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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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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2009년 3월 22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16장 18절
설교제목 : 베드로의 영성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세력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성경 이야기>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베드로는 단연 최고의 제자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별칭은 예수님의 수제자였고, 로마 가톨릭은 그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일까요? 왜 수 많은 제자 중에 베드로가 수제자(首弟子)가 되었을까요? 왜 오늘날 전 세계의 수많은 교회들은 베드로라는 반석 위에 그 교회의 터를 세웠을까요? 베드로의 무엇이 그토록 어마어마한 일을 해내도록 했을까요? 오늘 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베드로는 학식이 높았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습니다. 무식했습니다. 단순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머리가 좋았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그의 저술이 극히 미미하다는 점이 그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베드로에게는 그 나름의 사상도 없었고, 철학도 없었습니다. 사도바울에 비교해볼 때, 베드로의 사상과 철학은 너무나도 보잘 것이 없습니다.
또 베드로는 실수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물위를 걷는 예수님을 따라했다가 물에 빠지기도 했고, 예수님과 함께 산에 올라 기도하던 중에 졸음을 참지 못해서 잠자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야단을 맞곤 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고난의 길을 가려한다고 말씀하실 때, 그 일을 막으려 나섰다가 ‘사탄의 자식’이라는 꾸중도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꾸준히 실망시켰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왔던 일행 중 한명의 귀를 칼로 잘랐다가 “칼로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소리를 들었고, 예수님께 충성을 맹세했으나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는 소리를 들었고, 실제로 베드로는 세 번 예수를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충동적인 사람이었고, 다혈질의 인간이었고 … 그러니까 한 마디로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궁금증은 비로소 시작됩니다. 왜 그런 별 볼일 없는 인간이 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首弟子)가 되었으며, 그런 평범한 사람이 세계 교회들의 머릿돌이 될 수 있었을까요? 정말 그것이 궁금합니다. 왜 일까요?
<베드로의 영성>
이런 궁금증에 대한 전통적인 서양 신학의 답변은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이었습니다. 세상적인 안목에서 보았을 때, 볼 품 없이 ‘버린 돌’에 불과한 존재를 귀하디 귀한 성전의 머릿돌로 쓰시는 ‘하나님의 절대 은총’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상투적인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 말이 맞겠지만 뭔가 부족한 것이 2%(?) 있습니다. 그런 식의 이야기도 물론 좋고 맞지만, 그것 말고 좀더 우리 피부에 와 닿는 영성적 해석이 필요합니다. 그게 뭘까요? 베드로의 영성에 대한 좀더 설득력 있고, 감화력 있는 성서해석은 어떤 것일까요?
<김흥호 선생 이야기>
다석 유영모의 제자로서 감리교 목사이자 신학대학 교수였던 김흥호 선생이 펴내신 책 중에 『연꽃이 피기까지는』(벽암록 해설)이 있는데, 이 책에는 베드로의 영성에 대한 적절한 해석을 찾아볼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옛날 황매산 중국 선종 제5조 홍인 밑에 700명의 고승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불법(佛法)을 알았기 때문에(?) 스승의 인가를 받지 못했다. 다만 훗날 제6조로 오른 혜능만이 불법을 모르기 때문에(?) 스승의 인가를 받았다. 참된 불법(佛法)의 세계는 사람으로서는 알 길이 없고, 다만 고양이나 소 같은 짐승들은 알 수 있다. 이성의 세계, 지식의 차원으로 불법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목석만이 얻을 수 있는 세계가 곧 불법이다.
불(佛)도 없고, 중생도 없는 절대자연의 세계. 혜능은 불법을 모르고, 글자를 모르고, 다만 어린애처럼 불도를 익힌 것 뿐이다. 무학(無學) 미수행(未修行)의 행자 혜능만이 본래 무일물의 경지에서 살 수 있었다. 아무 것도 없다. 봄이 오면 싹이 트고, 가을이 오면 열매가 진다. 아침이 오면 눈을 뜨고, 저녁이 되면 잠이 든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다. 불법을 모르는 혜능만이 인가를 얻는다. 똑똑한 사람이 다 떨어져 나가고, 바보 혜능이 인가를 얻는다. 나무나 돌처럼 불도를 실천해 가는 혜능에게만 정통의 도가 이어진다. 똑똑해 지기는 쉬워도, 바보가 되기는 어렵다. 바보가 되기 전에는 십자가를 지기 어렵다.”
여기에 인용된 글에서 ‘혜능’이라는 말을 ‘베드로’라는 말로 바꾸면, 모든 궁금증이 풀립니다. 베드로의 영성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김흥호 선생의 말씀 중에 “자연은 기성불(旣成佛)인데, 사람은 미성불(未成佛)”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 자연은 이미 하느님의 마음을 닮음으로 존재하는데 비해, 인간은 아직도 하느님의 마음 근처에서 가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의 위대함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그건 그가 평범한 자연을 닮은 사람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무지하고, 단순하고, 다혈질이고, 실수 투성이이고, 충성을 배반하기도 하고, 나약하고, 불안하고, 외로워하고, 슬퍼하고, 답답해 하고, 일이 잘 꼬이고 … 평범한, 즉 평범해서 위대한 자연을 닮은이가 바로 베드로였습니다. 그래서 그이가 교회의 반석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혜능처럼.
<말씀의 적용>
인생에서 크고 작은 고민, 이러저러한 골칫거리가 있으십니까? 그러면 ‘목석’(木石), 나무와 돌을 보십시오. 나무와 돌처럼 되십시오. 목석처럼 무심(無心)하십시오. 그게 답입니다. 그게 해법입니다.
나무와 돌처럼 무심(無心)함으로 인생을 살아간 이가 곧 ‘베드로’였습니다. 그렇지만 단순무심한 베드로는 반석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깊이 무심하여서 왠만한 바람에 흔들리지 않음으로 평안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게 구원이고, 해방이었습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베드로의 영성’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베드로의 영성’이라는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축도 : 이제는 우리에게 진리의 길을 몸소 보여주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언제나 어디서나 자비의 마음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총과, 진리의 동반자로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동행이 여기 고개 숙인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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