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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공평하신 하나님

에스겔 빛의 사자............... 조회 수 1709 추천 수 0 2015.03.04 08:28:58
.........
성경본문 : 겔18:25-32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참으로 공평하신 하나님

본문: 에스겔 18장 25-32절

하나님은 참으로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의인이나 악인이나 똑같이 햇볕과 비를 내려 주시고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숨 쉬도록 공기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나 부자에게나 똑같이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말 자신은 아무 것도 잘 하는 게 없다고 불평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왜 우리는 이렇게 돈이 없는 거야?』 또 어떤 이는 『세상은 너무 불공평해. 하나님이 있다면 누구는 나면서부터 부자이고, 누구는 나면서부터 가난하게 만들지는 않았어야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환경, 얼굴, 재능, 욕망, 능력, 생각 모두 다릅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하나같이 『이건 너무 불공평해』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정말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시간』입니다. 한 사람에게 하루에 무조건 24시간이 주어집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미녀든 추녀든 하루는 24시간입니다.

또 하나는 누구에게나 『죽음』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든 반드시 『끝』이 온다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세상을 떠날 순간이 누구에게나 다가오며, 떠날 때는 빈손이라는 사실입니다. 더 볼 것 없이 이 두 가지만 봐도 하나님은 너무나도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안 그렇습니까?

그런데도 『인생은 공평하다』는 이 말에 공감하는 사람보다는 불공평하다는 말에 공감할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정말로 이 세상이 공평하다면 빈부의 격차가 왜 더 벌어지고 있는가. 분명 삶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처음에는 불공평한 조건들로 피해의식을 갖고 살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결국은 평등한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젊을 때는 나와 다른 것이 많은 것 같으나 나이가 들수록 비슷비슷해집니다.

결혼한 후 얼마동안은 수준이 어떻고 집안이 어떻다니 하면서 싸움도 많이 했는데 살면 살수록 그 기준들이 별 의미가 없게 됩니다. 역할이 다를 뿐 다른 것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40대는 남녀 간의 성((性) 차이가 별로 없게 되고

50대는 공부한 사람이나 안 한 사람이나 지식이 평등해지고,

60대는 외모가 예쁜 사람이나 안 생긴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게 되고

70대는 건강이 비슷해지고

80대는 재물(돈)이 많은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먹고 입는 것이 비슷해지고

90대는 산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생사가 평등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결국 죽음 앞에서 만인은 평등합니다. 누구에게나 예측 없이 불현듯 다가오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살아생전의 행위대로 아주 공평한 심판이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이 세상에서는 공평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내세(來世)가 있고 심판이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14- 30절에 보면 주인이 타국에 갈 때, 종들에게 재능대로 금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깁니다. 똑 같이 나눠준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이 돌아와서 결산을 합니다. 그 때에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라는 점입니다.(눅12:48)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는데 어떤 사람은 부자 집에서 태어나 호의호식하며 살고,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평생토록 고생만 하다가 삶을 마감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건강하게 태어나 할 짓 못 할 짓 다하며 사는데,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남의 도움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장애인인가? 어찌 이것을 하나님은 공평하시다 라고 말 할 수 있는가? 하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평생토록 찾아 헤매는 것은 『행복』 입니다. 행복하고 싶어서 돈도 벌고 결혼도 하고 지위도 얻고 지식을 쌓습니다. 그런데 행복이라는 종착역에 도착해 보면 『행복』은 돈이나 지위나 물질이나 지식으로만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난하고 장애인으로 태어났어도 행복할 수 있고, 천하를 다 얻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행복을 돈이나 물질로만 얻을 수 있다면 세상은 너무나 불공평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물질과는 상관없이 누구든 행복을 얻을 수 있게 하셨으니 그것이 공평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선인과 악인에게 똑같이 해를 비취시고 비를 내리 우십니다.(마5:45) 그리고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습니다. (신10:17, 행10:34,35, 롬2:11, 골3:25, 엡6:9) 똑같이 복 받을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공평하게 심판하십니다. 기도 많이 한 사람과 기도 적게 한 사람을 똑같이 축복해주시는 평등하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기도 많이 한 사람을 더 축복하시고,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더 축복하시고, 하나님을 위해 힘써 헌신한 사람을 더 축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행복의 기회와 가능성을 주시지만 행복의 열매는 우리가 심은 대로 주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분은 『저 사람에게 주신 것을 나에게 주시지 않았다』고 하나님을 불공평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시지 않고 자신에게 준 것은 왜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누구에게나 행복의 기회는 똑같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게 있는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인정하고, 또한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은혜와 돌보심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은 뇌성마비 송명희 시인이 쓴 『나는 황제보다 하인이 부럽습니다』라는 책에 있는 시입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당신도 송명희 시인처럼 『공평하신 하나님』이라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공평성에 의심이 들 때 필요한 태도

