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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절질 하였나이까?

말라기 궁극이............... 조회 수 381 추천 수 0 2015.01.29 15: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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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말3:7-11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2000년대 설교 

3장 7절-11절.


기도: 사랑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의 부족하고 연악하고 병적인 모든 것을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온전하게 고쳐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7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열조의 날로부터 규례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물론 배우기를 잘못 배운 거고, 가르치기를 잘못 가르친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지켰다고 하는데 지키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행동은 글자 그대로 했는데 마음은 딴 데 있다는 것입니다.


‘돌아오라’ 하니까 ‘어떻게 해야 돌아가는 것입니까?’ 돌아오라고 하는 것은 마음이 돌아오라고 하는 겁니다. 소원과 목적적으로 돌아오라는 거지요.


마음에 없는 예배의식은 아무리 하나님 말씀인 성경구절대로 해도 이건 지키지 않는 겁니다. 마음이 하나님께 안 돌아오고 예배를 하는 것은 거짓 예배요, 거짓 예배는 소원 목적에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세상 것에 대한 소원과 목적을 가지고 예배를 하는 것은 예배순서만 지킨 것이지 마음은 하나님께로 돌아간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는 것은 마음은 인격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히 성경구절대로 한 것은 인격적인 문제가 아닌 고로 하나님께로 돌아간 것은 아닌 겁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으로 의사적으로 소원 목적적으로 결합을 원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합을 하자는 거지요.


신앙생활은 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결합인데 이 인격적 결합이 되려면 주 하나님의 의사에 단일이 되어야 합니다. 또 소원 목적을 자원적으로 하나님의 소원 목적으로 가지게 되면 인격적 결합은 자동적으로 되어나가는 겁니다. 이런 신앙은 주님께로 돌아간 신앙입니다. 인격적 결합이 안 된 신앙은 언제든지 주 하나님과 마찰과 충돌과 대립성을 가지고 있는 신앙입니다.


8절-9절: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십일조는 신명기 12장 11절로 보면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한 곳을 택하실 그곳으로 나의 명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 번제와 너희 희생과 너희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라고 했고, 13절에 보면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든지 번제를 드리지 말고’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와 헌물은 성소와 제사장에게 바치는 예물이고. 구약성경에 보면 그렇습니다.


헌물은 성전에서 자녀와 함께 레위인들이 먹기 먹기도 하고,(신12:1) 느10:38에 보면 성전 곡간에 헌물을 보관하기도 했습니다.


마23:23에 보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십일조를 하지 말라가 아니고 하라는 겁니다.


창14:17 이하로 보면 아브라함이 4대 연합군을 무찌르고 조카 롯을 찾아올 때 살렘 왕이요 제사장이신 멜기세댁에게 탈취물의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일반적 계시적으로 보면 세계 각국의 사람들은 각자 자기 나라에 정한 세금을 내고, 또 자기가 외국에 있더라도 세금을 내고 국민의 주권행사를 하는 겁니다.


이제 예수 믿는 자기가 천국백성이라고 생각이 되면 하나님께 세금을 내는 것처럼 십일조를 낼 것이고, 자신이 천국백성이 아니라고 생각이 되면 십일조는 낼 필요도 없고, 예수 안 믿어도 되는 거지요.


또 우리가 신앙이건 아니건 간에 세상에 태어날 때 인간 자기는 양손에 가지고 온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맨 손으로 발가벗고 나왔지만 주 하나님께서 온 천지만물을 다 만들어 준비를 다 해 놓고 태어나게 한 것입니다. 심지어 인간 자기의 몸과 목숨까지도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그 자체가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요, 은혜가 되는 겁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 자기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알고 간다고 하는 것만도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물질은 반드시 자기가 마음이 가고 사랑하는 쪽으로 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지요? 사실 하나님께서 물질이 필요해서가 아니고 십일조를 내는 방편으로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나에게 주고 싶은 심정에서 십일조를 내라고 한 것입니다.


이제 본문 뒤로 죽 보면 축복이 나옵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내는 자에게 주어지는 축복이 나온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축복을 주고 싶어서 십일조를 내라고 그런다 그 말이요.


십일조를 내는 것은 사무적 법적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에서 나오는 인격적 관계입니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기 것을 어른에게 다 주었을 때 어른은 아이에게 도로 주면서 사랑의 마음이 가고, 뭔가를 그 아이에게 더 주고 싶은 마음이 나오는 거지요. 하나님도 그와 같단 말이요. 이게 다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심정입니다.


