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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吾 동화] 경찰, 약속을 지키다
하늘색 완장을 찬 늑대 순경이 지나가던 토끼를 잡았습니다.
“너를 체포한다.”
“내가 뭘 어쨌기에 체포하는 거요?”
“뭘 했기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지 어디 있어? 이번에 대장이 바뀌고 경찰서마다 내건 현수막을 보지 못했느냐?”
“봤지요. ‘경찰이 달라지겠습니다.’ 아니었나요?”
“우린 약속을 지킨다. 지난날에는 범인이 나쁜 짓을 저지른 뒤에야 체포하는 굼벵이 경찰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나쁜 짓을 저지르기 전에 미리 알아서 체포하는 번갯불 경찰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할까봐 미리 체포하는 거요?”
“네 눈알이 빨개서 체포한다.”
“눈알이 빨간 것도 죄가 되나요?”
“그 빨간 눈으로 대장님을 흘겨볼 수 있으니까.”
“내가 왜 대장님을 흘겨봅니까? 옛날부터 토끼와 들쥐는 사이가 좋았다고요.”
“그건 네 말대로 옛날 얘기다. 지금은 달라. 무한경쟁 신자유주의 물결이 세계를 덮었는데 서로 사이좋게 지낸다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모르느냐? 비효율은 관두고, 사이좋게 지내다가 굶어죽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넌 얼마든지 대장님을 흘겨볼 수 있다.”
늑대 순경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토끼를 날름 들어서 닭장차 안에 실었습니다.
닭장차 안에는 먼저 잡힌 동물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어요.
너구리가 토끼에게 물었습니다.
“난 꼬리털이 알록달록해서 잡혀왔다. 알록달록한 꼬리로 호랑이 행세를 하며 약한 짐승들을 괴롭힐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넌 왜 잡혀왔니?”
“난 이 빨강 눈으로 대장님을 흘겨볼 수 있대. 그래서 잡혀왔어.”
“눈알이 빨개서 잡혀왔구나. 파랬으면 괜찮았을 텐데.”
“난 날개가 파래서 잡혀왔는걸?”
이렇게 말한 것은 노랑 부리 파랑새였어요.
“날개가 파란 게 어때서?”
“파랑 날개로 날아다니며 짐승들로 하여금 파란 하늘을 쳐다보게 부추긴다는 거야.”
“짐승들이 파란 하늘을 쳐다보면 안 돼?”
“글쎄, 그게 안 된다는구나. 날개도 없는 것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거기에 마음이 팔리면 생산성이 떨어진대요.”
“생산성이 뭔데?”
“쉿! 그런 질문을 함부로 하다니?”
너구리가 얼른 토끼 입을 막으며 소곤거렸어요.
“이 경제제일 갈가리 숲에 살면서 ‘생산성’이란 말을 모른다면 그건 용서받지 못할 범죄야.”
토끼도 너구리에게 귓속말로 속삭였지요.
“그래도 모르는 건 모르는 거지. 얘기해줘, 생산성이 뭐야?”
“같은 시간에 일을 잘해서 만들어내는 게 많으면 생산성이 높은 거고, 같은 시간에 일을 못해서 만들어내는 게 적으면 생산성이 낮은 거야. 그러니까 이 경제제일 갈가리 숲에 사는 짐승은 무조건 생산성이 높아야 해.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거든.”
“생산성이 낮으면 어떻게 되는데?”
“어이구, 너 바보니? 생산성이 낮으면 경쟁에 뒤지고 경쟁에 뒤지면 곧바로 죽는 거야. 그것도 몰라?”
갑자기 파랑새가 날개를 펄럭이며 옹골차게 말했어요.
“쳇! 그럼 죽으면 될 거 아냐? 경쟁에 뒤져서 죽어야 하는 세상이라면 차라리 경쟁하지 않고 굶어서 죽겠다!”
“으악! 그런 소리 어디 가서 두 번 다시 하지 마라. 대장님 귀에 들어가면 경제제일 갈가리 숲에 대한 반역죄로 곧장 사형이야. 그러고 보니, 날개가 파래서 잡혀온 게 다행이다. 그 정도 일로 사형을 때리지는 않을 테니까.”
곁에 있던 두더지가 뿌연 돋보기 너머로 파랑새를 올려다보며 말했어요.
