올리려고 그물에 손을 댔을 때 베드로는 깜짝 놀랍니다. 그물이 묵직해졌습니다. 끌어 올리려니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 때, 요한이 베드로에게 외칩니다. "저분은 주님이시다!" 베드로도 그런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물을 던지기 전에 "혹시?" 했는데, 그물이 가득 찬 것을 발견하는 순간, "그렇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너무도
반가운 나머지 물로 뛰어 들어 주님께 달려갑니다.
After for a while, when Peter touched the net to pull it up, he was surprised. The net was so heavy. They tried to
pull up the net but it did not move at all. At the moment, John shouted at Peter, “He is the Lord!” Peter already knew
that. Before he threw the net, Peter thought, “Maybe?” but the moment he found the full of net, he thought, “Yes, he
is!” He jumped into water with gladness and ran to Jesus.
예수님과 베드로 그리고 제자들은 잡은 생선을 구워 해변가에서 아침 식사를 나눕니다. 저희 일행도 갈릴리 호수
근처에서 소위 '베드로 고기'(Peter's Fish)라는 이름의 생선 맛을 보았습니다. (사진 2) 생선 한 마리로 한 끼 식사가
충분했습니다.
Jesus, Peter, and other disciples broiled the fish they had caught and had a breakfast on the seashore. We also
tried a fish called “Peter’s Fish” near the Sea of Galilee. (Picture 2) One fish was enough for one meal.
식사를 마친 다음, 예수님은 베드로를 따로 불러내십니다. 아마도 둘이서 해변을 걸었는지 모릅니다. 한 참을 말
없이 걸으시던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십니다.
After the meal, Jesus called Peter separately. Maybe the two might have walked along the seaside. After
walking for a while without a word, Jesus asked Peter: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15 절)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 (John 26:15)
예수께서 베드로를 부르시면서 당신이 지어주신 새 이름 '베드로'가 아니라 원래의 이름 '시몬'을 사용하십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는 뜻이 분명합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랑에 대해 물으십니다. 원어를 보면,
"아가페이스 메?"(agapeis me)라고 질문하십니다. 헬라어 '아가페'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무조건적인
사랑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질문은 이렇게 풀어 쓸 수 있습니다.
When calling Peter, Jesus used his original name “Simon,” instead of Peter, which was his new name that Jesus
gave to him. Obviously, Jesus wanted to start all over from the beginning. The Lord asked Peter about love. In the
original language, Jesus asked him, “agapeis me?” The Greek word “agape” refers to an unconditional love that
Jesus showed us on the cross. So, Jesus’ question can be put like this:
요한의 아들 시몬아, 내가 너를 사랑한 것처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Simon son of John, do you love me as I love you?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베드로의 온 몸은 식은 땀에 젖었을지 모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사랑하셨는데, 주님께 대한 자신의 사랑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 너무도 허망하게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Upon hearing this question, Peter might have broken out in a cold sweat. The Lord loved him so much that he
died on the cross, but his love for the Lord crumbled down so easily before the threat of death. Peter answered as
follows: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15 절)
“’Yes, Lord,” … “you know that I love you.” (John 26:15)
우리 번역만으로 보면, 베드로가 "예"라고 대답한 것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원문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아가페이스 메?"라고 물으셨는데, 베드로는 "필로 세"(philo se)라고 대답합니다. 헬라어 '필리아'는
형제간의 우정 혹은 친구간의 우정과 같은 인간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깨어지기 쉬운 인간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이렇게 답한 셈입니다.
When we look at the translation in Korean, it seems that Peter had answered “Yes.” However, the original text
says otherwise. Jesus asked Peter, “agapeis me?” but Peter answered him “philo se.” The Greek word “philia”
refers to a humane love like brotherly love or close friendship. It is a humane love that is easy to be broken. So,
Peter’s answer, in fact, meant as follows:
제가 주님께서 저를 사랑하신 것처럼 주님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You know that I am not able to love you as you love me.
이렇게 대답하는 베드로의 마음은 떨렸을 것입니다. 자신의 대답이 주님을 실망시켰을 것이라고 짐작했을
것입니다. "너는 아직 그 정도밖에 안 되느냐? 왜 이리도 못 났느냐?"라고 꾸중하실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부드러운 눈길로 베드로의 떨리는 눈동자를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내 어린 양을 먹여라."
As Peter answered as such, his heart might have trembled. He probably thought that his answer disappointed
the Lord. He felt that Jesus maight rebuke him like “Is that what you have for me? Why are you so lame?” However,
the Lord’s gentle gaze saw Peter’s trembling eyes and said, “Take care of my sheep.”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눈물을 왈칵 쏟았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참혹하게 실패한 자신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사랑에 부족한 자신을 믿고 일을 맡기시겠다는 겁니다. 그 따뜻한 말 한 마디에 얼어붙었던 베드로의 마음이
녹아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두 번 더 그의 사랑을 확인하시고 그에게 양들을 돌보라고 부탁하십니다.