그런데 8절에 보니 이스라엘은 십일조와 헌물을 했다고 하는데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의 것을 도적질을 했다고 한단 말이요. 십일조를 냈는데 왜 도적질을 한 것이냐? 왜 떼먹었느냐 그 말이요? 그러니까 온전한 십일조를 안 했단 말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일조를 했습니다’ 하는데 하나님은 ‘안 냈다’ 그러는 거지요. 온전한 십일조가 아닌 것은 십일조를 안 낸 것과 마찬가지라 그 말이지요.


그러면 생각을 해 봐요. 교인들은 십일조를 냈다고 그러고, 하나님은 안 냈다고 그러고! 그렇다면 누구의 말을 믿어야 되겠습니까? 사람의 말을 믿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을 믿어야 되겠습니까?


물론 그들도 십일조를 냈으니까 냈다고 그러는 거지 안 내고도 냈다고 그러겠느냐 그 말이요. 분명히 냈긴 냈는데 온전한 십일조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면 온전하지 못한 십일조란 뭘 말하는 거냐? 잘라 먹었다는 말 아닙니까? 온전한 십일조가 아니라면 반토막이든지 잘라 먹었다는 말이지요. 그러니까 사람을 속일지는 몰라도 하나님은 못 속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니까!


그러면 십일조를 얼마나 잘라 먹었는지는 모르지만 십일조를 내면서 인간 자기는 잘라 먹었단 말이요. 그러면서 ‘이것이 하나님 당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은 돈에 환장이 돼서 ‘그래, 얼른 가져 오너라’ 하면서 그것을 쾌히 받겠습니까? 말하자면 온전한 십일조가 아닌 잘라 먹은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면 인간 자기는 십일조를 낸 건데 하나님은 그 십일조를 덜렁 받겠습니까? 뭐라고 그러겠습니까? 십일조 떼먹은 사람을 뭐라고 그랬지? 도둑질! 그러니까 ‘이 도둑놈아’ 그럴 거란 말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돈을 빌렸는데 원금을 잘라 먹고 ‘이것이 당신의 것 전부입니다’ 하면 쾌히 받겠습니까? 뭐라고 그러겠습니까? ‘이 도둑놈아, 왜 내 돈 잘라 먹었느냐’ 그럴 거란 말이요.


그러면 온전한 십일조가 무엇이냐? 온전한 십일조의 근본적 이유는 돈 액수에 있는 것입니까, 사람의 마음에 그 이유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지난주에도 연구를 했습니다만 저는 것, 병든 것, 눈 먼 것을 드릴 때 그것을 드리는 사람의 마음이 문제입니까, 그 짐승들이 문제라는 말입니까?


더러운 떡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사람의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겁니까, 떡에 문제가 있는 겁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겁니까, 하나님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겁니까?


단순히 ‘십일조 얼마 냈네 안 냈네, 십일조를 얼마 떼먹었네’ 그 강조보다도 사람의 마음이 지금 강조가 돼 있단 말이요. 8절에 보면 십일조를 냈는데 하나님은 당신의 것을 도적질을 했다고 돼 있단 말이요.


도적질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 겁니까, 돈이 도적질을 한 겁니까? 사람의 마음이 지금 문제라 그 말이요. 도적질을 해서 세금을 내면 사람들이 의인이라고 칭찬을 합니까, ‘이 도둑놈아’ 하면서 잡아갑니까? 마음이 문제다 그 말이요.


그러면 십일조 도둑질이 무엇이냐? 온전한 십일조를 도둑질하는 이것이 무엇이냐 그 말이요. 첫째는 마음에도 없는 십일조를 하는 것. 자기 것이라고 인식이 되어 아까워서 못 내는 것. 그러니까 이 돈이 문제입니까, 마음이 문제라 그 말입니까? ‘낼까 말까’ 하다가 내는 것. 이것도 마음에 없는 거라 그 말이요.


거지에게 구제하듯이 내는 것. 자기 것을 주는 것처럼 내는 것. 선심 쓰듯이 내는 것. 준비 없이 내는 것. 구원에 대한 감사 없이 내는 것. 미루면서 내는 것. 이게 다 마음에 없는 십일조입니다. 온전한 십일조가 아니란 말이요.


그 다음엔 두 번째로 십일조를 쪼개서 내는 것. 어떻게 쪼개서 내느냐? 십일조를 엄마 아버지가 갈라내고, 또 자식들도 식구대로 분할해서 내는 것. 그 다음에 십일조를 가지고 조금 떼서 감사헌금도 하고, 작정헌금도 하는 것. 이것도 온전한 십일조가 아닙니다.