“그래도 넌 하늘을 날다가 잡혀왔으니 나보다는 덜 억울하겠다.”
“넌 무슨 이유로 잡혀왔는데?”
“내가 땅굴을 파는 건 너희도 알잖아?”
“그래서?”
“땅굴을 파다가 대장님 정원 장미나무 뿌리를 다칠 수 있다는 거야. 장미나무 뿌리를 다쳤기 때문이 아니라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잡혀왔다고!”
“그거야, 우리 모두가 앞으로 저지를지 모르는 어떤 일 때문에 잡혀왔으니까, 너만 억울하다고 말할 건 아니지.”
“모두가 억울하니까 아무도 억울하지 않다고? 그런 억지가 어디 있니? 그리고, 나만 억울하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캄캄한 땅에 굴을 파다가 잡혀온 나보다, 드넓은 하늘을 날다가 잡혀온 네가 좀 덜 억울하겠다고 말했을 뿐이야.”
“억울하면 그냥 억울한 거지, 더는 뭐고 덜은 또 뭐니?”
“음, 그건 파랑새 말이 맞는 것 같다.”
한 구석에 똬리를 틀고 앉아있던 구렁이가 말을 이었어요.
“그리고, 모두가 억울하면 아무도 억울하지 않다는 것도 맞는 말이야. 우리가 억울한 건 억울하지 않은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라고.”
“넌 무슨 이유로 잡혀왔는데?”
“나야 뭐, 구렁이니까.”
“구렁이라서 잡혀왔다고?”
“그런 셈이지.”
“구렁이가 뭘 어쨌기에?”
“난 앞으로 무슨 짓을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지난날에 한 짓이 있어서 잡혀왔다고 보는 게 옳을 거야.”
“지난날에 무슨 짓을 했는데?”
“수많은 들쥐들이 내 밥이었거든.”
“아하, 그랬구나? 그런데, 그럼 독수리는 왜 안 잡혀왔지? 독수리도 들쥐를 먹고 사는데.”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래서 내가 억울한 거라. 높은 벼랑 저택에 사는 붉은 줄무늬 독수리는 아예 건드릴 생각도 못하고 낮은 돌담 그늘에 사는 나만 이렇게 잡아왔거든.”
“그러니 어쩌겠어? 세상이 이렇게 돼버린 걸. 그래도 참고 기다리면 경제제일 갈가리 숲에서 잘 먹고 잘 입을 날이 오겠지. 대장님이 경제를 살리신다니까.”
토끼가 빨간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누구든지 알면 대답해달라는 투로, 물었습니다.
“아까부터 경제제일이란 말을 자꾸 하던데, 그게 무슨 말이야?”
구렁이가 혀를 날름거리며 대답했어요.
“속여도 좋다, 속아도 좋다, 물구나무로 춤을 춰도 좋다, 돈만 많이 벌 수 있다면! 이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경제제일이지.”
그때, 닭장차 문이 열리더니 곰 형사가 늑대 순경을 안으로 밀어 넣었어요.
토끼가 깜짝 놀라 물었지요.
“경찰 아저씨, 아저씨는 왜 잡혀온 거예요?”
“흐흐흐, 내 몸이 너무 건강해서 잡혀왔다.”
“몸이 건강한 게 뭐 어때서요?”
“건강한 몸이니까 무슨 나쁜 짓이라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가능성이 뭔데요?”
“넌 모르는 게 많아서 먹고 싶은 것도 많겠다.”
파랑새가 말참견을 하고 나섰습니다.
“가능성이란, 뭐가 어떻게 될 수 있다는 거야. 물론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럼 우리 모두에게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니야?”
“아무렴, 있고말고. 있어도 아주 많이 있지. 그러니까 우리 모두 얼마든지 범죄자가 될 수 있는 거라. 물론 안 될 수도 있고…”
“아,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파랑새가 노랑 부리로 날개깃을 빗질하며 저만 아는 노래를 뾰족하게 부릅니다.
비요르 비요르 비비 요르르
비요르 비요르 비비 요르르
[얼마 전, “경제를 살린다.”는 말로 대통령 된 사람이 어떤 나라에 있었지요. 그 무렵에 쓴 아무개의 헛소리랍니다.]
월간<풍경소리>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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