하나님은 나에게는 『이것』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는 『저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처럼 각 사람마다 다양하게 주셨기 때문에 세상은 더 아름답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평등하신 하나님이 아닌 것을 더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평하심에 대한 오해는 대개 평등과 공평의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물론 인간은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가끔 하나님께서 공평하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는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요?

1. 자기 자신의 길을 한 번 더 살펴보십시오

언제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게 느껴집니까? 평등과 공평을 오해할 때도 그렇게 느끼지만, 대개 자신이 공평하지 않은 길을 갈 때 더욱 그렇게 느낍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자기가 공평하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5절과 29절에서는 반복해서 말합니다.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찌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

대개 보면 『하나님이 불공평하다!』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불공평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무엇을 해주기만을 바라고, 불공평하게 하나님께서 자기편만 들어주기를 원합니다. 게임을 하는데 반칙을 하면서 심판이 봐주지 않는다고 심판에게 불공평하다고 불평하면 됩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반칙적인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이런 식의 간증을 듣습니다. 『지방에 갔다가 예배에 늦어 시속 150km로 달려 왔는데 하나님께서 사고도 막아주시고, 교통경찰의 손에서 지켜주셨습니다.』 그런 간증을 들으면 어떤 주책 맞은 성도들은 『할렐루야!』라고 습관적으로 대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할렐루야』를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지만 자식의 불의를 무조건 두둔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공정하게 게임을 운영하시고, 법 집행은 똑같이 하기를 원하십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룰입니다. 그처럼 게임을 공정히 이끌지만 게임이 끝난 후에는 『자녀에게 수고했다!』고 해 주시고, 영원한 집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하나님이 불공평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불공평한 길을 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의심하고 불평하는 말을 버리십시오. 삶의 태도가 삶의 높이를 결정하고, 말의 태도가 삶의 질을 결정합니다. 적절하지 않은 말은 다섯 마디도 많은 것이고, 불평하는 말은 한 마디도 많은 것입니다. 사실 불공평하다고 불평하는 것은 내가 지금 공평한 길로 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불평이 있는 분들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자기 자신의 길을 살피는 일입니다. 자기가 엉뚱한 길로 가면서 마치 하나님이 불공평한 것처럼, 또한 삶이 자기를 속이는 것처럼 불평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심지어 어떤 분은 『기도가 안 된다!』고 하면서 기도가 안 되는 것까지 하나님 책임, 목회자 책임으로 돌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음에 한과 욕심이 들어있는데 어떻게 기도가 됩니까? 머리에는 인어 아가씨나 야인시대 들어가 있는데 어떻게 기도가 됩니까? 그처럼 자기는 심지 않고 거두려고만 하고, 결국 거둘 것이 없으면 불평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정의를 의심하지 마십시오. 의심하려면 자신의 정의부터 먼저 의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평하심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의심하려면 자신의 태도부터 의심해야 합니다. 자기가 잘못해놓고 하나님을 공평하지 않다고 하니 하나님께 이처럼 억울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더 이상 하나님을 억울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억울하게 하면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어찌 하나님의 도움이 있기를 바라겠습니까?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이사야 11:4)

2. 현실만 보고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때로 눈앞의 어려운 현실만 생각하면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현실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현실이 최종 결과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이 더 큰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의 작은 전쟁에서는 실패해도 인생 전체의 큰 전쟁에서는 승리해야 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눈앞에 펼쳐진 실패는 영원한 성공을 위해서 잠시 등장한 엑스트라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가끔 너무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거짓말도 못하고, 순해 빠져서 당하기만 하고, 편법을 사용하지 못해서 정도만을 걷다가 어렵게 사는 성도들을 볼 때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현실만 보면 마음이 아프지만 저는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순해 빠진 삶』이 『손해 보는 삶』은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증명해주실 날이 온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만 보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끔 어떤 분은 『왜 다른 사람은 표적이 많이 있는데 왜 나는 표적이 없을까?』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서 너무 표적을 좋아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영혼이 타락하는 지름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은 『우리 목사님은 표적을 잘 일으키시지 못하니까 표적을 일으키시는 목사님을 시기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구나!』 하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표적을 좋아하면 영혼이 타락한다는 것은 저의 말이 아니고 주님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사람들이 표적을 구한다!』고 했습니다.