세 번째는 십일조를 미리 따로 떼어 놓았는데 살림살이를 살다보니 돈이 그만 모자라서 십일조를 덜렁 떼서 쓴다 그 말이요. 주일날이 며칠 더 남았으니 마음속에 그 돈을 그 사이에 준비할 것 같아서 십일조를 헐어서 쓰는 것. 이게 다 온전한 십일조가 아닙니다. 설령 채워서 낸다고 해도 그건 온전한 십일조가 아닙니다. 정신이 이미 빗나갔습니다. 빚 독촉에 십일조까지 헐어서 내는 것. 이거 온전한 십일조가 아닙니다.


십일조를 자기 개인사정으로 쓰고 나서 마음속으로 그 다음에 십일조를 두 배나 더 보태서 드려야 되겠다고 하는 그 마음 이것도 온전한 십일조를 내는 마음은 아닙니다.


그 다음에 네 번째는 이유야 어쨌든 십일조 헌금을 해야 하겠다는 양심마저 이도 저도 다 없어져 버린 겁니다. 마음도 헌금도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게 다 온전한 십일조가 아닙니다.


9절: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않고 헌물을 도적질하니까 저주를 받은 모양입니다.


10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이 나오는데 그대로 안 한다면 작살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징계, 재앙, 심판이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11절-12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누굽니까?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이요, 영원불변하고 변치 않는 절대적인 말씀이요, 곧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이 말씀이 믿어집니까? ‘영이냐, 육이냐’ 따지기 이전에 이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이 인격적으로 자기에게 믿어지느냐 그 말이요.


그렇다면 믿어지면 시험을 해 보라고 했으니 시험을 해 볼까요, 말까요? 안 믿어지면 시험을 해 봐야지요. 그렇지 않아요? 시험은 믿어지니까 합니까, 안 믿어지니까 합니까? 안 믿어지니 시험을 한다 그 말이요.


그러면 믿어지던 안 믿어지던 우리 기독자들은 이게 지금 해야 할 일이지요.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해야 할 일입니다.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하늘창고에 들여 봐라’고 했는데 온전한 십일조가 뭐냐? 아까는 온전한 십일조가 아닌 것을 마음적으로 여러 가지로 말씀을 드렸는데 온전한 십일조는 뭐냐 하면 첫째로 ‘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다’ 하는 긍지를 가지고 내는 사람. 두 번째는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하는 긍지를 가지고 내는 사람. 세 번째는 ‘나는 신령천국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자다’ 하는 사람이 내는 십일조는 온전한 십일조입니다.


그 다음 네 번째는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고 전부는 하나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대로 아홉은 내가 쓰고 하나는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냅니다. 하나님의 것 그 하나마저 내가 취하면 나는 도둑이 됩니다’ 하는 그것을 아는 사람이 내는 것. 도둑은 자기의 것이 아닌 것을 훔치는 사람이 도둑이지요.


그러니까 이제 몇 가지 말씀드린 이것은 우리 기독교인들의 기본상식입니다. 이 기본상식 속에는 기본구원의 은혜가 들어있고, 기본신앙이 들어 있습니다.


기본구원에 대한 은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은혜입니다. 두 번째는 성화구원에 대한 은혜가 들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깨달음과 영인성장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이치대로 생활을 해 나가니까 영인성장이라는 소득이 들어 있습니다.


이치대로 생활이란 대신관계를 바로 하고, 대인관계를 바로 하고, 대사관계를 바로 하고, 대물관계를 바로 하고, 대아관계를 잘 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소득이 십일조와 헌물이라고 하는 물질로 바꾸어지면서 나오는 이것이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입니다.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이라는 뜻이 깊다 그 말이요. 속속들이 기본구원도 알고, 성화구원도 알고, 그 사상과 정신으로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는 거기서 나오는, 거기서 취해지는 물질이 온전한 십일조!


이런 생활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주 본질적이요 초보적이요 기초적인 신앙생활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모든 신앙이 그 본질에 입각해서 자라나는 겁니다. 이게 참 신앙이라 그 말이요.


