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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혁명은 안단테로]88만원 세대와 88억 세대
파렴치한·철딱서니들이 멘토로 군림
청년 앞엔 비정규직·알바만 기다려
지금의 시대는 처절한 계급시대
지난 몇 해 동안 한국에서 발간된 책 가운데 가장 파렴치한 책을 꼽는다면 단연 <아프니까 청춘이다>일 것이다. ‘청년의 지옥’이라 불리는 사회에서 기성세대의 한 사람이 청년에게 할 첫 번째 말은 ‘미안하다’여야 한다. 좀 더 사리분별이 있는 사람이라면 ‘현실을 바꾸자, 나도 함께하겠다’여야 한다. 그런데 아프니까 청춘이라니. 게다가 저자 김난도는 이른바 소비 트렌드의 권위자로서 매년 ‘트렌드 코리아’라는 책을 내는 사람이고 고급호텔에 사장들을 모아놓고 올해의 장사거리에 관한 세미나와 특강을 하는 사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행태 자체를 비난할 건 없겠지만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동시에 소비는커녕 생존 자체가 암담한 청년들에게 그런 설레발을 친다는 건 섬뜩한 일이다. 어찌됐든 그는 청년들의 멘토로 군림했고 제 책을 300만부 넘게 팔아치웠다.
다행스러운 건 청년들이 더는 그런 유의 설레발을 받아들이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혜민이라는 중은 얼마 전 제 페이스북에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건 자기 중심이 없어서라느니 따위 이야기를 했다가 격렬한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그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으로 큰돈을 벌고 유력한 문화자본가가 되었는데 이 또한 김난도의 것 못지않게 기막힌 책이다. 저야 미국 대학의 교수에 중이니 삶의 번민이나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멈추고 정리하면 되겠지만, 멈추고 싶어도 도무지 멈출 처지가 못 되는 사람들에게 그게 어디 할 말인가. 총각네 야채가게 사장 이영석은 몇 해 전 낸 책 <인생에 변명하지 마라>에 적은 ‘일을 가르쳐주는데 내가 돈을 받아야지 왜 주는가’ 따위의 내용이 새삼스레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언급한 세 책들이 근래 출판시장에서 가장 약진했다 평가받는 한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며, 이 사회를 한때 휘어잡은 어떤 정신적 파행을 드러낸다.
어찌됐든 광장에 세워져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모자랄 파렴치한과 철딱서니들이 청년들의 멘토로 군림하며 그 얇은 지갑을 터는 일은 어려워지고 있다. 청년들의 의식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디자이너 이상봉씨가 열정페이라는 이름의 노동 착취로 비난을 받고 사과를 한 건 물론, 조기숙씨는 갑질하는 고객 앞에서 무릎 꿇은 주차 알바 청년이 청년답지 못하다고 했다가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주목할 것은 그런 변화들이 불과 1~2년 사이에 급격하게 일어났다는 점이다. 청년들은 더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감추고 분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실 열거한 멘토들이 파렴치함을 넘어 사악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건 그들이 부도덕한 사기행각으로 치부한 걸 넘어 청년들에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도했든 안 했든 체제의 충직한 주구 노릇을 해왔고 그들의 영예와 안락은 그 대가였던 셈이다.
멘토 사기꾼들의 활약이 여의치 않아진 상황을 대체하는 신종 사기는 ‘세대론’이다. <국제시장>을 둘러싼 논란을 비롯, 현재 청년들의 현실을 장년세대와 대비하면서 마치 장년세대가 알맹이를 다 빼먹어 버렸기 때문에 청년세대엔 쭉정이만 남았다는 식의 논리가 득세하고 있다. 과잉생산에 의해 불황과 공황을 반복하는 자본주의 본연의 생리를 감안하더라도, 현재의 청년 현실은 세대 착취의 결과가 아니라 더욱 극악해진 한국 자본주의의 반영일 뿐이다.
1997년 구제금융 사태 이후 20여년 동안 민주정권, 보수정권을 막론한 한국 경제정책의 뼈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였다.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야 경제가 살고 일자리도 창출되어 다 잘살게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실제로 만들어낸 현실은 ‘노동하기 나쁜 나라’다. 정규직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를 중심 틀로 하는 노동유연화 정책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순으로 조직력이 약한 노동 부문과 세대로 내려갈수록 모순을 강화했고 결국 노동의 출발점에 선 청년들 앞엔 비정규직과 알바만 기다리는 극단적 상황에 이르렀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현실은 기업의 두목들, 즉 몇몇 대기업 총수들이 정치도 법도 언론도 지배하는 사회의 왕이 된 것이다. 사회가 그 왕들의 의중에 의해 운영되면서 한국은 더욱 노동하기 나쁜 나라가 되고 있고 다시 그 극단에 청년들이 서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그 청년들은 전체 청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청년들이 모두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거짓말이거나 오해다. 한국 사회의 부의 편중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에 이르렀고 사회복지 공공부문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한국의 한 해 예산은 350조원가량인데 최상위계층 1500명이 300조원의 자산을 독점하고 무리없이 세습한다.
