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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7: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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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부겸 목사 |
참고 : | http://blog.naver.com/malsoom/75252664 |
2009년 7월 19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누가복음 17장 20절~21절
설교제목 : 영성(靈性)의 일상(日常)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누가 17:20~21, 표준새번역)】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 17:20~21, 개역성경)】
<기독교의 무속적 전통>
우리 기독교의 역사 중에 무속적 전통이 있습니다. △방언을 한다든가, △귀신을 내쫓는다든가, △병자를 고친다든가, △미래 일을 알아맞힌다든가, △영계와 교통한다든가 … 이런 저런 무속적 전통들이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계속’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우리 교회들 이곳저곳에서 이런 저런 무속적 전통들이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기독교의 무속적 전통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 무속적 세계에 의탁해서 사시는 분들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무게, 삶의 짐이 너무나 무거울 때 사람은 일시적으로라도 도망쳐야할 도피성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무속적 세계 속에서 삶의 위로와 힘을 얻고 있는 분들은 일종의 도피성에 숨어 있는 이들입니다. 현실에서 감당해야할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우므로 잠시잠깐이라도 쉬어야할 도피성, 그곳에 숨어서 쉬고 있는 이들이 바로 무속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충분히 그분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피성을 일시적인 도피성일 뿐입니다. 언젠가는, 그리고 반드시,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그 도피성에서 나와야 합니다. 도피성은 오래 머무는 곳이 아닙니다. 안 가는 것이 제일 좋고, 어쩔 수 없어서 가야만 했다면 용기를 내서 가급적 빨리 떠나야할 곳이 도피성입니다.
<성경 이야기>
이제 성경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 17:20~21, 개역성경)】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답답한 현실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나라는 로마에게 빼앗겼고, 민족의 정통성은 짓밟혔습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자긍심은 잃은 지 오래됐고, 로마의 제국과 그 앞잡이들이 이스라엘 민족의 ‘정치경제 문화종교’의 모든 분야에서 끝없는 수탈을 자행하는 절망적 시대를 살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일상적으로 ‘무거운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고, 꿈도 없고, 의욕도 없고 … 하루하루가 지겨울 뿐인 나날들을 어쩔 수 없이 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어둠의 시대에 이스라엘 전역에 퍼져 있는 사상이 곧 ‘메시아 사상’이었습니다. “이제 곧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아가 이 땅에 올 것인데, 그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으로 인도하리라.” 매혹적인 메시아 사상이 그 땅에 터질 듯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메시아 사상’을 숭배하는 이들이었을 것입니다.
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 그러나 예수님의 답변은 차가웠습니다. 묻는 이들의 뜨거운 마음에 차가운 냉수를 쏟아 붇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예수님의 답변에 따르자면,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기 있다’든가 ‘저기 있다’든가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온 나라를 뒤집어놓을 메시아를 기대하던 바리새파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자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 땅에 눈에 펼쳐지듯이 이뤄지는, 즉 하나님의 나라는 시간적 공간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마지막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현재 이스라엘 사람들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상적 삶이 곧 원래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다만 마음의 눈이 어두워진 바리새파 사람들이 현재 지금 이곳에 이뤄지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 참고 : 바리새파는 분리주의자다
<설교의 결론>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 밖이 아닙니다. 안(內)입니다. 마음을 180도 바꾸면 우리들의 일상적 삶이 곧 하나님 나라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이 곧 하나님께서 천상에서 뿌려주신 ‘만나’입니다. 얼마나 귀하고 감사하고 아름답고 맛있고 행복한 일입니까! 우리가 매일 먹는 물과 마시는 공기, 씹는 고기는 모두 하늘의 양식입니다. 감사한 일이고, 감격적인 것이고, 은혜로운 사건입니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모든 사람은 곧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들입니다. 매일매일 얼굴 부딪치면서 지겹도록 다투면서 사는 ‘가족들’은 특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내려 보내주신 천사 중의 천사들입니다. VIP급 천사입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잠자고, △일어나고, △세수하고, △머리 감고, △밥 먹고, △출근하고, △설겆이 하고, △땀 흘려 일하고,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고, 또 시험을 보고, 방학을 하고, △스트레스 받으면서 일하고, △사람들하고 갈등하다 다투고 화해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저녁을 먹고 TV를 보고, △이불을 깔고, △하루를 정리하고 잠을 자고 … 이 모든 것들이 다 너무나도 거룩한 성사(聖事)인 것입니다. 일상적 삶이 곧 영성적 삶인 것입니다.
모두가 사랑하고, 모두가 행복이고, 모두가 천국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 참고 : 평상심이 진리다(禪의 정신)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정리하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영성의 일상’이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우리가 매일 겪는 하루하루가 사실은 하나님의 영이 살아서 숨쉬는 영적인 것입니다. 일상생활이 곧 영성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영성의 일상’이라는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축도 : 이제는 우리에게 진리의 길을 몸소 보여주신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언제나 어디서나 자비의 마음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넓으신 은총과, 진리의 동반자로서 우리와 함께 걸으시는 성령님의 아름다운 동행이 여기 고개 숙인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언제나 어디서나 풍요로우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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