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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2:1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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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2014.12.26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522 ) |
자기를 내어 드리십시오
(누가복음 2장 13-14절)
< 평화를 주는 ‘드림’의 삶 >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를 주시러 오셨습니다. 주님은 소외된
지역에서 태어나 재력도 없었고 야망을 이루려고 전쟁을 일으키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잘 조직되고 세력 있는 추종자들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주님이
계신 곳에는 늘 평화가 생겼습니다. 이 땅에서는 누구에게도 절대 평화가 없습니다. 남의 처지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나 어느 때는 죽을
지경으로 당하는 자기만의 고통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고통 중에도 평화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드림’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얻는 것, 받는 것, 누리는 것’은 좋아하고, ‘잃는 것, 주는 것,
희생하는 것’은 꺼려합니다. 그래서 진짜 기쁨과 평화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말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면 포기도 잘해야 합니다. 꿈과 비전은
포기하면 안 되지만 명예와 이익은 기꺼이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평화는 자기 이름이 기꺼이 지워지려고 하고 손해를 기꺼이 보려고 할 때
생깁니다. 인생이나 가정이나 사회나 나라나 세계에 평화가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삶을 늘
훈련해야 합니다.
한국어에서 ‘준다’는 말과 ‘드린다’는 말의 어감 차이가 크듯이 영어에서도 준다는 뜻의 give와 드린다는 뜻의
surrender의 어감 차이가 큽니다. 네트영어의 원리로 말하면 surrender는 ‘위에서, 위로’란 뜻을 가진 ‘sur’와 ‘떼어
내준다’는 뜻을 가진 ‘render’가 합성된 단어입니다. ‘give’는 단순히 ‘주는 것’을 통칭하는 단어지만 ‘surrender’는 ‘자신을
굽히고 두 팔을 위로 들어 자기 소유와 자기 존재를 내어드리는 것’이란 개념을 가진 단어입니다. ‘물질을 주는 것(give)’도 기쁨을 주지만
‘자신을 드리는 것(surrender)’은 기쁨도 주고 마음의 깊은 평화까지 줍니다.
요새 명상이 유행합니다. 명상의 대표적인
원리는 ‘자기 비우기’입니다. ‘자기 비우기’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자기 포기’와 비슷합니다. 물론 ‘자기 포기’도 어느 정도는 마음에 평화를
줍니다. 그러나 영어의 ‘surrender’는 ‘자기 포기’ 이상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즉 ‘자기 포기’를 지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드리는 것’을 포함한 개념입니다. 성도는 ‘내려놓음’을 지나 ‘내어줌’까지 가야 합니다.
자기를 지우고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려고 할 때 진짜 평화가 주어집니다. 그때 하나님은 다른 축복도 주시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신을 주십니다. 그처럼 영이신 하나님이 자신을
주실 때 성도가 경험하는 것이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결국 성령 충만의 제일 비결은 성령 충만을 준다고 하는 곳을 찾아다니며 성령 충만 받겠다고
하는 자신의 강렬한 의지에 달려있기보다는 ‘자기를 드림(surrender)’ 즉 ‘내어줌’에 있습니다.
< 자기를 드리십시오
>
성탄이 있게 되는데 가장 큰 공헌자는 자기를 기쁘게 드렸던 마리아입니다. 10대 소녀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으로
지구 최대의 거룩한 사건에 휘말립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메시야의 잉태 소식을 알렸을 때 마리아는 고백했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이뤄지길 원합니다.” 어떻게 10대 소녀가 그처럼 아름답고 헌신적인 고백을 할 수 있었는지 대단합니다. 그녀도 세상이 얼마나 차별과 편견이 심한
세상인지 잘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려고 자기를 드린 것입니다.
여자가 약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환경을 변화시키고 역사를 변화시키는 힘은 여자로부터 나올 때가 많습니다. 여자는 남자보다 더 선하고 착한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자 몸에 다른 어린 생명을 품는 공간이 있어서 더 생명을 아끼는 본능이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이물질이 들어오면 면역체계를 통해 그 이물질을
제거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임신할 때 자궁 속의 태아는 전혀 다른 생명체이기에 이물질과 같지만 여성의 몸은 그 생명체와 10개월을 공존합니다.
그런 임신 능력으로 인해 여자가 남자보다 남을 품고 남과 공존하는 능력이 본능적으로 뛰어난 것 같습니다.
왜 평화가 무너집니까?
남을 품고 남과 공존하는 능력의 부족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도 마리아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자기 몸을 내어드리려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힘든 상황이 예상되어도 마리아처럼 자기를 드리기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두려워하게 하는 것은 사탄의 전략입니다. 사탄은 늘
속삭입니다. “자기를 드리면 망해! 절대 손해야. 그러면 무엇을 얻겠어. 주일성수하면 돈이 나와 밥이 나와? 더 힘들어져. 어떻게 살려고 해?
세상살이가 쉬운 줄 알아?” 그런 사탄의 말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높은 사람에게 자기를 드려도 그에 따른 보상이 있는데 살아계신
하나님께 자기를 드리면 은혜와 사랑과 축복의 보상은 더욱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와 사랑과 축복 이전에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넘치게 됩니다.
또한 자신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공동체에도 기쁨과 평화가 넘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마음의 중심에 놓고 남을 품고 남과 공존하며 사는 것은 주님이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선택하신 제일 목적 중의 하나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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