기적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분의 마음을 깊이 들어가 보면 신랑이신 예수님께 마음이 향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다른 것을 향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주님은 영적 음란으로 보십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표적만 보고 수평으로 비교해서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의심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삶이 힘들고 어려울수록 『기적적인 것』을 찾으려는 본능이 강해져서 말씀으로 나를 변화시키려고 하지는 않고 나는 가만히 있고 환경만 기적적으로 변화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래서 우상에 빠지고 유혹에 빠지고 이단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기적적인 체험을 통해서 귀신 하나 내쫓고 문제 하나 해결한 후에 일곱 귀신이 들어온 분들이 있습니다. 교만해지고, 판단하고, 교회와 교회 리더를 우습게 여기니 차라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 좋을 뻔했습니다. 그처럼 체험이 많아 높아지신 분들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순수한 여러분들이 더 낫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울수록 표적을 찾으려는 마음을 버리고 공평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더욱 씨앗을 뿌리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표적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말씀대로 살려고 할 때 비로소 진짜 하나님의 표적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기가 어려울수록 더욱 정신을 차리고 우직하게 내 영혼을 지켜서 기필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고, 마침내 공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믿고 기다리십시오. 아무리 다급해도 있어야 할 자리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자매는 치한에게 폭행 당하는 그 다급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 현장에서 막아주시지 않았다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하나님 곁을 떠났습니다. 물론 그 자매의 상처가 크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도 『뺨 한 대 맞은 사건』으로 작게 생각하고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반전의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상처는 없습니다. 문제는 상처를 영원한 상처로 만드는 불신앙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내 과거의 상처를 믿음으로 극복하면 상처 이상의 기쁨과 행복과 영원한 축복이 반드시 주어질 것입니다.

3. 다른 사람과 비교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하늘에서 보면 큰 집이나 작은 집이나 비슷합니다. 아무리 큰 집이어도 한 개 작은 점일 뿐입니다. 지금 내가 아프게 겪고 있는 큰 문제도, 알고 보면 다른 사람도 비슷하게 겪고 있는 작은 문제의 하나일 뿐입니다. 너무 크게도, 너무 작게도 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세요. 하늘은 늘 공평합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잃을 때도 있고, 얻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잃어버린 것에 집중해서 살면 그 인생은 더 어렵게 됩니다. 받은 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남이 의도적으로 내게 상처를 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비교의식에 빠져서 열 받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비교의식은 나를 왜소하게 만들거나 반대로 나를 교만하게 만듭니다. 사실 우리의 온갖 불행은 비교의식에서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비교의식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만의 특징을 주셨고, 나만의 장점을 주셨고, 나만의 행복을 조건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공평한지는 우리는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만은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 줄 때 같은 것을 사 줄 때도 있지만 아이들에게 더 기쁨을 주려고 나이와 성향에 맞게 다른 선물을 사줄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대개 좋아하지만 가끔 한 아이가 자기가 받은 선물이 맘에 안 든다고 삐치고 불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부모의 공평한 마음을 너무 몰라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하나님께서도 불평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그처럼 마음 아파하시지 않겠습니까? 장애로 태어난 것이나 배고픈 나라에 태어난 것 자체는 하나님의 좋은 선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배고픈 나라 사람들의 행복 지수가 더 높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은 것에도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환경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는 내가 부족하게 보일지라도 천국에서는 더 칭찬 받는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평생 장애자로 살면서도 행복하게 살다가 천국에 온 사람을 하나님은 『수고했다!』고 크게 위로해주실 것입니다.

