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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합3: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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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구하라 목사 |
참고 : |
하박국의 기도
합3:1-19
찬송가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우리가 가지는 기독교 진리와 하나님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마치 하나님이 이 땅에서의 나의 흥망성쇠와 성공이나 실패, 혹은 기쁨이나 슬픔에 큰 관심을 가지시는 것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의 구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잘 믿어서 이렇게 복을 받았고 자녀들이 성공했다는 식의 자랑도 나오고 내가 잘 못 믿었기 때문에 이런 손해를 보고 망하게 되었다는 식으로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은 그런 소소하고 작은 인간의 희로애락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기쁨이나 좌절, 행복이나 불행에 대하여 인간의 이해관계를 따라 작동하시는 분이시라는 그런 이해는 하나님을 우상으로 격하시키는 것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예수를 보내 인간의 죄를 해결하고자 십자가를 지신 하나님은 인간의 소망과 소원대로 움직이신 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와 사랑이 발로가 되어 그 분의 작정과 계획을 일방적으로 이루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마치 하나님을 자기 소원대로 움직이시고 자기의 원하는 일을 도와주는 분 정도로 이해하여 기독교 신앙을 열심과 노력, 선행과 착함으로 몰고 가, 하나님이 그런 인간이 투입하는 정성에 감흥하여 그 인간에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몰아다 주는 신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 정성이라는 것도 전부 자기를 위한 투자에 불과하고 자기의 가치를 상승시켜 이 땅에서 복을 받고 종국에는 영원까지도 자기 힘으로 쟁취하려는, 즉 자기가 하나님이 되려는 아담의 본성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밖에는 신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질문은 애초에 왜 악인이 의인을 치도록 놔두시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합1:4입니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하박국이 가지는 전제는 의인이라면,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당연히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믿고 착하게 살고 제사 드리고 열심히 봉사하면서 사는데 왜 하나님이 신바벨론과 같은 악한 자들에게 우리를 넘겨서 그 나쁜 놈들에게 유린을 당하게 만드시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열심과 신앙에 대한 대가로는 적절치 않다는 말입니다.
또한 합1:12-13입니다.
12 선지자가 이르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이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들을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들을 세우셨나이다
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본래부터 바벨론이라는 놈들은 심판하기 위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지으신 자들이고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사 심판을 면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지은 자들이 아니냐는 하박국 선지자의 항변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눈이 정결하시고 정의로운 분이신데 어찌 그 악한 놈들이 의로운 우리를 삼키는데도 가만히 두고 보시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롭게 태어난 자들이고 저들은 악하게 태어난 자들인데 지금 뭔가 잘못 결정하신 것이라는 불평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이 바로 그 유명한 구절 합2:4입니다.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여기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구절의 의미가 매우 중요합니다. 마치 의롭게 된 자, 그러니까 이미 신자가 된 자들은 믿음으로 살게 된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원어의 뜻을 좇아 해석을 해 보면 좀 다릅니다. 그러니까 다시 해석하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는 살 것이다’ 이런 뜻입니다. 즉, 맞다 바벨론은 악한 놈들이다. 그들은 본래 교만하며 정직하지도 못하고 그들은 버림을 당할 것이다.
하지만 단지 너희 이스라엘이라고 하여, 제사를 드리고 십일조를 하며 선행을 한다고 하여 선하다고 생각지 말아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들만 사는 것이다. 진짜 사는 것이란, 진짜 구원을 받은 존재란 교회 생활하고 종교적으로 투철하고 행위적으로 착한 일을 하는 자들이 아니다. 자기의 행위나 착함이나 자기가 종교적으로 흠이 없는 자라 할지라도 오직 자기를 믿는 것이 아닌 예수의 복음을 믿는 믿음, 그 믿음으로만 의롭다 하심을 받는 자만 살게 될 것이다, 이런 말입니다. 진짜 사는 것은 믿음을 가진 자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바벨론이 와서 너희를 멸망케 하고 유린하고 죽임을 당해도 그것이 죽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 산다고 해서 사는 것도 아니다. 예수 안에서 참으로 사는 것이란 믿음을 가진 자, 오직 예수의 십자가만을 의지하는 자, 나의 모든 행위는 전부 죄 뿐이며 예수만 붙들려는 마음이 아닌 것들, 자아의 영광과 자아의 자랑과 자아의 인정을 위해 하는 모든 것들은 죄 덩어리 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고, 그 자체가 죽음이라고 회개하며 나를 부인하고 오직 예수 십자가만 붙드는, 그 믿음만 붙드는 자가 의로운 자이며 그런 자만 참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합3:2에서 말하는 부흥이란 무엇이겠습니까? 교회에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사회적으로 칭찬 받는 행위를 잘 해내어 신문에 나고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멋진 교회를 짓고 세련된 건물에서 대단한 찬양대의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지며 감격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일까요? 그런 것들은 부흥이 아닙니다. 부흥이란 각자가 하나님 앞에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자기의 착함과 자랑과 노력을 부인당하고 오직 예수의 십자가 은혜가 아니면 나는 도무지 이 사망에서 벗어 날 수 없다는 믿음만 붙드는 것입니다.