베드로가 세 번 실패한 것을 생각하고 세 번 그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Upon hearing this, Peter might have broken into tears. Jesus still trusted Peter and entrusted him with a task,
even though he failed so wretchedly and was still lacking in love. This warm word might have softened Peter’s
frozen heart. The Lord checked Peter’s love two more times and asked him to take care of his sheep. Jesus
probably asked him three times as he thought Peter denied him three times.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질문은 "내가 너를 사랑한 것처럼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질문은 "네가 내 사랑을 아느냐?"는 질문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첫
사랑의 장소로 다시 불러 십자가에서 드러난 당신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가 '고기 낚는 어부'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고 '사람 낚는 어부'로 다시 시작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주님의 사랑을 제대로 알고 체험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The question, “do you love me more than these?” is the same as “do you love me as I love you?” Then, this
question may be the same as “do you know my love?” The Lord brought Peter to the place of first love and
confirmed his love that was revealed on the cross. It was because it was necessary for Peter to properly know the
Lord’s love and feel it more than anything else in order to start anew as a “fisher of people,” instead of returning to a
“fisherman.”
베드로가 가야바 법정에서 예수님을 부인한 이유는 예수님의 사랑을 다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그는
십자가를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갈릴리 호수로 다시 불러 십자가에서 완성된 당신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 사랑을 알고 그 사랑을 품고 있으면, 실패도, 낙심도, 탈진도 없을 것입니다. 상처 받는 일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에게 받는 어떤 상처도 주님의 사랑이 치유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사랑을
품고 다시 시작하도록 베드로를 격려하고 계십니다.
Peter denied Jesus in Caiaphas’ courtroom because he did not fully know the love of Jesus. He did not see the
cross yet. The Lord called Peter again to the Sea of Galilee and confirmed his love that was completed on the cross.
If we knew this love and had this love in our hearts, there would be no failure, no disappointment, and no
exhaustion. We will not be afraid of our hearts being hurt, because the Lord’s love will heal every wound in the
heart that other people inflict on us. The Lord encouraged Peter to embrace this love and start anew.
오늘의 이 사건이 일어난 곳에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사진 3) 그 교회를 '베드로 수위권 교회'(the Church of
the Supremacy of St. Peter)라고 부릅니다. 천주교회에서는 베드로가 제자들 중에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고 그
권위를 교황이 이어받았다 하여 베드로에게 '수위권(首位權, the supremacy)을 부여합니다. 그래서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습니다.
A church was built at the place where today’s encounter took place. (Photo 3) It is called “the Church of the
Supremacy of St. Peter.” In the Catholic Church, Peter is considered supreme among the disciples, whose authority
has been conferred to the Pope, and thus Peter was granted the “supremacy.” So, that’s how that church was
named.
그 교회가 세워진 자리가 정말 그 사건이 일어난 자리인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것도 역시 믿거나
말거나입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 근처 어느 곳에서 일어난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니 그렇게
여기면 됩니다.
There is no way to verify the incident actually took place at the very spot where the church stands today.
Whether it is believable or not,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It is certain that it took place somewhere near the
place. Thus, we will leave it at that.
저희 일행은 교회 앞에 있는 호수가 모래밭에서 잠시 산책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예수님과 베드로의
첫 사랑의 기억을 회상했습니다. (사진 4) 눈을 감고 주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걸으시면서 말씀하시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참담한 실패로 인해 좌절과 실망에 빠져 있던 베드로, 그 지치고 상한 심령을 격려하시며 첫 사랑을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인자한 눈빛을 상상했습니다.
Our company had time to take a short walk on the sand near the lake in front of the church and to meditate. I
recalled the first love between Jesus and Peter. (Photo 4) I closed my eyes and imagined the scene where the Lord
walked and conversed with Peter. I visualized Peter who was in the middle of terrible disappointment and
frustration as the result of his dismal failure, and the merciful eyes of the Lord who was encouraging Peter’s tired
and broken heart and restoring their first love.
그 때, 제게도 바로 그 사랑과 눈빛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첫 사랑의 장소로
부르셨듯, 저를 첫 사랑의 장소로 데려 오셨음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사람은 저의 삶과 목회를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저 자신은 최근 들어서 제가 이 일에 부적격자라는 느낌에 자주 사로잡혔습니다. 와싱톤한인교회에서의 목회가 이제
9 년째를 접어 들어가고 있는데, 처음에 가졌던 자신감은 다 사라져 버리고, 앞으로 남겨진 시간 동안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착찹한 심정이었습니다. 제게 몇 년의 시간이 남겨져 있는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완주하고
싶은데, 그럴만한 에너지가 제게 없는 것 같았고, 에너지가 있다 한 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At that time, I realized the fact that I also needed the very eyes and love of our Lord. As the Lord brought Peter
to the place of their first love, I realized that He also brought me to the place of the first love. I don’t know how
others look on my life and ministry, lately I myself was often caught up with the feeling of inadequacy with my
ministry. As I have been with Korean Unuted Methodist Church of Greater Washington for 9 years, my initial
confidence has gone, and I have been in mixed emotions as to what I should do during the remaining time.