기독교인들을 보면 본질적 기초적 신앙사상도 갖지를 못하고 신앙생활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진리이치의 아무 깨달음이 없는 신앙생활은 아무런 영적 소득이 없는 하나의 종교인에 불과한 겁니다. 그러니까 온전한 십일조가 안 된다 그 말이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십일조가 안 된다, 헌물이 안 된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의 종교인으로 사는 걸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마5:48에도 있지요? ‘내가 온전한즉 너희들도 온전해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기독교는 주 하나님의 본질로 주님처럼 인격의 온전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기독교는 일반종교와 다름이 없게 됩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이라고 했지요? 영적으로 말하면 창고는 하늘나라 창고, 신령한 창고, 하늘나라에 저축이 되는 창고입니다. 그러니까 하늘나라에 소원 목적 마음을 두라는 겁니다.


영이 주격이 되고 진리지식을 주격으로 하여 신앙생활을 한 그 소득의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교회적으로 말하면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이라고 했으니 천국복음 운동을 하는 교회, 진리운동을 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교회입니다. 아까 본문에 나왔지요? 신명기에 ‘나의 이름을 두신 그곳에 내라’고 그랬지요.


이런 신앙으로 주축이 된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의 것으로 드리는 겁니다. 비진리적 이질적 세상적인 교회에다 내면 안 됩니다. 온전한 십일조는 진리복음 운동을 하는, 영인성장을 하는 곳에다 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게 성경대로 바로 되는 겁니다.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고 그랬지요? 양식은 먹고 일을 해야 하는 양식이지요?


하나님의 집에 십일조와 헌물이 풍부하면 그 물질을 이용 활용해서 천국복음 사역에 쓰임이 됩니다. 자타의 이루어질 구원에, 질적 성장, 질적 확장에 쓰임이 됩니다.


양식이 없으면 못 먹는 것이고, 못 먹으면 일을 하는데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영적 관계적인 활동 면에서는, 연관 관계적인 활동 면에서는 그만큼 축소가 돼 버립니다. 물질을 이용을 못 하니까, 물질이 없으니까!


육의 양식은 왜 먹느냐? 먹고 자타의 구원에 관한 일을 하기 위해서 세 끼를 먹는다 그 말이요 그러면 영의 양식인 진리의 말씀은 왜 먹느냐? 진리말씀을 먹고 영인성장이 잘 되라고 먹는 거라 그 말이요.


십일조와 헌물을 왜 내라고 하는 것이냐? 복음운동을 끊이지 않고 하게 하기 위해서, 구원운동이 자타에게 잘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고로 예수 믿는 성도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목적으로 십일조라든지 헌물을 하는 것은 성도의 기본 신앙적 정신자세가 아닌 겁니다.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내는 그 정신 속에는 재삼 강조를 합니다만 기본구원에 대한 감사의 사상이 들어 있고, 또 성화구원에 대한 감사의 사상이 들어 있고, 또 연관구원의 활동의 신앙사상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이런 정신 사상으로 십일조와 헌물을 해 봐라’ 그 말이요. 그런 내용 정신 신앙사상 들어 있는 것이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이라 그 말이요. 돈의 액수를 가지고 따질 필요는 없는 겁니다. ‘그런 신앙정신 사상으로 해 봐라, 그러면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나누어 주겠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하늘 문은 땅의 문이 아닌 신령한 하나님의 대화의 문이요, 최고의 귀하고 좋은 것을 다 주고 싶어 하시는, 곧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늘 문을 열면 하늘의 것이 내려오고, 땅의 문을 열면 땅의 것이 나옵니다. 땅의 것은 물질이요, 하늘의 것은 신령한 것이요, 무엇이든 하늘로부터 내려오지 않으면 생산이 되지 않습니다.


하늘로부터 비가 오면 땅은 식물을 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받을 줄 알면 성령의 열매가 맺혀집니다. 진리 깨달음을 받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성장이 됩니다. 이게 축복이란 말이요. 축복을 받을 짓을 하는 것은 사람이고, 축복을 주고 안 주고를 주장하는 분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복을 쌓을 곳이 없고 차고 넘치도록 모자람이 없도록 모두에게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내는 사람에게! 또 그런 교회, 그런 성도에게!


물질의 복은 덤으로 주는 거니까 참 사람 만들어지는 됨됨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고, 그러니 우리가 그것 가지고 왈가왈부할 필요는 없고, 확실한 것은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의 축복입니다.


진리이치의 깨달음과 성령의 충만한 역사의 축복은 물질의 축복에 비할 바가 아니고, 돈의 계산으로서도 불가능한 겁니다. 참 사람, 하나님의 성품으로 닮아지는 것을 어떻게 돈으로 따질 수가 있겠느냐 그 말이요.