바벨론이 됐든지 이스라엘 민족이 됐는지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전부 자기만 사랑하여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자기가 가장 행복하려는 죄인들입니다. 그 존재 자체가 죄인임을 결단코 인정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건 현재 교회에 다니는 우리도 다 마찬가집니다. 전부 자기 행복을 위해 예수를 믿고 자기 발전과 자기 인격의 고양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자신을 위해 자기를 사랑하려고 교회 다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 스스로 믿음을 가져 의롭게 되는 자는 없습니다. 이 땅 위에 아무도 없습니다.
자기 사랑을 부인당하고 자기 영광을 차압당하고 오직 예수만 붙잡는 그 믿음은 예수가 나의 교만한 심령에 말씀으로 뚫고 들어와 나의 실체를 보게 만들어 나에 대해 완전히 절망케 만들 때에만 오직 예수만 붙들고 사랑하려는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내가 예수 잘 믿어 이렇게 복 받았다는 말이 논리적으로 정당하겠습니까? 나의 자랑과 나의 영광은 전부 빼앗기고 예수만 붙드는 것이 믿음인데 어찌 그 반대의 것을 복이라 말하겠느냐 말입니다. 복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말입니다. 자기의 영광을 세우는 것이 예수가 준 것이라고 한다면 예수의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저주를 받을 생각입니다. 만약 그런 생각이 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박국 선지자가 수년 내에 부흥케 해 달라는 말은 현재의 교회들이 말하는 그 숫자적 부흥, 돈의 부흥, 명성의 부흥, 세속적 부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부흥이란 하박국 자신이 하나님께 질문한 내용이 자기 자신과 이스라엘 민족의 죄악된 실체를 보지 못하고 무지하게 하나님 앞에 떠든 것인가를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하나님만 자신과 이스라엘의 심령에 부흥을 이루어 내실 수 있다는 말이며, 우리의 교만과 패역함을 깨닫게 하셔서 오직 예수만 붙드는 믿음을 만들어 내시라는 간곡한 소원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지막에 이렇게 결말이 납니다. 16-19절입니다.
16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바벨론이 창과 칼을 가지고 완전히 도륙하여 죽이려고 들이닥치고 있습니다. 그 말발굽 소리와 병사들의 고함 소리가 바로 문 앞에 와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뼈가 썩어 들어가는 듯한 긴장과 심장 떨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같은 두려움에 봉착해 있습니다. 곧 죽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부릅니다. 전혀 아무 것도 없어도 오직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왜입니까?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만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욕망과 야망과 소유와 행복에 사는 자가 아니라 높은 곳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살지만 하늘의 진리를 소유한 자로, 그리고 이미 완료된 천국 백성으로 이 땅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완전히 망해도 믿음만 붙드는, 예수만 붙드는 자로 의롭게 된 자는 살 것이라는 그 믿음을 가졌기에 높은 곳에 거하고 있기에 이 땅에서 자유한 자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이나 조건과 상관없이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입니다. 요한1서 2:15-17입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것은 요한1서의 문맥으로 볼 때, 오직 아들이신 예수만 시인하고 예수만 의지하는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 땅의 것들은 전부 정욕이며 자랑입니다. 자기 사랑입니다. 그 모든 것들은 전부 없어져 버리고 지나가 버릴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 영원히 살 것입니다. 이 세상, 즉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만, 예수를 의지하는 자만 결국에 살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가 너무나 많으시고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직 나 자신만 사랑하고 세상에서 대장 되는 것만 좋아하는 악한들에게 찾아오셔서 믿음의 씨를 심으시고 결국 의롭게 만들어 예수의 가족이 되도록 만들어 내신 십자가의 예수를 찬송합니다. 우리는 구원과 생명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오직 나의 종교적 행위와 교회 생활과 내가 착하게 되어 그 의를 쌓아 칭찬을 받아 챙기는 데에만 혈안인 자들입니다. 그리고 자기 힘으로 천국도 하나님으로부터 빼앗으려는 선악과 따 먹은 아담들입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요구조건 없이 찾아오시사 구원의 자녀로 만들어 버리신 하나님, 이 땅에서 망하고 무명인으로 사라지더라도 예수만 붙드는 부흥을 경험하는 복된 자녀들이 되게 도와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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