Although I don’t know how many years are left for me, I want to give my best until the last minute, but I don’t seem
to have adequate energy, and even if I had the adequate energy, I don’t seem to know what and how to do.
저는 그 자리에서 주님을 구했습니다. 베드로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저에게도 첫 사랑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이 아니고는 이 길을 계속 갈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며, 제게 있는 사랑은 너무도
깨어지기 쉬운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고, 십자가에서 드러난 그분의 사랑을 새롭게 체험하는 것밖에는 제
사랑을 고칠 방법이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I sought the Lord at that place. I prayed that as He did to Peter, He would restore my first love for him. It was
because without the love for the Lord, I knew I could not keep walking this path. It was because I realized that my love was so fragile. And it was because without experiencing anew His love revealed on the cross, there was no other way to restore my love. I prayed that He granted that love to me.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혹시나, 믿는다고는 하지만 첫 사랑이라 할만한 체험이 없는 분이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만나지 못하여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사십니까?
주님과 나눈 사랑의 경험이 없으십니까? 십자가 앞에서 무너져 본 적이 없으십니까? 부디, 영원하신 분과의 사랑에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얼마나 삶을 달라지게 만드는지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지식이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영원한 사랑을 체험하고 그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Dear my brothers and sisters in Christ, how about you? By any chance, even though you believe in Christ, you
never had such experience that can be called the first love? Because you have not met Jesus Christ fully, do you
just live without knowing God’s love for you? Have you never experienced the love with the Lord? Have you never
experienced to fall down in front of the cross? I do hope that you open your eyes to the love with the eternal One. I
do hope that you experience how much it will change your life. Faith is not knowledge but love. It is to experience
the eternal love and live our life with that love
얼마 전, 우리 교회 교우 중 한 분에게서 사랑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의 허락을 받고 그 이야기를 나눕니다.
Not long ago, I heard a story of the love from one of our church members. I am here sharing her story with her
permission.
그분은 매사에 모범생으로 자랐고 또한 그렇게 살았습니다.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이루었기에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큐티며 성경읽기며 성경공부며 교회 봉사에 열심을
다했습니다. 그러면 믿음이 성장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열심과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듯, 기도할
때마다 마치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다 마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She grew up as a model student in all affairs and stayed on top of many things. When she set her mind on
anything, she could accomplish them. She thought that with the life of faith, she could also just diligently work at it,
and her faith would grow. Therefore she was busy with QT, Bible studies, and various church service activities. She
believed that such effort would lead her to a deeper faith. But as if all her eagerness and effort didn’t seem to be
enough, whenever she prayed she had the stifling feeling as if someone stopped knocking at the door from outside.
주님을 영접한 후에 주님께서 그의 삶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여러 가지로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뭔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특별히, 십자가의 은혜가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다음은 그 분이 제게 보내 주신 영성일기의 한 부분입니다.
After she accepted the Lord, she lived a life of faith experiencing in many ways that the Lord guided her life. But
the certain feeling - the fundamental problem was not quite resolved - has been troubling her. In particular, the
grace of the cross did not quite reach to her heart. The following is a part of her spirituality journal that she sent to
me.
지금까지 십자가 그 사랑이 내게 크게 다가오지 못하고 그냥 문자적으로만 이해가 되었다.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 인해 우리가 죄인이라는 말씀도 크게 다가오지 않았고, 십자가 그 보혈은 나의 죄를
사하기 위해 흘린 피라는 말씀도 은혜가 되지 않았다. 다만, 일반적으로 우리 인간들의 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큰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십자가를 묵상해도
진정한 은혜로 다가오지 못하고 그저 배운 교리로만 이해되는 수준이었다.
Until now, the love of the cross did not come close to me, and it was merely understood
conceptually. The message that we are all sinners through Adam and Eve’s Original sin did not come
to me much, and the message that the precious blood of Jesus was shed on the cross to forgive my
sins did not bring grace to me. However, I understood in general that the cross exists for the sins of
mankind. Because I did not think I was a great sinner, when I meditated on the cross, the true grace
did not approach me, and it remained merely as the doctrinal knowledge.
