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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출32: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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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http://blog.naver.com/malsoom/63005604 |
.2009년 3월 1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출애굽기 32장 7절~14절
설교제목 : 뜻을 돌이키는 삶
<철학함과 신학함>
얼마 전에 읽은 책 중에 『철학과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최종욱 저, 국민대학교출판부)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의 내용 중에서 제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구절이 있었는데, 그건 “철학은 명사(名詞)가 아니라 동사(動詞)다”라는 선언이었습니다.
그 책의 내용을 조금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칸트는 철학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철학함(Philosophieren)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즉 철학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라는 것, 그리고 각자가 스스로 철학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 철학수업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평범하지만 매우 중요한 지적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철학을 명사로 잘못 이해해 왔다. 그래서 주로 유명한 철학사상가들의 사상이 ‘무엇’이고 그 개념들의 뜻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데 주력해 왔다. 그 결과 그러한 철학은 현재 나와는 무관한 그 무엇으로 간주되기 일쑤였다. … 칸트가 동사로서의 철학, 즉 철학함(Philosophieren)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그러한 난해한 철학사상체계라는 거미줄에 붙잡혀 헤매지 말고, 그 자신 스스로 그러한 철학적 문제에 대해 천착하여 씨름하라는 충고이다.”
저는 “철학은 동사다”라는 선언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제가 20대 언저리의 시절에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그 이유도 이런 맥락과 유사합니다. 공허하고 장황한 철학이론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로서 현재 처해져 있는 실존적 삶 가운데서 깊은 영성적 의미와 가치를 찾는 키에르케고르식의 철학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신학대학 다닐 때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신학(神學, theology)보다는 신학함(theologien)에 대한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학과 신학함의 차이를 조금 더 설명 들여 보면 이렇습니다. 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 신학교수이거나 목회자이거나 … 아무튼 신앙과 관련된 일에 종사하면서 살아가지만, 신학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학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습니다. 연극을 해도 되고, 대안학교 교사가 되어도 되고, 공무원이 되어도 되고, 노동자가 되어도 되고, 정치를 해도 됩니다. 물론 목회자와 신학교수가 되어도 됩니다. 즉 신학함이란 교회 안에서만 사는 삶이 아닌 각기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물으면서 사는 삶이되는 것입니다.
<성경 이야기>
이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어서 내려가 보아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그들은,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이렇게 빨리 벗어나서, 그들 스스로 수송아지 모양을 만들어 놓고서 절하고, 제사를 드리며 '이스라엘아! 이 신이 너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너희의 신이다' 하고 외치고 있다." 주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나는 이 백성을 살펴 보았다. 이 얼마나 고집이 센 백성이냐?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말아라. 내가 노하였다. 내가 그들을 쳐서 완전히 없애 버리겠다. 그러나 너는, 내가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모세는 주 하나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주께서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주신 주의 백성에게 이와 같이 노하십니까? 어찌하여 이집트 사람이 '주가 자기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그들을 이끌어 내어, 산에서 죽게 하고, 땅 위에서 완전히 없애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려 하십니까? 제발, 진노를 거두시고, 뜻을 돌이키시어, 주의 백성에게서 이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주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시며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모든 땅을 너희 자손에게 주어서, 영원한 유산으로 삼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이렇게 간구하니, 주께서는 뜻을 돌이키시고, 주의 백성에게 내리시겠다던 재앙을 거두셨다. (출 32:7~14).】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동안에, 산 아래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광야에서의 삶은 불안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데, 하나님의 응답은 늦어지기만 하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산 아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대신에 금송아지를 대신 섬기는 어리석은 신앙의 길에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금송아지 신앙은 쉽고 편해 보였고, 또 금송아지 신앙은 ‘눈에 잘 보이고, 귀에 잘 들리고, 손에 잘 만져지는’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산 위에서 이를 본 하나님께서 격노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앉혀놓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조리 없애버리시겠다는 준엄한 심판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내가 노하였다. 내가 그들을 쳐서 완전히 없애 버리겠다.”(출 32:10) 그러나 이 때 모세가 나섭니다. “주님, 어찌하여 주께서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주신 주의 백성에게 이와 같이 노하십니까? 어찌하여 이집트 사람이 '주가 자기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려고, 그들을 이끌어 내어, 산에서 죽게 하고, 땅 위에서 완전히 없애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려 하십니까? 제발, 진노를 거두시고, 뜻을 돌이키시어, 주의 백성에게서 이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출 32:11~12). 그리고 결국 모세의 간청을 받아들여서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게 오늘 성경말씀의 내용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셨다”는 점입니다. 마음과 생각을 바꾸셨습니다. 움직이셨습니다. 행동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 역시 ‘명사’(名詞)가 아니라 ‘동사’(動詞)였던 것입니다. 그게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삶에의 적용>
아주 오래전 텔레비전 광고 문안 중에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다”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심리를 아주 잘 묘사한 좋은 문구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은 움직이시는 분이시고, 인간 역시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두 실체가 모두 살아있는(alive) 존재입니다. 서로 교감하고, 서로 느끼고, 서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관계, 그게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입니다. 때로는 질투하기도 하고, 때로는 실망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지만 … 이런 저런 동사(動詞)적인 관계를 통해서 행복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삶, 그게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는 두 가지 길이 있는 셈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과 생각을 바꾸시는 길이고, 또 하나는 인간이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길입니다.
만약에 정말 가슴에 사무치도록 원하는 일이 있다면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마음과 생각을 바꾸셔서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길이 있습니다. 그건 우리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길입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지만,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서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 길에서 과감하게 돌아서십시오. 그것 역시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그리고 그 새 길에는 예전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놀라운 축복이 이미 예비되어 있습니다.
두 가지 차원의 길을 모두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정리하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뜻을 돌이키는 삶”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이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그건 한 마디로 “뜻을 돌이키는 삶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천지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조차도 어리석은 중생들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그 뜻을 돌이키시는데 하물며 우리가 그렇게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 “뜻을 돌이키는 삶”이라는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귀한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축도 : 이제는 우리에게 진리의 길을 몸소 보여주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언제나 어디서나 자비의 마음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진리의 상담자로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동행이 여기 고개 숙인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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