이제는 주어진 현실에 대해 조금 더 감사하며 사십시오. 조금 없으면 어떻습니까? 지금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지금 겁나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하철 타기가 겁나고, 한강 다리 건널 때마다 겁나고, 백화점 무너질까봐 겁나고, 큰 건물에 들어가기가 겁이 나고, 내가 먹는 소고기가 광우병에 걸린 소가 아닌가 겁나고, 내가 먹는 식품이 유전자 변형 식품이 아닌가 겁나고, 내가 먹는 게가 중국산 납 꽃게가 아닌가 겁나고, 휴대폰 쓰면서 전자파 때문에 치매 걸릴까 겁나고, 자동차 시동을 걸 때 급발진 할까봐 겁납니다. 그런 수많은 겁나는 환경 속에서도 살아 있는 것이 기적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너무 없는 것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조금 배짱을 가지십시오. 『없으면 어때! 내게 이것이 있잖아!』하는 배짱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있고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습니까? 어떤 신앙이 좋은 분은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처럼 잘못이 많은 사람을 이렇게 끝까지 품어주시고 사랑해주시니 하나님은 자기를 특별히 사랑하는 공평하지 않으신 하나님 같다!』고 대답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정말 마음이 부자인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는 내게 없는 것으로 비교하여 불평하지 말고 내게 있는 것을 인해서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의 부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가끔 어떤 분이 힘들어할 때 누군가 위로해줍니다. 『집사님! 힘들지요! 저도 마음이 아파요!』 그때 힘든 상황에서도 미소로 『그래도 행복해요!』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부자인지 모릅니다. 사람의 눈에는 우리가 불행하게 보여도 우리 자신은 행복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행복은 행복을 추구하는 자에게 주어지지 않고 행복하게 생각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세상 사람들이 불행하게 여겨도 『하나님은 참 공평하셔!』라고 감탄하고 감사하며 최선을 다할 때 공평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그 사람에게 행복의 조건을 주실 것입니다.

4. 사회의 불공평을 치유하는 길잡이가 됩시다.

삶이 불공평한 것 같으면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보고 낙심하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내 것을 나누어주어 공평함을 이루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사회가 불공평하다고 탄식만 하지 마시고, 내 것을 나누어주면서 공평한 사회를 향한 꿈을 꾸십시오. 사람은 탄식하면 그만큼 늙어가지만 꿈을 꾸면 그만큼 젊어져갑니다.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평생 장애로 살아가는 분들을 생각하십시오. 우리가 진정 공평한 것을 원한다면 우리보다 잘난 사람들을 생각하며 『왜 공평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매달리지 말고 우리보다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1971년에 선포된 유엔 장애인 권리 선언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장애인에게는 우리보다 우선적으로 배려 받을 권리가 있고, 우리에게는 장애인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할 의무가 있다.』 본능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의무보다 권리를 앞세우며 살지만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은 권리보다 의무를 먼저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그렇게 산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욱 축복의 문을 열어주실 것이고, 사회는 더욱 공평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아무리 소중한 하늘의 만나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다(출16장)고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는 『나눔과 섬김』을 통해 공평한 사회를 이루어 가는 초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힘써야 할 일은 조금만 생활이 어렵다고 하나님의 공평을 의심하고 불평하는 일이 아니라 공평한 사회를 꿈꾸며 최선을 다해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항상 분수에 맞게 살되, 선교와 구제를 위해서는 분수에 넘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사람을 위해 먹을 것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많이 갖고 어떤 사람은 덜 갖습니다. 아예 갖지 못한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매일 2만5000명의 아이가 병원에 가지 못해 병명조차 모르고 죽어갑니다. 매년 100만 명의 아이가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습니다. 전 세계 인구 중 절반이 2달러 미만으로 하루를 연명합니다. 7초당 1명씩 다섯 살 이하의 아이가 먹을 것이 없어 생명을 달리합니다.

전 세계 40% 국가의 국민들은 아직도 깨끗하지 못한 물을 식수로 마십니다. 10억 인구는 아직 전기 없이 살며 글을 읽을 수 없습니다. 또 어린이 1억여 명은 기초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성장합니다.