대다수의 청년이 88만원 세대인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극소수의 청년은 88억원 세대이며 심지어 그 일부는 888억원 세대다. 88만원 세대 청년들은 ‘노동하기 나쁜 나라’의 직격탄을 맞은 청년들이고 88억원 세대 청년들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수혜를 입은 청년들이다. 현재 한국은 소수의 88억원 세대 청년들의 건재를 위해 대다수 청년들이 88만원 세대로 살아야만 하는 사회다. 청년 문제의 진실은 세대가 아니라 계급, 철저하고 처절한 계급적 참상이다.
<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청년 앞엔 비정규직·알바만 기다려
지금의 시대는 처절한 계급시대
다행스러운 건 청년들이 더는 그런 유의 설레발을 받아들이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혜민이라는 중은 얼마 전 제 페이스북에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는 건 자기 중심이 없어서라느니 따위 이야기를 했다가 격렬한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그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으로 큰돈을 벌고 유력한 문화자본가가 되었는데 이 또한 김난도의 것 못지않게 기막힌 책이다. 저야 미국 대학의 교수에 중이니 삶의 번민이나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멈추고 정리하면 되겠지만, 멈추고 싶어도 도무지 멈출 처지가 못 되는 사람들에게 그게 어디 할 말인가. 총각네 야채가게 사장 이영석은 몇 해 전 낸 책 <인생에 변명하지 마라>에 적은 ‘일을 가르쳐주는데 내가 돈을 받아야지 왜 주는가’ 따위의 내용이 새삼스레 비난을 받고 있기도 하다. 언급한 세 책들이 근래 출판시장에서 가장 약진했다 평가받는 한 출판사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며, 이 사회를 한때 휘어잡은 어떤 정신적 파행을 드러낸다.
어찌됐든 광장에 세워져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모자랄 파렴치한과 철딱서니들이 청년들의 멘토로 군림하며 그 얇은 지갑을 터는 일은 어려워지고 있다. 청년들의 의식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디자이너 이상봉씨가 열정페이라는 이름의 노동 착취로 비난을 받고 사과를 한 건 물론, 조기숙씨는 갑질하는 고객 앞에서 무릎 꿇은 주차 알바 청년이 청년답지 못하다고 했다가 입길에 오르기도 했다. 주목할 것은 그런 변화들이 불과 1~2년 사이에 급격하게 일어났다는 점이다. 청년들은 더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감추고 분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사실 열거한 멘토들이 파렴치함을 넘어 사악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건 그들이 부도덕한 사기행각으로 치부한 걸 넘어 청년들에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의도했든 안 했든 체제의 충직한 주구 노릇을 해왔고 그들의 영예와 안락은 그 대가였던 셈이다.
1997년 구제금융 사태 이후 20여년 동안 민주정권, 보수정권을 막론한 한국 경제정책의 뼈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였다. 기업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야 경제가 살고 일자리도 창출되어 다 잘살게 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실제로 만들어낸 현실은 ‘노동하기 나쁜 나라’다. 정규직의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를 중심 틀로 하는 노동유연화 정책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순으로 조직력이 약한 노동 부문과 세대로 내려갈수록 모순을 강화했고 결국 노동의 출발점에 선 청년들 앞엔 비정규직과 알바만 기다리는 극단적 상황에 이르렀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현실은 기업의 두목들, 즉 몇몇 대기업 총수들이 정치도 법도 언론도 지배하는 사회의 왕이 된 것이다. 사회가 그 왕들의 의중에 의해 운영되면서 한국은 더욱 노동하기 나쁜 나라가 되고 있고 다시 그 극단에 청년들이 서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그 청년들은 전체 청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청년들이 모두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거짓말이거나 오해다. 한국 사회의 부의 편중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에 이르렀고 사회복지 공공부문 지출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한국의 한 해 예산은 350조원가량인데 최상위계층 1500명이 300조원의 자산을 독점하고 무리없이 세습한다.
대다수의 청년이 88만원 세대인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극소수의 청년은 88억원 세대이며 심지어 그 일부는 888억원 세대다. 88만원 세대 청년들은 ‘노동하기 나쁜 나라’의 직격탄을 맞은 청년들이고 88억원 세대 청년들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수혜를 입은 청년들이다. 현재 한국은 소수의 88억원 세대 청년들의 건재를 위해 대다수 청년들이 88만원 세대로 살아야만 하는 사회다. 청년 문제의 진실은 세대가 아니라 계급, 철저하고 처절한 계급적 참상이다.
< 김규항 |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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