그런데 요즘 내 안에 있는 죄들이 자꾸 보였다. 내가 그 동안 깨닫지 못하고, 이 정도는 죄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들이 아주 무거운 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점잖음과 친절함과 선한 미소로
포장하고 위장해 왔던 나의 악한 본성들이 자꾸 보였다. (중략) 내 안에 이렇게 더러운 죄들이 쌓여
있는지를 모르고, 나는 다른 사람보다는 가벼운 죄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으니, 십자가 그 보혈이 크게
은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But these days, I often see the sins in me. I begin to realize that the things I did not consider as sins
before are grave sins. I often see the evil nature in me which was previously camouflaged with
gentleness, kindness, and smile. (Omitted) As I did not fess up the dirty sins that were piled up inside
of me and lived the life thinking that that I was a lighter sinner than others, the blood on the cross never
stroke me as the message of grace.
이것은 한 순간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자신의 죄성에 대해 눈 뜨게 되고 그 죄성의 무게가
점점 커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자매에게 사랑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분의 일기를 계속 읽습니다.
This did not happen in an instant. From a certain day, she began to open her eyes to her own sinfulness and the
weight of her sinful nature seemed getting heavier. One day, an event of love occurred to this sister. Her journal
continues:
새벽에 일어나면서 전날 제자반에서 불렀던 찬양 "정결한 영을 주시옵소서"라는 찬양이 나왔다.
새벽기도회에 나가서 기도하다가 눈을 들어 십자가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슬픈 기분도 아니었는데 왜 이럴까? 이 갑작스러운 눈물은 무엇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걷잡을 수 없이 눈물과 콧물이 흘러 나왔고, "저는 죄인입니다. 저를 용서해 주세요"라는 기도가 입에서
계속 나왔다. (중략) 이제야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게 되었다. 오늘 아침 바라본
십자가가 이제는 일반적인 '우리의' 대속의 십자가가 아니라 '나의' 죄를 대속하신 보혈의 십자가로
느껴졌다.
While getting up at dawn I found myself singing the hymn, "Give me a pure spirit," which I sang in
the Disciple Class. While praying at the Dawn Prayer meeting, I opened my eyes and looked at the
cross. Suddenly a drop of tear fell without my awareness. I wasn’t sad, but why? While I was thinking
about the sudden tear, tears and runny nose flowed out uncontrollably, and the prayer came from my
mouth continually that "I am a sinner, please forgive me". (Omitted) Only then I came to admit the fact
that I am a sinner and have to confess. This cross that I saw this morning is not the general cross of
“our” atonement, but the cross of the blood redeeming “my” own sin.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드러난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며, 그 사랑을 품고 사는 것이며, 그 사랑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고, 그 사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아직도 이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신 분들에게 주님의 성령이
임하셔서 이 자매와 같이 '나를 향한 사랑'을 경험하는 황홀한 순간을 맞으시기 바랍니다.
To believe in Jesus means to experience the love revealed on the cross, to live with the love, to live by the
power of the love, and to live for the love. For those who have not yet experienced this love, I pray that through the
presence of the Spirit of the Lord you will find the wonderful moment experiencing the “love toward me” like the
sister.
여러분 중에는 이미 이와 같은 첫 사랑의 경험을 거친 분들이 더 많으실 것입니다. 그 사랑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은 아직 그 사랑으로 설레고 있습니까? 그 사랑 때문에 사랑의 수고를 기쁘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혹시나,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여 베드로처럼 고기나 잡겠다고 뒤돌아서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낙심하고
좌절하고 탈진한 상태에 계십니까?
Many of you have already experienced such first love. In what state is such love now? Is your heart still fluttered
by that love? Because of that love, do you bear all the labor of love gladly? By any chance, were you, like Peter,
discouraged while doing good, and did you turn back for the pretext to catch fish? Are you perhaps discouraged,
frustrated, or exhausted?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새해 첫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첫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면 됩니다. 그 사랑만 우리 안에 살아 있으면, 우리의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사랑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첫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의 갈릴리로 돌아갑시다. 그리고
기도하십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시고 사랑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올 한 해도 뜨겁게
사랑하며 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Dear my brothers and sisters in Christ, today we have our first worship in this New Year. The thing we need
most at this hour is the restoration of our first love. The love is all. If only that love is alive in us, we can live without
minding the labor of love until our last breadth. To restore the first love, let’s go back to our Galilee. And let us pray
together. The Lord will meet us and restore our love. I eagerly pray that you live with such warm love in this New
Year.
사랑의 주님,
십자가에서 드러난 그 사랑을
알기 원합니다.
그 사랑으로 살기 원합니다.
그 사랑을 위해 살고 싶습니다.
저희를 갈릴리로 불러 주시어
그 따뜻한 눈빛을 보게 하시고
그 사랑의 음성을 듣게 하소서.
아멘.
Our loving Lord,
I want to know
the love revealed on the Cross.
I want to live with that love.
I want to live for that love.
Bring us to Galilee,
let us see Your warm eyes,
let us hear your voice of lov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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