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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19:2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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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강종수 목사 |
참고 : | http://cafe.daum.net/st888 |
2015. 3. 15 주일 오전 설교
성경 : 마19:24-26
제목 : 과학적 질문 신학적 답변
마19:24-26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 아멘
본문은 어느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영생에 관해 질문하다가 물질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고 하시니 물질이 아까워서 떠난 뒤에 제자들에게 교훈하신 내용입니다. 부자가 천국 가기가 마치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여기 ‘바늘귀’란 예루살렘성의 작은 문인데, 해가 지면 통행 금지되고 새벽에 개방되는데 밤중에 부득이하게 성문을 드나들어야 할 경우를 대비해서 바늘귀라고 불리는 조그만 문을 만들어 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낙타가 허리를 숙이고 겨우 들어갈 정도의 문이었습니다. 비유의 뜻은 낙타처럼 등에 물건을 많이 지고는 작은 성전 문으로 못 들어가듯이 물질 욕심에 매이면 영생을 얻을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를 물었을 때, 사람으로 할 수 없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벧전3:15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 했습니다. <과학적 질문신학적 답변>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누가 구원을 얻겠습니까?
제자들은 구약적 신앙사상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병들고 가난하면 저주받은 것으로 단정했습니다. 때문에 부자가 천국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씀을 듣고 대단히 놀래면서
본문 마19:25 ‘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하고 질문했던 것입니다.
혹은 요6: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들, ἔργον)을 하오리이까?’ 라는 질문도 같은 경우인데, 영생을 얻으려면 어떤 행위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는지를 물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그제나 지금이나 윤리적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사람이 가진 정신과 철학으로는 구원을 스스로 얻을 수 없습니다.
세속적으로 사는 인간은 타인과 비교해서 자기 문화를 비판하고 스스로 행불행을 느끼고 조금 약하면 자신이 가진 환경을 문제화 합니다. 그리고 답도 매우 물리적으로 얻으려 하고 또한 자기중심적으로 편해지길 원합니다.
여기에 적응하려는 현대 교회 지도자는 온갖 철학적 요소와 심리학을 동원해서 문제를 풀어 주려고 애를 씁니다.
유럽교회와 서구교회의 몰락의 원인은 그들의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질문에 응답하기를 심리학이나 문화적인 것들로 응수하려다가 실패한 겁니다.
바울이 아테네에서 종교철학적으로 전도하려다가 실패한 것처럼(행17:), 교회가 세상의 과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잘못하면 그런 결과를 초래합니다.
긍정주의, 적극적 사고방식이니, 칭찬, 웃음치유니 하는 것들이 복음을 대신하려는 것은 인본적인 대안이지 진정한 답이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친 적극적 사고방식주의자 슐러도(수정교회) 망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머리를 써서 사는 백성이라지만 그 머리로 메시아를 죽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골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2. 하나님의 편에서 신학적으로 답하기
철학은 가치를 논하고 과학은 그 철학에 예속된 실용적 가치로 시대에 부응하려 합니다. 이런 논리로는 바른 인생관을 얻을 수 없고 삶에 기적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그 시대에만 잠시 도움이 될 뿐입니다. 인본적 대안은 언제나 한계가 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대안을 찾아 헤맵니다. 이런 식의 노력은 인생을 변증법적으로 살려고 하는 겁니다. 변명이고 정직하지 못한 대안입니다. 인생의 답은 사람에게 없습니다(롬3:4). 사람은 모두 죄인이고 맹인입니다.
제자들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하고 질문했을 때,
26 ‘..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요6:28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에 대한 답변도 요6:29 ‘..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구체적인 답, 합리적인 답이 아닌 듯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답하신 이런 신학적인 답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염려가 생길 때, 마6:33 ‘..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답을 주셨습니다. 이런 약속이 듣기에는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적으로 역사하실 말씀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에도 약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구하는 정신이 발라야 합니다. 때문에 답을 얻으려 할 때 항상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방법을 기대해야 합니다.
1)성경에 답이 나와 있으니 성경대로 결정하면 되고(딤후3:15-16)
2)성경이 주는 사상적 이해와 이에 성령님의 조명으로 깨닫거나(엡1:17)
3)개인적으로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공부 못하는 학생은 대체로 질문이 없습니다. 불신의 세상은 하나님과 내세에 대해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 모든 삶의 궁금증을 풀게 된 우리가 저들에게 질문과 답까지 줘야 합니다. 답은 예수님께 있습니다(요14:6). 모든 합리적 질문에 신학적 답으로 승리하는 자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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