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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마7:13-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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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http://blog.naver.com/malsoom/68630216 |
.2009년 6월 14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설교제목 : 좁은 문의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험해서, 그 곳을 찾아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 (마태 7:13~14).
<넓은 문과 좁은 문의 차이>
예수님의 말씀 중, 읽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말씀이 여럿 있는데, 오늘 성경말씀 역시 우리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쉽고 편한’ 넓은 길을 가려는 본능이 있는데, 예수님의 오늘 말씀에는 그 본능을 거스리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그 좁은 문에 생명이 있는 것임을 …. 그 좁은 길의 삶에 참다운 행복과 해방이 있는 것임을 ….
오늘의 주제는 ‘좁은 문과 넓은 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성경말씀을 읽고 해석할 때, 다수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넓은 문’이라고 하고, 소수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좁은 문’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는 일차원적인 성경읽기에 그치는 것입니다. 그런 해석이 맞기는 합니다만, 오해의 여지가 있는 성경읽기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일차원적으로 해석하다보면, 기독교인들은 괜시리 괴팍한 사람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다수(多數)는 악(惡)이요 소수(少數)는 선(善)인 것처럼 잘못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할까요? 저는 이를 ‘주체적 의미발견’이라는 잣대로 나누고자 합니다. 즉 남들이 다 가기 때문에 분위기에 휩쓸려서 내가 가는 차원이 아니라, 내가 주체적으로 의미를 발견하기 때문에 내가 가는 차원을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기 두 가지 길이 놓여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는 데 나는 그 길에서 별다른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넓은 길’이 있고, 소수의 사람들만 가고 있는데 나는 그 길에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좁은 길’이 있습니다. 이 때 나는 어느 길로 가야할까요? 물론 ‘좁은 길’입니다. 그러나 ‘내’가 좁은 길로 가야하는 이유는 소수의 사람들이 그 길로 가기 때문이 아니라, 그 ‘좁은 길’에서 내가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주체적 의미발견’입니다. 내가 주체적으로 의미를 발견하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사 넓은 길로 가더라도, 그 넓은 길에서 그 나름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면, 이는 좋은 일입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넓으냐 좁으냐의 차원이 아니라,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한다는 차원에서 보았을 때, 이 세상에 넓은 길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는 길은 △천천히 발견되고, △가까스로 알게 되고, △고통스럽게 찾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철학의 길, 그 영성의 길이 어떻게 넓을 수 있겠습니까? 좁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좁은 문은 그런 맥락일 것입니다.
<나의 고백>
제 잘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만, 설교말씀의 한 솔직한 예화 차원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돌이켜보면, 저의 삶은 ‘좁은 길’을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삶이었습니다. 즉 의미와 가치를 찾으려고 몸부림치는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20대와 30대의 나이를 지나오면서 고독하고 쓸쓸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친구 혹은 동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는 여러 모로(정치적, 신앙적 차원) 보수적인 풍토 속에서 자랐습니다만, 20대 시절에 만난 사람들은 여러 모로(정치적, 신앙적 차원) 진보적 풍토에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보수적 풍토는 답답해 보였고 진보적 풍토는 2% 부족해 보이는 어정쩡한 상태, 즉 보수적 가치를 떠나려고 했으나 진보적 풍토 속에 구원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 어정쩡한 상태, 그래서 보수적 가치체계에 계속 머물 수도 없었고 진보적 풍토에 몸을 담글 수도 없는 어정쩡한 상태, 그게 20대와 30대의 자화상이었습니다.
그 어정쩡한 길에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다가, 즉 그 좁디좁은 길에서 하느님의 진리를 찾고자 나름대로 무진 애를 쓰다가 만난 것이 이른 바 ‘영성의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성의 길은 좁은 길이었습니다.
<삶에의 적용>
교우 여러분의 삶은 어떠신가요? 의미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넓은 문이 앞길에 놓여져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정말 축하할 일입니다. 그냥 그 길로 쭉 가시면 됩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 넓은 길에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결단하시는 게 좋습니다. 좁은 문으로 가십시오. 그 좁디 좁은 문에 참다운 생명의 길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또 만약에 넓은 문과 좁은 문이 모두 막혀져 있는 위기에 직면해 있으시다면, 용기를 내십시오.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길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미세한 길’이 분명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고생이 되고, 힘들더라도 그 ‘미세한 길’만 찾으면 생명의 삶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좁은 문의 길’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학교 중에 거창고등학교가 있는데, 이 학교가 내세운 ‘직업선택의 10계명’이 유명합니다. 설교의 결론으로서 이 십계명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십계명에 오늘 예수님 메시지의 핵심이 다 들어 있습니다. 참고가 되시길 바랍니다.
【직업 선택의 십계명】
1. 월급이 적은 곳을 선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선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선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은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선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말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축도 : 이제는 우리에게 진리의 길을 몸소 보여주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언제나 어디서나 자비의 마음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넓으신 은총과, 진리의 동반자로서 우리와 함께 걸으시는 성령님의 아름다운 동행이 여기 고개 숙인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언제나 어디서나 풍요로우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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