물질축복보다 값나가는 축복은 사람 자체에 대한 축복인데 사람의 인격에 관한 축복의 존엄성을 모르는 사람은 물질의 부요만 바라는 겁니다. 물질부요만 욕심 부리다가 하늘 문을 열고 억수처럼 내리는 소나기처럼 재앙을 쏟아 내리면 모든 것은 다 씻겨 내려가 버립니다. 노아 때의 홍수 같은 하늘 문이 열리면 큰일이지요.


1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바치면 뭘 금한다고 했지요? 황충을 금하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겠다고 했지요?


황충은 곡식을 뜯어먹는 메뚜기입니다. 황충은 떼로 날아다니는데 바람 타고 잘 날아다닙니다. 이 황충이는 하나님께서 재앙을 위해 지어놓은 겁니다. 다 지어놓은 곡식이 황충에게 먹히면 농사에 시간들인 것, 투자하고 노력하고 계획한 것, 희망 가진 것 모두 다 허사가 돼 버립니다. 배고픔과 굶주림에 허덕이다 굶어죽게 됩니다. 하나님의 재앙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농사를 잘 지어야 소출이 잘 되는 것처럼 신앙적인 면에서도 영적 영인성장이 그렇게 잘 되어야 하는 건데 영적 면이 그렇게 잘 된 것이 아닌 것은, 즉 육의 소원 목적에 두고 한 신앙생활은 아무리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노력을 하고, 충성봉사를 했어도 그 결과는 영적 소출이 없는, 영인성장이 없는 황충이가 뜯어먹은 망가진 재앙의 신앙입니다.


황충이는 바람을 타는 것이니까 세상바람을 탄 신앙정신과 사상은 사단 마귀에게 먹힌 것이니 결과적으로는 영인성장 면에 아무 소득이 없습니다. 우리는 황충이가 먹는 신앙을 미리 볼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를 헛 믿으면 안 되겠고, 헛 충성봉사를 하면 안 됩니다.


개인적으로 진리이치의 깨달음과 영인성장이 없다면 이는 황충이가 먹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영인성장이 불가능하다 그 말이요. 아무리 육신적으로 잘 되라고 해도 영적 면에 소득이 없는 고로 황충이가 먹고 있다고 봐도 됩니다.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릴 수 있는 신앙은 축복된 신앙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황충을 보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황충이가 간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막는 겁니다. 말하자면 황충이가 먹을 수 있는 육의 신앙사상이 아니라 그 말이요. 황충이는 육의 신앙사상을 뜯어먹는다 그 말이요.

사단 마귀가 먹을 수 없는 진리지식의 신앙은 영적 면에 소득이 있고, 바로 자랍니다. 그러나 진리신앙이 아닌 것은 황충이가 뜯어먹기 때문에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영적 면에서 소득이 없다 그 말이요.


예수를 아무리 오래 믿었어도 깨달음이 없고, 사람 만들어진 것이 없으면 그건 황충이가 뜯어먹은 신앙이라, 재앙을 만난 신앙이라 그렇게 보는 겁니다.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어떤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낼 수 있는 그런 신앙사상을 가진 사람에게!


포도나무의 열매는 사람에게 기쁨을 줍니다. 포도가 잘 익으려면 기온의 조건이 잘 맞아야 합니다. 벌레가 먹고 기온이 악조건이 돼 버리면, 비바람이 불거나 우박이 떨어진다면 익기도 전에 열매는 떨어지고 맙니다. 역시 농부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다 허사로 돌아가고 슬픔일 수밖에 없습니다. 열매 없는 밭 무엇에 쓰겠느냐 그 말이요. 황충이가 먹은 밭 무엇에 쓰겠느냐? 모두가 불에 태울 수밖에 없습니다. 포도농사의 조건도 하나님께서 축복과 저주로 쓰려고 현재의 기후를 만들어 놓은 겁니다.


기한 전에 떨어진 열매는 썩어서 구린내가 나고 속에는 구더기가 들어 있어요. 신앙 면에서도 사람에게 복음의 맛으로 기쁨을 주지 못하는 신앙은, 맛없는 신앙은 사건 환경 환난 역경 세상바람에 다 떨어진 신앙입니다.


왜 떨어지느냐? 힘없이 달려 있다 그 말이요. 왜 힘없이 달려 있느냐? 진액을 빨아먹지 않는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비바람만 살짝 불어도 우수수 떨어진단 말이지요.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는 신앙정신을 너희들이 가져봐라, 그러면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하는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입니다.


