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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으로]“떠난 사람들은 어디로 가나” 새로운 ‘믿음’을 찾아나선 사람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ㆍ대안 찾아서 홀로 성경 읽고… 철학 강의 듣고… 템플스테이 가고…
제도 종교 아닌 곳에서 정신건강 찾고 위안 얻어
탈종교 이야기하지만 불확실한 미래·죽음의 공포
종교 밖도 해결하기 어려워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20세기 초 철학자 루카치는 종교 바깥으로 걸어나온 듯한 현대인의 처지를 이렇게 묘사했다. 전통사회의 큰 부분을 담당했던 주술과 관습에서 벗어나 삶의 문제를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다. 종교인이었다가 종교기관 밖으로 걸어나온 사람들의 심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 죽음의 공포는 종교기관 안에 있을 때나 밖에 있을 때나 쉽지 않은 문제다. 종교가 흔들리는 시대 사람들은 어떤 ‘믿음’을 찾아 나설까.
20대 취업준비생들이 서울시내 한 대학교 앞에서 타로카드 점을 보며 점술가의 운세 설명을 듣고 있다. 최근 10년간 20대 종교인 비율은 14%포인트 급감했지만 타로점, 명상, 템플스테이 등 대안적 종교를 찾는 발길은 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나홀로 신앙’도 주요 선택지였다. 고등학생 때 개신교인이 된 박성호씨(34)는 일요일에 교회에 가지 않고 집에서 혼자 성경을 읽는다. 두 달에 한 번꼴로 낯선 교회를 찾아 예배에 참여하지만 교인등록은 하지 않는다. 박씨는 “교회 커뮤니티(공동체) 특유의 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했다. 교회 공동체는 16년 전 박씨가 개신교인이 된 이유였다. 박씨는 “성적이나 외모 때문에 고민할 무렵 교회에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말해 주는 게 좋았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서 교회에서조차 직업과 성공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교회 공동체의 끈끈함이 답답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박씨는 ‘나홀로 신앙’ 효과로 목회자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꼽았다. 그는 “무신론자가 된 것은 아니다. 이득만 생각하는 시대에 이성을 초월하는 정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신을 믿는다”고 말했다. 개신교계는 박씨처럼 교회에 나가지 않고 개인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신도 수를 100만명 정도로 보고 있다.
사회운동이나 과학에서 답을 찾는 이들도 있다. 대학생 윤반석씨(28)는 ‘성경’ 대신 ‘사회과학 책’을 읽고 ‘헌금’ 대신 진보정당에 ‘당비’를 낸다. 그는 할아버지가 베드로의 한자식 발음인 ‘반석’을 이름으로 지어줄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지만 대학에 진학한 뒤 무신론자가 됐다. 다양한 시각을 접하고, 보수 기독교계에 환멸을 느낀 탓이다. 하지만 완전한 ‘탈종교’가 이뤄졌는지 고민할 때가 많다. “‘나는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고, 소명을 다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이것 자체가 종교적 관념이다.” 인간사의 근원적인 문제는 사회운동이나 공부로 해결하기 쉽지 않다는 고백이다.
인문학과 템플스테이, 문화체험 등도 기존 종교의 ‘대체재’ 역할을 한다. 직장인 안혜림씨(34)는 1년에 3~4회씩 인문학 연구 공동체에서 철학 강좌를 듣는다. 그는 “종교는 당장 답을 내려주진 않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면 기도보다 철학 공부가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좀 더 ‘빠른’ 위로가 필요하면 타로카드 점을 치러 간다. 한 달에 두어번꼴이다. 그는 “(점집에서) ‘언니 잘하고 있어’란 말을 들으면 맘이 놓인다. 종교기관에서 대놓고 할 수 없는 값싸고 편한 위로를 해 준다”고 말했다.
김송희씨(38)는 모태 ‘천주교 신자’지만 여름휴가는 늘 템플스테이로 보낸다. 김씨에게 불교는 문화체험이다. 그는 “템플스테이 동안 일상을 탈출한 기분이 든다. 스님들과 하는 선문답도 재밌고 요가·명상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며 “‘나는 꼭 이것만 믿어야 한다’고 종교 자체에 엄격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종교끼리 대립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2년 시작한 템플스테이는 내국인 방문객만 100만명을 넘어섰다.
종교 ‘바깥’이나 종교 색채를 띠는 ‘힐링(치유)상품’에 비하면 전통 종교는 ‘덜 매력적인 상품’이다. 지켜야 할 규칙이 많기 때문이다. 개신교 복음주의 운동가인 양희송 청어람아카데미 대표는 “몇 년 동안 인문학 열풍이 지속됐다. 명상·요가 등 종교성을 띤 취미 활동도 많아졌다”며 “종교기관이 사회적 정화작용을 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위로하지 못하는 사이 인문학이나 시민사회 활동이 ‘종교’의 역할을 대신 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 해도 비종교인들에게는 넘기 어려운 벽이 있다. 죽음의 공포다. 정재신씨(62)는 “친척이 50대에 급작스럽게 죽은 뒤 삶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장례식장에서 들리는 찬송가에 눈물을 쏟으면서 편안한 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죽은 자’의 넋을 달래고 ‘산 자’를 위로하는 종교 고유의 기능은 여전히 유효하다. 임혜진씨(30·가명)는 지난해 딸을 낳고 성당 문을 두드렸다. 임씨는 “아이가 태어나니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영혼이라도 외롭지 않게 해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대감도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붙드는 이유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서울 광화문광장 단식농성에 참여한 조은아씨(29)는 “종교인들이 세월호 가족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며 “요즘 세상에 누가 돈 말고 다른 이유로 남의 삶에 크게 아파하겠는가”라고 했다.
입력 : 201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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