미국 감리교 목회자인 아담 해밀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주실 책임이 있으신 분이다. 그리고 사람은 그것을 나눌 책임이 있다.』그렇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현실을 볼 때 하나님은 꽤나 불공평해 보입니다. 『왜 세상은 이렇게 공평하지 않으냐』는 의문이 생깁니다. 하지만 생각해 봅시다. 세상의 불공평을 공평으로 만들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우리의 삶으로 세상에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이 됩시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에 민감하기보다 어려운 자의 형편에 더 민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살필 때 공평하신 하나님은 때가 되면 우리의 꿈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내게 없는 것』을 불평하지 말고 『내게 있는 것』으로 힘써 없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사는 우리의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자녀를 키울 때 인간의 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사랑을 주고 키웁니다. 그처럼 사랑하는 자녀가 자라서 갱단의 멤버가 되어 사람을 죽이고, 길거리의 창녀가 되어도 부모는 여전히 그 자녀를 누구보다 귀하게 여길 것입니다. 그 부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매일 술을 끊겠다고 약속하면서도 술을 끊지 못하고 밤마다 때리고 칼로 위협해도 자식을 사랑하고 남편이 불쌍해서 집을 떠나지 않은 아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 마음이 수천 배로 증폭되어 우리에게 향해진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사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주셨기 때문에 공평하고, 공평하지 않고를 따질 것도 없습니다. 받을 것을 이미 다 받은 사람이 어떻게 공평함을 논하며 불평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하나님께 더 맘에 드는 것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한다면 그런 모습이 어찌 바람직한 성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모든 불평을 멀리하고 공평하신 하나님의 뜻을 좋아 나보다 힘든 이웃에게 사랑의 손길을 펼쳐서 의와 공평이 넘치는 사회를 이루는 초석의 역할을 감당하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잠8:20-21)

참으로 공평하신 하나님을 본받아 성도가 공평하게 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가난한 자의 송사입니다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공평치 않게 하지 말며(출23:6)

둘째는 저울과 추, 도량형입니다.(레19:35,36, 신25:15)

너희는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밧을 쓸지니(겔45:10)

셋째는 부하직원이나 아랫사람을 대할 때 공평하게 해야 합니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골4:1)

넷째는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학대하지 말고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렘22:3, 삼상8:3, 사1:23, 사5:23, 암5:12)

사람의 낯을 보아주는 것이 좋지 못하고 한 조각 떡을 인하여 범법하는 것도 그러하니라(잠28:21)

『사람의 낯을 보아주는 것』은 차별 대우하는 것을 말합니다. 혈연, 지연, 학연 등의 관계를 통해 연줄을 댄 사람이라 해서 보아주는 것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한 조각 떡을 인하여 범법하는 것』도 이와 한가지입니다. 『한 조각 떡』은 적은 뇌물을 가리킵니다. 뇌물을 받고 눈감아주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는 범법 행위인 것입니다. 이러므로 재판을 하거나 어떤 일을 결정하고 처리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반드시 공평하고 의롭고 정직하며 적법하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악인은 사람의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잠17:23)

세상 사람들은 『의롭고 공평하게 살면 재물을 얻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우리에게 『의롭고 공평하게 사는 지혜로운 자는 재물을 얻되 곳간까지 채울 정도로 많이 얻는다』고 가르쳐 줍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의 인도함을 받아 의로운 길, 공평한 길로 행합니다. 이처럼 의를 행하고 공평한 길로 행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런즉 네가 공의와 공평과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잠2:9)

복음성가 『약할 때 강함 되시네』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십자가 죄 사하셨네 주님의 이름 찬양해

주 나의 모든 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잔을 채우네 주 나의 모든 것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다음은 어느 무명 성도의 선행을 위한 고백입니다. 『저는 이 세상을 단 한 번만 지나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행할 수 있는 선한 일과 친절을 모든 사람에게 베풀게 하옵소서. 제가 그것을 미루거나 핑계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는 제가 다시 이 길을 지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아침이면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안개와 같은 인생을 우리가 의미있게 살 수 있는 길은 선한 길을 걸어가, 공의와 정직을 행하는 것입니다. 공의와 공평과 정직 안에 모든 선한 길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한 길』이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행동 방식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여 얻는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실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11:4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도로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따라 공의롭고 공평하며 정직하게 살아야겠습니다. 또한 성도님 모두가 공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 기도: 공의로우시고 공평하신 하나님 아버지! 한국 교회가 억울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그들에게 자유와 소망을 안겨주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때로는 공의를 저버리고 권력에 아부하며 이 땅의 약한 자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상처를 안겨주었음을 고백합니다. 눈물로 회개하오니 용서하시고, 한국 교회를 새롭게 하소서. 이 땅에 진정한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을 실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는 한국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소서.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공의와 공평을 실현함으로써 모든 민족에게 참 소망과 기쁨을 주게 하시며 특별히 억울한 자들의 눈물을 닦아내게 하소서. 하나님의 공의가 강같이 흘러 갈급한 모든 심령을 적시게 하시고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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