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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슥7: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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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구하라 목사 |
참고 : |
찬송: 452장(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스가랴 7장의 말씀은 금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1절에서3절입니다. “다리오 왕 제사년 아홉째 달 곧 기슬래월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그 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의 부하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이르되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 하매.”
페르시아 왕 다리오 통치 4년 아홉째 달 4일에 주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했습니다. 그 말씀은 금식과 관련된 말씀으로 벧엘 사람이 몇 몇의 사람들과 부하들을 선지자 스가랴에게 보내 우리가 계속 오월에 금식해야 하냐고? 물은 물음에 대한 주님의 대답이었습니다.
스가랴서 8장19절을 보면 바벨론 제국에 이어 페르시아 제국의 포로기를 보내고 있던 유다인들에게는 포로기간 동안 일 년에 네 번의 금식이 있었는데 넷째 달, 다섯째 달, 일곱째 달, 열째 달에 금식을 했습니다. 유다인들이 그렇게 했던 이유는 먼저 넷째 달은 바벨론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것을 기억하며 한 금식이었고, 다섯째 달은 예루살렘을 점령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불태운 것을 회고하며 한 금식이었고, 일곱째 달은 유다 총독 그달랴가 암살 된 것을 기억하며 한 금식이었고, 열째 달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이 포위 된 것을 기억하며 한 금식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생활을 해오며 대부분 한두 번 정도는 금식을 해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끼를 금식했든, 3일을 금식했든 심지어 더 긴 날을 금식했든 금식에 대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금식을 했을 때는 포로기의 유다인들처럼 이런 저런 다양한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하루 한 끼 금식을 했던가, 입시를 앞에 둔 자녀를 위해 금식했던가. 취업이나 결혼 문제를 놓고 금식했던가, 진로를 놓고 금식했던가, 병 때문에 금식했던가 등등 다양한 이유로 금식을 했을 수 있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금식과 관련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4절에서 7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예루살렘과 사면 성읍에 백성이 평온히 거주하며 남방과 평원에 사람이 거주할 때에 여호와가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외친 말씀이 있지 않으냐 하시니라.” 곧 '너희가 바벨론 포로기인 지난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며 애곡하기는 하였으나, 너희가 진정, 나를 생각해서 금식을 한 적이 있느냐?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도 너희 스스로 만족하려고 먹고 마신 것이 아니냐? 그리고 너희들의 수가 불어나고, 마음 놓고 살 때 내가 이미 이전 예언자들을 통해 아래의 말씀을 전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유다의 금식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금식이 아니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금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가 두 번이나 반복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라는 겁입니까?
8절에서 10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곧 공정하게 재판을 하고, 서로 긍휼히 여기며, 자비를 베풀고, 힘없고 의지할 데 없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무시하거나 그들의 것을 약탈하지 않고 도리어 돕고 나누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음식을 금하고, 스스로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원하시고 인정하시는 금식이 아니라, 심지어 자신의 야망과 욕망을 이루고 채우기 위한 금식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을 생각하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행동이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금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유다는 그리하지 않은 것입니다. 단순히 먹지 않았을 뿐이지 진정한 금식을 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생활을 하며 금식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음식을 금하고 몸을 쳐 복종하는 금식이 필요한 경우도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 지나치게 관심을 쏟는 것은 주님 보시기에 선한 신앙적 태도가 아닙니다. 금식을 해야 할 때는 금식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금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재판, 인애, 긍휼, 과부, 압제하지 않음, 해하지 않음이 다 사람에 대한 말씀이듯이 진실과 정의, 긍휼과 나눔, 존중으로 사람을 대하는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참된 금식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고 응답하시는 온전한 금식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에 대한 순종이 담겨져 있는 금식이야말로 진정한 금식인 것입니다.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진실과 공평으로 사람을 대합니다. 자신의 더러운 이득을 위해 사람을 해치고 거짓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작은 것으로도 나누고 베풉니다.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말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영향보다 좋은 영향, 선한 영향을 끼칩니다. 인생을 긍정하게 하고 희망을 품게 합니다.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추호라도 자기 의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은 훈련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사람을 생각하는 길에는 지나야 하는 기다림과 외로움과 인내의 터널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궁극적으로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사람을 하나님의 영원으로 초대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의 성취를 보고, 인생의 친구를 얻습니다. 우리의 오늘 하루가 이런 날인 것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하루도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하루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서의 진정한 금식의 의미를 되새기며, 진심으로 사람을 생각하는 자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을 보고 경험하는 하루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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