진리신앙으로 여물어진 열매는 힘 있게 달린 열매라서 어떤 환난 역경이 와도 끝까지 붙어있습니다. 때가 될 때까지 잘 익어 들어가고, 많은 사람에게 진리의 기쁨을 맛보게 해 주는 겁니다. 이것이 축복을 받는 사람이다.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11637 요한복음 나다나엘의 신앙 너머 요1:43-51  정용섭 목사  2015-02-03 651
11636 창세기 태초에 ... 창1:1-5  정용섭 목사  2015-02-03 503
11635 요한복음 말씀이 육신이 되어 ... 요1:10-18  정용섭 목사  2015-02-03 741
11634 갈라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 갈4:4-7  정용섭 목사  2015-02-03 666
11633 마태복음 이혼하지 말라 마5:31-32  한태완 목사  2015-02-02 671
11632 사도행전 내게 있는 믿음 행3:1-10  강종수 목사  2015-02-01 632
11631 요한복음 무엇에 주리고 목마르십니까 요7:37-39  한태완 목사  2015-02-01 982
11630 사사기 엔학고레 삿15:15-19  강승호 목사  2015-02-01 738
11629 요한복음 장애를 통한 은혜 요9:1-3  김용목 목사  2015-01-31 570
11628 요나 어찌하여 역사를 이렇게 주관하십니까, 하나님 욘4:1-11  한완상 형제  2015-01-31 377
11627 에스라 70년 포로생활과 바사왕 고레스 스1:1-4  한인섭 목사  2015-01-31 1325
11626 마가복음 귀신을 몰아내는 예수님 막1:21-28  강승호 목사  2015-01-31 456
11625 요한복음 말고 이야기 요18:1-27  백소영 교수  2015-01-31 430
11624 창세기 웃으면서 기쁘고 즐겁게 삽시다. 창21:1-7  한태완 목사  2015-01-30 790
11623 시편 깊은 만남이 주는 축복 시20:1-4  이한규 목사  2015-01-30 763
11622 시편 진실한 자의 3대 고백 시19:12-14  이한규 목사  2015-01-30 456
11621 시편 하나님을 알려주는 2대 계시 시19:1-11  이한규 목사  2015-01-30 401
11620 로마서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롬5:12-17  이한규 목사  2015-01-30 842
11619 요나 사명을 회피하지 마십시오 욘1:1-10  이한규 목사  2015-01-30 638
11618 시편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십시오 시18:17-31  이한규 목사  2015-01-30 564
11617 시편 높은 데서 멀리 보십시오 시18:1-16  이한규 목사  2015-01-30 521
11616 시편 능력 있는 기도자가 되려면 시17:1-15  이한규 목사  2015-01-30 539
11615 시편 진정 행복한 사람은 시144:15  한태완 목사  2015-01-29 973
» 말라기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절질 하였나이까? 말3:7-11  김경형 목사  2015-01-29 381
11613 시편 경청하는 자가 되자 시41:1-13  최장환 목사  2015-01-28 556
11612 시편 빠르게 하기보다 천천히 시38:1-22  최장환 목사  2015-01-28 418
11611 고린도전 네 성전을 세우라"(Build Your Temple) 고전3:16-20  김영봉 목사  2015-01-27 941
11610 고린도전 나무처럼"(Like a Tree) 고전3:1-9  김영봉 목사  2015-01-27 1016
11609 고린도전 그 나라의 사람이 사는 법(The Way of the Kingdom People) 고전1:18-25  김영봉 목사  2015-01-27 989
11608 히브리서 지금 올 수 있겠니?"(Are You Ready to Come Now?) 히12:22-29  김영봉 목사  2015-01-27 885
11607 이사야 소리 없이 강한 헌신” (A Silent But Strong Dedication) 사42:1-4  김영봉 목사  2015-01-27 2692
11606 요한복음 첫 사랑의 기억"(A Memory of First Love) 요21:15-17  김영봉 목사  2015-01-27 2003
11605 마태복음 신실한 소수자"(Faithful Minority) 마2:1-12  김영봉 목사  2015-01-27 2183
11604 고린도전 영원을 꿈꾸는 사람 고전7:29-31  강승호 목사  2015-01-27 471
11603 고린도전 성숙한 인격과 덕을 갖춘 사람이 됩시다. 고전10:23-31  한태완 목사  2015-01-27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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